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나이든 나를 만난 다는 것

#1 나이든 나를 만난다는 것

by 박시원

나이든 나를 만난다는 것


영원한 젊음?

묻고 싶다. 이십대 시절에 마흔의 자신을 상상해 본 적이 있습니까?

마흔?

흔히 불혹, 마흔이라 하면 아저씨가 된다는 걸 의미한다. 시대가 바뀌고 나이보다 젊어 보이는 사람들이 많다고 해도 더 이상 청춘이 아니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나는 단 한 번도 아저씨가 된 나를 상상 해본 적이 없다.

심지어 내가 삼십대 중반이 될 거라고도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이미 삼십대 중반에 와 있다.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모르지만 젊음, 그 순간이 마치 영원할 거라는 바보 같은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다른 이들이 늙어가고 변해가는 모습을 보면서도 내가 그렇게 될 거라는 상상조차 해본 적이 없다.

내가 마흔이 된다? 지금도 믿어지지 않는다. 미래의 낯선 내 모습을 상상하기에는 내가 아직도 어린 걸까.

내가 브리즈번에 있을 때 알게 된 친구가 있다.


쌍꺼풀이 짙은 큰 눈과 과하지 않게 솟은 콧날 계란형의 얼굴, 누가 봐도 못생긴 얼굴은 아니었다. 짙은 쌍꺼풀로 호불호가 갈릴 수 도 있지만 말이다.

이목구비 어디하나 모난 곳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완벽한 조화를 이룬 얼굴로 보이지도 않는다. (이목구비 모두 엉망진창 이지만 썩 괜찮은 조화를 이루고 있는? 나와 다르게)

좋게 말해 그 녀석은 못생긴 원빈 정도로 해두자.

그 친구는 내가 호텔 일을 하기 시작하고 2주 동안 인사만 하는 사이였다. 2명이 1조를 이루는 일에 그 친구와 나는 단 한 번도 짝이 된 적이 없었다.


그 날 처음 한 조를 이뤄 객실로 올라갔다.

“내가 화장실 할게요.”

내가 먼저 말했다. 내가 나이가 3살 많은 걸 알았지만 무작정 말을 놓지 않았다.

‘아니요. 제가 화장실 할게요.’ 이 말이 나오길 기대했지만 그는 ‘아, 네.’ 하면서 고개만 까딱 끄덕였다.

‘저런 싸가지 없는…….’

선심 쓰듯 먼저 말해놓고 기분이 상하는 건 무슨 경우지?

나는 아무런 말없이 화장실 청소를 했다.

우리는 그렇게 몇 개의 객실을 별다른 말없이 청소 했다.

우려와는 다르게 두 번째 객실에서는 아무런 말없이 자신이 먼저 화장실로 들어가 청소를 시작했다.

나는 당연히 다음 객실에서 화장실로 먼저 들어갔다.


한국인 특유의 빠르고 섬세한 손놀림으로 객실5개를 불과 3시간 만에 후다닥 끝냈다.

인도 애들과 같이 일하면 방하나 끝내는데 1시간도 넘게 걸리는 게 다 반사다. 남자들보다 손이 더 빠른 한국여자들은 우리보다 더 답답해하곤 했다.

그래서 우리는 같은 한국인끼리 일하는 걸 좋아한다. 일도 빨리 끝마칠 수 있고 마음도 편하고 일하면서 수다도 떨 수 있기 때문이다.

가끔 짝이 없어 인도 혹은 필리핀 친구들과 한 조가 되는 날엔 일을 거의 혼자 도맡아서 하거나 아니면 무조건 꼴등 퇴근 예약이다.

하루는 그 친구와 나는 말없이 통유리로 된 창문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일할 때는 정신없어 모르지만 일이 끝나고 난 후 바라보는 브리즈번의 전경은 정말 아름다웠다. 차분하고 정돈된 모습이었다. 정지된 듯 움직이지 않는 세상 같았다.

