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나를 돌아봐

# 나를 돌아봐

by 박시원

나를 돌아봐


실현 가능성은 제로지만 유체이탈 하면 내 모습을 볼 수 있을 거다. 물론 거울이라는 신비한 것을 통해서 왜곡된 나를 볼 수 있기는 하다.

사춘기 였을까, 나는 끊임없이 나란 존재를 제대로 보고 싶었다.

하지만 진짜 나를 볼 수 있는 방법은 위의 것들이 아니다.


내가 생각 한 것은 ‘나에게로부터 멀리 떨어짐’ 이다.

그것을 가장 잘 실천할 수 있는 것이 여행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항상 철두철미 하게 자신을 제대로 파악하고 채찍질 하며 잘 살아가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적어도 나는 그렇지 못하다. 잠시만 익숙해져버려도 쉽게 매너리즘에 빠져버린다.

제대로 된 나를 보고 싶다는 것은 현실 도피를 위한 하나의 변명 이기도 했을 것이다.

인정한다.

그렇지만 현실의 삶은 그냥 내가, 혹은 누군가 만들어놓은 톱니바퀴 위에 들어가 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아무 생각도 없다. 그저 계속 돌고 도는 .

그렇게 살다보면 몇 달 , 몇 년이 후딱 지나가 버린다.

내가 빠진 다해도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는 그런 톱니바퀴다.

여행을 다님으로써 새로운 나를 발견하고 알아간다. 우리는 어쩌면 계속 해서 나를 찾아야 하는 그런 존재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자신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가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는지 조차 모르니 아직 나를 잘 모른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심지어 가끔은 내가 하는 말, 행동들이 이해가 가지 않을 때가 있다. 이것 역시 나를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면 사람들은 ‘너를 알아서 뭐하게’ 라고 말하겠지.

나도 정확한 이유는 모르지만 끊임없이 진정한 나의 모습을 발견하고 알아가고 싶기 때문이라고 말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원히 알 수 없겠지만 말이다.


호주에 처음 도착하고 나는 내게 맞는 일자리를 구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비슷한 처지의 다른 친구들보다 영어는 조금 낫다고 믿었으니까.

하지만 그곳은 전쟁터였다.

한국 보다 더 치열한 구직 전쟁터.

한국, 중국, 일본, 인도 등 전 세계에서 젊은이들이 모여 일자리를 찾아 헤맨다.

일종의 베이스캠프랄까.

호주하면 천혜의 자연환경으로 많은 여행객들이 찾는 곳이다. 그러다보니 젊은 여행객들이 모여드는데 대부분 호주 내에서 돈을 벌어 여행을 하려고 한다.

한국의 많은 청춘들이 워킹비자로 가장 많이 가는 곳 또한 호주다.

그러다 보니 경쟁은 엄청나다.

내가 살던 아파트를 렌트한 부부도 한국에서 직장을 관두고 호주로 와서 영주권을 따려고 준비하고 있었는데 한국에서 남자는 삼성전자를 다녔다고 했다.

그 분이 호주에서 아르바이트 식으로 하고 있는 일은 새벽 3시에 나가는 술집 청소다.

부인은 영주권 준비를 위해 간호 대학에 다니고 있었다.

언뜻 이해는 가지 않았고 와인을 함께 마시며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어 물었던 적이 있었다.

“한국에서 삶이 지겨웠어. 아니, 지금까지는 그런대로 버틸 만 했는데 미래까지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니 숨이 막히더라고.”

그때 신혼여행으로 와본 호주를 떠올렸다고 한다.

“밤새 환자들을 돌보고 아침에 퇴근하는데 하늘이 정말 맑았어요. 그 하늘을 딱 보고 있는데 호주가 그리웠죠. 마치 고향을 그리워하듯.”

다행히 그 분의 와이프도 호주로 오고 싶었던 거다.

큰 욕심이 있던 것은 아니고 그저 잔디가 깔린 조용한 집에서 마음만이라도 여유롭게 살고 싶었다고 한다.

이런 사람도 새벽 펍 청소를 하는데 나는 무엇을 해야 하지? 하면서 자신감이 급 하락했지만 그 청소일 마저도 구하기는 하늘의 별 따기였다.

나는 이력서를 만들었다. 별다른 이력이 없지만 잘 만들어 출력했다.

그리고 이력서를 들고 호텔, 레스토랑 등을 돌아다니며 지원했다.

말이 쉽지 호텔에 들어가 무작정 이력서를 들이미는 것은 내게는 엄청나게 힘든 일이다.

한국에서의 나는 수줍고, 소극적이고, 차분한 사람으로 비쳐진다. 물론 낯선 곳에서 보이는 나다.

식당음식에 머리카락이 나오면 오히려 주인의 눈치를 보며 감춘다. 미안하다는 소리도 듣기 싫고 싫은 소리도 하고 싶지 않아서다.

소극적인 내가 찾아주지도 않은 곳에 이력서를 내밀며 일자리 있냐고 물어보는 것은 위대한 도전인 것이다.

누군가에게 아무것도 아닌 일도 어떤 이이게는 인생의 도전일 수도 있듯이 말이다.

내 손에는 백장의 이력서가 쥐어 있었지만 첫날에는 단 한 장도 줄어들지 않았다.

호텔 앞에서 서성이다가 돌아서곤 했다.

둘째 날도 차마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저 발길 닿는 대로 돌아다니며 '호텔이 참 많구나.' , '레스토랑도 참 많구나.' 생각뿐.

한 레스토랑에 들어가긴 했는데 모두 나를 쳐다보는 것 같아 '쏘리' 한마디 하고 재빨리 도망 나왔다. 어찌나 얼굴이 빨개졌는지 너무 창피했다.

며칠을 그렇게 시간을 흘려보냈다.

한국이었다면 포기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곳에서 그대로 포기할 수 는 없었다.

첫 도전은 호텔이었고 준비했던 멘트를 날렸다. 그러자 의외로 웃으면서 어디서 왔냐는 둥, 이것저것 물어봐 주었다.

그렇게 시작되었고 나는 도시 이곳저곳을 다니며 백장의 이력서를 남김없이 없앴다.

물론 시큰둥하게 받아주면 다음 곳을 가기가 또다시 망설여지기도 했지만 절대 할 수 없을 것 같은 일을 해낸 것은 너무도 뿌듯한 경험이었다.

단순히 백장이라는 이력서를 돌린 게 아니라, 인생의 큰 도전을 이루어 낸 것이라 할 수 있다.

물론 형편없는 나의 민낯을 보기도 했지만 그것을 이겨냈다는 것만 해도 정말 행복했다.

나의 비루한 모습도 처음이었고(한국에서는 그런 경우 그저 포기해버리고 다른 것을 하면 되었으니까) 못할 것 같은 일을 해낸 것도 처음이었다.

그것은 완전히 다른 환경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인간은 처한 환경에 지배를 받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모든 것이 편리하게 돌아가는 환경에서는 힘들면 걷기를 포기하고 택시를 타면 그만이다. 하지만 사막 한 가운데 있다면 우리는 죽을힘을 다해 걸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항상 주장 한다. 떠나야 한다고. 떠나지 않으면 절대로 알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책이나 TV 로 본다고 해도 그것을 내가 온전히 느낄 수는 없다.

나라는 존재가 낯선 환경에서 새로운 것들에게 느끼는 그 일련의 과정은 이론으로는 절대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이다.

깨달음은 무조건 경험에서 나온다.

경험 없는 깨달음은 없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3  떠나지 않으면 절대 알 수 없는 것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