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낮의 그림자

by 주홍빛옥상




그림자는 어두움의 단편이다.
물체가 빛을 가리면 그 아래로 검은 그늘이 드리워진다.

사람의 마음에도 어딘가 그늘이 진다.
언제나 뒤따르는 그림자처럼,
슬픔과 불안, 걱정과 불행의 잔상이 마음 한켠에 남는다.
서늘하고 어두운 것을 표현할 때 그림자를 떠올리는 건 그림자는 빛의 어두운 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게 그림자는 어둠만은 아니다.

빛이 없다면 그림자도 없다.
빛이 있는 곳이면 어느 시간에나 그림자가 있다.
빛과 그림자는 동전의 양면처럼 언제나 함께다.

나에게 그림자의 장면은 나뭇잎 그림자를 닮았다.
햇살이 비추는 어느 한낮,
거리와 담장, 건물 벽 위로 마치 수놓은 듯한 나뭇잎 그림자가 물결처럼 일렁인다.
봄이면 꽃잎 사이로 번지는 그림자가 거리를 물들이고,
여름이면 우거진 녹음만큼 풍성한 나뭇잎 그림자가 내리쬐는 볕을 가린다.
가을이면 그림자 위로 형형색색의 낙엽이 쌓이고,
겨울이면 앙상한 가지의 옅은 그림자 사이로 볕이 든다.


둘러보면, 아름다운 것은 그 그림자마저도 아름다웠다.

한낮의 풍경은 언제나 빛과 그림자가 함께이다.
나뭇잎 사이로 쏟아지는 빛으로 바닥 위에 그림자를 그리고, 아이의 발끝에도, 멈춰 선 자동차 아래에도, 걷는 사람의 뒤에도 그림자는 뒤따른다.
그림자는 빛이 있는 곳마다 그 곁을 지킨다.
그렇게 세상의 모든 사물은 저마다의 그림자를 거느리고 살아간다.
그건 빛이 닿고 있다는 조용한 표시다.

그림자는 존재의 증거이다.
아무것도 없는 텅 빈 곳에는 빛을 비추어도 그림자가 생기지 않는다.



책 한 권, 화분 하나, 나무 한그루, 강아지 한 마리, 한 사람.. 무언가 머무르고 존재해야만 그림자도 존재한다.

보이지 않지만 죽은 자의 넋이라고 믿는 망령에는 그림자가 없듯,
그림자는 빛과 존재의 증거이자 살아있음의 징표이다.


우리 마음에도 그림자가 있다.
어느 날엔 슬픔과 두려움의 모습으로,
어느 날엔 불안과 상념의 모습으로 나를 뒤따른다.

하지만 빛이 없었다면 그림자가 존재할 수 없듯이, 우리 마음에 그림자가 드리운다는 것은
그 마음을 비추는 무언가가 이미 존재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마음에 어두운 그늘이 생길 때면
나는 내 삶을 비추는 '그 빛'이 무엇인지 하나하나 꺼내어 본다.
그리고 그 따스한 빛을 가리고 있던 걱정과 상념들을 천천히 덜어낸다.

한낮의 강렬한 태양 아래, 사물은 더욱 또렷한 그림자를 드리운다.
빛이 강할수록 그 그림자는 짙어진다.
어쩌면 우리의 마음도 그렇다.
환하게 웃는 얼굴 뒤에는 그만큼의 어둠이 있고, 밝은 날의 기쁨 뒤에는 그만큼의 고요가 머문다.

빛이 그림자를 만들 듯,
우리 안의 밝음은 어떤 어두움을 함께 품고 있다.
그건 감추려는 것이 아니다.
강한 빛으로 어둠을 포용하는 것이다.

우리 안에 그림자가 드리울 때,
그보다 먼저 존재하는 따스하고 아름다운 빛을 기억하자.
그림자가 있다는 것은
분명 마음 어딘가로 스며드는 빛이 있다는 뜻일 테니까.
잠시 가려졌을 뿐,
그 빛은 언제나 우리 곁에 있다.





< '빛과 색의 위로'에 실린 사진은 모두 일상에서 제가 직접 담은 장면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