20층 이상의 고층 건물에서 한참을 내려다보고 있으면 강위로 가로 지르는 배들이 만드는 물결이 반짝 반짝 빛난다.

시선을 빌딩 아래로 돌리면 주말 길거리에 장이 선다. 한국 시장처럼 꽈배기나 맛있는 간식거리는 없지만 신선한 과일, 채소 등이 나와 있다.

“형은 여기 왜 오셨어요?”

그 친구가 갑자기 물었다.

“여, 여자 친구 쫓아서 왔지.”

말해놓고도 여자 뒤꽁무니만 쫓아다니는 찌질 한 남자 같아 보이지는 않을까 내심 신경 쓰였다.

“저는 색다른 경험을 하고 싶었어요. 군대 제대하고 복학은 하기 싫고 그러다 보니 여기까지 와 있네요.”

이름은 김석훈 이었고 낯가림이 심해보였지만 싸가지 없는 놈은 아니었다. 그저 평범한 대한민국 남자였다. 그 후로 우린 꽤나 친해졌다.

일하고 매일 같이 통유로 세상 밖을 내려다보곤 했다.

우리가 일하는 호텔 방은 주방도 같이 있기에 항상 새 음식이 남아있었다. 새 맥주도 심심치 않게 있어 통유리 앞에 앉아 맥주 한 잔 할 때가 많았다.

그 친구나 나나 외국에서 멋지고 재미있는 일만 생길 줄 알았는데 웬걸 멋진 일이라고는 이렇게 20층 아래를 내려다보는 일, 하루에 고작 십여 분 남짓이다.

그 친구가 어느 날 이렇게 말했다.

“형은 형이 아저씨가 된 모습을 상상해 봤어요?”

“그게 무슨 말이야?”

나는 당연히 고개를 가로 저었다.

“나는 현재를 살 거예요. 미친 듯이 멋지고 완벽하게 말이죠. 물론 지금은 이러고 있지만…….”

그리고 그 녀석은 이렇게 말했다.

“나이든 나를 보기 싫어요. 아저씨? 인생은 정점은 젊은 날이에요. 아저씨가 되면 인생이 끝나버린 거죠. 그때부터는 이유 없이 반복되는 삶의 연속일 뿐이죠.”

정신 나간 말 같지만 나 역시 공감할 수 있었다. 물론 나도 미래의 나를 생각해본 적은 없지만 그의 말은 좀 의외였다.

“앞으로 몇 년 만 더 살다 멋있게 떠나야겠어요.”

“뭐, 뭐라고?”

내가 잘 못 들었나 재차 물었다.

그 친구의 말을 헛소리로 치부 했지만 한편으로는 충분히 그럴 수 있는 녀석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인지 덜컥 겁이 났다.

그 녀석은 충동적으로 결정한 게 아니었다.

그날 이후 그 녀석은 내게 왜 그래야 하는지 그리고 남은 삶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에 대해 매일 같이 설명했다. 마치 나를 설득 시키는 것 같았다.

하루는 내가 물었다.

“다른 사람한테 말한 적 있어?”

“아니요.”

“야 이 씨. 근데 왜 하필 나한테 말한 거야!”

나라면 충분히 이해해 줄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 했단다.

도대체 뭘 보고 그렇게 생각 한 걸까.


나는 사실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그 녀석을 알아갈수록 근심은 더 쌓여갔다.

그렇다고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일도 아니다.

코가 석자인 게 내 인생이라 다른 사람을 걱정할 입장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 생각을 도저히 떨쳐낼 수 없었다.

“야, 너 부모님을 생각 해봤어?”

“물론이죠. 하지만 부모님도 제가 아무의미 없이 세상을 사는 걸 좋아 하지 않을 거예요.”

“그걸 말이라고 하냐.”

