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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부라이프 Mar 04. 2022

난 세르비아가 좋더라!

원래는 이스라엘이 가보고 싶었다. 12월 말 딸아이의 방학에 맞춰 저가 항공사 비행기 표를 예매해놨었다. 헌데 11월 말부터 이스라엘 정부에서 외국인의 입국을 전면 중지시키더니 12월 22일까지 연장되었다. 딱 우리가 예약해 놓은 날이 포함된다. 망할 코로나!! 자국민은 입국이 가능해서 비행이 취소되지는 않는다. 그러니 비행사의 문제가 아니라 환불은 안 해준다. 저렴한 비행기 티켓을 끊어서 좋아라 했는데 울상이 됐다. 


몇 가지 대책을 세웠다. 첫째, 그냥 날린다. 둘째, 변경 수수료를 내고 이스라엘행을 3월로 연기해놓는다. 셋째, 변경 수수료를 내고 다른 나라를 간다. 음. 그냥 날리기는 아깝다. 또, 3월로 변경하자니 이스라엘에서 어떤 정책을 또 내놓을지 모른다. 그러면 다시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다. 세 번째가 그나마 낫다. 이런! 변경 수수료가 비행기표값에 버금간다. 워낙 저가 항공사라서 이런 걸로 돈 벌어먹나 싶다. 그러니 추가 요금을 덜 내는 나라를 검색해야 한다. 항공사가 취항한 노선을 하나하나 들어가 보며 그 기간의 요금을 검토했다. 그중 제일 괜찮은 곳이 세르비아였다! ‘세르비아?’ ‘유고슬라비아?’ 동유럽? 소련? 공산국가? 무식하니 이상한 생각이 꼬리를 문다. 안전한 나라니 걱정 말라는 남편의 말을 믿기로 했다. 비행기표 가격에 맞춰 가려다 보니 또 완전 새로운 곳을 가게 생겼다. 2021년 크리스마스는 세르비아에서!

세르비아 국기


세르비아는 동유럽 중앙의 발칸반도에 있는 헝가리, 루마니아, 불가리아, 크로아티아 등 7개 나라에 둘러싸인 나라다. 사라예보 사건으로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고, 유고연방으로 통합되었다가 제2차 세계대전 후 2008년 코소보 독립까지 수많은 내전을 겪었다. 현재는 발칸반도의 몇 안 되는 자유국가로 국제적으로 중립을 선언했으며, 의원내각제를 채택하고 있다. 

역사를 알고 나니 세르비아에 대한 관심이 생겼다. 역시 사람은 공부를 해야 한다. 


여행은 가는 것도 좋지만, 준비하는 것이 더 설레는 법이다. 헌데, 이 더운 나라에서 그 추운 나라를 가려니 겨울옷이 없다. 한국에서도 올 때, 겨울옷은 다 놓고 왔다. 어라? 딸아이는 겨울 잠바가 하나도 없다! 있는 옷 중에서 긴팔 긴바지는 겹겹이 입기로 하고 중동에서 겨울옷 찾기에 나섰다. 다행히 아부다비도 겨울인지라 얇은 패딩 정도는 판다! 한국에 있는 겨울옷들을 생각하면 씁쓸하지만 별수 없으니 하나 장만했다. 


지난번 그리스의 기억을 떠올리며 코로나19에 대한 출입국 요건을 꼼꼼히 검토하고 출발했다. 

세르비아는 먼저 온라인으로 PCR 검사 예약을 하고, 예약 문자를 받은 뒤, 우체국에 가서 그 요금을 납부한 후, 영수증을 가지고 예약한 곳에 가서 검사를 하면 이메일로 결과를 받는다. 세르비아어로 된 홈페이지에 접속해서 구글 번역기의 도움을 받아 훌륭히 해결했다. 뿌듯하다!


2021년 12월 20일 밤, 세르비아 공항에 도착했다. 생각보다 춥진 않다. 일단 숙소를 찾아가 짐을 풀고 시내를 걷는다. 낯선 나라의 낯선 거리를 걸으며 낯선 풍경과 마주하는 이 시간이 제일 좋다. 발바닥에 감각이 없어지게끔 걷고 또 걷고 들어와서 떡실신을 한다. 


우리는 세르비아의 수도인 ‘베오그라드’와 ‘노비사드’를 다녀왔다. 베오그라드는 중세 유럽의 분위기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도시다. 베오 그라드 시내에서 깔레메그단 요새로 걸어가는 미하일로 거리를 제일 많이 걸었는데, 그곳에는 여러 가지 쇼핑센터 외에 군밤, 핫도그, 핫초코 등의 길거리 음식이 많아서 재미를 더했다. 회색빛 벽돌을 깔아놓은 듯 한 거리에 나란히 세워져 있는 5층짜리 건물들과 잎이 다 떨어진 높은 나무들이 겨울의 스산한 분위기와 잘 어울렸다. 길 한편에 아직 녹지 않은 눈이 쌓여있다. 거리 중앙에 3미터는 족히 될 듯한 크리스마스트리와 장식들이 줄지어 있고, 노란색의 전구가 불을 밝혀 연말 분위기가 물씬 난다. 좀 더 화려한 유럽의 크리스마스를 기대했는데, 생각보다 소박하다. 

