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버 퀸 (6/6)

by 걍마늘

처음엔 눈을 떴는지도 몰랐다. 눈을 감아도 떠도 똑같았기 때문이다. 소리마저 사라진 순도 백 퍼센트의 암흑이었다. 정신이 들자 뺨에 닿은 부드러운 바닥이 느껴졌고 비로소 위아래가 구분됐다.

바닥을 한 움큼 움켜쥐었다 놓는다.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리는 것은 모래가 틀림없다. 해변일까. 파도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바다 냄새도 나지 않았다.

바닥을 짚고 일어섰다. 두 손으로 허공을 더듬으며 걸음을 뗀다. 아직은 괜찮다. 하지만 두 번째 걸음은 두렵다. 더는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한다.

“누가 있나요?”

그것은 누군가의 목소리였지만 빛이 지나간 느낌이었다.

“제가 보입니까?”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무한한 어둠을 돌아보았다. 대화가 가능한 거리이기는 했으나 암흑 속에서는 정확한 위치를 가늠키가 어렵다.

“우리, 살아있는 거죠?”

소녀일까.

“그렇지 않을까요? 여기 얼마나 있었을까요?”

“모르겠어요. 깨어난 지는 한참 된 거 같은데.”

“제가 그쪽으로 갈까요?”

“아니, 아니에요.”

소리가 난 방향으로 돌아섰다.

“전에도 비슷한 일을 겪은 적이 있어요.”

소녀가 말했다.

“비슷한 일?”

“실제로 일어난 일인지, 상상인지, 바람인지, 착각인지 확실치는 않아요. 딱 한 번이었으니까.”

손을 뻗어 보았다. 허공이다. 아무것도 만져지지 않았다.

“아홉 살 때였어요. 할머니가 마트에서 절 잃어버렸죠. 할머니에게 들은 바로는 그랬어요. 의류 할인 매장을 헤매고 다닐 때였다고. 제 기억에는 없어요. 그때의 제 기억은 어두컴컴한 창고로부터 시작되죠. 커다란 나무 상자가 아무렇게나 쌓여 있고, 빤짝빤짝한 옷가지라든가 천들이 여기저기에 걸려 있는. 그곳에서는 설명하기 어려운 독특한 냄새가 났어요. 저한테는 익숙한 냄새였죠. 그렇지만 아무도 없고 또 너무 조용해서 무서웠어요. 세상에 혼자 남겨진 것 같았죠. 이 부분은 아주 선명해요. 무서워서 울음조차 나오지 않았으니까요. 알고 보니 그곳은 컨테이너박스 안이었어요.”

“컨테이너박스요?”

“유랑 극단의 소품 창고였죠. 아빠는 전국을 돌아다니며 공연을 하는 유랑 극단의 마술사였어요.”

나는 잠깐 인경을 떠올렸다.

“엄마는 아빠의 조수였어요. 유랑 극단에서 아빠를 만났고, 저를 낳았죠. 하지만 절 키운 건 할머니였어요. 엄마의 엄마요. 부모님은 제가 어느 정도 자라자 서울에 사는 할머니한테 저를 맡기고 본격적으로 순회공연을 다니기 시작했죠. 집에 붙어 있는 날이 거의 없었어요. 저는 할머니 집을 제 집처럼 여기고 자랐죠.”

털썩하고 모래밭에 주저앉는 소리가 들렸다. 가까운 곳이다.

“그날 저를 발견한 사람은 외발 자전거를 타는 아저씨였어요. 우락부락한 생김새와는 다르게 다정한 분이시죠. 겁도 많고요. 아저씨는 소품을 챙기러 왔다가 저 때문에 크게 놀랐어요. 저도 저였지만 아무래도 동해 바다에 있는 해수욕장이었으니까요.”

“동해 바다요?”

“아홉 살짜리 꼬마가 혼자서 올 수 있을 만큼 가까운 거리는 아니잖아요. 엄마는 만날 때마다 그때 이야기를 했는데, 도무지 기억이 나질 않았어요. 마치 순간이동을 한 것 같았죠. 누가 데리고 왔을 수도 있지만 기억이 없으니까요.”

