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떠나지 않으면 절대 알 수 없는 것들
떠나지 않으면 절대 알 수 없는 것들
'모르는 게 약이다.' 라는 말이 있다.
어찌 보면 정답 일 수도 있다.
살아가면서 반드시 알아야 하는 것들은 그리 많지 않다. 그저 내 공간 안에서 먹고 자고 그렇게 기본 생활만으로도 충분히 삶을 이어갈 수 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내가 만약 여행을 몰랐다면 어땠을까 생각해본다.
다른 나라로 여행을 가서 이런 저런 일들을 겪어 보지 않았다면 지금의 나는 어떤 모습일까.
물론 나의 생활방식이나 현재 상황이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많지 않은 나의 친구 중 하나는 힘들게 뭐 하러 배낭여행 같은 걸 하냐고 내게 말한 적이 있다.
나는 그때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누가 돈 주는 것도 아니고 심지어 내 돈을 써가면서 왜 사서 고생을 하는 거지?'
하지만 나는 친구에게 이렇게 말했다.
'고기도 먹어 본 놈이 먹는 거지. 너도 한 번 떠나보면 알게 될 거야.'
하지만 그 친구는 아직 한 번도 떠나보지 못했다.
결국 영원히 그 고기 맛을 모르고 살아가겠지.
어차피 그 맛을 모르니 아쉬울 것도 그리울 것도 없으리라.
내가 처음으로 비행기에 올랐던 25살의 그 날, 나는 그날을 잊을 수 없다.
비행기 자체를 처음 타는데 목적지는 제주도가 아닌 영국 런던이었다.
연습도 없이 실전에 투입된 군인처럼 나는 공항에서부터 허둥지둥 거렸다.
이날을 위해 얼마나 많은 날을 준비 해왔던가.
비용을 마련한기 위해 여러 가지 알바를 하며 작은 것부터 하나 둘 준비했다.
아무래도 첫 해외여행이고 혼자였기에 두려운 게 사실이었다. 그래서 더 꼼꼼히 책을 보고 적어가며 준비를 해가고 있었다.
인터넷 배낭여행 카페에 가입해 정보도 얻고 루트가 같으면 함께 움직일 여행 친구도 찾았다.
지금이야 혼자 여행하는 것이 내 성격에 딱 맞는다고 생각하지만 그때는 처음이었고 누군가에 기대고 싶었다.
그래서 동행자를 찾아 그녀를 만나 사귀게 되었고 여행도 함께 여행을 하게 되었다.
두 마리 토끼를 한 번에 잡은 격이었다.
하지만 여행을 시작하자마자 예상치 못한 난관에 부딪히고 결국 혼자가 되었다.
그때부터 나는 길을 잃었던 거 같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 내 마음조차 아무런 목적이 없었다.
낯선 곳에 떨어진 느낌? 아니, 정말 낯선 곳이었다.
그토록 원했고 준비도 많이 했던 유럽여행. 나는 빨리 벗어나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텁텁한 빵은 왜 그리도 맛이 없는지, 김치찌개, 신라면이 너무 먹고 싶었다.
칼칼한 국물이 그리웠다. 역시 난 토종이구나.
여행 시작 삼일 만에 찾아온 현상이었다.
영화 다크나이트 라이즈에 보면 수직으로 깊게 파인 동굴에 갇혀 있는 사람들이 나온다.
많은 사람들이 탈출을 시도 하지만 그 누구도 밖으로 나갈 수 없는 상황이다.
내가 바로 딱 그 상태였다.
하나부터 열까지 내가 생각했던 것들과 괴리가 있었다.
책상에 앉아 공부만 하는 것과 나가서 몸으로 부딪히며 배우는 것과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는 걸 새삼 실감했다.
버스 하나를 타도 누군가에게 반드시 물어봐야 한다.
그녀와 헤어진 후 평소의 나처럼 조금 더 멀리 돌아간 다해도 낯선 이에게 묻지 않으려는 소극적 자세를 취했다.
하지만 지하철을 잘못타 한 참을 걸어 베르사유 궁전에 도착한 적이 있다. 만두 찜통 같은 한 여름 날씨에 탈진 직전까지 갔었기 때문에 기존 방식을 버려야만 했다. 더 이상 나를 믿을 수 없었다.
그때부터 확실히 하기로 마음먹었다.
여행을 잘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현지인에게 몇 번이고 묻고 또 묻는 것이다.
나는 일부러 한국 사람들에게는 도움을 청하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하다. 괜히 간절해져 바짓가랑이 붙잡고 도와달라고 진상 부릴까봐.