“죽음이 꼭 나쁜 거라고 할 수 없어요. 결국엔 모두 죽게 되어 있잖아요. 근데 왜 제가 죽는 게 나쁜 거죠? 내가 원해서 먼저 간다는데 사람들은 왜 나를 미친놈 취급 하는 건지 이해할 수 없어요.”

그 녀석 때문인지 몇 해 전 우리 동네에서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우리 지역은 주로 농사를 짓고 사는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다. 김포는 쌀이 처음 시작된 곳이기도 하다.

우리 집 주변도 논으로 둘러싸여 있을 정도로 논이 많다. 하지만 점점 공장들의 수가 들어가고 언젠간 공장으로 둘러싸일 것이다.

농사를 짓고 사는 사람들이 사라져 간다는 건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다.

도시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노을이 지는 논에서 허리를 굽혀 일하고 있는 농사꾼들의 모습은 아름다움 그 자체다.

언젠간 그 모습을 볼 수 없다는 것이 슬픈 것이다. 그 모습은 바로 우리 아버지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농사철이 다가오면 심심치 않게 들려오는 소식은 어느 동네 누가 자살 했다는 이야기다.

이유는 모내기를 하려고 키워놓은 벼를 망쳤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별거 아닌 거라고 생각 할지 모르지만 그것이 일 년 농사를 결정하는 중요한 토대가 되기 때문에 농촌에 사는 나는 조금은 이해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특히 농사꾼들은 대게 농약을 먹고 자살한다. 아이러니 하게도 곡식들은 농약을 먹으면 더 잘 자라난다.

병선이 아저씨의 집은 우리 집에서 보면 논 두마지기 거리의 끝에 있다. 그만큼 멀지 않은 곳에 살고 있다.

아저씨는 미소천사다. 언제나 웃는 얼굴로 인사를 받아주신다.

언젠가 내가 외국을 나간다고 했을 때 아저씨는 많은 것을 보고 느끼라며 격려해주셨던 기억이 있다.

아저씨의 부인은 일 년 전 구강암 이라는 듣도 보도 못한 암에 걸렸다. 그래서인지 오고가다 보게 되는 아저씨의 표정은 언젠가부터 좋지 않았다.

더 이상 웃지 않는 아저씨의 모습이 낯설었던 걸까, 나는 아저씨가 멀리서 보이면 가던 길을 돌아 아저씨를 피해 가곤 했다.

정확한 이유를 모르겠지만 아저씨의 웃지 않는 얼굴을 보고 나면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잠시 좋아지기도 했던 아주머니의 병세는 어느 순간 악화되어 병원에서도 포기했다고 했다.


때는 마침 농사철이 다가와 동네에 활기가 띄고 있었다. 봄이 되면 밭에서 종일 살다시피 하시는 섭섭이 아주머니, 그리고 얼굴이 보이지도 않게 큰 모자를 쓰고 돌아다니시는 할머니들, 오토바이에 삽자루를 끼고 달리는 아저씨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볍씨를 뿌려 가꾸는 일이 시작된다. 한 해 농사를 결정짓는 아주 중요한 일이다.

잘 키우면 수확량도 많아진다.

잘 못 키우면 이리저리 벼를 꾸러 다녀야 하는 신세가 되기도 한다. 그나마 남들이 모내기를 하고 남은 벼를 얻으면 다행이다.

그 마저도 안 되면 그 해 농사는 끝이다.

동네를 걷다보면 벼를 키우고 있는 모판들이 보인다. 대부분이 평생 농사를 지어온 전문가들이기 때문에 큰 실패를 하지 않는다.

하루는 해질녘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무작정 걷는데 병선이 아저씨 집이 보였다. 발걸음이 멈칫 했지만 그냥 지나쳤다.


그 아저씨네 집 앞 논에 키워놓은 모판들이 보였는데, 정말 엉망이었다. 좋은 모는 영국 프리미어리그의 경기장처럼 잘 자란 잔디 같고 잘 못된 모는 시골 동네 운동장처럼 듬성듬성 풀만 자란 것 같다. 오랫동안 농사를 지어왔던 사람이 한 거라고는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최악이었다.

