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지후아타네호를 찾아서
지후아타네호를 찾아서
“태평양을 멕시코 사람들이 뭐라고 부르는 줄 알아요?”
“기억이 멈추는 곳.”
그녀석이 그랬다. 아니, 영화 쇼생크탈출에서 앤디 듀프레인이 말했다.
태평양은 기억이 멈추는 곳이라고…….
최악의 상황에서도 희망의 끈을 끝까지 놓지 않았던 주인공이 쇼생크 감옥을 탈옥 후 멕시코 태평양에 붙은 작은 마을 지후아타네호로 떠난다.
그리고 시간이 흐른 뒤 평생을 감옥에서 희망을 포기한 채 살아가던 레드가 출소 후 오래전 앤디가 말했던 장소로 가 편지를 찾는다.
"기억해요, 레드. 희망은 좋은 거예요. 모든 것 중에 최고라고 할 수 있죠. 그리고 좋은 것은 절대 사라지지 않아요.
당신이 이 편지를 찾길 바라요."
희망은 없다고 생각했던 레드는 앤디를 찾아 떠나기로 결심한다.
"너무 흥분되어 앉아 있거나 생각하기조차 힘들다.
자유로운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기쁨이라고 생각한다.
끝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긴 여행을 떠나는 자유로운 사람.
국경을 넘을 수 있기를 희망한다.
친구를 만나 악수하게 되기를 희망한다.
태평양이 내 꿈에서처럼 푸르기를 희망한다.
나는 희망한다."
레드가 도착한 그 곳, 그곳에는 푸르른 태평양이 있었다.
그리고 친구 앤디가 있었다.
나는 그곳을 찾아간다.
나는 지금 지후아타네호로 향하는 밤 버스에 올라있다.
칠흑 같은 어둠이란 게 이런 걸 말하는 걸까.
버스의 라이트 불빛 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멀리 불빛 하나 없는 이곳이 지구가 맞는 걸까?
갑자기 불안감에 온몸의 털이 비쭉 선다.
영화의 아름다운 묘사에도 불구하고 멕시코란 나라는 굉장히 위험한 나라로 더 알려져 있다.
물론 사실이 아니라고 할 수는 없다.
악명 높은 마약 조직들이 탱크, 헬기로 공격하기도 하고 수많은 사람을 죽인 뒤 다리위에 전시하듯 머리를 일렬로 가지런히 놓아두기도 한다.
마약조직이 너무 거대하고 잔인하다보니 정부도 손을 못 쓴다.
시장으로 당선되어 취임한 다음날 피살되기도 하는 나라다. 심지어 그 누구도 검찰총장을 맡기 싫어 한다는 뉴스도 본적이 있다.
내가 들은 소문 중 하나는 일반인이 길을 가다가 마약조직에 스카우트가 되었는데 그것을 거부하자 당사자는 물론 그의 가족, 친구, 연인 할 거 없이 모조리 죽였다는 믿지 못할 이야기도 있다.
소문이야 와전이 될 수도 있지만 그만큼 위험한 나라임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겁 많고 소심한 내가 왜 이 위험한 나라에 왔을까.
정확한 이유는 모른다. 심지어 이곳을 온 지 많은 시간이 지났는데도 말이다.
호주에서 만났던 그 녀석이 그토록 오고 싶어 하던 곳이다. 정작 그 녀석은 이곳에 오지 않았다.
근데 왜 내가?
한국으로 돌아와 그 녀석을 만났고 나는 다시 이곳을 생각했다.
영화를 보았고 오고 싶었다.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했다.
푸르른 태평양이 보고 싶었다.
돈이 많거나 가진 게 많아서 이곳을 찾아 여행 온 것이 아니다. 가진 게 아무것도 없기에
이 여행을 시작할 수 있었다.
내가 가진 모든 것을 털어야만 했다.
삶은 늘 내게 친절하지 못했다. 순간순간이 행복하다고 느껴지지 않았다.
물론 겉으로는 웃을지라도 지금까지는 힘든 시간이 더 많았다.
사실 나의 청춘의 고통과 고난은 남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사랑, 막연한 성공에 대한 노력 없는 갈망, 세상에서 처음 맛 본 가슴 아픈 이별은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청춘이라면 누구나 겪게 되는 일들 이다.
우리 모두 겪는 아픔일지라도 나의 상처가 더 줄거나 위로가 되는 건 아니다.
