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는 완벽한 방이었다. TV도 에어컨도 없는 옥탑방이고 겨울은 냉동고요 여름은 찜통이 따로 없지만, 컴퓨터가 있으니 TV는 필요 없었고, 마침 전 세입자가 냉장고를 두고 가 한여름에는 냉장고 문을 열어 놓고 그 앞에 선풍기를 놓고 썼다.
냉장고 맞은편에는 컴퓨터를 놓았다. 잠은 침대 매트리스에서 잤다. 누가 깨끗한 놈을 내다 버려 재빨리 주워왔는데 쿠션감도 나쁘지 않았다. 방 안에 화장실도 딸려 있었다. 너무 좁아 변기에 앉으면 무릎이 벽에 닿을 정도지만 그래도 세면대도 있고 샤워기도 있다. 마찬가지로 전 세입자가 통돌이 세탁기를 두고 간 덕분에 빨래도 걱정 없이 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완벽한 것은 컴퓨터다. 몰입감이 뛰어난 32인치 와이드 모니터에 최고 사양의 CPU와 메모리, 손에 딱 맞는 키보드와 마우스. 가능성만 놓고 보면 나라는 인간의 값어치는 컴퓨터보다 나을 것이 없어 보인다.
헤드셋을 쓰고 온라인에 접속하는 순간 나의 세계는 무한히 확장된다. 광속으로 이동하는 우주선을 타고 점프하는 기분이랄까. 요즘은 새로 추가된 시리우스 항성계의 알파 행성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 지구로 치면 아프리카 사막 같고, SF로 치면 <듄>이라든가 <나우시카>가 떠오르는, 그런 곳이다.
2주 전 베타 서비스를 시작하면서 웜홀을 열었고 새로운 스킬과 함께 신규 아이템이 등장했다. 새로운 스킬을 마스터하려면 1부터 시작되는 시리우스 레벨을 올려야 하지만 화폐와 능력치는 그대로 계승된다.
그러나 현재는 밸런스 조정 단계라 레벨99 미만의 캐릭터들은 이곳의 몬스터를 공략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맨 처음 만난 벌레가 시리우스 레벨10이다. 체감상 레벨99에 2, 30레벨은 더했음직한 능력치다. 도무지 대미지가 들어가지 않았다. 다른 몬스터는 엄두도 못 내고 있었다.
“쓸 만한 게 나와야 할 텐데.”
간신히 벌레집 하나를 턴 동료들과 나는 푸른 태양과 연둣빛으로 빛나는 끝없는 사막을 바라보며 휴식을 취했다. 아무것도 없는 메마르고 황량한 풍경이지만 아름다웠다.
사막이 아름다운 건 어디엔가 우물이 있기 때문이라고, 외계의 소년은 말했지.
내가 보고 있는 풍경은 픽셀의 집합으로 0과 1의 조합에 불과하며 만질 수도 냄새를 맡을 수도 없는 환상에 지나지 않지만, 모래알갱이들이 한꺼번에 떠올라 한쪽으로 와르르 날아가는 광경을 보고 있자면 정말로 바람이 살갗을 스치는 듯하다. 그 바람은 실재했다. 걸음을 옮기면 모래의 질감이 느껴졌고, 갓 구운 빵처럼 고소한 행성 특유의 냄새가 났다.
“시리우스계 레어템은 다른 템들과 조합이 가능하대요. 유니크한 업그레이드 버전을 만들 수 있답니다. 값이 상당할 거라고.”
하지만 왕벌레가 준 것은 돌덩이 몇 개와 하등 쓸모없어 보이는 풀때기가 전부다. 며칠째 그 따위 것밖에 주지 않는 벌레만 잡았다.
그래도 시리우스계의 돌덩이는 금화 십만 개 이상의 가치가 있다. 사냥은 지루했으나 한 달이면 공과금과 통신비, 게임 이용료 정도는 뽑고도 남는다. 그저 서비스 종료가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딱 한 집만 더 털어 봅시다.”
벌레는 많고, 다양했다. 속성도 가지각색이라 스킬을 시험하고 연마하기는 좋았다. 잡기는 어려우나 경험치가 상당해 레벨 업이 빠르다.
나는 나만한 클레이모어를 붕붕 휘두르며 동료들과 열심히 벌레를 공략했다. 누군가는 죽어라 번개로 지지고 누군가는 죽어라 화염으로 태웠으며 또 누군가는 죽어가는 동료들을 위해 죽도록 회복 버프를 발동했다. 순번에 따라 내가 아이템을 차지할 참이었다.
“뉴스 봤음? 여의도가 잠겼답니다.”
“뉴스 봤음. 인천, 강남 일대 정전.”
채팅창이 바빠지는가 싶더니 갑자기 컴퓨터가 꺼졌다. 헤드셋을 벗었다. 그제야 빗소리가 들린다. 창문이 번쩍하더니 곧이어 천둥소리가 박력 있게 울려 퍼졌다.
휴대폰도 먹통이었다. 선풍기도 냉장고도 작동을 멈추었다. 마지막 타격을 가하고 환상적인 이펙트와 함께 아이템 알이 떨어지며 동시에 레벨 업을 한 순간이었다. 나는 벌떡 일어서다 발이 미끄러져 넘어질 뻔했다. 몬스터 사냥에 정신이 팔려 집 안으로 물이 들어오는 줄도 모르고 있었다.
책상 위로 올라갔다. 이층짜리 다가구 주택의 옥탑방이다. 높은 건물은 아니었지만 낮은 위치는 아니다. 아무리 홍수라도 옥상까지 물이 찼을 리는 없는데 들려오는 빗소리가 아무래도 심상치 않다. 간유리로 된 창이라 바깥 사정을 바로 알기는 어려웠다.
창문을 열었다. 굵은 빗줄기가 우악스럽게 안으로 들이친다. 암흑 천지에 빗소리만 시끄럽다. 서울 전체가 정전인 모양이었다. 세상은 번개가 칠 때만 잠깐씩 그 모습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