얼마나 스트레스가 심했으면 이렇게 모를 키웠는지 이해가 갔다.

그리고 이틀 후, 아저씨가 농약을 마셨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병원으로 급히 실려 갔다고만 했다.

충격적이었다.

내가 아는 사람이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고 했다는 것이 도무지 믿어지지 않았다.


세상에는 믿을 수 없는 일들이 많이 일어난다. 그리고 불행한 일도 행복한 일만큼 일어난다.

하지만 우리는 그러한 사건들이 우리에게 일어날 거라 생각지 않는다.

특히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내가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말이다.

‘자살’ 이라는 단어는 어디서도 쉽게 꺼내기 힘들다. 우리 사회에서는 그만큼 금기시 된다는 것이다.

지구어디에서도 자살을 권장하거나 묵인하는 사회는 없을 것이다.

오롯이 자신에게 주어진 목숨을 스스로 좌지우지 할 수 없다는 것은 과연 정당한 것일까?

우리는 모두 자살이 나쁘다고 만 생각한다. 혐오스럽고 절대 해서는 안 되는 일이다.

물론 내가 자살을 찬성하는 사람은 아니다. 하지만 살아있는 것 자체가 너무 괴로운 사람들에게는 스스로 생을 마감할 수 있게 해주어야 한다는 것에는 어느 정도 공감할 수 있다.

그 외에 사람들에게는 어떨까.

그 사람이 처한 상황을 타인이 그대로 느끼고 공감할 수는 없다.


인간은 저마다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고유의 DNA, 살아온 환경, 나라 적 특성 등에 의해 우주에서 단 하나밖에 없는 존재로 만들어진다.

우주를 이해할 수 없듯, 우리는 자신이 아닌 다른 이의 아픔을 절대로 이해할 수 없다.

그래서 난 아저씨의 행동을 탓할 수는 없었다.

동네사람들은 여기저기서 수군거리며 어머니도 멀쩡히 살아있는데 그런 행동을 한 아저씨를 비난 했다.

사실 자살을 마음먹고 실행에 옮긴 사람들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알고 싶었다.

어느 날 저녁을 먹고 동네를 한 바퀴 돌다가 아저씨네 집을 지나치게 되었다. 다행이도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혹시라도 아저씨를 마주치면 표정을 어떻게 지어야 하는지 무슨 말을 해야 하는지 혼란스러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얼마 못가 멀리서 자전거를 타고 오는 사람이 아저씨임을 눈치 챘다.

그 순간 오만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갔다.

뒤돌아 뛸까? 아니면 고개를 푹 숙이고 모른 척 지나갈까?

아저씨를 보기 무서웠다.


"덕우, 오랜만이네. 잘 있었어?"

아저씨가 먼저 내게 인사를 건네 왔다.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아, 그럼요. 아저씨는 몸 좀 괜찮으세요?"

아저씨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의 침묵이 이어졌다.

"다시 열심히 살아야겠지……."

아저씨는 애써 웃으셨다.

그리고 다시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

이유는 들을 수 없었다. 그 마음을 어찌 헤아릴 수 있으랴.

솔직히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지만 마음은 아저씨를 조금이나마 이해 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삶은 생각보다 더 힘들고 어려운 것이니까.

"그니까 젊을 때 죽어야 한다는 거라고요."

내가 아저씨의 이야기를 들려주자 그 녀석은 기다렸다는 듯이 말했다.

"와, 너 진짜 답이 없구나. 너랑은 완전 다른 이야기잖아."

"삶은 고통이죠?"

"물론이지."

내가 대답했다.

"그 고통을 모두 겪을 필요는 없잖아요. 삶은 꼭 끝내야만 하는 마라톤이 아니에요. 말하자면 이건 포기가 아니란 거죠."

