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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테리 Nov 10. 2017

그가 순례를 떠난 해 - 후회의 동물

베오라도에서 아테푸르카 까지 | 31km

오늘도 느지막히 일어나서 출발. 어제 같이 노래를 불렀던 친구들을 걷다가 만났는데 나를 엄청 반겨준다. 순례길에서 또 좋은 친구가 생겼다.

아침을 걸으며 지나가는 바에 컵라면이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침은 너무 추운데 역설적으로 너무 걷기 좋은 시간이다. 바삭바삭한 햇살이 퍼지기 전에 어서 걸어야지.

토산토스 마을을 지나다가, 익히 들었던 산속의 성당을 발견했다. 이 성당도 기부식 알베르게를 운영한다는데 다음까미노때는 꼭 와보도록 해야지.

순례길을 걷다보면, 이렇게 신발들이 가지런히 놓여져 있는것을 볼수있다. 연유는 모르겠지만, 다 각자의 사정으로 놓고 간 거겠지. 뭔가 가만히 보기 안쓰러워 화분처럼 풀을 넣어주고 왔다.

성당앞 따사한 햇살위에 앉아서 바게뜨를 먹을땐 아무리 싫어하던 빵이라도 한가롭고 평화로운 맛에 먹을만 하구나.

1936년에 쿠데타가 일어났을때 죽은 사람들을 위로하는 위령비라고 하는데, 스페인 역사를 잘 몰라서 이해가 가질 않았다. 나름 역사에 관심이 있지만 이런것도 잘 알면 좋을텐데.

하루하루가 고됨의 연속이다. 이런길은 또 처음보네. V자 길이라니. 오늘 배낭을 다음마을로 보낼껄 그랬나 싶기도 했는데, 피레네를 넘었다는 그 자신감하나로 걸었다. 근데 내가 안나푸르나도 넘었고 피레네도 넘었는데 어짜피 똑같이 힘든건 여전했다. 등산이 괜히 전신운동이라는게 아니다.

중간중간에 기부형식 인척 장사하는 가게들. 나는 얘네들이 진짜 순례길의 본질을 깨닫고 있다고 생각이 들지 않는다. 기부면 기부고 장사면 장사지. 장사를 했으면 좋겠는데, 기부라고 해놓고 기부통 앞에서 돈을 얼마나 내나 지켜본다. 이런 사람들도 다 이해해야 순례의 본질을 깨닫게 되는걸까. 나는 아직 이해할 수가 없다.


적고나니 너무 과격하게 썼나. 그래도 그땐 이런생각을 했다.

생 후앙에 있던 교회, 생 후앙이라는 사람의 이름을 본따 만들어진 마을이자 교회고, 생 후앙이라는 사람의 관도 여기에 보관되어 있다. 정확히 어떤사람이고 어떤존재였을까? 성당은 참 예쁘게 꾸며져있었는데, 이곳에 머물고 싶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않았다.

그리고 다시 걷는다. 오늘은 어디까지 가게 되려나.


열심히 걷다가 보니 Ages마을이 보이고, 그 마을에서 L형님, K형, J형, S누나, L누나를 만났다. K형과 J형은 다음마을로 간다고 했고, 나머지 셋은 아헤스에 머문다고 해서 그냥 나는 더 걷고싶어 K형을 따라가기로 했다.

바르셀로나에서 사시는 한국분도 만났는데 이름이 기억이 나질 않는다.


사실 아헤스에서 30분만 더 걸으면 다음마을이었다. 이렇게 나는 조금만 더가면 된다며 속도조절을 하지 못한다. 그렇게 나는 아테푸르카에 도착했다.

무니시팔에 도착해서 와이파이를 연결했더니, 러시아에서 만났던 호스텔 주인 샤샤가 내 안부를 물어봐줬다. 참 고마운데 그때는 왜 그렇게 싫어했을까. 말이 너무 많다며 상대하기 힘들었는데, 나는 그런걸 받아줄 포용력이 조금은 부족했나보다.

숙소에서 씻고, 마을 구경겸 밖에나와 마을을 돌아다녔다. 크게 볼게 없는 마을이긴 한데, 이 마을에서 원시인유적이 나와 유명하다고 하지만, 볼 생각이 없어 그냥 걷다가 오랜만에 그네를 탔다.

숙소 뒤편에 교회쪽으로 가서, 교회 뒤뜰로 가보면.

저 멀리 약간은 삭막하고 황량한 대지가 펼쳐져있다. 부르고스 다음부터 완전 삭막한 메세타 고원지대가 펼쳐지는데 이를 예고해주는듯 했다.

평화롭게 여유를 즐기는듯 하지만, 나는 여유를 찾지 못했고, 디지털 디톡스에 실패했을 뿐이다.

저녁을 간단히 바에서 먹고 일찍 자러 들어가버렸다. 기분이 그렇게 좋지는 않아서.


오늘도 30km가량 걸었다.
하루에 많은 거리를 걷지 않으려 했는데
지나고 나서야 못느낀 마을들이 많다는 것에 후회를 한다.
안나프루나 트레킹을 마친후 쉬고있던 나에게 누군가 트레킹 팁을 물어본적이 있었는데, 내가 내입으로 자연을 느끼고, 거리를 느끼고, 사람들을 느끼라고 했건만 나조차 어느순간 다급해지는 마음을 좀처럼 감추고, 멈출수가 없어서 이렇게 많은 거리를 걷고 만다.

#후회의동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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