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그곳에 사랑이 있다
그곳에 사랑이 있다
60일째 되는 날 안과에 들려야 하기에 잠시 나갔다 왔다. 그리고 다시 방콕이다.
그렇게 잠깐씩 외출은 했지만 1년이란 시간동안 나는 집안에서만 생활했다.
그러다 보니 남은 친구도 갈 곳도 없었다.
처음에는 답답함도 있었고 가슴이 두근거리며 폭발할 것도 같았지만 어느새 그 삶이 나의 삶이 되어버렸다.
내 삶은 그때부터 몇 년간 그렇게 아무것도 아니었다.
밥 먹고, 씻고, 자는 것뿐 이었다.
마치 망망대해를 표류하는 것처럼 아침에 일어나면 매일 같은 하루가 반복되곤 했다.
그 모든 것은 사랑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그녀가 나를 떠났을 때 나는 아무것도 없는 바다 한 가운데 홀로 남겨져 버렸다.
그녀와의 만남은 벌써 오래전 일이 되어버렸지만 나는 사랑 혹은 기억의 굴레에서 이제 막 벗어나는 중이다.
그녀가 내게 ‘오빠는 말이 별로 없네요.’ 라고 처음 말을 건넸던 그 날을 기억한다.
그 말을 시작으로 우리의 이야기는 세부에서부터 호주 브리즈번으로 이어졌다.
한 여자를 보기위해 12,000km 이상의 거리를 무작정 떠난 다는 건 정말 쉽지 않은 일이지만 그때 나는 그것이 가능했다. 아마도 그때는 지금보다 젊었고 가슴은 이미 불타오르고 있었기 때문일 거다.
하물며 그 당시 우리는 이미 헤어진 상태였기 때문에 모든 것이 불확실 했음에도 나는 그녀를 꼭 만나야 했다.
여차하면 13시간을 날아 도착한 곳에서 다시 돌아와야 할지도 몰랐다.
그녀가 나를 받아주지 않는다면 나는 그곳에 있을 이유가 없었으니까.
호주 브리즈번에 도착했다.
예상대로 그녀는 이미 마음을 정리한 상태였다. 나는 어떻게든 그녀의 마음을 돌려보려고 했지만 실패하고 한국으로 돌아오려고 결심했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 그녀가 마음을 바꿨고 나는 빅토리아 브릿지 야경이 눈앞에 보이는 곳에서 그녀의 마음을 다시 얻었다.
우리는 다른 이들처럼 연애를 했다. 하지만 내게는 모든 것이 특별했다.
그제서야 나는 알 것 같았다. 내가 바라본 타인의 오글거리는 연애를 내가 하고 있다는 것을.
세상 속 평범한 모든 것들이 자신에게 다가왔을 때 특별해 지는 것이다.
낯선 땅에서의 로맨스는 마치 할리우드의 로맨틱 영화처럼 아름답고 눈부셨다.
눈이부시도록 따뜻하고 파란 하늘아래 알록달록 집들이 들어서 있던 언덕 아래로 그녀를 업고 뛰어갔던 장면을... 내가 멀리서 보고 있다고 상상해본다.
완벽한 로맨틱 영화의 한 장면으로 손색이 없다.
하지만 로맨틱 영화의 엔딩은 둘 중 하나다. happy ever after 아니면 sad ending 이다.
물론 이별조차 아름다운 사랑은 있다.
나는 멀지 않은 시간에 우리의 영화가 어떤 식으로든 끝날 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마침내 그녀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서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이기를 간절히 원했다.
하지만 우리의 엔딩은 완성되지 못한 이별이었다.
새벽녘 공항에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오빠 오래 기다리게 안할게.”
입국장으로 들어가기 전 그녀가 내게 말했다.
나는 눈물이 터져 나올 것 같아 차마 말을 하지 못했다.
그녀는 늘 이성적인 사람이었고 나는 감성적이었다.
우리가 다투었던 이유 중 대부분이 그런 것에서부터 오는 차이 때문이었다. 그녀는 내가 지나치게 감성적이라 힘들다고 말하곤 했다.
그녀는 내 앞에서 단 한 번도 눈물을 보인 적이 없다. 한국으로 떠나기 전날 밤 언제나 그렇듯 한적하고 조용한 브리즈번 강가를 천천히 걸으며 내가 말했다.
“세부에서 기억나? 한 여름 밤에 크리스마스 그리고 새해를 맞이했던 그날 밤의 기억.”
내 인생에서 크리스마스에 춥지 않았던 적은 딱 한 번 있었는데 바로 그녀와 세부에서 함께 했던 그 날이다.
우리는 거리에 앉아 시원한 캔 맥주를 나눠 마셨다.
늘 후덥지근한 세부였지만 2008년 크리스마스 밤은 너무나도 시원한 바람이 불었다.