"그럼 뭔데?"

"선택의 문제죠. 생각해 봐요. 내 인생의 시작과 끝을 내가 정할 수 없다는 거. 얼마나 아이러니해요."

이 녀석의 말은 어쩔 때는 엉뚱하다가도 또 듣고 있다 보면 이상하게 설득력이 있다.

우리는 인생에서 수없이 많은 선택의 기로 서있다. 선택은 항상 자신의 몫이다.


삶이 시작되면서부터 선택을 하며 살아간다. 작게는 집을 나서는 것부터 수많은 길 중 하나를 선택해야한다. 또한 옷은 무엇을 입을 지 사소한 문제부터 학교, 친구, 배우자까지 끊임없이 크고 작은 결정을 하며 살아간다.

모든 것은 자신의 선택이고 결과 또한 자신이 책임져야한다.

하지만 죽음만은 자신이 선택할 수 없다.

인생의 모든 시간을 크고 작은 선택을 하며 살아왔는데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어쩌면 그녀석의 말이 맞는지도 모르겠다.

죽음은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마지막 일이다.

"너의 말도 어느 정도 공감해"

"거봐요. 형은 이해 할 줄 알았어요.".

“하지만 그건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한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이야기야.”

“에이, 그건 형이 잘못 생각하는 거예요. 언젠간 분명 형도 나를 이해할 날이 올 거예요.”

어쩌면 나는 이미 그 녀석을 이해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겁이 나는 건 그녀석이 내 눈앞에 있었기 때문이다.

내 눈앞에서 사라지면 그 녀석이 내 앞에서 죽는 그런 악몽은 더 이상 꾸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한국에서 부모님과 함께 살 때는 작은 것부터 큰 것까지 나는 부모님의 모든 일에 간섭했다.

부모님이 건강하게 오래 살았으면 하는 마음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내 눈앞에 있으니 자연스럽게 더 참견하고 간섭했던 게 사실이다.


그 걱정이 멀리 떨어져 살다보니 기껏 몇 주에 한 번 전화 하는 것이 전부다.

내 앞에 일들을 하고 있으면 내 머릿속에서 부모님 걱정은 잠시 잊고 지낸다.

하지만 부모님은 아들 걱정에 잠도 제대로 주무시지도 못 할 텐데 말이다.

요즘 들어 그 녀석 때문에 참 이런저런 관념에 빠진다.

그 녀석에 대한 걱정도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레 줄어들었다.

내 앞에 산적해 있는 문제들의 해답을 찾는 것만도 쉬운 일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호주까지 이어진 연애사업도 꽤 쉬운 건 아니었으니까.


"형 저 이제 갑니다."

"뭐? 죽겠다고?"

내가 놀란 눈으로 묻자 그 녀석은 웃으며 대답했다.

"아니요. 그게 아니라 이제 그만 돌아간다고요."

"아, 한국으로."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에 꼭 가볼 곳이 있어요."

그 녀석은 또다시 엉뚱한 이야기를 꺼냈다.

"지후아타네호가 어디야?"

지후아타네호는 태평양이 가까이보이는 멕시코에 위치한 작은 마을이다.

영화 '쇼생크 탈출'의 마지막 장면이 나왔던 그곳, 지중해, 멕시코 사람들은 그곳을 기억이 멈추는 곳이라고 부른다.

"영화에서 그런 곳이 나왔나? 그런데 거기는 또 왜? 거기서 죽으려고?"

"아마도……."

"진짜?"

"농담이에요. 아직은 아니죠."

"근데 그 먼데를 왜 가겠다는 거야? 멕시코가 얼마나 위험한지 알기나 해?"

심지어 그곳은 인터넷을 뒤적여도 여행정보가 나오지 않는 낯선 곳이었다.

언젠가 멕시코 갱단이 30명을 살해한 후 다리위에 머리만 메달아 놓았다는 것을 뉴스에서 본적이 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 녀석은 제정신이 아닌 게 확실했다.


