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는 모텔 안에 있었다. 해가 지도록 해변을 돌아다니다 포기하고 구멍가게에서 소주와 과자를 사 들고 모텔로 들어갔는데 소녀가 카운터 앞에 서 있는 것이다. 교복 차림 그대로, 지친 기색이 역력한 얼굴을 하고서는.
“미성년자는 보호자 없이 투숙이 안 돼, 알겠지?”
카운터 안의 남자가 친절한 말투로 말했다. 그럼에도 어쩐지 그 호의가 불편하다. 그래서 걱정스러웠다. 모텔과 교복은 어울리지 않는다. 세상 물정을 모르는지 믿는 구석이 있는지 무슨 배짱인가도 싶었다. 보호자가 되어 줄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소녀는 나를 경계하는 듯하고 위험해 보이는 쪽은 오히려 나라는 생각이 들어 섣불리 나서지도 못했다. 힘없이 돌아서서 나가는 어깨를 축 늘어뜨린 뒷모습이 안쓰럽다.
소녀는 나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 억울하지만 당연했다. 우리는 아무 사이도 아니다. 나를 믿고 의지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
“요즘 애들 무서워. 겁대가리를 상실했다니까.”
남자의 말이 방아쇠가 되었을까. 나는 발사한 총알처럼 모텔을 뛰쳐나갔다. 소녀는 어두운 도로 저편으로 위태롭게 멀어져 갔다. 소녀를 따라갈지 말지 고민하다 소녀가 어둠 속으로 사라지자 어쩐지 마음이 조급해져 다급히 걸음을 옮긴다.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걸음이 점점 빨라졌다.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소녀가 보였고, 안도한 순간이었다. 검은 것들이 몰려나와 소녀를 가로막는다. 실루엣만 보였지만 소년들이 분명하다. 머릿수를 세어 보니 하나, 둘, 셋, 넷… 총 다섯이다.
내가 소녀를 구할 수 있을까.
신고하자. 휴대폰을 꺼냈다. 전원 버튼을 누르자 화면이 환하게 빛난다. 고요한 도로 위로 부팅음이 울려 퍼졌다. 등골이 서늘했다. 휴대폰을 꺼 두었다는 사실을 깜빡하고 말았다. 수런거리는 소리가 나더니 그림자 두 개가 무리로부터 빠져나왔다. 모든 시선이 나에게로 향한 기분이었다. 전화마저 먹통이다. 안테나가 뜨지 않는다. 긴급 통화도 안 됐다.
그때였다. 소녀가 해변 쪽으로 달리기 시작한다. 소년들이 우르르 소녀를 쫓아갔다. 마치 토끼를 쫓는 이리떼 같았다.
하나 정도는 어떻게 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위기에 처한 소녀를 보니 마음이 급해져 소주병을 들고 무작정 그들을 뒤쫓았다. 우당탕거리며 철도 건널목을 건너다 발이 걸려 넘어질 뻔했으나 바로 균형을 잡고 덜그럭거리는 구두를 벗어던졌다. 내처 그들을 따라 모래밭을 내달렸다.
소년 하나가 소녀를 거의 따라잡았다. 나는 이를 악물고 소년들 사이로 달려 나갔다. 소년들은 눈치채지 못했고 나는 그들 사이에서 마치 그들처럼 달렸다.
첨벙거리는 소리가 났다. 소녀가 바다로 뛰어든 모양이었다. 뒤이어 맨 앞에서 달리던 소년이 뛰어들었고 마침내 소년을 따라잡은 나는 소주병으로 소년의 머리를 가격했다. 소년은 소녀를 놓쳤고 소녀는 그 틈을 타 물속으로 잠수했다.
“뭐야 이 새끼는!” 누가 소리쳤다. 소년들은 당황했는지 하나는 우왕좌왕하며 소녀를 찾았고, 둘이서 머리가 깨진 소년을 부축하는 와중에 나머지 하나가 나를 쫓았다.
나는 발목을 잡는 파도를 발로 차 부수며 전력으로 질주했다. 모래밭은 끝도 없이 이어졌고 심장은 터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그렇게 얼마나 달렸을까. 뒤를 돌아보니 아무도 없었다. 나는 그대로 고꾸라져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소녀를 삼킨 바다는 말이 없고 소년들의 기척도 더는 느껴지지 않는다.
대자로 누워 눈을 감았다. 귓전에서 파도가 부서진다. 한밤의 파도는 소리도 기세도 낮과는 다르게 위협적이다. 무섭게 몰려와 모래를 파고든다.
파, 숨 뱉는 소리가 났다. 벌떡 일어나 바다를 봤다. 검은 물 위로 하얗게 물거품이 인다. 물 위로 손이 올라왔다. 누가 허우적대고 있었다. 잘못 듣지 않았다. 소녀일까? 아니면, 소년?
수심이 급격히 깊어지는 바다다. 수영을 잘해도 위험하다. 더구나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하려면 요령이 있어야 하고 목숨도 걸어야 한다. 무엇보다 용기가 필요했다. 눈 감고 못 본 셈 쳐도 그만이다. 죄책감은 들겠지만 세월이 흐르고 기억이 희미해지면 그런 일이 있었나 싶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그를 구할 수 있는 사람은 나뿐이었다. 주변에 다른 사람은 없었다. 쓰나미에 휩쓸렸을지도 모를 그녀를 생각한다. 누가 곁에 있다고 무슨 소용이었겠나 싶으면서도 손을 잡아줄 누군가가 있었다면 그 손이 누구의 손이든 신의 손길로 여겨졌을 것이다.
바다로 들어갔다. 세 걸음도 못 가 가슴까지 물에 잠겼다. 다행히 수온은 생각보다 따뜻하다. 그런데 소년이면 어쩌지? 살아야 할 사람이 죽고 죽어야 할 사람이 살았으면 어쩌지?
바닥이 푹 꺼졌다. 죽음이 턱밑에서 출렁인다. 지금이 되돌아갈 마지막 기회인지도 몰랐다. 파도에 떠밀려오는 그가 시야에 들어왔다. 그와의 거리도 생각보다 가깝다. 포기하지 말라는 계시 같았다.
마음을 다잡고 엄지발가락에 힘을 주어 파도를 버텼다. 파도와 싸우며 한 발짝 한 발짝 나아간다. 이쪽을 보라고 소리치며 손을 뻗었다. 토하도록 짠물을 삼킨다.
그를 붙잡은 것과 발이 빠진 것은 거의 동시였다. 그 또한 온 힘을 다해 나를 잡아당겼다. 숨 막히는 어둠과 적막이 한입에 우리를 집어삼켰다. 괜한 짓이었나. 그러나 생각은 거기서 더 이어지지 못했다. 후회할 틈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