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히 생각해 보면,
오늘처럼 반복되는 일과의 하루를 보낸다는 것은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가장 평범한 날이 사실은 가장 기쁜 '오늘'임을,
우리는 그 평범함에서 조금이라도 비켜선 날이면 비로소 절실히 깨닫곤 한다.
하지만 매일같이 다람쥐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하루의 지속성 안에서는 그런 감사를 느끼기도 전에 저녁이 찾아오곤 한다. 남는 것은 그저 오늘도 무사히 보냈다는 안도와 몸 깊숙이 내려앉는 피로이다.
아침빛이 떠오르는 해처럼 새날의 희망을 이야기한다면,
저물녘의 빛은 지는 해처럼 하루를 잠시 내려놓는 마음을 말한다.
내려놓음은 포기가 아닌, 받아들이는 일이다.
하루의 무게를 가만히 내려놓고 비워내는 것이다.
비움과 받아들임은 다른 것 같지만 결국 하나이다.
비워낼 때 비로소 받아들일 자리가 생긴다.
내려놓아야 다시 채울 수 있다.
저물녘의 빛 한 줌은 넘치지 않는다.
세상을 환히 깨우는 아침의 빛과는 달리, 저녁빛은 고요하고 소탈하다.
아침빛을 두 팔을 벌려 맞이한다면,
저물녘의 빛은 두 손을 모아 맞이한다.
짙은 밤으로 향하기 전, 조용히 내려앉아 하루를 위로하듯
저녁빛은 넘치지 않는 따스함으로 세상을 비춘다.
삶을 비춘다.
오늘 하루도 무사히 지난다.
'이미 지나간 일은 지나간 대로 지나게 하라.' 하늘은 그렇게 말하듯 붉게 번져온다.
마음 한 뼘이 느슨해지는 시간이다.
하루의 빛이 떠올라 가장 강하게 타오르고,
붉게 물든 저녁빛을 지나,
모든 것이 가라앉는 검은 밤이 찾아온다.
그 시간마다의 다른 빛이 있다는 것이ㅡ
돌아보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른다.
저물녘의 빛은 가을을 닮았다.
곧 지날 한 해를 돌아보게 하는 가을빛처럼
저물녘의 빛은 곧 지나갈 하루를 돌아보게 한다.
저물녘의 빛은 우리를 닮았다.
한 살 한 살 차곡히 쌓이며 저물어가는 우리는, 저무는 저녁빛을 닮았다.
하루의 끝에도 빛이 있다.
오래 바라보아도 눈부시지 않고,
서서히 짙게 물들어 까만 밤을 부르는 그 빛은 깊고 따스하다.
말로는 다 담지 못하는 위로를 건넨다.
저물녘의 빛은 나직이 속삭인다.
가장 깊은 위로는
변치 않는 것에 있다는 사실을.
나의 너에게,
나의 그대에게,
저물녘의 빛 한 줌처럼
잔잔한 위로를 건넬 수 있는 그런 사람이고 싶다.
< 빛과 색의 위로>에 실린 사진은 일상에서 직접 담은 장면입니다. 여름과 가을이 스치는 9월 중순 무렵 저녁께, 반려견 나무와 함께 옥상에서 시간을 보내던 중에 고인 빗물에 비친 주황빛 석양이 너무 아름다웠습니다. 마치 노을빛 한 줌이 빗물에 고여있는 듯했습니다. 그 장면에서 이번 화의 제목을 떠올렸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