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상은 이미 물이 찬 수조나 다름없었다. 집주인 할머니가 가꾸는 화분들과 반쪽짜리 물탱크가 둥둥 떠다닌다. 할머니는 상수도가 직결 급수로 바뀌어 쓸모없어진 물탱크를 반절로 잘라 화분 받침이라든가 깨진 화분을 보관하는 용도로 재활용했다. 옥상에 놓인 이름 모를 꽃과 식물들은 할머니의 유일한 행복처럼 보였다.
창문을 닫았다. 어쨌거나 옥상 아래로는 완전히 물에 잠겼다는 뜻이다. 옥탑방도 더는 안전지대가 되지 못할 듯했다.
네 살 무렵 해변에서 모래놀이를 하다 이안류에 휩쓸린 적이 있다. 물속으로 잡아끄는 무자비한 힘과 집어삼킬 듯이 달려드는 물의 장막과 그 사이로 언뜻 비친 태양과, 구조대원의 검은 형상을 기억한다. 그 이후로는 바다는 물론이요 수영장도, 심지어 대중목욕탕에도 가 본 적이 없다. 배를 타야 했던 수학여행은 말할 것도 없었다. 개천 징검다리도 못 건너게 하는 어머니와 자식을 쪼다로 키울 거냐는 아버지가 다투는 걸 본 적이 있는데 그 수학여행이 있는 다음부터는 아무도 이 문제를 입에 올리지 않았다.
휴대폰 시계를 봤다. 밤 11시 43분. 월세와 보증금 대출 상환금은 편의점 야간 알바로 벌었다. 자정부터 아침 8시까지가 근무 시간이었다. 앞 근무자가 근무하는 시간은 저녁 6시부터 자정까지다. 그녀는 아직 편의점에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교대할 때 잠깐 얼굴을 보는 정도의 사이다. 그러나 솔직히 말하면 한 번쯤 진지하게 대화를 나누어 보고 싶은 사람이기도 했다. 문제는 그녀도 나만큼이나 붙임성이 없고 대체로 무표정했으며 누구한테나 그런 것인지 이미 나라는 인간을 간파한 것인지 심드렁하게 나를 대했다는 것이다.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그날도 비가 꽤 많이 왔다. 그런데 교대하자마자 휑하니 편의점을 나서더니 그대로 그 비를 맞고 가는 것이다. 놀란 나는 우산을 들고 쫓아가 그녀를 불러 세웠다. 그녀에게 비상용 우산을 건넸다. 쓰고 가라는 뜻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밑도 끝도 없이 경멸 어린 눈빛으로 나를 훑어보더니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돌아섰다. 그대로 계속 비를 맞으며 제 갈 길을 갔다. 당황한 나머지 처음엔 손에 뭐가 묻은 줄 알았다. 그래서 한참 동안 이리저리 손을 살펴보았다. 우산 없이 가기에 우산을 갖다 주었다. 다른 의도는 없었다. 그것은 그저 우산일 뿐이었다. 나를 벌레 보듯 할 이유는 없었다. 그렇지만 유리창에 비친 나는 어쩐지 벌레보다 하찮아 보였다.
그로부터 며칠이 지난 어느 날이다. 그날따라 게임이 술술 풀려서 조금 늦게 편의점에 도착하고 말았는데 웬 남자가 그녀에게 추근대고 있는 게 아닌가. 그녀는 불편해 보였지만 남자는 아랑곳이 없었다.
양복을 잘 차려입은 건장한 남성이었다. 구애하는 수컷처럼 가슴팍이 불룩하고, 오뚝한 코에, 머리와 하관도 바버샵에서 매만진 듯 깔끔했다. 로션 냄새마저 야성미가 넘쳤다. 옷도 명품 같았고 시계도 비싸 보였다. 개처럼 꼬리가 있었다면 아마 누구라도 내가 얼마나 기가 죽었는지 알 수 있었으리라.
조끼를 벗어던진 그녀는 그대로 뒤도 돌아보지 않고 편의점을 뛰쳐나갔다. 남자는 사냥하는 표범처럼 그녀를 쫓아갔고 나는 설마 하면서도 꼬박 하루를 걱정했다. 다행히 이튿날 마주한 그녀는 평소와 다르지 않은 모습이었다. 너무나 반가워 하마터면 끌어안을 뻔했다.
