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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테리 Nov 09. 2017

그가 순례를 떠난 해 - 행복은 가까이에 있다.

산토도밍고부터 베오라도까지 | 23km

아침부터 준비하느라 바빴으면 참 좋았겠지만, 그게아니라 도난당했던 카드들을 재발급하는 절차때문에, 한국에 전화하려면 한국의 영업시간에 전화해야하다보니, 출발은 못하고 알베르게 바에서 죽치고 앉아 Skype로 전화를 했다. 그렇게 늦게 출발한 아침.

거의 뭐 해가 다떠서 출발했다. 이러면 나중에 낮에 고생하는데, 카드를 살려야되니 어쩔수가 없었다. 그리고 사실은 모든 업무를 처리하지 못해서 더 짜증이 나있었던 아침...

그래도 걷다가 누가 적은 “부엔까미노”에 피식하고 웃어버리게 된다. 이 단순함을 삶에도 적용시킬수 있으면 좋으련만.

먼동이 트고, 아침이 밝아온다. 평소같으면 반겼겠는데 얼마 걷지도 않은시간에 이렇게 밝아오니 당황스럽다.

해가 거의 밝아와서 무작정 빠르게 걸었다. 걷다가 발견한 크나큰 십자가. 해와 함께 보니 그림이어서 한번 찰칵. 이게 무슨 상징이라고 했는데 기억이 나질않는다.

중간에 들렀던 마을 Grañón, 마을에서 커피한잔을 하고 그냥 지나치려다 성당에 들어갔는데 이때까지 봐왔던 성당이랑은 조금 다른 느낌이었다. 시골마을의 한 성당인데도 정말 예쁘게 되어있었기에, 천주교신자는 아니지만 기도를 조금 했다. 잘 마무리할수 있게 해달라고. 순례길을.

그리고 지나가다 발견한 쿠키점, 모든것들을 수제로 만드는지 쿠키반죽냄새가 한가득이다. 친절한 주인을 만나서 결국엔 한봉지 구입. 다른사람들과 같이 나눠먹어야지.

카스티야 레온지방에 진입했는지, 카스티야 레온지방의 까미노 길을 안내해주는 표지판이 등장했다.

그리고 맞이한 두번째 마을, 여기 바에서 잠깐 쉬면서 지난주에 발급신청한 하나은행 하나비바체크카드의 발급상태를 확인했는데 발급이 되었으나 국제배송으로 넘겨지지않고 누락되어 발송이 안되었다고 했다. 그 직원분의 잘못은 아닌데 나도 모르게 화가나서 버럭했다. 나도 그 카드가 없다면 여행하기 힘들었기에 더 화를 낸것 같은데, 다시 진정을 되찾고 재발급 신청을 했다.

그 카드사건때문에 스스로가 마음의 여유를 찾지 못한채 걸었다. 몇일전에 여유를 되찾았다던 나의 말도 다 개뻥이다. 그저 바람앞의 등불 혹은 갈대 와도 같았을뿐이다.

순례자들에게 쉬어가라고 만들어둔 마을의 작은 벤치에서 조차 앉지 못했다.

그래도 걸음을 멈출수 없으니까 계속 걷기는 걷는데 하나카드의 배송누락문제로 머리가 아파왔다. 원래라면 부르고스 다음마을에서 받을수 있을텐데, 일단 마음대로 레온의 한인민박으로 보내기로 하고 계속 걸었다. 주위 풍경은 잘 안보이고, 그저 빨리 도착이나 하고싶었다.

베오라도에 다와갈때, 스톱사인 앞에서 멍때리다가 아이폰을 떨어트려 앞유리가 살짝 금이 갔다.
산지 얼마나 됬다고 떨어트리는지

이게다 하나카드 때문이다. 너무 짜증이 났다.

그래도 멈출수가 있나, 계속 걸어서 베오라도에 도착한시간 2시. 마트에 가서 먹을걸 사서 밥을 만들어먹으며 스트레스를 풀려고 했는데, 설상가상 스페인의 문화 “씨에스타”로 마트마저 닫았다.

씨에스타 : 스페인의 문화로 오후 2시경부터 일정시간 낮잠 및 여유를 즐기는 문화, 시간은 가게마다 상이하다

이 나라의 문화이니 존중을 해줘야할텐데, 그때의 나는 짜증이 너무 많이나서 결국 바에가서 타파스 메뉴들을 폭식했다.


바에서 계속 앉아있다가 어제 만났던 K형, J형, 그리고 처음만나는 리투아니아출신의 레이몬드를 마주했다. 그리고 저녁을 같이 만들어먹자고 내가 제안해서 같이만들어 먹기로 했다. 메뉴는 토마토 양배추 소고기 찜(메뉴이름이 정확히 있는데 잘 기억이 안난다.)

형들은 내가 묵었던 무니시팔이 아닌 성당에서 운영하는 도네이션 알베르게에 묵고있어 거기서 요리를 해먹기로 했는데, 알고보니 A누나도 여기에 묵고 있었다.

토마토양배추찜은 별거아니고 간단한데, 갈은 소고기를 적당히 후추와 소금을 넣고 양념을하고, 데친 양배추에 싸서 토마토퓨레와 물을 넣고 오래 끓이면 된다. 폴란드식 요리인데 내가 조금 방법을 바꿔서 가끔씩 만들어 먹는다. 리투아니아 출신인 레이몬드도 어머니가 만들어 준적이 있다며 좋다고 했다.

그거뿐만이 아니라 햄버거도 같이 만들어 먹었다. 직접 만들어 먹는 햄버거는 처음인데, 이렇게 만들수도 있구나.


레이몬드와 J형

이들중 나혼자만 아이폰 플러스모델을 쓰고있어서 인물사진모드를 테스트 해보았다. 엄청 잘나온다....

아이리쉬 친구들이 만든 샌드위치, 아무런 소스도 없고 이게 정말 맛있다고 먹는걸까 싶었다.

그리고 이 성당의 목사님이 와서 이런저런 이야기를하다가, 갑자기 서로 노래를 하기 시작했다. Ashely의 시작으로 각자가 부르고 싶은 노래를 한곡씩, 두곡씩 불렀다. 나는 여기서 술에 취한 나머지 두곡을 불렀는데, 이들이 정말 호응을 잘해줬다. 이때 노래를 잘부르는 Ashely와 친해지게되고, 정말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까미노에 오길 너무 잘했다. 만약 또 한번의 세계여행을 할 기회가 생긴다면, 난 반드시 까미노를 다시 걸을거다. 아니 그 기회를 내가 만들거고, 꼭 하고 말거다.


아, 행복하다.

A누나가 인스타그램에 적은대로, 행복은 아주 가까이 있었다. 단순히 아이폰 액정유리 조금깨진거 하나에 버럭버럭 하고 있는 내 자신이 부끄럽기도 하고, 그리고 그거하나에 화내고 앉아있기엔 내 인생이 더 아까운 것인데.

도난 당했을때도, 그건 단순히 돈으로 해결할수 있는것들이었기에 다시 일어서서 여행을 계속하기로 결정할수 있었던건데, 또다시 이런마음이 들다니.

인생은 아이폰보다 비싼데.

행복은 가까이에 있다.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숙소에 돌아와 마주한 글귀.

그래, 중요한것은 따로 있다.

내가 행복할려면, 남에게 행복을 먼저 나눠주는 사람이 되어야해. 중요한 것은 사랑받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것이고, 행복을 갈구하는게 아니라 나누는거야.

행복은 아주 가까이에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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