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오늘은 바람이 좀 불었지만, 햇볕이 따사로웠다. 미세먼지가 심각한 날인 줄도 모르고, 아내에게 불광천을 걷자고 졸랐다. 마음은 이미 태어난 지 100일 된 아이를 자전거 뒤 유아용 트레일러에 태우고 한강으로 향한 지 오래다.
그제 회사 선배에게 받은 유모차를 닦고 시트를 빨았다. 그날 아이를 데리고 불광천에 다녀왔다. 아빠와 아들의 첫 데이트는 순조로웠다. 그때의 자신감 때문인지 나들이에 조심스러운 아내에겐 걱정 말라고 다독였다. 아이 엄마가 가방에 기저귀, 젖병, 분유, 따뜻한 물을 넣는 동안, 철없는 아빠인 난 사진기를 챙겼다. 집 밖으로 나와 물티슈를 챙기지 않았음을 깨달았지만, 무슨 대수랴.
불광천으로 향하는 길, 바람이 생각보다 거셌다. 아내의 걱정은 컸지만, 난 유모차를 거침없이 앞으로 밀었다.아이는 유모차 안에서 조용히 세상 구경을 했다. 우리 부부는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30분가량 걷다보니 배가 고파왔고, ‘피자○’ 가게가 보였다. ‘기저귀를 갈아야할 때는 어떻게 하지’라는 걱정이 있었지만, 구석이나 화장실에서 갈면 괜찮지 않을까 싶었다. 우리 가족은 가게의 구석진 곳에 앉았다. 유모차를 테이블 옆에 두고 아이를 살폈다. 좀 칭얼대자 기저귀를 봤더니 젖어있었다.
아내는 다른 사람이 보지 않도록 아이의 기저귀를 빠른 속도로 갈았다. 아이는 싱글벙글 웃었다. 난 아내에게 아이를 가리키며 “효자가 났어요. 외식하러 나왔는데 엄마 아빠 밥 잘 먹으라고 조용히 앉아 있네요”라고 했다. 모든 게 순조로웠다.
아이에게 분유를 먹이면, 우리 부부가 고상하게 피자를 먹을 시간이 확보될 것 같았다. 아내가 분유를 먹이는 사이, 피자가 도착했다. 피자를 잘라 아내에게 먹였다. 참 행복한 모습이 아닌가. 아이의 트림을 위해 내가 아이를 안았다. 옆 테이블 사람들의 시선은 아이에게 향했다. “아이고 귀여워, 안고 싶네”라는 목소리가 들렸다.나는 의기양양하게 아이를 더 높이 치켜들었다.
그 순간, 냄새가 났다. ‘아, 아니야, 잘못 맡은 거겠지. 피자나 먹자.’ 아이를 다시 유모차에 내려놓았다. 아이에게 웃음을 보여주고는 포크로 피자를 찍어 입에 넣었다. 그 순간, 아내의 외마디 비명. “앗, 쌌네!” 하얀 바지 엉덩이 쪽에 황금빛, 아니 누런 얼룩이 졌다. 우리 부부는 ‘멘붕’에 빠졌다. 먼저 각자의 접시에 담긴 피자 한 조각을 한 입에 먹어치웠다.
아내에게 집에 얼른 들어가서 해결하자고 했다. 하지만 아내는 아이의 엉덩이가 짓무른다며 이곳에서 해결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우리한테 물티슈가 없었다. 점원에게 손 닦는 데 쓰는 물티슈 여러 장을 부탁해 받았다.아내는 화장실로 쏜살같이 달려갔다. 화장실에서는 다행히 기저귀 교환대가 있었다.
아내는 아이를 눕히고 바지를 내렸다. 아내는 경악했다. 뒤에 그 상황을 ‘대참사’로 표현했다. 기저귀가 감당 못할 정도였으니, 바지까지 흘러내린 것이다. 작은 물티슈 몇 장으로 아이 엉덩이를 닦기엔 턱없이 부족했다.화장실 휴지로는 어림없었다. 그렇다고 세면대에서 아이의 엉덩이를 닦을 순 없었다. 결국 아내는 결단을 내렸다. 손에 물을 묻힌 뒤, 아이의 엉덩이를 닦은 것이다.
그 순간, 화장실에 사람들이 들어왔다. 당황한 아내는 아이의 기저귀를 채우고 똥 묻은 손을 급하게 물티슈로 닦고 물로 씻었다. 야속하게도 사람들은 아이에게 관심을 보였다. “몇 개월이나 됐어요?”, “애기야, 엄마 손 씻으니 조금만 기다려” 아내는 아이가 다리를 들어 누런 얼룩의 바지가 보일까봐 전전긍긍했다. 아내는 건성으로 답하며, 천기저귀로 아이를 감싼 후 화장실 밖으로 튀어나왔다.
우리 부부는 도망치듯 가게를 나왔다. 주변 사람들에게 피해를 끼친 것 같아 미안했다. 서둘러 집으로 왔다.그제야 숨을 돌렸다. 아내가 욕실에 따뜻한 물을 받는 사이, 난 아이의 바지를 벗겼다. 그 순간 아이는 오줌을 발사했다. 아내는 손에 똥을 묻혔고, 나는 오줌을 맞았다. 잊지 못할 우리 가족의 첫 나들이였다.
- 2015년 3월 22일 아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