그녀의 머리카락이 바람에 휘날렸고 그때 나는 다른 차원의 세계로 빠져 들었던 것 같다.
그리고 2008년의 마지막 밤 우리는 세부에서 가장 높은 곳에 올라 도시를 내려다 봤다.
12시의 종이 울리자 도시 이곳저곳에서 폭죽들이 터졌다.
개개인이 쏘아 올리는 작은 폭죽부터 큰 폭죽까지, 모든 것이 동시에 터지며 큰 장관을 연출했다.
세상 그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순간이었다.
우리 눈앞에 그 순간이 정지한 듯 계속 남았다.
나는 어떻게든 사진에 담고 싶었지만 밤이라 그런지 수동식 카메라는 너무 흔들려 도저히 찍을 수 가 없었다.
안타까워 발을 동동 구리고 있는 나를 본 그녀가 내게서 카메라를 조심스레 뺏었다.
“오빠, 이건 우리 가슴속에 간직하자. 아무도 모르게…….”
그녀도 기억하고 있었다.
잊기에는 너무 황홀한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녀에게 그동안 함들 게 싸웠던 것들에 대해 사과 했다. 마음은 늘 그렇지 않았는데 감정이 앞서다 보니 그녀를 힘들게 했다.
그 말을 하는데 또다시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나는 그녀 앞에서 참 자주 우는 남자였다.
그녀의 눈은 벌겋게 충혈 됐지만 끝내 눈물을 보이지 않았다.
독하다. 그때 알았어야 했다.
다시 호주,
그녀가 떠나고 나는 기다렸지만 한국으로 돌아간 그녀는 결국 돌아오지 않았다.
더욱이 힘들었던 것은 그녀가 아무런 이유조차 말하지 않고 연락을 끊어버렸기 때문이다.
나는 이유라도 듣고 싶었고 급하게 한국으로 돌아와 그녀를 찾으려고 했다.
어렴풋이 기억한 그녀의 집주소로 향하며 문자를 남겼다. 그동안 내 전화와 문자에 답하지 않았던 그녀는 내게 문자 한통을 보냈고 나는 돌아서야 했다.
'제발 좀 꺼지라고!'
내가 무얼 그리 잘못했던가. 단지 원했던 것은 속 시원한 대답이었을 뿐.
그랬으면 멋지게 돌아섰을 텐데…….
새드무비의 마지막 엔딩처럼 웃으며 보내줄 수 있었을 텐데…….
그녀는 대체 왜 그랬던 걸까?
해피엔딩도 아니고 새드엔딩도 아니었다.
뭐, 이따위 이별이 있지?
나는 아직도 그것이 궁금하다.
스티브호킹 박사는 세상에서 가장 이해할 수 없는 미스터리한 존재는 여자라고 말했다.
그래 좋다 이거다. 내가 싫어서 떠나간다는데 이유가 없을 수도 있지 않은가.
하지만, 하지만 왜! 도대체 왜? 잠시나마 함께 했던 사람에게 단 한 줄의 인사도 없이 떠나야만 한 거지?
그녀와 마지막으로 연락한 것은 그녀가 자신의 짐을 한국으로 보내달라고 부탁했을 때다. 아주 부드러운 말투로.
내가 정말 호구 잡혔던 걸까? 젠장!
누군가 자신을 배신했다고 국민에게 선거에서 심판해 달라고 부탁하는 국가 지도자가 요즘 이슈다.
그럼 사랑의 배신자는 누구에게 심판해달라고 해야 하지.
사랑에 빠진 사람은 세상을 차단하고 다른 세계에 빠진다.
제3자의 입장에서 보면 여간 한심해 보이는 게 아니다. 특히나 배려 없는 상대를 만나면 온갖 바보 같은 짓은 다한다.
그런 친구에게 아무리 충고를 해봐도 결국 나만 나쁜 놈이 된다.
내가 비난했던 친구 녀석이 지금의 나를 보았다면 ‘거봐 너라고 별수 있겠니.’ 라고 콧방귀를 뀌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녀가 무슨 사정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럴 사람이 아닌데…….그럴 리 없다고 굳게 믿었다.
그때는 그렇게 생각했다.
시간이 한 참 지나고 나서 돌이켜 보면 내가 참 바보 같았음을 느낀다.
예전 광고 카피처럼 사랑은 움직이는 것이기 때문에 이해할 수 있다. 누군가를 열렬히 사랑하다가 다른 사람에게 옮겨갈 수 있는 게 사랑이다.
아이를 낳고 오랜 시간을 함께 했다고 그 사랑을 100% 완성 했다고 말할 수 없다.
사랑은 영원히 미완성이고 불완전한 존재일 뿐이다.
