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밧드의 나라, 오만’이라는 말을 들어봤나? 나는 ‘신밧드’는 알아도 ‘오만’이라는 나라는 어디 붙어있는지 별로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아부다비에서는 한 번쯤은 다녀와야 하는 나라에 ‘오만’이 꼭 포함된다. 국경을 접하고 있어서 육로 이동이 가능하고, 밋밋한 아부다비와 달리 높이 솟은 산이 있다고 했다. 중동의 그랜드케년이라는 제벨 샴스, 닥터 피쉬가 있는 비마 싱크홀 그리고 바다거북들이 산란하는 장관을 볼 수 있는 수르(SUR)가 유명하다. 바다거북의 산란은 시기가 맞지 않아 볼 수 없지만 다른 곳은 2박 3일이면 싹 훑고 올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오만’의 광활함을 우습게 본 남편과 나는 가벼운 마음으로 출발했다.
12월 1일 새벽 6시. 2시간을 족히 달려 국경에 도착했다. 여권과 짐 검색을 하고 국경을 통과하니 다른 나라에 진입했다는 기분에 살짝 흥분이 됐다. 정말 아부다비에서는 볼 수 없었던 높은 바위산이 주변을 두르고 있다. 비록 나무는 별로 없는 민둥산이지만 오랜만에 겹겹이 두른 높은 산들을 바라보니 한국에 대한 그리움이 복받쳤다. 웅장한 바위산 사이로 난 도로는 한적하고 시원했다. 허나 가도 가도 끝이 없다. 꼬박 4시간을 넘게 쉬지 않고 달리니 점점 지루해졌다. 오만은 넓다.
첫 목적지는 ‘중동의 그랜드케년’으로 불리는 ‘제벨 샴스’다 ‘제벨’이란 단어는 ‘산’을 뜻하고, ‘샴스’는 ‘태양’을 뜻한다니 바로 태양의 산이다. 구불구불한 비포장도로를 차로 한참 올라가면 주차를 할 수 있는 공터가 나온다. 이곳에 차를 대놓고 트레킹을 할 수 있다. 절벽을 따라 걷는 왕복 4시간짜리 코스다. 조금만 걸어가면 왜 이곳을 ‘중동의 그랜드케년’이라고 부르는지 알 수 있다. 웅장한 바위산은 거대한 누군가가 손으로 확 파놓은 듯 절벽 단면의 지층이 그대로 드러난다. 깎아지른 절벽 사이로 시원한 바람이 가슴속까지 파고들었다. ‘아!’ 입이 벌어져 다물어지지 않는다. 하늘과 구름과 바람과 바위의 조화가 이렇게 아름다울 줄 몰랐다. 창조주의 위대함 앞에 작아진 피조물은 저절로 겸손해진다. 자연이 뿜어내는 웅장함과 경이로움에 넋을 놓았다. 카메라 렌즈는 그 광경을 제대로 담아내지 못한다. 시야에 들어오는 모든 자연을 가슴과 기억 속에 꽉 붙잡아두고 싶다. 산양이 트레킹 코스를 따라 걷고 있는 사람들을 바위 위에서 물끄러미 쳐다본다. 제대로 가고 있는지 감시하다가 아무렇지도 않게 지나가기도 하고, 다가와서 냄새를 맡기도 한다. 마치 여기가 다 우리 집이라는 듯, 사람에 대한 거부감이 없다. 겨울 중동의 짧은 낮이 얄미웠다. 트레킹 풀코스를 가지 못하고 뒤돌아왔다. 그 꼭대기에서 캠핑을 하려 텐트를 치는 사람들이 있다. 하늘과 맞닿는 바위산의 어둠은 어떤 감동을 줄지 궁금했다. 꼭 다시 오리라 다짐하며 아쉬운 발걸음을 돌렸다. 장거리 운전의 불평이 살짝 사그라들었다.
