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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부라이프 Dec 09. 2022

UAE 내셔널데이의 밤은 대환장 파티!


12월 2일은 아부다비, 두바이, 샤르자, 라스 알 카이마, 푸자이라, 아지만, 움알쿠와인  7개 토후국들이 하나의 연합국, ‘아랍에미리트(UAE)’가 된 걸 기념하는 내셔널데이이다. 올해는 51주년이어서 길마다 ‘51’이라는 숫자로 장식을 해놨다. 이때쯤이면 도로 곳곳은 불빛으로 찬란해진다. 중앙선에는 반짝이는 전구로 장식을 해놓고, 집마다 커다란 국기를 달아놓는다. 호텔이나 국가기관은 빨강, 초록, 하양, 검정의 국기색으로 꾸며놓고, 레이저를 쏘기도 한다. 해변과 공원에는 연휴를 즐기는 사람들로 복작인다. 여기까지만 보면 기분 좋은 축제다.  

올해는 그날 , 우리나라와 포르투갈의 월드컵 축구경기가 있었다. 단체 관람을 위해 집에서 20분가량 떨어진 골프장으로 응원을 하러 나섰다. 태극전사들! 16강 진출이다! 나는 운동을 잘 알지 못해서 평소 축구에 대한 관심이 1도 없었는데, 해외에 있다 보니 애국심이 샘솟아 한국 경기를 모두 관람했다. 한국 선수들을 소리 지르며 응원했다. 12년 만에 16강 진출, 기적 같은 일이라고 하니 자꾸 웃음이 나고, 행복했다. 어서 집으로 가서 팔레스 호텔에서 9시에 하는 불꽃놀이를 지켜보며 하루를 마무리하면 아주 금상첨화겠군!      

    

그런데 집까지의 길을 안내하는 내비게이션이 이상하게 온통 빨간색이다! 큰길로 들어서니 차들이 옴짝달싹 않은 채 길거리가 주차장이 되어있다. 조금이라도 빠른 길로 가보려고 골목으로 들어서니 거기는 더 가관이다! 아! 오늘이 이 나라 내셔널데이다! 작년에 봤던 충격적인 상황들을 잊고 있었다니!      


1년 전, 집에서 걸어 나와 길을 가득 채우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겨우겨우 불꽃놀이를 봤다. 도로 한복판의 철없는 젊은이들의 흥분한 모습에 혀를 끌끌 차며 어마어마한 인파를 뚫고 겨우 집으로 돌아왔다. 주차장이 되어있는 도로 상황을 보며 ‘이럴 때는 나오는 거 아니야! 집에 있어야 해!’ 하고 다짐했는데, 월드컵 경기 응원 앞에서 모든 기억이 사라졌다. 정신없는 축제의 한가운데 서있어야 한다니!     


하얀 칸두라(UAE 전통 남자 복장)를 입은 아이들부터 어른까지 스프레이를 들고 도로를 활보하기 시작한다. 신호고 뭐고 다 무시하고 양쪽 차선을 넘나들며, 아슬아슬하게 차들 사이를 지나다닌다. 어떤 아이들은 심지어 맨발이고, 가방 안에는 색색의 스프레이가 한가득이다. 주로 남자 청년들이 많고, 여자들은 길가에 앉아 구경하거나, 차 안에 있다. 지나가는 차마다 조금이라도 그들을 호응한다 싶으면 차에 뛰어들어 스프레이로 잔뜩 뿌려댄다. 차 안에서도 밖으로 뿌리고, 서로 맞붙어 스프레이 전쟁을 한다. 그 옆을 지나는 차는 덩달아 스프레이 범벅이 된다. UAE 국기를 흔들면서 차 위에 올라앉은 청년들. 도로를 뛰어다니며 노래를 부르고 춤추는 아이들. 스프레이를 뿌려대며 낄낄거리는 맨발의 아이들. 그들에게 호응하는 차의 클랙슨 소리. 도대체 이 위험한 상황에서 부모들은 뭘 하는 건지, 이 상황을 눈감아주는 건지, 허용하는 건지 이해가 안 된다. 심지어 아이들을 위해 스프레이를 사다가 공급해주는 아줌마도 있고, 어린아이를 차 지붕에 태우고 빵빵거리며 운전하는 아저씨도 있다. 알 수 없는 대환장파티다.       

    

거기다가 중간중간 차를 세워놓고 스프레이 전쟁을 벌이는 이들과 도로를 통제한답시고 무조건 길을 막고 있는 경찰 덕에 도로는 하염없이 정체다. 급한 일이라도 있거나, 아이가 아프기라도 한 상황이면 진짜 머릿속이 하얘질 거다.     

 

9시에 보기로 마음먹은 불꽃놀이는 벌써 물 건너갔다. 10시, 11시. 우회도로로 갈수록 점점 집에서 멀어진다. 16강 진출로 흥분했던 마음은 이미 차가워지고 뛰어다니는 아랍 청년들에게 화가 나기 시작했다. 12시. 내셔널데이 지났다. 그만하고 집에 가라. 1시. 내일 시험이 있는 딸과 화장실이 급한 남편은 차를 세우고 걸어갔다. 나는 정체가 풀릴 때까지 길가에 정차했다가 움직이기로 했다. 돌고 돌아 집이 바로 눈앞이다. 신호하나 만 통과 해서 직진하면 되는데 또 길을 막고 우회도로로 가라 한다. 경찰 앞에서 나도 모르게 창문을 열었다. 이 나라는 경찰이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어서 아무도 반박할 수 없다는데, 이쯤 되니 참을 만큼 참았다 싶었다. 20분이면 될 거리를 5시간이나 걸렸으니 짜증과 분노가 섞여 눈에서 레이저가 나왔다.

    

“나 집에 가고 싶어요. 우리 집 바로 저기라고요. 제발!”     

“가세요.”    

  

어이없게도 웃으면서 막힌 길을 열어준다. 아! 나 5시간 동안 뭐한 거니! 있는 힘껏 액셀을 밟았다. 새벽 2시다! 내가 우리나라 16강 진출해서 참는다.! 내년에는 절대 잊지 말아야지. UAE 내셔널데이 밤에는 운전하는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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