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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그림책빵

심야 이동도서관

오드리 니페네거

by 걍마늘

도망치고 싶을 때 책은 늘 훌륭한 도피처가 되어주었습니다. 그렇게 누군가의 삶을 대신 살아보기도 했고, 위험한 모험을 함께 하며 현실에선 결코 일어나지 않을 일들을 겪어도 보았죠. 누군가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기도 했고, 나를 이해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물론 읽는 시간이 아까운 책도 많았습니다. 시간은 한정되어 있는데 읽을 책은 끝이 없었으니까요. 마음에 드는 책만 읽기에도 모자란 인생 아니겠습니까.

알렉산드라에게 책은 어떤 의미였을까요?

그녀는 새벽 네 시에 홀로 레이븐스우드 가를 걷다 이동도서관을 발견합니다. 리처드와 다툰 직후였죠.

알렉산드라는 그를 무척이나 사랑하는 모양입니다. "싸우고 난 다음이면 왠지 모르게 리처드가 무척 사랑스러웠다. 무엇 때문에 싸웠는지조차 까마득히 잊었다."

그런데 서가의 책들이 어쩐지 낯익습니다. 자세히 보니 전부 읽어본 책입니다. 심지어 자신의 일기장까지 꽂혀 있었죠.

사서인 오픈쇼 선생님은 말합니다. 당신이 지금까지 읽은 책을 빠짐없이 모아두었다고. 이해가 안 됐죠. 어찌어찌 거기까지는 가능하다 치더라도 어떻게 자신이 올 줄 알고 하필 이곳에서 기다리고 있었는지는 의문이었습니다. 오픈쇼의 대답도 모호했고요.

이후로 이동도서관은 볼 수 없었습니다. 그녀는 밤마다 그곳에서 이동도서관을 기다렸죠. 리처드는 끝까지 그녀의 말을 믿지 않았고 두 사람은 결국 이별합니다.

알렉산드라는 굶주린 사람처럼 책을 읽어 치우기 시작합니다. 그녀 곁에 남은 것은 책뿐이었죠.

또다시 이동도서관과 조우한 것은 리글리 구장 앞 주차장이었습니다. 9년 만이었죠. 덕분에 리처드와 헤어진 직후에 읽은 책들을 다시 마주하게 되고 불현듯 그때의 감정이 되살아나 슬픔에 빠지지만 이내 그것들을 보면서 다시금 위안을 얻습니다.

그녀는 묻습니다. 이동도서관에서 일을 할 수 있느냐고. 오픈쇼는 불가능하다고 합니다. 이유는 가르쳐주지 않았죠.

이동도서관을 다시 만난 것은 그로부터 12년이 지난 후였습니다. 펍으로 친구를 만나러 가는 길이었죠. 그녀는 그 사이 공립도서관 관장이 됐지만 이동도서관에서 일하고 싶은 마음은 변함이 없었습니다. 오픈쇼 역시 단호했죠. "규정에 어긋나서 어쩔 수가 없군요."

그녀는 책으로 가득 찬 집을 둘러보며 책을 읽기 위해 포기한 것들을 생각합니다. 왜 그렇게 간절히 책을 원했는지도 말이죠.

'성장', 혹은 성장하지 않음으로써 성장하는 '반성장' 서사를 마주할 때마다 어떤 부분에서는 여전히 성장하지 못한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현재를 회피하고픈 마음일까요, 과거로부터 위로받고픈 마음일까요.

<심야 이동도서관>은 말합니다. 우리가 곧 하나의 도서관이라고.

작가는 독자를 위해 존재하고, 독자는 다시 작가가 되어 독자에게 헌신합니다. 작가의 죽음과 독자의 탄생은 책을 통해 순환하죠. 그리고 책은 우리의 일부로서 존재합니다.

도서관은 우리가 자신을 잃었을 때 마치 거울처럼 우리가 누구인지 일깨워줄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만나는 하나의 방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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