그리고 같은 민족을 보는 차가운 한국 사람들의 눈빛도 싫었다.
같은 나라 사람이면 반가워해야 하거늘 한겨울 새벽 공기보다 더 차가운 그들의 말투와 눈빛에 실망했다.
한국인이 보이고 나는 기쁜 마음에 (친해져서 따라가고 싶은 마음도) 뻔히 알고 있는 것을 물었다.
하지만 웬걸 귀찮다는 듯 툭툭 내뱉는 말투와 다른 곳으로 돌려버린 시선에 큰 상처를 입었다.
뭘 그런 것 가지고 남자가 소심하게 상처 받나 하겠지만, 그 당시 내 마음은 정말 말로 표현이 안 되는 상황이었다.
마치 처음으로 간 학교나 회사에서 나만 빼고 모두 친해져 있는 상황, 점심시간은 다가오고 아는 이는 하나 없는 절박한 순간과 같다고 보면 된다.
살다보면 절박한 순간이 종종 찾아온다는 것을 알 것이다. 하지만 내 자신에게 조차 창피한 경우는 극히 드물다.
그래서 나는 내 얼굴을 쳐다보기 민망해 거울도 들여다보지 않았다.
배낭을 메고 걷다가 우연히 쇼윈도에 비친 나의 초라한 모습을 보는 순간 내가 너무 한 심해 보였다.
조급한 마음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조금씩 계속 변하기 시작했다. 모든 걸 포기 했다가도 다시 마음 다잡기도 하고 가끔은 정신 줄을 놓기도 했다.
내게 단 며칠의 시간이 주어졌다면 아마도 포기한 채 모든 것이 끝나기를 기다렸을 거다.
하지만 수많은 날을 그저 앉아서 기다릴 수는 없었다.
그렇게 바보짓을 하며 며칠을 보내고 나서부터 조금씩 긍정적인 변화가 시작되었다. 내 안에 틀어박혀 있는 모든 것들, 고착화 되어 버린 작은 것부터 뜯어 고쳐야만 했다.
내게 여행이 필요했던 이유 중 하나다.
내가 수십 년 동안 살고 있는 공간에서 나를 변화시킨다는 것은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다. 아니, 시도조차 하지 않을 것이다.
나의 첫 번째 여행은 내 안에 모든 것을 재배치시켰다.
많은 변화가 좋은 건지 나쁜 건지 결론을 낼 수는 없다. 변화 시도 없이 사는 사람들이 나쁘다고 할 수는 없으니까.
다만, 내 인생을 좀 더 다각도에서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영화 다크나이트에서 한 사람이 동굴을 탈출 했다. 어떻게 했을까?
수많은 사람들이 실패 한 그곳을 어떻게 탈출 했을까?
방법은 간단하다. 아무런 안전장치 없이 올라간 것이다. 실패한 다른 이들은 실패 시에도 목숨을 건질 수 있게 몸에 밧줄을 묶고 시도 했다.
타잔법칙이라는 것이 있다고 한다. 잡고 있는 밧줄을 놓아야만 다른 밧줄을 잡을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내가 잡고 있는 밧줄을 놓지 않고 있었던 거다.
몸은 배낭 하나만 메고 유럽 어느 도시를 떠돌고 있는 중인데 마음은 한국을 벗어나지도 못했으니 하는 것이 제대로 될 턱이 있겠는가.
하지만 망하더라도, 아니 이미 망했으니 더 이상 잃을 것도 없다고 생각했다.
최소한 오늘 하루, 이 순간을 눈앞에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자고 생각했다.
그러자 조금씩 조바심 나는 마음도 안정이 되어갔다.
내가 혼신의 힘을 다해 잡은 밧줄을 놓았을 때 비로소 몸이 가벼워 졌다.
그때부터 여행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시작한 것이다.
첫 여행 때 나는 5살이었다. 그리고 세상을 더 떠돌며 나이를 조금씩 먹어갔다. 때론 몇 살을 까먹기도 하였지만 더 이상 5살로 돌아가지는 않았다.
'그리움' 을 알게 된 것도 여행을 하면서 부터다.
일단 낯선 곳에서 혼자가 된다는 것만 해도 그리움의 시작이다.
원래 나의 모습이 그립고, 그 안에서 함께 했던 가족, 친구, 그리고 내 생활 안에 있었던 물건들 까지 그리운 거다.
