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버 퀸 (2/6)

by 걍마늘

아버지는 밤새 호흡 곤란을 겪다 아침에서야 안정을 찾았다. 뜬눈으로 밤을 지새운 나는 무거운 몸을 이끌고 바깥공기를 쐬러 나갔다.

카페테리아에서 아이스커피를 테이크아웃해 등나무 벤치로 갔다. 시원한 그늘 안에서 얼음이 꽉 찬 커피를 들이켜고 나니 몸이 조금 가벼워진다.

휠체어를 탄 산송장 같은 노인과 휠체어를 미는 딸처럼 보이는 여자가 힘겹게 오르막길을 오른다. 아무리 병원과 거리가 먼 삶을 살았더라도 말년에는 누구나 병원 신세를 지기 마련이다. 행여나 휠체어를 놓아 버리지는 않을까 불안하게 그들을 지켜보고 있는데 낯선 번호로 전화가 왔다. 함께 레지던트 생활을 했던 후배다. 어렵게 내 연락처를 알아냈다고 했다.

“옷 벗었다며?”

“소식 빠르네.”

“승소했다면서?”

통상적인 안면 윤곽 수술이었다. 미용이 목적이었고, 지병도 없었다. 그러나 그는 영원히 깨어나지 못했다. 갑자기 혈압이 떨어지고 산소포화도가 낮아져 에페드린을 투여했지만, 마취 의사 한 명이 여러 수술실을 담당하는 것이 현실이었고, 네 번째 호출 전화를 받고 나서야 겨우 그가 있는 수술실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 사이에 심정지가 온 것이다. 심폐소생술도 소용없었다.

형사 사건에서는 인과관계 추정 법리가 적용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이 났으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가 왔는지 수술실만 들어가면 몸이 돌처럼 굳었다. 성형외과 봉직의 생활은 5년 만에 아버지의 입원과 맞물려 자연스럽게 정리가 됐다.

“참, 인경 선배랑 연락해?”

“서인경? 조교수 됐다는 얘긴 들었지.”

“둘이 가깝지 않았어?”

“언제 적 얘길 하는 거냐. 서인경은 왜?”

“두 달째 행방불명.”

“무슨 소리야?”

“왜, 쓰나미로 동해안이 난리가 났었잖아.”

나는 명확히 그날을 기억한다. 날씨가 어땠는지, 내 앞에 놓인 것은 무엇이었는지, 아버지는 상태가 어떠했으며, 또 누구 이야기를 했는지.

“그날 아침 자상 환자 둘이 동시에 병원으로 실려 왔어. 인경 선배가 남자를 맡고 내가 여자를 맡았지. 새벽에 현관문을 열고 집에 들어가는 남자를 여자가 등 뒤에서 칼로 찔렀다나 봐. 남자도 집으로 뛰어 들어가 식칼을 들고 저항했고. 칼부림이 난 거지. 우당탕거리는 소리에 잠이 깬 남자의 부인이 피범벅이 된 두 사람을 발견하고 신고한 거래.”

“부인?”

“유부남이라는 소리지.”

“불륜?”

“그럼 부인 쪽이 칼을 휘두르지 않았을까.”

“모르지. 남의 인생 망쳐놓고 아무렇지 않게 잘 사는 남자한테 복수했는지도.”

“그런가. 아무튼 여자는 죽고 남자는 살았어. 변명 같기는 한데, 이미 출혈이 상당했거든. 서른 군데가 넘게 찔렸어. 수습 불가였다고. 그런데 수술 직후에 인경 선배가 사라졌어. 진료실에도 없고 전화도 안 받더라고. 줄줄이 수술 스케줄이 잡혀 있었는데 말이지. 그날은 어디 쓰러져 있겠지 했어. 그런데 다음 날도, 그다음 날에도 계속 연락이 안 되는 거야. 이상하잖아, 말도 없이. 그래서 병원 출입 기록이랑 CCTV까지 다 뒤져봤는데 그날 수술실을 나온 후로는 어디서도 흔적을 찾을 수가 없었어. 그렇다면 일단은 병원 안에 있을 가능성이 크잖아. 경찰 출동하고, 대대적인 수색 작전이 펼쳐졌지. 안 보이는 데서 사고가 났을 수도 있잖아. 하지만 별다른 소득은 없었어. 사건은 미궁에 빠졌고.”

“가족은? 연락해 봤어?”

“가족? 글쎄. 부모님은 두 분 다 돌아가신 걸로 아는데. 결혼도 안 했고.”

“혼자였다고?”

“서류상으로는. 아는 친척이라도 있어?”

“아니.”

분초를 다투는 외과와 절차를 중요시하는 마취과의 의견 충돌은 필연적이다. 그럴 때마다 무거운 침묵 끝에 내뱉는 인경의 한마디는 언제나 설득력이 있었고 그녀가 내린 결정은 예외 없이 옳았다. 무책임하게 연락을 끊고 잠적할 사람은 아니었다.

“진짜로 이상한 건 이제부터야.”

경찰서에서 연락이 온 것은 어제 오후였다고 했다.

“쓰나미 실종자를 찾다가 수상한 사람을 발견했다는 거야. 동해 버스 터미널 CCTV에 수술복을 입고 돌아다니는 여자가 찍혔다면서 확인해 달랬지.”

“그래서? 서인경 맞아?”

“영상 보낼 테니까 봐봐. 사실 긴가민가하더라고. 거리도 멀고 화질도 별로라. 어쨌든 이상하기는 하잖아. 의사가 수술복을 입은 채로 버스 터미널을 돌아다닐 일이 뭐가 있어. 그래서 버스 CCTV를 모조리 추적했는데 수술복 차림으로 해변까지 갔더라고. 버스에서 내리는 장면까지는 확인을 했어. 그런데 그로부터 한 시간쯤 후에 쓰나미가 온 거야. 더 이상한 건, 수술을 마친 시간이 오전 11시 27분이거든? 그런데 CCTV에 찍힌 시간은 11시 42분이야. 15분 만에 동해까지 갔다는 소리잖아. 말이 돼? 순간이동이라도 했다면 모를까. 형이 그나마 가까웠던 것 같아서 연락한 거야. 형이라면 금방 알아볼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전화를 끊자마자 휴대폰으로 파일 두 개가 날아왔다.

첫 번째 파일은 버스 터미널 대합실 CCTV 영상이었다. 인경으로 추정되는 인물이 바지주머니에 손을 푹 찔러 넣고 서서 한참 동안 어딘가를 응시했다. 사람이 없어 수술복이 더 눈에 띄었다. 옷차림 때문인지 지나가는 사람들마다 힐긋힐긋 그를 돌아봤다.

두 번째 파일은 버스 내부 CCTV 영상이었다. 그는 내리는 문 맞은편 자리에 앉아 있다가 문이 열리자마자 벌떡 일어나 버스에서 내렸다. 마치 어디로 가야 할지 잘 안다는 듯 주저 없이 어딘가로 향했다.

공식적인 쓰나미 도달 시각은 오후 1시 3분. 수술 종료 시각으로부터 한 시간 삼십육 분이 지난 후다. 동해까지는 아무리 빨라도 차로 세 시간. 영상의 일시가 오류가 아니라면 인경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 논리적으로는 그렇다. 그럼에도 나는 몇 번이고 영상을 돌려보며 인경이 맞는지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 머리로는 아니라고 하는데 좁은 어깨와 걸음걸이가 아무래도 눈에 익었다. 그녀가 아닐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