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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부라이프 Mar 06. 2022

파란만장 그리스 여행기

7박 8일이 9박 10일 되다 1.

2021년 10월. 아부다비로 삶의 터전을 옮긴 후 첫 그리스 여행. 우리는 아테네 2박, 미코노스섬 2박, 산토리니섬 2박, 다시 아테네 1박의 알찬 여행 계획을 세웠다. 우리끼리 자유여행이니 가고 싶은 곳을 자유롭게 정할 수 있었다. 오가는 항공권과 섬으로 이동할 페리도 예약하고, 숙소도 결정했다. 첫 유럽 여행을 기대하며 그리스로 떠났다. 상쾌한 가을 공기가 우리를 맞이했고, 일정, 숙소, 음식, 경치, 날씨. 여행의 모든 일정은 산뜻했다. 모두 완벽했다. 산토리니섬까지는 그랬다.

아크로폴리스 신전
아크로폴리스 신전에서 내려다본 아테네 전경
제1회 올림픽 경기장
미코노스 풍차
산토리니 이아마을


산토리니에서 아테네로 돌아오는 날, 그날 새벽부터 뭔가 찜찜했다. 공항 가는 버스를 잘못 탈 뻔했다. 비슷한 발음의 다른 곳으로 가는 버스에 짐을 실었다가 부랴부랴 다시 내렸다. ‘아. 오늘 시작이 좋지 않군.’


공항에 내려서 아테네로 가는 비행기를 타기 위해 체크인을 했다. 짐을 부치고, 탑승 수속을 하는데 짐가방에 넣지 못한 초고추장과 폼클렌징이 배낭에서 나왔다. 바로 보는 앞에서 쓰레기통에 던져졌다. ‘아! 내 초고추장! 산지 얼마 안 된 폼클렌징! 아깝다!’


아테네로 돌아와서는 숙소도 잘못 찾았다. 울퉁불퉁한 돌바닥에 20킬로그램 되는 캐리어를 질질 끌었다. 구글 지도를 따라 땀을 뻘뻘 흘리며 언덕을 올라갔더니 이상한 공장 건물이 나왔다. 집주인과 통화를 하니 거기가 아니란다. ‘이런. 오늘 진짜 이상해!’ 다시 돌고 돌아 숙소를 찾아갔다. 오, 마이 갓! 숙소 컨디션이 말이 아니다. 침구는 찝찝했고, 욕실이며 주방은 오래도록 안 쓴 흔적이 그대로 있었다. 주전자는 녹이 슬어있었고, 식기류도 사용하기가 민망할 정도였다. ‘1박이니 참자!’


다음 복병은 코로나 검사였다. 남편이 찾아둔 작은 코로나 검사소로 갔다.

“예약을 안 해서 검사를 해줄 수 없습니다.”

“네? 우리는 내일 출국인데요? 그런 안내가 없었어요. 내일 비행기 타야 하니 해주세요. 내일 5시에 출국해야 합니다.”

“내일 8시에나 결과가 나옵니다.”

“결과가 좀 일찍 나올 수도 있잖아요. 일단 여기서 해야 해요!”


우리는 결국 1인당 60유로를 내고 코로나 검사를 했다. ‘이 나라에 여행객이 이렇게 많은데, 코로나 검사하는 곳이 여기밖에 없다고?’ 이상한 생각이 들어서 이전 숙소에 물어보니 코로나 검사는 대부분 약국에서 다 한단다. 주변 약국을 들렀다. 역시나 코로나 검사를 하고 있다. 그것도 10유로에! 20~30분 후에 결과지를 찾으러 오면 된단다. 이게 무슨 일인가? 검사를 하고 검사지를 받았다. 마음이 놓였다. ‘내일 집에는 가겠네.’


정신이 쏙 빠지게 여기저기 다니니 피곤하고 배가 고팠다. 노천식당에 들어가서 늦은 점심을 주문했다. ‘여기서 쉬면서 시간이나 때우자’ 그때 노숙자 행색을 한 남자가 다가와서 전단지를 보여주며 말을 걸었다. “노, 노!” 우리가 알아듣지 못하자 그는 사라졌다. 잠시 후 딸이 소리쳤다. “엄마, 내 핸드폰 어디 있죠? 음식 사진 찍고 책상 위에 놨는데?” 우리는 벌떡 일어났다. 오! 핸드폰을 도둑맞았다. 딸의 얼굴은 사색이 됐다. 경찰을 불렀는데, 경찰이 영어를 못한다. 식당 직원이 통역을 했다. cctv는 달려있으나 딱 봐도 무용지물이고, 그걸 보려면 절차가 까다롭다. 경찰서에 가서 진술서를 쓰라고 해서 택시를 타고 갔다. 어이없게도 도착한 곳은 허름한 건물 3층에 있는 자그마한 민원실이다. “여행자를 위한 경찰서는 20분 정도 떨어진 곳에 있어요. 경찰이 자꾸 같은 실수를 하네요.” 직원의 말을 듣고 나니 진술서를 쓴다 한들 핸드폰을 찾는다는 보장이 없었다. 작정하고 훔쳐 갔으니 어쩌랴. 울먹이는 딸의 마음을 달래야 했다. “네 탓이 아니야, 네가 잃어버리려고 한 것도 아니잖아. 누가 다친 것도 아니니 다행이라고 생각하자” 문득 핸드폰 뒤에 꽂아놓은 비상금이 떠올랐다. 속이 쓰렸다. 

핸드폰 도난당한 식당


다음날, 유럽 여행의 설렜던 기분이 연기처럼 사라지고 피곤이 몰려왔다. 일찌감치 공항에 도착해서 발권 라인에 줄을 섰다. 당당하게 약국에서 받은 코로나 테스트지를 내밀었다.

“사용할 수 없는 테스트지입니다. 우리는 오로지 PCR테스트지만 받습니다.”

“이거 약국에서 받은 건데요?”

“그건 fast-코비드 테스트라서 우리 항공사는 받지 않습니다. 티켓팅 할 수 없습니다.”


하늘이 노래졌다. 10유로를 내고 약국에서 한 코로나 검사는 무용지물이었다. ‘비행기 시간은 5시고, 다른 코로나 검사는 8시에 나온다고 했으니 좀 기다려볼까? 혹시 좀 더 빨리 나오지는 않을까?’ 오지 않는 메일을 자꾸 확인했다. 어느새 시간은 4시 30분. 아직이다. 5시. 메일은 오지 않았다.


비행기는 출발했고, 우리는 공항에 남았다. 머릿속이 멍해졌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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