너의 지구를 구해줘

by 걍마늘

장난감 블록으로 집을 짓고 있는데 갑자기 한쪽 벽이 와르르 무너진다. 멍하니 무너진 곳을 바라본다. 예상치 못한 순간에 예상치 못하게 벌어진 일이다. 마음의 준비가 전혀 되어있지 않았기에 무너진 곳을 그저 바라볼 뿐이다.

집을 무너뜨린 장본인은 태연히 폐허 속에서 블록 하나를 집어 들더니 자신의 정체 모를 구조물 위로 가져간다. 다들 자기 놀기 바쁘고, 선생님도 자리를 비웠는지 보이지 않는다. 아무도 나를 위로해 주지 않았고 그제야 눈물이 터져 나왔다.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눈물은 멈출 줄을 모른다. 온몸의 수분이 전부 빠져나가 터진 물풍선처럼 쪼그라들다가 누군가의 발길에 채여 아무렇게나 내동댕이쳐질 것만 같았다.

그런데 그때 누가 내 손을 잡아끈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그렇지만 믿음직스러운, 그래서 의지가 되는 손길이다. 그러나 나는 아직 그 아이가 누구인지 모르겠다.


우리는 푹신푹신한 녹색 바닥을 가로질러 가 알록달록한 기차 안으로 뛰어든다. 아이가 줄을 잡아당기자 딸랑딸랑 종이 울리고 이윽고 기차는 지구를 벗어나 우주 저편으로 나아간다. 감자 같은 화성을 지나고 구슬 같은 목성을 지나 훌라후프 같은 고리를 가진 토성 너머로 계속해서 내달린다. 아이는 신이 나서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무어라 떠든다. 우주는 고요하고 아무도 없지만, 외롭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분명 언젠가 겪은 일이다. 내가 다닌 유치원이 틀림없다. 바로 앞에 기차 놀이터가 자리한, 하늘 높이 솟은 거대한 병정 같은 아파트 건물들로 둘러싸인 유치원이다. 놀이동산 꼬마기차처럼 생긴 기차 놀이기구가 설치된 놀이터가 흔치는 않을 것이다. 기관차에 객실 좌석까지 그럴싸하게 갖춘 두 량짜리 기차였다. 우레탄 바닥에 박힌 놀이기구에 불과했으므로 실제로는 움직이지 않았지만, 그래서 어디로든 갈 수 있었다. 우주는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먼 곳이었다.


어느덧 우리는 이름 모를 행성에 정차한다. 그곳은 태양의 중력이 소멸하는 카이퍼 벨트 어딘가. 태양계의 경계. 기차에서 내린 아이가 펄쩍펄쩍 뛰며 말한다. 점프해 봐. 여기선 아파트만큼 높게 뛰어오를 수 있어. 도움닫기를 한 나는 아파트보다 높게 뛰어오른다. 풍경이 납작해진다. 기차는 녹색 웅덩이 속에 있고, 고개를 돌리면 오르트 구름을 뛰쳐나온 혜성들이 길게 꼬리를 그으며 태양계 안으로 진입하는 장관이 펼쳐진다. 아이가 단풍나무 씨앗처럼 빙그르르 돌면서 천천히 하강한다. 나는 바닥에 등을 대고 누워, 질주하는 혜성들을 배경으로 회전하며 떨어지는 아이를 바라본다. 우리의 거리는 점점 줄어든다. 아이도 나를 보고 있다. 아이의 얼굴이 차츰 또렷해진다. 이제 나는 아이가 누구인지 알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