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박 8일이 9박 10일 되다 2.
아부다비행 5시 비행기는 날아갔고, 우리는 아테네 공항에 남았다. 마음을 추슬렀다. 저가 항공이라서 환불도 안되니 이미 돈은 날렸다. “이미 벌어진 일은 어쩔 수 없어. 다음 단계를 생각해 보자고.” 남편의 말에 힘을 냈다. 다른 항공사 편도 비행기 티켓을 예매하고, 공항 근처 숙소도 찾았다. 택시를 타기 위해 공항을 나왔다. 일주일 전 그리스 공항을 나올 때 기분과는 영 딴판이다. 7시쯤 딸아이와 나의 PCR 검사 결과가 메일로 왔다. ‘2시간만 일찍 보내주지’ 야속했다
헌데 남편 결과는 아직이다. 연락을 취해도 자동응답기로만 연결된다. 8시까지 기다려보기로 하고 저녁을 먹으러 나왔다. 마땅한 가게도 없고, 입맛도 없다. 제법 규모가 있는 마트가 있어서 간단히 먹을 요거트와 작은 병에 담긴 올리브 오일 6병을 샀다. 그리스어가 쓰여 있는 올리브 오일이라 선물하기 좋을 것 같았다. 8시가 됐는데도 남편의 검사 결과는 감감무소식이다. 슬슬 불안하다.
다음 날 아침, 검사소로 가봐야 할 것 같았다. 다 같이 움직이려면 번거로우니 일단 택시를 타고 공항에 가서 내가 짐을 지키고 있고, 남편과 딸은 지하철을 타고 검사소를 가보기로 했다. 문득 오늘이 주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검사소는 주말이라서 문을 닫았다! 남편의 검사 결과를 받기는 글렀다. 뒤통수를 맞은 것 같았다. 남편의 비행기표와 코로나 검사비 60유로를 또 날렸다. 저가 항공으로 싸게 그리스 여행을 한다고 좋아라 했는데, 얼마가 공중분해되고 있는지 어안이 벙벙했다. 남편은 공항에 도착해서 60유로를 내고 다시 코로나 검사를 했다. 이놈의 코로나! 너무 밉다.
어쩔 수 없이 나와 딸이 먼저 출국하고 남편 혼자 하루를 더 있기로 했다. 눈물이 났다. 괜스레 미안한 마음도 들고, 하루 사이에 남편이 폭삭 늙어 보였다. 남편이 힘들게 번 돈을 날렸다 생각하니 속이 쓰렸다. 남편은 다시 근처 숙소와 비행기를 예약했다. 부치는 짐은 우리가 가져가기로 하고 경유해야 하는 남편은 작은 가방 한 개만 챙겼다. 딸과 둘이 짐을 부치러 가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PCR 결과 메일을 보여주고 표를 받으려는 찰나, 직원이 456유로를 내야 한단다! 아뿔싸! 어제 정신없이 비행기표 예매할 때, 날린 돈이 아까워서 저렴하게 표를 끊는다는 것이 부쳐야 하는 짐을 체크하지 않고 예약을 해버린 것이다. 온라인 체크인을 할 때 짐 추가를 하면 20킬로그램에 20유로만 더 내면 된다. 공항에 가서 부치는 것은 추가 짐에 해당되어서 1킬로그램당 24유로나 줘야 한다. 456 유로면 비행기 값보다 짐 값이 더 비싼 꼴이다.
일단 티켓은 받고 짐을 가지고 왔다. 하루 더 남아야 하는 남편에게 이런 짐까지 지워주고 싶지 않았다. 정신 차리자! 어떻게든 무게를 줄여야 한다. 고심 끝에 기내용 캐리어를 사고 옷가지들을 있는 대로 구겨 넣었다. 제일 무거운 것은 올리브 오일이었다. 내 머리를 쥐어박고 싶었다. ‘흔하디 흔한 올리브 오일을 왜 샀니, 그것도 6병이나 사다니!’ 별다른 방법이 없어서 공항 직원 아무에게나 나눠주기 시작했다. 아무리 줄여도 가방 무게는 6킬로그램이나 되었다. 울상이 된 얼굴로 항공사 직원에게 다시 갔다. 올리브 오일이 직원의 마음을 움직였는지, 4킬로그램을 할인해주었다. 진심으로 고마웠다. 그렇게 우리는 남편을 남겨둔 채 그리스를 떠났다.
남편은 다음날 자정이 넘어서야 아부다비에 도착했고 이렇게 7박 8일로 예정했던 우리 여행은 9박 10일로 늘어났다. 좌충우돌! 예상치 못한 일이 속출하면서 두고두고 이야기할 에피소드가 넘쳐났다. 아부다비가 아직 집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는데, 이곳의 뜨뜻한 공기가 한없이 정겨워졌다. 여행은 추억을 남기고 풍랑을 겪은 만큼 자신감이 주어진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경험이다. 이제 어디든 갈 수 있을 것 같다! 다음은 어디로 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