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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테리 Oct 21. 2017

그가 순례를 떠난 해 - 방심의 길

론세스바예스부터 수비리까지 | 25km

아침일찍 일어나는건 언제나 힘이든다. 좀더 자고 싶었는데, 부산스러운 소리에 눈을 떴다. 배가 고파온다.


순례길을 걸으면 참 본능적인 것에 집중하게 된다. 먹고, 걷고, 자는 일상속에서 복잡한 생각은 하지않게 되서 마음이 한결 편하다. 특히 이번 여행의 중반부가 지나면서 생각하던 “한국가면 뭐하지?” 라는 생각을 잠시나마 떨쳐버리게 되서 좋다.

아침 7시 40분, 여명이 밝아올때즘 출발. 오늘은 조금 늦게 출발했다. 그 가파른 산맥을 넘어왔으니 조금은 편할거라 생각했고 그결과는 방심이었다

생장에서 791km라고 적혀있던데 왜 다시 790km이라고 적혀있는지. 산티아고가 왜 다시 멀어지는 것만 같은지. 나는 잘 도착할수 있는 것일지. 콤포스텔라를 받을수 있는 것일지.

끊임없는 이 길을 걸어가다보면 어쨌든 마을은 나온다. 슈퍼가 없어서 무언가 아침을 먹지못했던 지난 시간들은 잊어버리고 이 마을의 슈퍼에서 과일을 먹는다. 과일하나에도 감사함이 맴돈다. 순례의 본질은 이런것일지도.

그렇게 마을을 벗어나 다음동네로 가다보니 평야위에 구름이 껴있다. 운해인것 같기도 하고. 산위에만 구름이 끼는게 아니었구나. 라고 생각했었는데 사실 해발 900m정도의 위치였다.

순례자들이 마음대로 떠 마실수 있는 물이다. 순례길 곳곳에 이런곳이 많다. 참으로 감사한 일

이미 큰 산맥을 넘었기에, 힘들지 않을거라 생각했던것은 크나큰 오산이었다. 방심하고 있다가 엄청난 언덕길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런 젠장할!! 을 연발하며 언덕을 올랐는데 글쎄 이런 풍경이 펼쳐져있을줄은.

피레네는 힘든줄 알고 올랐는데, 휴. 여긴 방심하고 올라서 어제보다 더 힘든것 같았지만 피로가 다시 풀리는 기분이었다. 저 언덕을 굽이굽이 넘어가면 곧 산티아고가 나를 반겨주겠지.

론세스바예스에서 만났던 사람들을 다시 비스까렛 마을 근처의 바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곧 만날꺼라는 암묵의 부엔까미노를 외치며, 헤어진다.

스페인의 뜨거운 태양아래, 빨갛게 타고있다. 스페인의 태양은 정말로 뜨겁다.

수비리 마을을 안내하고 있는 표지판. 내 생각에는 이 표지판의 km수치는 순례자들을 위해서 조금 적게 측정되어 희망을 가질수 있게 표시되어 있는것 같다. 꽤나 체감차이가 많이나지만 순례자들을 위한 배려라 생각하며 다시 갈길을 가본다.

수비리에 도착했다. 왜이렇게 행복한지 모르겠을정도로, 표정이 환해졌다. 배고파죽겠지만, 그래도 사진은 한장 찍어야겠으니 활짝! 사진을 찍는 도중 H가 한마을 더가겠다며 먼저 떠나서 헤어지게됬다. 또 길위에서 만나겠지.

나에게 여행중 가장 좋았던 나라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당연 인도와 네팔이라고 답한다.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으니까. 그런데 이제 그 대답에 순례길이 추가 될것 같다. 좋은사람들을 만나 즐겁게 걸어왔다.

With A누나, Y누나, J군, 그리고 L형님
길위에서 좋은 사람들을 만나 함께한 행복한 점심을 먹었다. 각자가 왜 산티아고 순례길에 왔는지도 얘기해보고, 여행을 떠난 계기에 대해 말하는 시간이었다. 나는 사실 이런이야기를 하는걸 좋아하지 않지만 다른사람들의 시각을 듣는다는것은 좋은 경험이기도 했다. 나는 번아웃이 와서 여행을 떠났다.

점심을 먹고 우리의 뜨거운 발을 식히러 물가에 들어갔다.

저녁은 다같이 닭도리탕과 하몽을 같이먹었다. 정말 의외의 조합. 힘든 하루를 닭도리탕으로 마무리하고 잠을 청했다.


오늘은 어제보다 더 힘든날이었다. 방심했기 때문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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