숙소 앞, 동유럽을 처음 느끼다.
베오그라드 시내 오전 풍경

깔레메그단 요새는 베오그라드 사람들이 가장 즐겨 찾는 산책코스로 기원전 4세기부터 있었던 성곽이라고 한다. 무기박물관이 있고, 그곳에 올라가면 사바강과 도나우강이 합류하는 지점을 볼 수 있다. 돌로 쌓아 올린 요새의 성곽에 앉으니 강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상쾌했다. 아무 일정이 없다면 오랜 시간 앉아있어도 좋겠다 싶었다.

 

칼레메그단 요새
깔레메그단 요새에서 바라본 사바강과 도나우강이 만나는 곳

차를 렌트해서 ‘노비사드’라는 도시를 다녀왔다. 노비사드는 곡창지대로 유명하다. 바다가 없이 내륙에 자리 잡은 세르비아에서 특히나 넓은 평원이 펼쳐지는 곳이다. 차로 2시간을 달리는 동안 드넓은 평야를 덮고 있는 하늘의 무게감에 압도되는 듯 한 느낌이 들었다. ‘내가 주의 영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 했던 시편 기자의 마음이 공감된다. 광활한 평야를 달리다 보면 주황색의 세모난 지붕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마을들이 보인다. 유럽을 배경으로 한 동화책에 나오는 벽돌집이다. 마을로 들어가 아무 집이나 노크하고 그들의 삶을 잠깐 기웃거리고 싶다. 

노비사드 가는 길
베오그라드 외곽의 한 오래된 종탑에서

노비사드에 도착했다. 이곳은 또 다른 매력이 있다. 시내에서 조금만 걸으면 크리스마스트리로 장식해 놓은 공원이 있다. 공원의 스케이트장에 마을 사람들이 모여 아이나 어른이나 신이 났다. 성당 앞에는 푸드 트럭이 모여 있고, 장작을 지펴 오가는 사람들이 불을 쬘 수 있도록 화로대를 설치해 놨다. 사람들이 줄 서 있는 햄버거 트럭을 가보니 할머니가 음식을 조리하고 계시는데, 마치 집안에서 전수되어 오는 비법이라도 있는 듯 맛있어 보인다. 빵과 고기만 주문하면 앞에 놓여 있는 소스와 야채들을 마음껏 넣어갈 수 있다. 저녁을 먹어 배가 부른데도 너끈히 먹어치웠다. 과일과 계피를 넣어 끓인 포도주는 추운 겨울날 마시는 쌍화탕처럼 뱃속을 뜨듯하게 해 준다. 유독 크리스마스의 분위기를 좋아하는 남편의 얼굴이 아이 같다. 여기저기서 사진 찍어달라며 포즈를 취하는데, 귀찮은데도 계속 찍어주게 된다. 

노비사드에서 먹은 할머니 푸드트럭 햄버거 남자 어른 손을 쫙 편 크기다.
우리가 너무 좋아했던 메쉬드 포테이토. 

세르비아의 여행은 만족스러웠다. 일단 물가가 아주 저렴해서 내가 좋아하는 고기 요리를 아무리 먹어도 부담이 없다. 통신비는 12GB에 300디나르. 한화로 약 3000원 정도로 길거리 버스정류장에서 팔고, 유심만 바꿔 끼우면 된다.

유심 파는 곳.

  그리고 여행객들에게 무지 친절하다. 숙소를 정하거나, 차를 렌트할 때도 까다롭지 않고 시원시원하게 처리해준다. 영어를 못하는 세르비아인도 많지만, 대학생 같은 젊은이들은 적극적으로 도와주려고 한다. 자연이야 말할 것이 없다. 몇 세기의 역사를 간직한 쭉쭉 뻗은 나무들과 건물들은 그 자체로 조화롭다. 관광지가 활성화가 된 것은 아니지만, 동유럽을 느끼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다. 어떤 여행 유튜버는 프랑스나 독일, 영국의 서유럽보다 세르비아를 방문하는 것이 훨씬 만족도가 높다고 한다.


꿩 대신 닭이라고 이스라엘 대신 선택한 세르비아는 닭보다는 칠면조쯤 되는 것 같다. 기대보다 만족했고, 걱정했던 것보다 포근했다. 새롭고 낯선 곳에 대한 두려움은 사실 안개 같은 것이다. 한 발짝 내디뎌 안개가 걷히고 나면 신나는 일이 펼쳐진다. 다음 여행을 계획한다. 다시  이스라엘 도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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