믿기 어려운 이야기지만, 설명이 안 되기는 지금 상황도 마찬가지다. 목소리가 들려오는 쪽으로 한 걸음 다가섰다. 소녀가 정말로 거기 있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할머니와 엄마가 해변에서 소리를 지르며 싸운 것 같은데 누가 먼저 시작했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할머니는 일단 한번 불길이 타오르면 걷잡을 수 없는 사람이었죠. 하얗게 재가 될 때까지 잔소리가 이어졌거든요. 할머니는 아빠와 엄마한테 불만이 많았어요. 실은 저도 아빠와 엄마를 미워했죠. 어렸을 땐 아빠와 엄마가 어디서 뭘 하는지 정확히 몰랐어요. 초등학교에 들어갔을 때만 해도 할머니를 엄마라고 생각한 것 같아요. 그들이 부모라는 사실을 명확하게 안 건 순간이동 사건 이후 같아요. 그때부터였나. 아빠는 자주는 아니지만 만날 때마다 신기한 마술을 보여주었죠. 그러고 나면 서운한 마음이 눈 녹듯이 녹았어요. 헤어질 때가 되면 또 펑펑 울었지만요. 아빠는 마술을 너무나 사랑했고 틈만 나면 그 이유를 설명해 줬어요. 엄마도 그런 아빠를 사랑했고요. 할머니는 끝까지 아빠를 미워했지만요.”

나는 가만히 소녀의 말을 경청했다. 소녀가 말을 이었다.

“그날 본 바다가 저의 첫 바다였어요. 물이 끝도 없이 펼쳐진 풍경은 처음이었죠. 바다 앞에서 엄마가 했던 말이 기억나요. 지구의 주인은 인간이 아니란다. 그날 저는 극장 문을 닫은 부모님과 해가 질 때까지 해변에서 놀았어요. 모래성도 쌓고, 돈까스도 처음 먹어 봤죠. 해변에 임시로 개장한 놀이동산에서 회전목마도 타고 범퍼카도 탔어요. 모닥불 앞에서 기타를 치며 노래도 불렀죠. 엄마는 <병 속에 담긴 시간>이라는 팝송을 좋아했어요. 학교 다닐 때 라디오 프로그램에 신청곡 엽서를 보냈는데 소개가 된 적이 있었대요. 그때 행운을 다 써 버린 것 같다고 했죠. 그러자 아빠가 그랬어요. 편지를 넣은 병이 떠내려 왔을지도 모르니까 자세히 살펴보라고. 샌프란시스코쯤에서 병을 띄우면 해류를 타고 동해안까지 올 수도 있다는 얘기였던 것 같아요. 그 당시엔 무슨 말인지 몰랐지만요. 아빠다웠죠. 아빠는 천막 극장에서 할머니를 기다리는 동안 카드 마술을 보여줬어요. 제가 뽑은 카드를 그 자리에서 제가 생각한 카드로 바꾸는 마술이었죠. 마법사 같았어요. 아빠는 행운을 가져다줄 거라며 헤어지기 직전에 카드를 선물로 주셨죠.”

“카드요?”

“부모님은 라스베이거스 공연을 앞두고 있었어요.”

긴 한숨 소리가 들렸다.

“라스베이거스 공연은 아빠와 엄마의 꿈이기도 했죠. 그런데 태평양 상공에서 그만 비행기가 추락하고 말았어요. 제발 그 비행기에 타지 않았기를 바랐는데, 탑승자로 확인되었죠.”

바지 주머니를 뒤져 보았다. 카드는 잘 있었다. 어쩌면 그것은 소녀가 잃어버린 카드였을지도 모른다. 주머니에서 카드를 꺼냈다.

“그런데 <병 속에 담긴 시간>을 부른 가수도 비행기 추락 사고로 사망했대요. 얼마 전에 라디오에서 그 노래를 들었어요. 혹시나 싶어 지도를 찾아봤더니 라스베이거스는 로스앤젤레스 옆이고 샌프란시스코도 그쪽에 있더라고요. 해류를 타고 무언가가 떠내려 올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했죠. 부모님이 사고를 당했을 때 실종된 사람들의 시신은 단 한 구도 발견하지 못했다고 해요. 그러자 이런 생각이 들었죠. 아빠와 엄마는 태평양 어딘가에 있는 작은 섬에 생존해 있다고. 세상을 떠난 게 아니라고. 소식을 담은 편지를 병 속에 넣어 띄워 보냈을지도 모른다고.”

