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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부라이프 Mar 11. 2022

젊지 않은 나와 마주하기

© carolineveronez, 출처 Unsplash

인터넷 쇼핑으로 옷을 산다. 모델이 입은 옷이 퍽 예쁘다. 내가 입은 모습을 상상해 본다. 이쁠 거다. 택배로 받은 옷을 꺼내 입어본다. 거울 속의 나는 상상했던 내가 아니다. 중년 아줌마가 아가씨 옷을 입고 어색하게 서있다. 고이 접어 반품한다.

살이 좀 빠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왠지 가볍다. 청바지를 입고, 평소와 달리 살짝 짧은 티를 입었다. 힙이 완전히 덮이지 않으나 살이 빠졌으니 괜찮을 것이다. 딸아이와 산책을 나간다. 딸아이는 신나서 뛰어가는 내 뒷모습을 동영상으로 찍었다. 힙 어디로 갔나. 납작하고 심지어 축 처져 볼품없는 뒤태가 영 잔망스럽다. 윗옷은 반드시 긴 것으로 입기로 한다.


머리를 감고 드라이를 하고, 상쾌한 기분으로 외출을 한다. 엘리베이터에 타서 매무새를 다시 점검한다. 반질반질 윤기 나는 머리를 멋스럽게 넘겨본다. 언제부턴가 내 머릿속에서 숨어 자라고 있었던 무수한 흰머리 중 하나가 삐쭉 고개를 내민다. 그 녀석은 힘이 좋아서 뻣뻣하게 검은 머리카락 사이에서 존재감을 드러내다. 유난히 거슬린다. 뽑아야 한다. 그런데 잘 잡히지 않는다. 거울에 바싹 다가가서 뽑으려는 찰나, 1층이다. 문이 열리고 누군가 서있다. 아무렇지 않은 척 흰머리를 숨기고 엘리베이터에서 내린다.

단추가 떨어졌다. 꿰매야겠다. 반짇고리를 열어 바늘을 집었다. 바늘귀에 실을 꿰려고 하는데, 영 보이지 않는다. 딸아이를 불러 도움을 요청한다. 노안이 왔다.


갑자기 식은땀이 난다. 열이 확 오른다. 얼굴이 벌게진다. 짜증이 나고, 기분이 들락날락한다. 갱년기 증상은 나와 먼 일이라고 생각했다. 평소에 운동을 해야 한다는 언니들의 말을 귓등으로 들었다. 진짜 식은땀이 난다. 등에 열이 오른다. 얼굴이 화끈거린다. 신경질이 나려고 하고 우울한 기분이 든다. 세월은 나를 비껴가지 않는다.

미디엄 레어로 맛스럽게 구워진 스테이크와 적당히 꾸덕꾸덕한 해산물 크림 파스타, 아삭아삭 신선한 야채와 두툼한 소고기 패티가 들어간 햄버거. 단짠단짠의 간장소스 치킨, 달콤한 딸기 케이크와 색색의 마카롱. 산해진미가 눈앞에 가득하다면? 입안에는 침이 고이고, 다 먹어치울 듯 마음은 급해지지만 한 두 숟가락, 몇 입 베어 물면 속이 느끼하고, 소화가 안 된다. 담낭을 떼어내 지방을 소화시키기 어렵다. 나이가 들면서 더 그렇다. 당기는 식욕을 받쳐주지 않는다. 그렇다고 내 몸의 지방은 빠지지 않는다. 못 먹는 것을 대체하는 더 많은 것들이 내 뱃살을 풍성하게 한다.

두 사람이 벌었다가 한 사람이 번다. 퇴직이라는 두 글자가 눈앞에 선명해지고, 앞으로 살아갈 날이 더 많다는 사실에 머리가 복잡해진다. 물려받은 재산도 없이 성실하고 열심히 살아온 남편의 월급은 가족들을 위해 고스란히 값지게 쓰였고, 이제 제2의 인생을 고민해야 한다. 묵묵히 고심하고 있을 남편을 위해 기도한다. '훨씬 젊은 내가 있으니 우린 뭐든 할 수 있다'라고 용기를 줘야 하는 때가 왔다.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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