사실 내가 믿었던 것은 불완전한 사랑보다는 인간에 대한 믿음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녀와 내가 함께한 영화 같은 장면들은 절대로 잊혀 지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사랑은 떠나가도 그 장면들은 기억 속에 남는다. 특별한 장소에서 함께한 사람들에게는 동질감 비슷한 감정이 있게 된다.
하지만 그녀는 사랑도 그리고 시간을 함께 나누었던 존재조차 부정했다.
그 사실을 나는 믿을 수 없었던 것이고 치유될 수 없는 상처를 입었다.
7년이 지난 지금, 그녀에 대한 사랑은 남아있지 않기 때문에 사랑에서 오는 아픔은 사라졌다.
하지만 인간에게 당한 배신감과 상처는 아직 진행형이다.
어쩌면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녀를 비난 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어디까지 일방적인 나의 기억이고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그녀에게 그 순간은 영화처럼 달콤하고 아름답지 않았었을 수 도 있으니까 말이다.
사랑은 늘 일방적인 기억만을 남긴다.
그 순간은 늘 내 기억 속에 그리움이란 이름으로 기억된다.
그때가 너무 그립다.
파란 하늘을 봐도 그립고, 강가에 비친 불빛들만 봐도 그립다.
하늘에 떠있는 별빛이 가끔 보이면 타임머신을 타고 싶을 만큼 그 순간이 그립다.
파란 하늘에 떠가는 작은 비행기를 볼 때면 더더욱 그리워진다.
테라스에 앉아 비행기가 떠가는 하늘을 보고 있었다. 그녀가 내 입속에 아이스크림을 넣어주었다.
아이스크림은 순식간에 녹아버렸고 달콤한 느낌만이 입속을 맴돌았다. 그 순간 눈에서 눈물이 핑 돌았다.
모순적이게도 이 세상에서 가장 강렬한 달콤함을 느끼고 그 어떤 것보다 아름다운 하늘을 보고 있는 완벽한 순간인데 눈에서는 눈물이 주르륵 흘러 내렸다.
눈부시게 파랗던 하늘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지독하게도 달콤한 아이스크림 때문이었을까.
그것도 아니라면 내일이면 떠나는 그녀를 영원히 보지 못할 거라는 두려움 때문이었을까.
그건 아마도 그때의 내가 나 자신조차 모르게 느끼고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슬프면서 달콤한 바로 그 순간이 영원히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영원히 돌아오지 않는 것에 대한 그리움이 눈치 없게도 먼저 찾아왔었던 거다.
순간은 영원 속에 사라진다. 우리의 순간들은 무한한 영원 속에 빠져 깊은 잠을 청한다.
호주의 하늘은 왜 그리도 매번 아름다웠는지 모르겠다. 남의 속도 모른채 말이다.
사랑이 시작되고 사랑에 중독되고 사랑에 아파하는 나이를 우리는 청춘이라 부른다.
사랑을 통해서 자신을 처음 만나게 된다.
내가 처음 나를 만났던 것은 두려움과 부푼 기대를 안고 유럽여행을 준비 했던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금으로부터 딱 10년 전 이야기다.
배낭여행정보 카페에는 동행자를 구하는 글들이 많이 올라온다. 루트가 맞으면 같이 여행 하자는 것이다.
나는 여행이 처음이었고 정보도 공유할 겸 동행자를 구한다는 글을 올렸다.
두 명의 여자가 연락이 왔는데 (왜 모두 여자였는지 모르겠다. 이때만 해도 여복이 있었나보다) 두 명다 내가 생각하는 루트와는 조금 달랐다.
나의 루트와 완전 반대인 한 명은 결국 포기했다. 내게 콘서트까지 보여주며 루트를 맞춰보자고 했지만 나는 거절했다.
거절한 이유는 다른 한명의 옵션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 역시 루트를 맞춰 보자고 했고 심지어 내 루트에 맞추겠다며 적극적으로 다가왔다.
그건 아마도 내가 잘생겨서 일 것이다.
워워, 진정하시길 바란다. 농담이고 사실 두 명다 낯선 여행이 두려웠던 거였다.
그래서 낯선 남자였지만 조금이나마 친해진 내게 기대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여자들이 흔하게 하는 실수가 남자의 말과 친절한 행동에 넘어가 쉽게 마음을 내려놓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요즘은 사고도 많이 일어난다.
콘서트 까지 함께 본 첫 번째 여자와 달리 두 번째 친구와는 급속히 친해졌다.
나는 김포에 살았고 그 친구는 서울에 살아 꽤 거리가 있었음에도 자주 만나 배낭여행을 준비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우리는 알 수 있었다. 나도 그녀를, 그녀도 나를 좋아하고 있다는 사실을.
하지만 나는 그리 용기 있는 놈이 아니다. 특히나 사랑, 여자 앞에서는 더 하다.