태평양 어딘가에 있는 작은 섬이라. 쓰나미가 덮친 날 아버지한테 들은, 무인도에 불시착한 어머니 이야기가 떠올랐다.

“아빠가 선물한 카드가 뭐였습니까?”

“클로버 퀸이었죠.”

별똥별 하나가 광막한 어둠을 가로지른다. 놀라움을, 반가움을, 반짝이며 사라지는 별똥별의 긴 꼬리 같은 희망을, 그 여운을 무어라 표현하면 좋을까. 그 순간 나는 자기장을 보는 새처럼 그 빛을 보았다.

“아까 해변에서 트럼프 카드 한 장을 주웠는데… 클로버 퀸이었습니다. 혹시 찾고 있었던 게….”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훌쩍이는 소리가 난 것 같기도 했다. 경험하지 않은 가능성은 수천수만 개의 우주로 뻗어 나가고 그 가능성들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이제 우리는 어딘가로 나아가야 했으며 클로버 퀸은 하나의 이정표가 되기에 충분했다.

나는 소녀가 있다고 여겨지는 쪽으로 한 발짝 더 다가가 카드를 내밀었다.

“여기….”

그러자 펑, 하는 소리가 나더니 머리 위로 빛이 쏟아진다. 나를 향해 스포트라이트를 비춘 듯했다. 빛이 너무 강해 눈을 뜰 수가 없다.

실눈을 뜨고 빛에 적응되길 기다리며 주변을 살폈다. 왜인지 나는 천막 극장 안에 있었다. 소녀가 말한 천막 극장 같기도 했고, 언젠가 인경과 들여다본 놀이동산의 천막 극장 같기도 했다. 테이블에 놓인 턱시도와 그 위에 나란히 올려놓은 마술 지팡이와 반드르르한 실크해트가 현실감을 더한다.

그러나 소녀는 어디에도 없었다. 손도 비었다. 클로버 퀸도 마술처럼 그녀와 함께 사라진 것이다. 고요한 천막의 공기는 소녀가 처음부터 여기 없었다는 듯 시치미를 떼고 있었다. 주머니에서 카드를 꺼낸 것이 맞는지도 의심스러웠다.

나는 테이블에 걸터앉아 소녀를 기다렸다. 어쩌면 이곳은 바나나가 있던 세계고, 소녀는 사과가 사라진 세계로 돌아갔는지도 몰랐다. 그곳에서 지난 시절의 나를 만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클로버 퀸은 두 세계를 잇는 뫼비우스 띠 같은 것일 수도 있었다.

소녀는 나타나지 않았다.

테이블에서 내려와 턱시도를 입어 보았다. 맞춤복처럼 꼭 맞는다. 마치 누가 나를 위해 준비해 놓은 듯하다. 주머니가 묵직해 뒤져보니 트럼프 카드가 들었다. 이스탄불 덱이다. 카드를 한 장 한 장 넘겨보며 클로버 슈트가 나오면 테이블에 따로 빼놓았다. 퀸이 빠졌다. 예상대로다. 슈트 별로 분류해 보았다. 다른 슈트는 빠짐없이 완벽하다. 클로버 퀸만 없었다. 카드를 정리해 도로 주머니에 넣었다.

우리는 이미 죽었을지도 모른다. 이곳은 죽음 이후의 세계인지도 몰랐다. 그러나 또 어쩌면 아직 죽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기적 따위를 바라고 있는지도 몰랐다.

실크해트를 쓰고 마술 지팡이를 든다. 주문을 외듯 지팡이로 두 번 바닥을 친다. 인경은 말했다. 마술을 보이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세상이 다르게 보일 거라고. 나는 맨발로 모래 바닥을 꾹꾹 밟으며 걸어가 힘껏 천막을 걷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