내 인생은 큰 위기나 대 사건도 없었다. 물론 객관적인 시각에서 보자면 말이다.
하지만 내 안에서는 그보다 더한 혼란과 고통을 겪고 있다.
끊임없이 나를 확인하고 내게 묻는다. 내가 무엇을 원하는 지도 모르고 무엇을 해야 하는 지도 모르겠다.
가끔은 삶 자체가 꿈이었으면 한다.
일어나면 모든 것이 꿈이었길 바라며 침대에 눕는 날이 많아졌다.
누구에게나 각자의 삶의 무게가 있다. 내 삶의 무게는 얼마쯤 될까.
“너 하나만 잘 살면 되는데 얼마나 편하니.”
부모님은 이렇게 말씀 하시지만 나는 늘 지구가 나를 누르는 것 같은 기분을 느낀다.
나름 인생을 걸었던 여자에게 허무하게 차이고 난 후 한국으로 돌아와 고통의 일 년을 보낸 뒤 힘겹게 직장을 다녔다.
하지만 그 고통은 쉽게 떨쳐지지 않았다. 늘 나를 괴롭혔다.
어떤 것에 나의 전부를 걸면 결과도 모 아니면 도가 된다. 모든 걸 잃던지, 모든 걸 쟁취하던지.
나는 전부를 잃었다.
현재도 그리고 미래도.
그녀에게 내가 너무 많은 것을 걸었던 걸까. 배신감과 잊히지 않는 지난날이 머릿속에 틀어박혀 나올 기미가 없었다.
이유가 있을 거라고, 언젠가 내게 설명을 해줄 거라고 믿었지만 그건 나만의 착각이었다.
우리가 겪어온 것들과 아름다운 기억들을 어떻게 잊을 수 있겠냐고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같은 기억과 추억을 공유 했더라도 우리는 다르게 받아들였던 것 같다.
“오빠는 과거를 사는 사람 같고 나는 미래를 사는 사람 같아.”
그녀가 내게 했던 말이다.
나는 이제야 그 말뜻을 알 수 있었다.
직장 생활에 적응하지 못한 것은 내가 내성적이거나 소극적이어서가 아니다. 나는 내 본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 겉으로는 세상에서 제일 즐거운 사람처럼 보이려 애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일 년 만에 회사를 그만두었다.
상반 대는 나의 겉과 안의 모습으로 더 이상 살 수 없었다.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는 걸 알지만 나는 그게 잘 안되었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그녀의 그림자가 나를 괴롭혔다. 그녀와의 모든 것을 어떻게든 끝내고 싶었다. 하지만 떨쳐낼 수 없었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그녀의 그림자는 내게 들러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이유라도 들었다면 작별의 인사라도 했다면 이토록 오랜 시간동안 괴로워하지 않았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지만 모든 것은 내 바람일 뿐이다.
사랑도 내 방식대로 되지 않고 이별 역시 마찬가지다.
직장을 그렇게 그만두고 다시 방구석에서 몇날 며칠을 폐인처럼 보냈다.
스스로 감옥을 만든다는 것은 실제 감옥에 있는 것보다 더한 정신적 고통이 찾아온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자다가 손을 부르르 떨기도 하고 심장이 쿵쾅거려 잠을 한 숨도 못자는 날들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겉으로는 최대한 멀쩡한 사람처럼 보이려고 애쓰다보니 정신은 더 망가져갔다.
심장에 문제가 있나 검사를 해보기도 했지만 신기하게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이상증세는 하루가 다르게 더 심해져 견디기 힘들었다.
왜 그러는지 이유를 알지 못하고 괴로워만 했다.
내 신세가 그저 한심했다.
그러다가 문득 지후아타네호가 떠올랐다.
'기억이 멈추는 곳'
내 기억을 멈추고 싶었다. 그곳에 가면 그렇게 될 거라 생각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간절히 가고 싶었다.
언제부턴가 내가 유일하게 상상을 현실로 옮기는 것은 늘 여행뿐이었다.
멕시코가 위험하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그건 생각지도 않았다. 그만큼 내 상태가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멕시코 보다 더 위험한 존재가 되어 있었다.
지후아타네호를 가야겠다고 마음을 먹은 뒤 불과 며칠 뒤에 멕시코로 향하는 비행기에 올랐다.