100% 확신이 서지 않는 한 절대 내 마음을 말하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그런 내게 길을 제시해 주었고 나는 그 길을 따라 자연스럽게 고백할 수 있었다.
우리는 연인이 되었고 사랑에 빠졌다.
내가 여자를 정식으로 사귄 두 번째였다. 첫 번째는 평택에 사는 여자였는데 거리도 멀었고 서로에 대한 감정도 깊지 않았기에 자연스레 멀어졌다.
그 후에도 요즘 말로 썸타는 여자는 제법 있었는데 나의 소극적인 성격 탓에 누구와도 정식으로 사귀지는 않았다.
그녀와 만나고 손을 잡고, 함께 영화를 보고, 밥을 먹고, 입을 맞추고, 함께 하는 모든 것들이 마치 처음 배우는 언어처럼 낯설었다. 남들이 보기에는 지극히 평범한 것들 일지라도 내 안에서 느껴지는 감정들은 완전 새로운 것이었다.
그 감정은 그 어떤 것으로도 설명이 되지 않는다.
말로도, 글로도, 행동, 그 어떤 최신 컴퓨터로도 그 감정을 설명해 낼 수 없다.
방법은 하나, 직접 겪어 보는 것이다.
그게 사랑이었다면 그때 나는 아마도 첫 걸음마를 띈 아기였을 것이다.
일어섰다고 잘 걸을 수 있는 건 아니다. 수없이 넘어지고 넘어져야 비로소 잘 걷게 되는 것이다.
여행을 계획하고 공부한다는 것은 실제로 여행하는 것 못지않게 설레고 흥분되는 일이다.
그것역시 여행의 일부분이라고 많은 여행자들은 말한다. 이미 여행이 시작된 거라고들 한다.
특히나 우리는 같은 공통분모를 가지고 시작된 관계였기에 그 시간이 즐겁고 행복했다.
우리는 겨울에 만나 봄을 함께 지냈고 여름이 시작될 즈음 유럽으로 떠났다.
연인이 함께 간다면 반드시 헤어지게 된다는 유럽 배낭여행, 우리는 믿고 싶지 않았다.
사실 헤어진 수많은 연인들도 우리와 같은 마음 이었을 것이다.
우리는 절대 아닐 거야.
사람이 어떤 것에 깊이 빠져 있을 때는 객관적인 판단을 할 수 없다. 늘 미숙하고 잘못된 결정을 하곤 한다. 하지만 늘 우리는 그런 미숙한 판단을 하며 살아간다.
그 어디에도, 그 누구도 컴퓨터처럼 정확한 판단과 결정을 하며 살아가지 않는다.
인생 첫 비행의 감흥을 느낄 세도 없이 우리는 싸우기 시작했다.
서로를 배려하고 이해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이기적인 모습이 나타났다.
“오빠가 챙기기로 한거는 챙겨와야지. 지금 여기서 갑자기 안 가져왔다고 하면 나보고 어쩌라는 거야.”
“누가 너보고 어쩌래. 누구는 가져오기 싫어서 안 가져온 거야.”
물론 처음에는 무조건 내 잘못이다. 라고 했지만 그녀는 계속해서 투덜거렸다.
잠시 멈췄다가 다시 시작하고 또 다시 꺼내고. 또 침묵이 이어지면 불안해서 견딜 수 가 없었다.
처음에는 고개를 들지 못할 정도로 미안했지만 나중에는 화가 나기 시작했다.
내가 집에 두고 온 것은 환전 해놓은 돈이었다.
알고 있다. 혼날만 하다.
많이 설렜고 혹시나 잊은 거 없나 하는 마음에 출국 전날 한 숨도 자지 못했다. 누웠다가 깨서 짐을 다시 재정리 하고, 또 누웠다가 다시 일어나기를 반복하다보니 이미 새벽의 푸르스름한 하늘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대체 내가 정리해준 목록은 어디다 버린 거야?”
그녀가 예쁜 글씨로 순서를 매기며 적어주었지만 중간쯤 가서 다른 것이 들어가고 나오고 하나 보니 뒤죽박죽이 되어버린 것이다.
물로 제일 중요한 것을 빠뜨린 잘못은 크다.
항상 순종적이고 이해심 많은 그녀가 계속 그러는 모습이 낯설었다.
그래서 우리의 싸움은 공항에서부터 비행기자리에 앉을 때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옆에 앉은 젊은 여자도 못마땅한지 고개를 휙 돌려 창문 밖만 내다 봤다.
12시간이 걸리는 비행시간 내내 우리는 싸웠다. 잠도 자지 않고 다른 사람들이 잘 때는 소곤거리는 작은 목소리로 싸웠다.
여행이 시작되기도 전에 우리는 이미 지쳐 버린 상태였다.
