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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시원 Mar 29. 2016

할머니의 봄날은 돌아오지 않았다.

충청남도 서천군 화양면 봉명리 271번지

몇 개월 만에 외할머니를 찾았다. 

할머니의 눈꺼풀은 무겁게 내려앉아 있고 몸은 오래된 화석처럼 그대로 굳어 있었다.

"할머니 저 왔어요."

내 말에 할머니는 눈물을 흘리며 웃으셨다. 

너무 좋아하셨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할머니는 줄곧 요양원 침대에만 누워 계셨다.

몇 년 이 지났지만 나는 아직도 할머니의 이런 모습이 낯설다.

내 기억 속에 할아버지 할머니는 젊었다. 누구에게나 그런 시절이 있듯이 말이다.

큰 교통사고로 아팠던 아버지 그리고 그런 아버지를 간병해야 했던 엄마를 뒤로 하고 누이와 나는 이모 손에 이끌려 충청도 서천으로 가야만 했다.

외할아버지, 외할머니가 어릴 적부터 살고 계신 곳이며 엄마의 고향이기도 하다.

정확한 계절은 모르지만 논밭이 초록물결이 가득했던 것으로 보아 6월 초여름 정도가 아니었을까 한다.

정말 모든 곳이 논이었고 밭이었다. 큰 건물도 자동차들도 없었다. 간혹 마을버스가 흙먼지를 날리며 다니는 것 빼고는 흔하디 흔한 승용차 한 대 없던 시절이었다.

엄마와 처음으로 떨어졌던 어린 나는 매일 같이 엄마를 찾았다.

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동네 사람들까지 조금만 기다리면 엄마가 올 거라고 나를 위로해주었지만 나는 밤마다 이불을 덮어쓰고 울었던 기억이 난다.

주변의 보살핌 덕분인지 나는 부모가 없는 삶에 적응해 나갔다. 아니, 어쩔 수 없다는 걸 깨우친 것이리라.

할머니가 해주셨던 고구마 줄기 볶음과 밥을 잘 먹곤 했다. 

지금 엄마의 반찬이 모두 내 입맛에 잘 맞지만 단 하나 고구마 줄기 볶음은 그때 그 맛이 나지 않는다.

밥을 먹기가 무섭게 동네로 뛰어나가 형들과 팽이를 치거나 말뚝 박기를 하며 놀았고 미로처럼 담벼락이 높은 골목을 빠져나가면 있던 구멍가게에서 할아버지가 주신 돈으로 눈깔 왕사탕을 사 먹었다.

반년 후 아버지가 병원에서 나오셨고 나와 누이는 마침내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나이를 먹고 한동안 가보지 못했던 외가댁을 다시 간 적이 있는데 미로 같이 큰 골목길은 왜 그리도 작아졌는지, 그때는 마당도 엄청 넓었고 집도 커 보였는데 이제는 너무나 작고 아담해 보였다.

이제 그 집은 없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할머니의 병세는 더욱 악화돼 이제는 요양원이 할머니의 마지막 집이 되었으니까.

집은 팔았고 이제 우리는 그곳에 갈 이유가 없다.

이미 우리는 할머니와의 이별도 준비가 되어있다. 

할아버지, 할머니와의 이별은 과거의 추억과도 작별하는 것이다.

이제 그곳도 그곳을 떠올릴 사람도 존재하지 않으면 더 이상 그때 나를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나는 할아버지를 보내고 최근 할머니의 모습을 보면서 문득 그곳이 그리워졌다. 어릴 적 불쌍했던 나와 누나의 모습이 자꾸만 겹쳐진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떠나보내는 건 엄마가 보고파 눈물짓던 어린 시절의 나와의 헤어짐과도 같다. 

비록 엄마는 없었지만 할아버지, 할머니의 따뜻함이 그리운 시절이니까.

할아버지가 그립고 할머니도 그립다. 그리고 잠시나마 뛰어놀았던 그때 그 장소 내가 너무나도 그립다.

충청남도 서천군 화양면 봉명리 271번지 


초록 물결이 넘실대던 그때 그 시절에 할머니는 너무나 젊었다. 따스했던 봄날처럼 밝게 웃던 할머니가 보고 싶다. 

하지만 두 번 다시 그 모습을 볼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늙어가고 결국에는 세상에서 잊혀 간다. 

"할머니 내가 할머니 집에서 두 달 동안 살았던 거 기억나요?"

할머니는 힘없는 목소리로 기억한다고 말하셨다.

나는 돌아섰고 또 언제가 될지 모르는 약속을 했다. 

빨리 들어와서 밥 먹으라고 소리치던 할머니, 나를 끌고 가던 그때 할머니는 힘없이 차가운 침대에 그렇게 누워 있었다.  손 흔들 힘도 없이 말이다.

할머니의 봄날은 아마도 그때였을 것이다.  

그 시절 할머니의 웃음, 초록 들판, 그리고 지금보다 더 맑고 파랗던 햇살, 돌아오지 않는 할머니의 봄날을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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