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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테리 Oct 26. 2017

그가 순례를 떠난 해 - 무제

뿌엔떼 라 레이나에서 에스떼야까지 | 23km

순례기를 쓰며 항상 제목을 따로 붙여왔는데 오늘의 제목이 무제인 이유는 빈공간으로 남겨두고 싶어서.

아침에 일찍 출발해야 그날 걷는게 편한데, 아침일찍 일어나기란 그다지 쉬운일이 아니다. 그리고 해뜨기 직전에 나오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칠흑같은 어둠속에 주변 경치를 보기 힘들어서 더 선호하지 않지만, 그래도 몸이 힘들긴 싫어서 어중간하게 7시30분쯤에 출발했다.


매일 날이 밝아오면 어제의 달과 오늘의 해가 평행하게 보이는데 참 신기한것 같다. 달과 해는 서로 반대되는 단어였는데 재밌는 현상이다. 누가 과학적으로 설명해줬으면 좋겠다.

순례길을 걷다보면 이런 작은 마을을 자주 지나가게 되는데, 마트도 없기도 하고, 뭘 봐야할지 잘 모르겠는 마을을 지나가지만 그 마을의 고즈넉함이라던가, 분위기는 마을마다 다름을 느낄수가 있다. 아직 초반부라 그런지 관광으로 점칠된 느낌이 없어서 좋았다. 지나가던 스페인 사람들은 전부 환영을 해준다. “부엔까미노~”

걷다가 어제 잠시 헤어졌었던 A누나를 다시 만났다. 길위에서 헤어지더라도 어짜피 곧 만나니까 인연을 강제하지말라던 사람들의 말이 분명 맞지만 나는 그게 잘 안된다. 아주 잠깐 헤어졌는데 왜이렇게 반가웠는지 모르겠다. 인연을 강제하지 않는 마음을 가져야될텐데 내가 너무 정을 쉽게주나 싶기도 하고... 여튼 반가웠다.

J군과 Y누나는 먼저가고, A누나랑 잠깐 같이 걸었는데 D할머니를 기다려야겠다며 다시 헤어졌다. A누나는 아일랜드에서 워홀중이라 그런지 아이리쉬 할머니인 D가 많이 소중하게 느끼나보다. 어짜피 행선지가 같으니 일단 거기서 보는 걸로. 나는 keep going.

걸어가면서 바게뜨를 무지막지하게 먹게된다. 네팔 트레킹이 달밧파워였다면 이젠 바게뜨 파워인 것인가. 꾸준히 먹어줘야 걸어갈 힘이 생긴다. 이래서 돈을 많이쓰지.

중간에 만난 바르셀로나에서 산다는 한국인 아저씨가 알려준 한국인이 운영한다는 알베르게. Lorca 에 위치해있는데 아쉽지만 위치가 애매해서 묵고가진 못하고 가볍게 음료에 어제 삶아놓은 계란을 먹고 다시 출발.

여기 빠에야가 참 맛있다는데 아쉽다. 한국쌀 같아서 좋다는데 식사를 할 겨를이 안됬다. 에스떼야에서 삼겹살 구워먹기로 했으니 삼겹살을 먹을테다!!

점점 날씨가 더워져서 걷기가 힘들어진다. 조금 더 일찍 나올걸 그랬나 후회를 해보기도 하는데 잘 모르겠다. 내가 잘 걷고 있는 것인지. 그냥 더워서 살이 바짝 타고 있다. 한국가면 어떻게 다시 하얘지나 싶다. 나 원래 하얀데...ㅋㅋㅋ

Estella 전 마을 Villatuerta, 에스떼야는 조금 큰도시라고 해서 주변 도시들은 다 작은줄 알았는데 여기도 꽤나 큰도시였다. 대형 쇼핑몰같아 보이는델 들어갔는데 체육관만 떡하니 있었다.

이때 나는 너무 빨리 걸어갔다. 심카드가 없어서 앞서 가는 Y누나나 J군에게 이야기를 할수 없었기때문. 이번에는 무니시팔을 쓰자고 했다.

에스떼야에 온것을 환영하는 표지판, 프랑스길이 고대로 관통하는 만큼 순례자들에게 경제적으로 많은 의지를 하는듯해 보였다. 그래도 얼마 안쓰는데 얼마나 도움이 되나 싶지만...

에스떼야 입구에 있는 성묘성당

에스떼야에 도착했다. 우리는 어제 돈을 많이 썼으니, 오늘은 공립 알베르게로 가는걸로. 인당 6유로. 다같이 여기에서 묵었다.


숙소에서 씻고 빨래를 하고 쉬다보니 배가 너무 고팠는데 다들 자고있어서 혼자 타파스를 하나 먹으러 나왔다

너무 로컬스러운 바였는데다 타파스바에는 아무것도 올려져있지않았다. 직원도 영어를 못했고 메뉴를 물어보니 메뉴판이 없다고 했고... 튀긴거 구운거 삶은거 중에 정하라고 해서 튀긴걸 골랐더니 새우와 문어중에 고르라고 했다.

그래서 아직까지 문어는 맛없다는 L형님의 말에 새우를 선택! 다행히 성공적이었다. 사실 튀긴건 신발을 튀겨도 맛있으니깐. 3유로.

숙소에 들어갔더니 Y누나를 빼곤 다들 일어났길래 같이 산책을 하면서 도시를 둘러보았는데 마트가 문을 다 닫았다. 스페인은 일요일에 모든 마트가 문을 닫는다. 그래서 그냥 산책만 했다. 순례자 메뉴를 파는 식당에 갔더니 저녁은 8시부터 가능하다고 했다. 스페인의 저녁시간에 익숙하지 않은 우리탓이다. 언제쯤 저녁시간에 익숙해질수 있을까.... 우린 결국 맥주한잔하고 숙소로 돌아올수 밖에 없었다.

숙소에 돌아오니 Y누나가 깨어있었고 A누나를 제외한 우리는 조금있다가 광장으로 같이 나갔다

배가 고팠던 우린 결국 광장근처의 이상한 패스트푸드점(?)에서 밥을 먹었는데 맛이 정말 없었다. 파스타도 그렇고 빠에야도 그렇고. 내가 만들어먹고 싶었다..


불만족스러운 저녁을 뒤로하고나니 벌써 오후 8시. 다른사람들은 다 자려고 하는데 난 자기가 조금 아쉬워서 다시 나와 바를 찾아가서 커피한잔을 마셨다.

커피를 좋아하는 나는 마을에 도착해서 커피한잔을 딱 마시면 피로가 풀리는것 같다. 한국에 비해 커피도 싸니까 더 편하게 마실수도 있고.

그렇게 바쁜 하루가 지나간다. 걷고, 먹고, 마시기만 해도 하루가 짧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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