딩동 하는 소리와 함께 비행기 내부의 불이 켜지고 승무원들은 옷을 갈아입고 착륙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나는 어떻게 12시간을 날아왔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우리 옆자리의 여자는 ‘니들이 제정신이야?’ 하는 표정을 지으며 나를 노려봤다.
런던 히드로 공항에 도착 했고 적절한 선에서 평화를 선택 했다. 서로 너무나 지쳐 있었기에 더 이상은 싸우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낯선 공간에 떨어진 것도 불안한데 남북 관계처럼 변해버린 우리가 흔들리고 있었다.
차라리 진작 많이 싸워 두었더라면 조금 더 편안하지 않았을까.
로맨틱한 시간이 될 거라고 믿었던 내 상상은 산산 조각 났다.
힘들게 짐을 끌고 들어간 게스트 하우스는 세계에서 온 젊은이들로 북적거렸다.
지금이야 ‘와우! 다양한 사람들하고 교류할 수 있어서 땡큐지!’ 할 수 있지만 그때는 그러지 못했다.
언제나 처음이란 건 낯설고, 무섭고, 두려운 것이다.
비행 내내 싸우고 큰 캐리어를 가지고 좁은 지하철을 헤매며 오다보니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만 같았는데 웬걸, 도미토리 방에는 시끌벅적하게 떠드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여행도 해봤고 영어도 가능한 그녀는 자연스레 행동했는데 여행 완전 초보인 나는 쭈뼛거리며 서있었다.
그녀가 먼저 비어있는 침대로 자리를 잡았다. 내게는 눈빛조차 주지 않았다.
그런 내 모습이 이상했는지 사람들이 나를 보더니 반갑지 않게 ‘Hi' .
왜 거기서 서성 거리냐, 이 말이겠지.
사실, 나 혼자였다면 이곳을 찾아오지도 못했을 것이다. 나는 잔뜩 화난 엄마를 쫓아가는 일곱 살 아이처럼 졸졸졸 그녀만을 쫓아왔다.
처절히 무너지는 자존심……. 그리고 한편으로는 그녀가 나를 두고 간다면 나는 어떻게 될까? 하는 걱정에 한 없이 작아지는 모습까지도.
그녀는 내게 눈길도 주지 않았지만 나는 살고자 하는 마음이었다.
내가 너무 바보 같이 느껴졌지만 낯선 이곳에서 그녀마저 없다는 상상은 생각하기도 싫었다.
그때 당시 스물다섯의 남자는 그랬다.
그 날 저녁 나는 침대에 완전히 쓰러져 버렸다. 긴장과 낯선 곳에서 오는 스트레스로 어지러울 지경이었다.
“오빠 나가서 저녁 먹고 야경 보러 가자.”
그녀가 한층 부드러워진 목소리로 내게 말했지만 나는 도저히 몸을 일으킬 수 없었다.
“그냥 오늘은 자면 안 될까? 너무 피곤하고…….”
“오늘 아니면 런던 야경 볼 시간도 없을 거야.”
그랬다. 우리 스케줄에는 오늘 저녁에 런던 브릿지의 야경을 보는 것으로 예정되어 있었다.
나는 모든 게 싫고 귀찮아 졌다. 그냥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내가 여기 왜 왔을까.’ 하는 후회가 강하게 밀려들었다.
그동안 계획 하고 공부했던 모든 것들이 한 방에 무너져 버렸다.
이래서 책과 현실은 다른 것이다.
결국 그녀 혼자 나갔다.
밤에 여자 혼자 내보낸다는 것은 남자친구로서 매너가 아니지만 일단 내 멘탈이 와르르 무너져 버린 상태였기에 다른 것은 생각할 여력이 없었다.
너무 피곤하고 스트레스가 심하다보니 오히려 잠은 오지 않았다.
앞으로 석 달을 어떻게 버틸지 막막했다.
그녀의 비위를 거스르지 말고 잘 따라다녀야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괴로운 것은 변하지 않았다.
새우처럼 누워 움직이지 않고 있다 보니 몸이 스르르 땅속으로 파고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나는 잠이 들어버렸다.
첫날은 그렇게 가고 다음날부터 우리는 영국을 여행하기 시작했다.
우리의 간극은 좀처럼 좁혀지지 않았다.
우리가 너무도 다른 사람들이란 것을 처음 알게 되는 순간이었다.
그래도 나는 그녀를 졸졸 잘 따라다녔다.
각종 기차, 숙박, 복잡한 예약과 스케줄을 그녀가 관리했고 기본적인 길 물어보기까지 모든 것을 그녀가 했다. 나는 그저 그림자일 뿐이었다.
모든 것은 내가 할 수 없는 것들 이었고. 나는 자괴감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남자, 오빠, 그리고 남자친구는 없고 그저 다 큰 바보 하나뿐이었다.
마침내 올 것이 오고 말았다.
프랑스로 떠나 기 전날 밤 그녀는 나와 진지하게 이야기 하고 싶다고 했다.