남자를 다시 본 것은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서다. 일요일 아침에 근무를 마치고 밥 먹으러 길 건너 상가에 갔다가 화기애애한 한 무리의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남자와 마주친 것이다. 옆구리에 낀 성경책을 보니 상가에 있는 교회에서 나온 사람들이 분명했다. 그는 목사 같았다. 편의점에서 봤을 때와 인상이 너무 달라 깜짝 놀랐다.
번개에 주위가 잠시 환해졌다. 그새 방 안이 물바다가 되었다. 배에 구멍이 뚫린 것처럼 무섭게 물이 차오른다.
과자 봉지와 국물만 남은 컵라면과 빈 페트병과 소시지 비닐 따위로 너저분한 책상을 뒤졌다. 등산이며 낚시를 다니느라 코빼기도 비치지 않은 아버지가 쓰던 헤드 랜턴이 있었다. 도망치듯이 집을 나온 날 왠지 긴요해 보여 슬쩍 주머니에 넣은 것이다. 자전거를 타고 편의점에 출근할 때 써 보니 전조등 대용으로 충분해 그냥 그걸 쓰고 다녔다. 아버지가 도움이 되기는 평생 처음이었다. 그것은 과자 봉지 밑에 있었다. 다행히 불은 잘 들어왔다.
헤드 랜턴을 쓰고 의자를 징검다리 삼아 현관 앞까지 갔다. 최대한으로 손을 뻗어 현관 한옆에 세워둔 무지개 장우산을 집어 든다. 일단은 눈에 띄는 것이 그것밖에 없었다. 며칠 전 편의점에서 들고 온 것이다. 그날도 많은 비가 왔다. 오늘만큼은 아니었지만.
메리 포핀스는 우산을 낙하산처럼 썼다. 비 오는 날 하굣길에 우산을 쓰고 언덕을 내려갈 때면 메리 포핀스처럼 바람을 타고 날아오르는 상상을 하곤 했다. 한번은 실제로 시도해 보기도 했는데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아서 상당히 낙담한 기억이 있다. 괜히 넘어져 무릎만 까졌다. 더 어렸을 때는 보자기를 망토처럼 두르고 담장에서 뛰어내리기도 했다. 정말로 날 거라고 믿진 않았지만 날고 싶은 마음만큼은 진심이었다.
다시 책상으로 건너가 창문을 열고 창틀 위로 올라섰다. 하늘이 번쩍하고 빛난다. 난간에 걸린 물탱크가 옥상을 넘어가기 직전이었다. 옥상 난간 위로 물이 넘실거린다. 그야말로 신의 분노라 아니할 수 없는 속도다.
노아의 방주가 떠올랐다. 대홍수의 의미가 뭐였더라. 타락한 세상을 쓸어버리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겠다는 신의 의지 같은 거였나.
우산을 펼쳤다. 굵고 세찬 빗줄기가 우산 천을 찢을 듯이 달려든다. 폭포 속으로 들어간 기분이었다. 숨이 턱 하고 막혔다. 습도 때문일 수도 있고, 두려움 때문일 수도 있었다.
반쪽짜리 물탱크를 방주로 삼을 작정이었다. 애초의 계획은 그러했다. 그런데 막상 물에 뛰어들려고 보니 도무지 엄두가 나지 않는 것이다. 누구나 인생에 한 번쯤은 앞으로 나아갈 수도, 뒤로 물러설 수도, 제자리에 있을 수도 없는 순간을 맞닥뜨리기 마련이다.
그렇게 창틀에 갇혀 옴짝달싹 못 하고 있는데 떠내려가는 것 같기도 하고 거슬러 오르는 것 같기도 한 커다란 털 뭉치가 눈에 들어왔다. 그 크기라든가 움직임으로 미루어 짐작컨대 삽살개 같은 털북숭이 개가 아닐까 싶었다. 어쩌면 살기 위해 발버둥 치고 있는지도 몰랐다. 아직은 수위가 옥상을 넘지 않았으므로 깊어 봐야 허리 높이다. 물론 옥상을 벗어나면 얘기가 달라지겠지만, 물탱크까지만 가면, 저 방주만 손에 넣으면 구명정이 올 때까지 버틸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퍼붓는 비는 잦아들 기미가 없고, 신이 격노한 듯 사납게 번개가 치고 천둥소리가 요란한 세상은 말 그대로 멸망 직전이다. 나는 한 손으로 우산을 들고 다른 한 손으로는 창틀을 붙잡은 채로 서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다가 쏟아지는 비의 기세에 눌려 두 손으로 우산을 들었다. 그러다 그만 균형을 잃고 말았다. 어처구니없게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