다음날은 아침 일찍 수도인 무스카트로 향했다. 오만에서 3시간 운전은 기본이다. 이동하는 동안 창밖의 마을들을 보며 ‘화려한 두바이, 아부다비 옆의 오만은 90년대 어디쯤에서 성장이 멈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겉에서 보이는 무스카트는 보수적인 이슬람 문화로 둘러싸인 낙후된 도시로 보였다. 그나마 있는 큰 건물들은 관공서나 정부기관이고 대부분은 지붕이 평평한 베이지색의 네모 건물이다. 건물마다 줄지어 붙어있는 아치 모양의 창문이 이색적으로 보일 뿐이었다. ‘볼거리’를 찾아다니는 하이에나처럼 ‘관광지’를 기대했던 우리는 적잖이 실망했다. 긴 시간 동안 운전한 남편에게 바람이나 쐬자고 했다. 관공서 옆의 주차장에 차를 대고 해안을 따라 걷기로 했다. 지붕이 둥근 이슬람 사원이 보였다. 베이지색 건물들 사이에서 파란색, 하얀색의 타일로 촘촘하게 장식된 사원이 도드라졌다. 건물 외벽부터 지붕 꼭대기까지 정교하게 모자이크 타일이 붙어있다. 좀 더 걸어가니 해안을 따라 커다란 돌로 쌓아놓은 요새가 보였다. 차 안에서 멀리 보던 겉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이 큰 돌을 어떻게 날랐을까? 또 어떻게 이렇게 높이 쌓았을까? 어떻게 저 바다를 메꿔 요새를 만들었을까?’ 거대한 요새 사이로 옛 해양제국의 흔적이 보였다. 돌벽으로 둘러싸인 항구에 무역선들이 드나들고, 상인들의 흥정으로 시끌벅적한 무스카트를 상상해봤다. 촌스럽게 퇴보한 도시를 생각했던 내가 부끄러웠다.
시장을 갔다. 나는 재래시장을 좋아해서 어딜 가나 시장을 꼭 찾는다. 오만의 특산품인 유향과 갖가지 향신료가 부대자루에 담겨있다. 알라딘의 요술램프, 나침반, 선원들의 망원경 등 기념품을 파는 곳이 줄지어 있다.
하늘거리는 천이 시원해 보이는 고무줄 바지가 눈에 띄었다. 손으로 만지작거리다가 선뜻 내키지 않아 돌아 나왔다. 그곳에서 오만 사람들과 접해볼 수 있었다. 약간의 호객행위는 있으나 가격을 물어보면 친절하게 가르쳐주고, 뜨내기손님을 웃으며 보내준다. 때 묻지 않은 중동 아저씨에게서 정겨운 시골 할아버지의 미소를 보았다. ‘응답하라 1988’의 ‘쌍문동’ 느낌이다. 이방인에게 친절해야 한다는 이슬람의 교리 때문일지도 모른다. 오만의 이슬람 종파는 이바디파로 온건과 관용이 특징이라고 한다. 그래서 중동 국가들 사이에서 중재자 역할을 하는 곳이란다. 오만에 대한 편견이 사라진다.
오만에서 육로 이동의 여행을 하려면 적어도 6시간 이상의 운전은 자신 있어야 한다. 차 안에서 먹을 빵빵한 간식과 음악과 허리보호대가 필수다. 오만을 종단하려면 쉬지 않고 14시간을 운전해야 할 만큼 오만은 넓은 나라다. 2박 3일로는 오만의 겉모습도 제대로 훑기가 어려웠다. 완전 맛보기 여행이다. 한때 페르시아 만과 동아프리카를 주름잡았던 해양제국 ‘오만’, ‘신밧드’의 모험이 펼쳐질 만큼 해양무역이 활발했던 나라 ‘오만’ 곳곳에 숨은 매력이 있고, 정 많고 따뜻한 나라 ‘오만’ 나는 ‘오만’에 대해 오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