순간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고 짧은 시간동안 오만 가지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가로등 하나, 벤치 하나뿐인 인적 드문 공원 벤치에 앉았다.
그녀가 이야기 하는 동안 나는 힘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그녀와의 대화를 다 끝낸 후 침대에 누워 생각했다.
일단 최악은 면했다. 하지만 최악에 가깝다.
그녀가 그만 헤어지자고 할까봐 노심초사 했지만 그건 아니었다.
하지만 내게는 헤어짐과 견줄 만한 일이었다.
“오빠, 우리가 연인으로는 잘 맞지만 여행 동반자로는 아직 잘 맞지 않는 다는 거 알고 있지? 그래서 말인데 우리 따로 여행 하자.”
무사 만루 위기에서 3번 타자를 삼진으로 돌려세웠지만 더 강한 4번 타자가 기다리고 있는 느낌이었다.
‘제길!’
“우리가 혼자서 준비 하면서 자기가 생각했던 여행도 있었잖아. 오빠가 가보고 싶거나 혼자 여행하면서 느끼고 싶었던 것들도 있었을 테고…….”
'느끼긴 뭘 느껴!'
그때부터 나는 그녀의 말을 듣지 않았다.
그래 결론은 여기서 갈라서자, 하지만 연인으로써 헤어짐은 아니다. 그 말. 바로 그 말!
문제는 내가 홀로 독립해서 여행할 능력이 안 된다는 거였다.
하지만 ‘나 혼자 못할 거 같아. 아무것도 못해. 말도 못하고, 예약도 못하고, 기차도 혼자 못 탈거 같아.’ 라고 어떻게 말할 수 있단 말인가.
생각하면 우습고 한심하지만 그때 그 순간 나는 이런 생각 까지 해봤다.
‘대사관으로 가서 한국으로 보내달라고 할까?’
생각만 해도, 지금 이 순간에도 얼굴이 화끈거린다. 다 큰 25살 남자가 너무 바보 같지 않은가?
하지만 당시 나는 도움 청할 수 없는 곳에서 홀로 된다는 게 너무도 겁났을 뿐이다.
그녀는 정말 내가 잘할 수 있을 거라고 봤나보다. 인간은 늘 먼저 자신의 입장에서 생각하니까.
어쨌거나 그날 밤 나는 걱정으로 한 숨도 자지 못했다.
시간은 가고 우리는 프랑스에서 헤어지기로 했다. 시간이 갈수록 초조해졌고 그녀에게 손이 발이 되도록 빌며 나를 버리지 말라고 애원하고 싶었지만 그것은 죽는 것만도 못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 포기했다.
“오빠 여행 잘하고 부다페스트에서 만나자. 잘 올 수 있지?”
"응, 그럼."
근데 그녀가 울기 시작했다.
나는 걱정되는 앞날에 슬플 겨를이 없었는데 그녀의 눈물을 보자 갑자기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사실 이별의 공허한 마음이 처음 싹텄던 건 이때부터가 아니었나 싶다.
같은 공간에서 현재의 시간을 나누던 사람이 이제부터 사라진다는 기분이 여간 이상한 게 아니었다.
마치 다른 시공간으로 사라져버리는 느낌이랄까.
그때서야 그녀가 나의 애인으로 보였다. 지금 까지는 나를 어디론가 데려가주는 가이드 느낌 이었다면 말이다.
나는 그녀를 꼭 안아줬다.
“항상 조심해. 돈은 잘 넣었어? 여권은…….”
누가 누굴 걱정하는 건지.
초췌한 얼굴위로 흘러내리는 그녀의 눈물. 그 모습에 미치도록 가슴이 아팠다.
내 여자 하나 지켜주지 못 한 남자가 남자인가.
내가 너무 부족해서 이런 일을 만든 것 같아 마음이 좋지 않았다.
나는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혼자가 되었다.
내가 그녀와의 약속 장소로 갈 수 있을까.
물론 당장 눈앞의 일들도 문제지만 한국으로 돌아간다고 해도 그녀와 만남을 지속 할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그녀는 내게 이미 많은 실망을 했을 테니까 말이다.
남자로써 목에 칼이 들어와도 보이지 말아야 할 것들을 보였으니까.
유럽여행을 준비하면서 몇 권의 여행가이드 서적과 다른 선배 여행자들의 여행기를 섭렵했기에 이론은 빠삭하게 알고 있었다.
단지 대범하지 못한 성격과 누군가에게 기대였다가 반강제적으로 튕겨져 나왔으니 그저 멍했다.
나는 멍하니 아무런 목적의식 없이 그저 길을 걸었다.
너무도 낯선 길을 그리고 쇼윈도에 비친 나조차도 낯선 이가.
