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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그림책빵

한밤중 톰의 정원에서

필리파 피어스 / 에디트

by 걍마늘

텍스트 몇 개가 떠오릅니다. <벽 속에 숨은 마법 시계>라든가, <비밀의 화원>이라든가, <추억의 마니>라든가, 아, <원더스트럭>도 있네요. 여기에다 이제는 거의 클리셰나 다름없는 빅토리아 시대 고딕 소설 풍의 이야기-오래된 저택과 유령 따위가 등장하는-까지 더하면 솔직히 몇 장만 읽어 봐도 결말이 대충 짐작되는 이야기이기는 합니다. 익숙한 동화적 구조죠.

일단 주인공(소년/소녀)과 부모(보호자)가 분리되는 사건이 벌어집니다. 이를테면 부모를 잃거나, 병이나 집안 사정 따위로 부모와 떨어지는 상황이 발생하죠. 주인공은 이 일을 계기로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환경에 놓이게 됩니다.

이제 이상한 일들이 벌어지고, 실체에 접근하는 방향으로 서사가 전개됩니다. 환상과 현실이 중첩되면서 이야기가 급속도로 발전해 나가죠. 결말은 둘 중 하나로 귀결됩니다. 환상의 설명에 메시지가 담기느냐, 환상과 현실의 중첩에 의미를 부여하느냐.

톰은 동생의 병 때문에 부모와 분리되어 이모 집으로 보내집니다. 이모 부부는 오래된 다세대 주택에 살고 있죠. 그런데 1층 로비에 눈에 띄는 벽시계가 하나 있습니다. 이모부의 말에 의하면, 시간은 잘 맞는데 종이 제때 울리는 법이 없다는 어딘가 수상쩍은 시계입니다.

본격적인 이야기는 자정에 울려 퍼진 괘종소리로부터 시작됩니다. 열두 번이 아니라 열세 번이었죠. 톰은 내려가 시계를 확인합니다. 하지만 어두워 잘 보이지 않죠. 그때 뒷문 유리창으로 드는 빛을 발견합니다. 문을 열면 시계가 잘 보일 것 같습니다.

그런데 문을 열어 보니, 그곳은 어마어마하게 넓은 정원입니다. 게다가 대낮이었죠. 작가는 안정감 있는 드로잉과 채색으로 빅토리아 시대의 정원을 사실감 있게 묘사합니다. 시간과 계절이 느껴지는 톤이라든가 섬세한 빛과 그늘의 표현도 좋았습니다.

톰은 열세 번의 괘종소리가 들리는 자정이면 몰래 뒷문으로 나가 정원의 세계를 탐험합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해티'라는 소녀를 만납니다.

정원의 세계에서 톰이 보이는 사람은 해티가 유일합니다. 현실 세계엔 정원이 존재하지 않지만 톰에게는 보이듯, 정원의 세계엔 톰의 세계가 존재하지 않지만 해티에게는 톰이 보입니다.

다른 세계의 서로를 알아보는 유일한 두 사람. 전형적인 Boy Meet Girl 플롯입니다. 하지만 사춘기 소년 소녀의 서툰 첫사랑을 다룬 이야기는 아닙니다. 그보다는 소외된 아이들의 우정, 혹은 마음을 나누는 경험에 더 가깝죠.

어린 시절, 혼자 남은 집에서 책과 단 둘이 시간을 보내본 적이 있다면, 너무나 심심해 괘종시계가 종을 몇 번 치는지 세어본 경험이 있다면, <한밤중 톰의 정원에서>가 환기하는 정서가 어떤 것인지 대충 감이 오지 않을까 싶은데요.

창문을 열면, 정말로 정원 같은 것이 있으면 좋겠어요.

키케로Cicero는 말했죠. If you have a garden and a library, you have everything you need.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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