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순례를 떠난 해 - 고난의 길

생장에서 론세스바예스까지 | 28km

위 거리는 실제 측정거리가 아닌, 제가 걸어서 나온 거리임을 먼저 밝힙니다.

아침일찍 일어나 제공되는 조식을 먹고, 출발준비를 한다. 새벽에 일어나는 건 늘 적응이 안된다. 하긴 적응했으면 아침형 인간이 되었겠지만 나는 늘 트레킹할때만 제외하면 항상 오전은 숙소안에서 보냈었다. 그렇지만, 떠나야 할 시간이다.

아침이라 날씨가 쌀쌀하고 춥지만, 이전 트레킹의 교훈으로 긴바지는 입지 않기로 한다. 어짜피 출발하면 덥기 때문에 가볍게 출발

신발은 그냥 나이키슈즈, 나이키 프리런을 신었다. 트레킹화나 등산화를 신으면 더 힘들었던 지난날의 기억때문에.

순례길은 저기 저 파란조개 모양을 따라가면 되는, 지도가 따로 필요없이 오로지 순례에만 집중할수 있는 은혜로운 길. 나는 이제 이 길을 걷는다.

어두운 새벽을 걷다보니 점점 여명이 밝아온다. 피레네산맥의 일출은 정말 아름다웠다.

피레네산맥은 경사가 생각보다 심하다. 평소 여행을 다니던 가방무게의 경험때문에 갖가지 짐을 비워낸 배낭이 가볍다고 생각했는데, 그 배낭을 메고 계속 걷는건 조금 다른문제였다. 가벼울거란 자신감은 어디가고 점점 무겁다는 생각만 든다. 어깨가 점점 아파왔다.

아이폰 인물사진모드. 진짜 잘나온다 ㅋㅋ

중간에 들렀던 오리손이라는 지역, 처음엔 마을일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그냥 알베르게 겸 식당이름이었다. 마을구경좀 하고싶었는데 힘드니까 콜라 한잔하고 다시 출발.

평온해 보이는 소들

시골에 왔는지 소 가족들이 모여 앉아있다. 귀여워 죽겠어. 아빠가 같이왔으면 아빠가 사진찍자고 하지않았을까? 평온해 보이는 소들

옆에 양들도 지나가고, 라다크의 푸르른(?) 버전이 아닐까? 이 양들은 주인이 있는 양들이지만 야생양들이 뛰어놀던 히말라야 산위가 생각이났다.

피레네를 오른날이 추석이었는데, 어쩔수없이 추석음식은 못먹고 피레네 산맥위에서 샌드위치를 먹었다. 풍경이 밥반찬이라고 생각할정도로 맛있었다. 한낯 몇푼하지않는 바게트 샌드위치 일지라도, 힘든 산맥을 올라서 먹는 음식이라면 맛없을 수가 없다.

굽이굽이 펼쳐져있는 길을 걷다보니 프랑스와 스페인의 국경이 나왔다. 국경같지도 않은 단순한 여닫이문(?) 하나를 두고 국경이라고 한다니, 서로 총겨누고 있는 우리나라 생각하면 좀 웃기다. 그래도 군인한명 정도는 서있을줄 알았는데.... 유럽에서 폴란드가 군사력이 제일쌔다고 하더니 최후방인 프랑스나 스페인은 서로 경계조차 하지않는듯 싶었다. 우리는 언제쯤 비행기나 페리없이 국경을 통해 다른나라로 갈수 있을까?.

끝나지 않을것 같던 오르막이 끝나고 내리막이 시작되었으나 내리막의 경사가 너무나도 높다. 그야말로 오늘은 고난의 길이다. 이런길을 어떻게 나폴레옹의 군사들이나 한니발의 군사들이 넘었는지 알수 없다. 역사는 강한사람들만의 기록이라더니, 진짜 강한사람이었나 보다.

묵을 첫 마을 론세스바예스에 도착했다. 첫날이 젤힘들다해서 긴장은 했지만 방심했었는데 너무 힘들었다. 안나프루나 라운드 써킷 트레킹할때도 하루에 1400m 올라간적은 없는데 지금은 배낭까지 매고 올라가니까 진짜 죽을것 같다. 어떻게 이길을 그렇게 쉽게 넘는거지? 내 체력이 문제일까?

근데 너무 기분이 좋다. 다른 아무런 생각이 들지않아서, 트레킹을 하는게 너무 좋다. 근데 힘들다. 생장에서 론세스바예스까지 오는 길에 제대로된 식당이 없어서 배고파서 죽는줄 알았으니 순례를 떠나는 자들은 모두 제대로 식량을 구비하기를.

론세스바예스의 알베르게는 단 하나, 수도원에서 운영하는 꽤나 큰 알베르게가 있다. 내가 머문 가격은 지하실 기준 8유로. 근처에 슈퍼도 없다보니 이렇게 다양한 품목이 있는 자판기도 있었다.

저녁을 먹는도중에 A누나와 Y누나를 알게됬다. 아마 길위에서 계속 보게될것 같다.

론세스바예스에는 “책 무덤”이 있다. 순례자들이 들고왔던 책을 피레네산맥을 넘고난뒤 무거워 버리고 간다는 그 무덤. E북 리더기 마저 도난당해버렸기에 더이상 책읽기가 힘들어졌으나 이 무덤에서 하나 건졌다.

너도 떠나보면 나를 알게될거야.

키로수는 많이 높지않은데, 계단오르기 층수가 어마어마하다. 오늘은 너무 힘든 날이다.

오늘은 그야말로 “고난의 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