인간은 적응하는 동물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긴장감을 내려두고 현재의 상황에 집중 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순간순간 패닉에 빠질 위기도 있었다. 한국 사람의 모습이 보일 때면 나 좀 도와 달라며 바짓가랑이라도 붙잡고 애원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 당시의 나의모습은 사실 영원한 비밀로 묻고 살아가고 싶지만 혹시라도 나와 같은 사람이 있다면 용기를 주고 싶은 마음이다.
무너지지만 않는다면, 마지막 안간힘을 다해 서있기라도 한다면 인간은 결국 적응하게 된다.
초등학생도 하는 배낭여행가지고 너무 오바스럽다고 생각할 지도 모르지만 그때 나는 우주 탐험처럼 신비하면서도 막연한 두려움에 사로 잡혀 있었다.
누구에게나 처음은 그런 법이다. 처음은 늘 기억에 남는다. 그래서 더 잊기 힘든 게 첫사랑의 기억인 것이다.
나의 첫사랑은 초등학교 시절 여학생이다.
사랑에 대해 알기에는 너무 어린 시절이었지만 그녀의 모습이 어렴풋이 기억에 남아있다.
얼굴도, 이름도, 아무것도 기억나는 게 없다.
초등학교 시절 잠깐 본적이 있었고 얼마 있다가 전학을 가버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졸업앨범에도 없다.
단지 기억 속에는 그녀가 학교 가는 큰길 바로 옆집에 살았던 것만 남아 있다.
지금은 그 집이 사라져 버렸지만 아직도 그 길을 지날 때면 그녀가 생각난다.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데 내 기억 속에 남아있는 그녀의 모습은 무엇일까.
마치 아무것도 떠있지 않은 바다를 바라보는 느낌이랄까.
하지만 그리운 것.
보이지 않아도 그리운 무언가가 내안에 있다.
신기하게도 나는 점점 적응하기 시작 했고 마음도 편안해졌다. 물론 많은 삽질을 했지만 그 정도는 애교로 봐줄 수 있었다.
그래서 더 이상 그녀가 보고 싶지 않았냐고? 아니, 더 그리워 졌다.
걱정도 되었고 사랑도 깊어졌다.
우리에게 많은 일들이 있었고 회복하지 못할 남자의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지만 그것이 사랑을 막지는 못한다.
루브르 박물관 앞 광장에 앉아서 사람들을 구경하고 있었다.
해가 조금씩 저물어 가고 있었고 사람들은 옆에 있는 사람과 웃음기 가득한 얼굴로 이야기를 나누고 키스를 하기도 했다.
한 커플의 모습이 보였다. 여자가 남자무릎위에 올라 앉아 키스를 하고 있었는데 내가 자리를 뜨기 전까지도 그들은 사랑의 표현을 멈추지 않았다.
내가 지켜본 시간만 해도 두 시간이 넘었다면 믿을 수 있을까.
처음 보는 외국인들의 화끈한 사랑표현에 놀라기도 했고 부럽기도 했다.
서울에서 그녀와 손을 잡고 다니면서 왜 그리도 다른 이들의 시선을 의식했는지 모르겠다.
내 안의 보이지 않는 나와 보이는 나의 모습이 같았으면 한다. 나도 이들처럼 자유롭다면 좋겠다.
그녀를 만나기로 한 날까지 일주일가량이 남은 시점에서 나는 독일의 하이델베르크로 들어갔다.
철학자의 길을 걸었다. 수많은 철학자들이 이 길을 걸으며 단상에 빠졌을 상상을 해본다.
그 순간과 내 모습이 그들과 겹쳐진다.
'같은 삶을 되풀이 하지 마세요.
이제 당신의 생각으로, 당신의 느낌으로 살아가세요.
오늘과 내일이 같다면 행복하지 못할 테니까요.'
칸트의 말처럼 내가 처음 유럽여행을 계획 했던 그 마음을 떠올려 본다.
해는 왜 이리도 빨리 지는지 혼자 걷다보면 이미 해가 떨어져 있다.
하이델베르크 성위로 떨어지는 노을이 세상을 천상으로 만든다.
또다시 나는 돌아서고 언제나처럼 조금 헤맨 뒤 트램을 잡아탔다.
숙소로 가는 방향이 맞는지는 모른다. 다음정거장이 나오면 확인 하면 된다.
그것이 나의 방식이 되어버렸다. 더 힘들고 잘 못 타면 몇 시간씩 시간을 허비하기도 하지만 나에게는 그것이 최선이었다.
다행이도 맞는 거 같았다.
여유를 되찾은 뒤 가만 보니 멀찌감치 앞에 동양인으로 보이는 여자가 있었다.
그리 낯설지 않았다.
조금씩 앞으로 가 뒷모습을 확인한 순간 놀라 심장이 저 밑으로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그녀였다!
이 말도 안 되는 영화 같은 만남!
