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시절, 방학이면 너와 나는 함께
봤던 영화를 다시 보기를 즐겨했지.
그중 우린 영화 <원더>를 참 좋아했었어.
영화 내내 마음을 울리던 대사들을 엄마는 가끔 네게 외치듯 얘기하곤 하지.
"옳음과 친절 중 하나를 선택할 땐 친절함을 선택하라."
"힘겨운 싸움을 하는 모든 이들에게 친절하라."
"외모는 바꿀 수 없어요. 그러니 우리의 시선을 바꿔야죠."
작은 친절이 때론 누군가의 삶을 변화시키는 큰 힘이 되기도 하고,
실의에 빠진 이의 놓고 싶은 생명의 끈을 잡을 수 있는 희망이 되기도 할 거야.
엄마에게 친절이란 겨울날의 뜨거운 무언가ㅡ손난로처럼, 어묵국물처럼, 아랫목처럼
마니토의 편지처럼, 자선냄비 종소리처럼, 크리스마스의 선물처럼ㅡ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
들여다보면 누구나 각자의 내면에는 고통이 있기 마련이야. 그런 헤아림으로 상대를 대할 때 내 마음에도 나눌 수 있는 여유가 더해져.
그 상대는 비단, 타인만이 아니야.
가까운 이에게 가장 먼저 그런 마음을 나눌 수 있다면 현실은 때로 냉혹하여도 마음만은 서로의 온기로 하여금 식지 않을 거야.
생각해 봤어. 엄마는 네가 살아가며 상처를 받지 않길 간절히 바라지만 그보다 먼저인 건 네가 타인에게 상처를 주지 않길 바란다는 거야.
내가 받고 싶은 대로 남에게 주라는 말이 있지.
스스로는 타인에게 친절을 베풀지 못하면서 나는 누군가의 배려를 받지 못하면 속상한 것은 어쩌면 이기심일 거야.
때론 인간관계에서도 이익과 손해를 계산하며 내가 조금이라도 손해를 볼까 봐 전전긍긍하게 되는 마음도 충분히 들 수 있어.
하지만 조금만 더 생각해 보면 내가 베푸는 친절과 마음이 실재적인 것으로 돌아오지 않는다고 속상해할 필요가 없다는 걸 깨닫게 돼
건넨다는 건 말이야.
눈으로는 보이지 않는 마음이나 말을,
또는 물질과 같이 외적인 어떤 것을 상대에게 주는 일이야.
작은 친절과 따듯한 말, 선량한 마음이나 작은 선물을 건넨다는 건 내가 가진 것을 상대에게 내어주는 일이란다.
그게 무엇이든지 건네고 난 뒤엔 그 사람의 것으로 남아.
친절이라는 건 그리 거창한 일이 아니야.
다정한 말 한마디, 웃음기 머금은 얼굴, 빛나는 눈빛, 작은 마음 한켠이면 충분해.
때로는 상대에 따라 친절은커녕 부정적인 생각이 들 때도 있어. 그건 엄마도 그렇고 누구나 그래.
그럴 땐 날 선 말을 건네기도 하고, 때로는 상처주기 위한 말과 행동을 하기도 하지.
지나고 나면 눈앞에 존재하지 않아도 건네받은 상대는 기억한단다. 지워지지 않아서 기억하는 것이지.
부정적이고 나쁜 생각은 누구나 들 수 있어.
하지만 누군가는 안으로 삼키고 누군가는 밖으로 내뱉지.
그래서 말과 행동에는 책임이 따르고
뱉은 말은 공기 중에서 영영 떠돈다는 말이 있는 게 아닐까.
건네는 말과 행동에 다정함과 온기를 담아보렴.
그건 타인만을 위한 일이 아니란다.
내면의 따듯함이 가장 먼저 너의 삶을 비추고 네가 어떤 우연과 운명을 마주해도 그것과는 상관없이 언제나 너를 행복으로 이끌 거야.
그 마음이 낯선 타인과 낯익은 이웃,
가까운 가족과 친밀한 사람에게 친절을 건네게 하고 그 친절이 누군가에게는 어둠 속에서 반짝이는 빛이 되어 줄 수도 있어.
친절과 옳음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엄마는 주저 없이 친절을 택할 거야.
우리가 몇 번이고 반복했던 영화 <원더> 속의 대사처럼, 우리 모두는 각자 힘겨운 싸움을 하며 살아가고 있으니
옳고 그름의 판단은 나의 몫이 아니라 생각해.
하지만 친절을 건네는 일은 남에게 미루지 않고 언제나 내 몫이라 여기어도 좋은 일이지.
아깝다고 생각하지 않고
겸연쩍게 여기지 않고
품 안에 꽃을 건네듯이
따뜻함을 건네.
그런 마음으로
너의 길, 네 세상을 밝혀가길.
엄마 또한 이런 글을 씀에 있어 네게 부끄럽지 않고 떳떳할 수 있게 실천과 행동으로 언제나 너의 거울이 되도록 더욱 노력할게.
가장 중요한 것은 생각하고 아는 것을 행함에 있는 거 아닐까.^^
오늘도 우리 아주 작고 사소한 것 하나 건네는 하루를 보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