다시 돌아왔을 때 만나게 되는 그 반가움이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을 알 수 없다. 부모님이 건강하게 계서서 반갑고 선물만 바라는 지인들이지만 에피소드를 공유할 수 있다는 것에 반갑다. 언제 어디서나 통화나 문자가 가능한 휴대폰이 너무 편리하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가끔 느려지기라도 하면 화가 치밀어 올랐던 내방의 컴퓨터는 왜 그리도 빠른지 잠깐 사이에 많은 일들이 일어난 인터넷 세상을 보다보면 그날을 다 보낸다.
요새야 휴대폰을 들고 세상 어디서나 인터넷을 이용하기에 이제는 더 이상 그런 반가움은 느끼지 못할지도 모른다.
내 삶의 터전에 대한 그리움이 하나라면 두 번째 그리움은 새로움이다.
여행지에서 만나게 되는 사람들, 그리고 풍경들이다.
독일에서 체코로 넘어왔을 때 일이다. 밤늦게 도착해 기차역을 빠져 나오니 칠흑 같은 어둠과 도심의 뒷골목 같은 분위기가 순식간에 나를 에워쌌다.
그때 나는 다섯 살 이었을 때라 아무것도 그저 멍하니 다리 밑에 서 있었다.
몇 몇 배낭 여행객들은 모두 빠져 나간 뒤였다.
한국인이라도 있었다면 같이 가자고 했을 텐데 한국인은 보이지 않았다.
그때 누군가 내 어깨를 가볍게 툭 하고 쳤다.
내 얼굴이 겁에 질려 있었던가? 놀라게 해서 미안하다며 자기는 어디서 온 누구라고 소개를 했다.
그때는 영어 한 마디 못할 때라서 간단하게 코리아, 덕우라고 내 소개를 마쳤다.
그 친구는 뉴질랜드에 온 데미안 이라고 했다.
나랑 비슷해 보였지만 아직 이제 막 스무 살이라는 말에 좀 놀라웠다.
민소매 티에 나보다 더 큰 배낭을 메고 있는 그 친구가 새삼 대단해 보였다. 그 친구의 눈에는 내가 셋님으로 보였을 것이다.
초보는 언제나 티가 나는 법.
지금 시간에 방 구하기 힘드니까 예약한 곳이 없다면 가까운 호텔에 방하나 잡고 돈을 나누어 내자고 했다.
나야 물론 오케이지.
데미안을 따라 졸졸졸 가서 지켜보니 호텔 비를 깎아 달라고 실랑이를 하고 있었다.
놀랍게도 잠시 후 주인이 처음 제시한 가격보다 할인된 금액으로 우리는 방을 잡을 수 있었다.
대단한 녀석이었다.
몸을 씻은 후 침대에 누워 있으니 데미안이 먼저 말을 걸어왔다.
3개월째 여행을 하고 있고 앞으로 7개월 정도 더 여행을 계획 중이란다.
내가 데미안 나이 때는 뭐했더라?
의젓하고 듬직한 데미안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내 모습이 한 없이 초라해 보였다.
내가 멋지다고 엄지를 치켜들었다.
내게는 고작 3개월조차도 까마득한데 무려 일 년 가까이를 어찌 혼자 여행한단 말인가.
그것도 이제 갓 스무 살 된 친구가 말이다.
그땐 정말 믿을 수 가 없었다.
그동안 겪은 일들을 내게 말해주는데 내가 못 알아듣는 것 같으니 손짓발짓을 해가며 설명해줬다.
너무 착하고 순수한 친구였다.
즐거웠다.
하지만 짧은 만남에도 이별은 찾아온다.
다음날 데미안은 갈 길을 갔다. 이메일을 주고받았다. 내게도 외국인 친구가 생겼다는 것에 벅찼다.
그것도 잠시 데미안이 떠나자 쓸쓸했다. 마음이 공허한 느낌이랄까. 뻥 뚫린 듯 이상했다.
이제 친해졌는데……. 다시 또 혼자가 되는구나.
처음이라서 그런 줄 알았지만 여행을 많이 한 지금도 여행 중 알게 된 낯선 친구와 헤어지면 공허해 진다. 괜스레 쓸쓸하고 이유모를 그리움이 찾아온다.
큰 배낭을 메고 돌아서는 친구들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문득 울컥해진다. 정확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다. 나도 왜 그런지 모르겠다.
그것이 어쩌면 우리 인생의 진짜 모습이기 때문은 아닐까.
우린 어딘가에서 그렇게 배낭을 메고 떠도는 사람들일지 모른다. 잠시 머물고 있지만 또 다시 배낭을 메야 하는 그런 존재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