이 넓은 유럽 땅에서 약속한 장소도 아닌 곳에서 다시 만나다니, 그녀와 나는 인연은 인연인가 보다.
많은 여행을 한 지금 돌이켜 보면 여행 중에는 만났던 사람들을 다시 만나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그때 만남을 우연의 일치로 믿고 싶지 않다.
내가 그녀의 어깨를 살짝 툭툭 치자 그녀가 무표정한 얼굴로 돌아봤다.
그녀가 날 보더니 화들짝 놀랐다.
"오빠!"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말도 안 돼!"
"어, 지금 내려야해. 오빠도 여기 맞지?"
같은 숙소였다. 물론 숙소는 워낙 유명한 곳이었기 때문이고 그녀가 정리한 자료에서 숙소는 이곳이었다.
트램에서 내리자 그녀가 나를 힘껏 안았다. 우리는 꽤 오랜 시간을 그렇게 있었다.
그날 우리는 밤새 이야기꽃을 피웠다.
영국에서 헤어졌을 때와는 완벽히 다른 느낌으로 서로에 대한 감정들을 솔직하게 다 보여줬다.
루브르 박물관 앞에서 본 외국 커플처럼 우리는 자신의 감정에 솔직해졌다.
몇 주 만에 우리는 변했다. 아니, 어쩌면 변한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서 잠자고 있던 다른 면을 끄집어 낸 걸지도 모른다.
그녀와 나 사이에 보이지 않는 벽이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그 벽이 허물어 진 것 이다.
밤이 깊어가도록 우리는 맑은 별빛 아래 앉아 사랑스런 눈빛으로 서로를 응시했다.
깊은 밤하늘에서 별똥별 하나가 어딘가로 떨어져 나갔다.
그리고 잠시 후, 별들이 우수수 하고 떨어지고 있었다.
지금 내게는 그 순간이 현실적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마치 내가 만들어 낸 환상 같다.
영화라면 딱 여기서 끝내면 아름다운 엔딩으로 끝날 것이다.
지극히도 현실적인 것은 유럽 여행 후 우리였다.
우리는 커플에게 그렇게 위험하다는 유럽여행을 무사히 다녀왔지만 일 년 후 헤어졌다.
로맨틱 영화라면 ‘별똥별이 우수수 하고 떨어지고 서로의 눈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고 끝이 나겠지만 우리의 끝은 그다지 좋지 못했다.
그녀는 다른 이에게 떠났다. 나 때문에 힘들어서 떠난다는 잔인한 말을 남기고 말이다.
그것이 우리의 마지막 이었다.
내 인생 처음으로 누군가를 보내고 울었던 날이다.
그것도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었다. 왜 내가 이 여자 때문에 슬픈 거지? 하지만 슬펐다.
가슴이 저리게 아팠다. 정확한 이유도 모른 채.
오랜 시간이 흐른 뒤 내가 아팠던 이유를 조금이나마 알 것 같다.
그렇게 내게 많은 것들의 ‘첫 경험’ 을 선물해준 그녀와의 시간은 끝났다.
슬픔의 시간도 지나고 아픔의 시간도 끝나고 서로 알지 못했던 시간으로 되돌아간 것이다.
우리가 알던 모든 것들도 더 이상 우리를 기억하지 못한다. 아무것도 남아 있는 건 없다.
적어도 내게는 그 사실상 첫 번째 사랑이 그랬다.
누구에게나 사랑은 있었을 테고 사랑이 있었다면 헤어짐도 자연스레 따라오기 마련이다.
문제는 이 자연스러운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에 있다.
하지만 그게 사랑이다. 헤어짐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는 없다.
첫 번째 사랑은 이유도 모른 채 아파야만 했고 두 번째 사랑은 너무나 잘 알고 있기에 헤어짐이 다가오기 전부터 아팠던 거 같다.
그리고 마지막 사랑의 아픔은 현재까지 진행중이고 너무나 슬픈 이야기다. 모든 것이 슬프고 처참하게 막을 내렸다.
그리고 내게는 아픈 기억이 되어버렸다.
왜 그리도 오랫동안 지나가버린 과거의 기억 때문에 아프고 괴로워야 했는지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다.
다만, 그 기억은 아프지만 동시에 달콤하기도 하다.
노래, 그때 들었던 노래를 들으면 그녀와의 기억이 뮤직비디오처럼 영상이 돌아간다.
마지막 노래가사가 늘 가슴에 들어온다.
‘또 누굴 만나고 사는 동안 또 사랑이야 오겠지만 누구를 그대만큼 사랑할까.
언제쯤 그대처럼 사랑할까.’
노래를 들으면 그때의 감정, 느낌, 향기가 살아 돌아온 것만 같다.
하지만 내 사랑은 여전히 그곳에 머물러 있다. 돌아오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