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 좋은 오후였다.
소파에 몸을 묻고 쉬어가던 시간, 문득 별다를 것 없는 주변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십여 년을 함께 한 짙은 베이지색 스웨이드 소파, 베이지색 쿠션, 부쩍 차가워진 날씨에 꺼내놓은 노란색 이불.
그 순간 거실에 내려앉은 빛과 공간의 익숙한 빛깔들 속에서 마음이 고요해짐을 느꼈다.
마치 여행 끝에 돌아온 집이 주는 안도감처럼.
이제 막 접어든 가을의 따사로움과 세월이 머문 공간의 바랜 색채가 어우러지는 이 순간,
참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본다'.
아름다움을 보고 느끼며 살아간다.
생각해 보면 그 중심에는 언제나 빛과 색이 있다.
아침의 부드러운 베이지빛 햇살,
한낮의 눈부신 백색,
하루가 기울면 짙어져 가는 저녁과 밤의 빛에도 색은 존재한다.
봄이면 사방에 피어나는 꽃의 빛깔과 생기 넘치는 연둣빛,
한여름의 짙은 녹음,
갈색 담벼락을 타고 흐르는 주황빛 능소화와 거리마다 피어나는 분홍빛 배롱나무.
농익어가는 가을의 선명한 색,
그리고 헐벗은 겨울나무와 앙상한 거리의 낯빛까지.
고개 들어 파란 하늘의 흰 구름을 바라보고
부서지는 파도의 색을 떠올리면,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계절과 자연의 아름다움이 만약 무채색이었다면,
우리는 지금처럼 가을을 사랑할 수 있었을까?
그뿐만이 아니다.
오랜 시간을 보내는 집과 공간, 시간을 내어 찾아가는 장소도 모두 저마다의 빛과 색이 있다.
우리가 느끼는 아름다움은 모두 고유한 색채를 지니고 있다.
기억 속의 장면도 그러하다.
나의 봄날의 거리는 언제나 밝고 화사하고,
여름이면 즐겨 찾던 반곡지의 기억은 짙은 초록빛이다.
작약꽃이 흐드러진 의성의 5월은 붉은빛이고,
아이의 어린 시절, 매일 같이 서너 시간을 보내던 공원의 기억은 베이지빛 햇살이다.
여름날 길 위에 돗자리를 펼치면 그곳이 곧
소풍이던 그날의 기억은 윤슬처럼 반짝인다.
아이의 어린 시절의 기억은 온갖 따스한 색채를 모아 놓은 무지갯빛이고,
지우고 싶은 어느 날의 기억은 무채색이다.
보이는 것만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마음에도 색이 있다.
사람에게도 어울리는 색이 있다.
그래서 우리는 종종 말한다.
"너는 초록색과 어울려."
"너를 떠올리면 무지갯빛이 생각나."
어쩌면 색이란, 우리가 누군가에게 느끼는 감정을 대신하는지도 모른다.
마흔넷의 가을의 문턱에서,
소파에 몸을 눕힌 채 문득 그런 생각이 스쳤다.
'우리가 느끼는 아름다움과 감정에는
언제나 빛과 색, 그리고 색채가 있구나.'
그리고 스스로에게 되묻는다.
그렇다면 나의 글은 어떤 색일까?
누군가 나를 떠올릴 때 나는 어떤 색으로 남을까?
빛과 색은 눈앞에 펼쳐진 장면과 지난 기억,
사람과 그 마음에도 언제나 존재한다.
그리고 그 빛깔과 색채는 때마다 다른 모습으로,
우리에게 잔잔한 위로를 건넨다.
눈을 감으면 마음속의 빛이,
눈을 뜨면 세상의 빛이,
우리에게 위로를 건넬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그 빛과 색에 관한 나의 사유의 기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