"듀프레인처럼 그곳에 살겠다는 건 아닌데 그냥 한 번 가고 싶어요. 태평양의 바다가 보고 싶거든요."

나는 현실보다 이상을 꿈꾸는 사람이다. 하지만 그 녀석은 나보다 더 했다.

내가 굳이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그 녀석을 배웅하려고 공항까지 갔다.

"또 만날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그 녀석이 한손에 있던 가방을 내려놓으며 내게 악수를 청했다.

"그래. 그동안 수고했다."

그 말을 하는데 나도 모르게 울컥했다.

친해져서 그가 떠나는 게 아쉬워서가 아니다.

마땅한 이유는 없지만 나는 항상 공항에서의 이별이 슬펐다.

내가 떠나던 누군가를 떠나보내던 헤어짐이 슬픈 건 같았다.

그리고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아무리 말려도 그 녀석은 결국 죽음을 선택할거라는 걸.

"형, 삶의 의미를 찾아요."

"그래, 너도."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 녀석의 손을 놓았다.

그 순간, 그 녀석은 절벽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나는 그 손을 잡지 못했다.

어쩌면 절벽 밑으로 떨어지고 있는 건 나일지도 모른다.

그 녀석의 손을 잡지 못한 건 녀석의 모습에서 내 모습이 비춰 보였기 때문이다.

나는 그 녀석처럼 용기 있는 사람도 아니고 자신만의 믿음과 철학이 뚜렷이 있는 사람도 아니다.

나는 차마 삶의 의미를 찾고자 하는 녀석이 잘못된 거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없었다.


아저씨 그리고 아줌마가 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그렇다. 그들은 아마도 삶의 의미를 자신도 모르게 찾은 성인들이 아닐까.

어느 순간 어머니의 쭈글쭈글 해진 손을 보자 세월이 정말 빠르게 흐르고 있다는 걸 느꼈다. 늙어가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며 엄마에게도 젊은 날이 있었겠지, 하는 생각을 해본다.

엄마에게 젊은 날에 대해 묻자, 그때 어떤 남자들이 엄마를 좋아했었던 자랑을 하셨다.

“그때는 인기가 참 많았었는데......”

조폭 두목도 엄마를 몇 년 동안 쫓아 다녔고 결혼 후 다녔던 과자공장의 과장이 엄마에게 품었던 마음까지.

그때 그 여자는 어디로 갔을까?

이제 막 따온 새싹처럼 풋풋하고 아름다웠으며, 공장 일에 집안일까지 도맡아 자식 둘을 키워내고 당차게 삶을 꾸렸던 젊은 여성은 어디가고 힘없고 세월의 무게를 견디다 못해 주저앉아 버린 가련한 여성만 남아 버린 걸까.

엄마의 삶이 결국 우리의 미래다.

그래서 그녀석이 그런 생각을 했던 건 아닐까.

돌아가는 기차 안에서 창밖을 내다보고 있으니 풍경이 총알같이 지나 사라지고 새로운 풍경이 나타나고 또 사라지고 있었다.

‘저, 풍경들처럼 내 인생도 다를 바 없겠지.’

순식간에 사라지는 것이 인생이라 생각하니 갑자기 서글퍼졌다.

당연히 알고 있는 사실이고 반드시 겪어야만 하는 것들이 새삼 슬프게 다가왔다.


나는 정말 나이든 나를 만날 수 있을까?

아니면 내가 나이든 나를 보고 싶지 않은 것일 수도 있다.

미래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내안에 있을지도 모른다.

오랫동안 궁금했지만 마주하지 않으려 했던 문제를 그 녀석이 수면위로 끌어올렸다.

내 청춘은 어디로 흘러가는 것일까?

기차 밖 세상은 여전히 고요하고 평화롭게 사라져 갔다. 내 청춘도 아무도 모르게 사라져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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