강압적인 자세의 미국인 승무원들과 시끄러운 승객들, 산만한 덩치들 사이에 앉아 옴짝달싹 못하자 가슴이 터져 버릴 거 같아 한숨도 자지 못했다.
공황 장애도 있었지만 공항장애도 생기는 듯 했다.
미국을 거쳐 멕시코시티까지 비행기를 여러 번 갈아타고 뜬 눈으로 이틀을 버티자 몸은 시작부터 지쳐갔다.
‘이대로 나를 납치해서 장기 척출하는 건 아니겠지…….’
멕시코시티에 도착한 뒤 길을 걸을 때도 택시를 탈 때도 불안했다.
다행이도 숙소에 잘 도착했고 첫날밤은 순식간에 지나갔다.
독립기념일 축제로 들뜬 광장의 소음이 나를 깨웠다.
몸도 괜찮았고 잠에 서 깬 곳이 내 방이 아니라서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꿈이 아니었다. 나는 진짜 멕시코에 와 있었다.
그제야 실감이 났다. 테라스를 열고 나가 한 참 동안 소깔로 광장을 바라봤다.
1인실이라 그런지 광장이 바라보이는 테라스도 있었다.
우려했던 위험은 없었다. 축제로 인해 도시가 북새통을 이뤘지만 생각보다 안전함을 느꼈다. 물론 수도이니 이 정도 안전은 당연한 걸지도 모른다.
그리고 예상 못했던 그레이스와의 만남이 시작되었고 나는 혼란에 빠졌다.
아마도 내가 그녀를 좋아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정확히 모르겠다.
그렇게 쉽게 누군가를 좋아하지 않는 내가 사람에게 기대기 시작한 걸지도 모른다.
내가 지후아타네호를 가야하나?
하지만 그곳을 보지 못한다면 후회할 것 같았다. 멕시코까지 와서 지후아타네호를 보지 않고 돌아갈 수는 없었다.
나는 결국 예정대로 지후아타네호로 떠났다.
인생이란 결국 어디론가 떠나는 거니까. 어차피 나는 떠나야 했으니까.
터미널에 앉아 사람들을 구경했다.
순수한 표정의 현지 사람들 그리고 여행자들.
돈을 내고 화장실로 들어가 간단하게 세수하고 이를 닦았다.
밤에 출발하는 버스는 비행기를 타는 것처럼 철저하게 보안에 신경을 쓴다.
짐은 공항처럼 엑스레이로 모두 검사한다.
위험한 나라다보니 이렇게까지 신경을 쓰는 구나, 하며 신뢰도 갔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만약 외부에서 공격하면 이깟 엑스레이 검사대가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특히나 무서운 멕시코 갱단의 습격을 받는다면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깜깜한 밤길을 달리고 있는 버스 안에서 이런 저런 생각에 잠겼다.
멕시코에 온 후 한국에서의 잡다한 생각은 하지 않았다.
결혼, 돈, 일, 가족, 친구 사람들과의 관계, 이런 것들은 평생을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것이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그저 보고 ,먹고, 생각에 잠길 뿐이다.
아무리 떨쳐내려고 해도 떨어지지 않던 잡념들은 이 먼 멕시코까지 따라오지 못한 것 같다.
자기 전 쿵쾅거리던 가슴의 통증도 사라졌다.
참으로 신기한 일이다.
나는 지금 그저 컴컴한 밤을 달리는 버스에 타고 있을 뿐이다.
어쩌면 이 모든 것은 꿈일 지도 모른다.
꿈과 현실의 경계선이 모호했다.
내가 나비 꿈을 꾼 것인지, 나비가 내 꿈을 꾼 것인지 모르겠다.
휴게소로 보이는 지붕하나 얹어 놓은 작은 건물 같은 곳에 버스가 정차했다.
화장실만 다녀오고 부랴부랴 버스에 올랐다. 혹시라도 버스를 놓칠 경우에 일어나는 일을 상상도 하기 싫었으니까.
버스기사도 바꿔가며 밤새 달린 버스는 지후아타네호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곳이 가까워져 가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Zihua 라는 글자가 여기저기 보이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얼마가지 않아 마을이 시작되는 지점이 보이기 시작했다.
작은 어촌마을이라는 말은 들었지만 마치 우리나라의 90년대 시골 모습을 보는 듯했다.
지후아타네호는 멕시코 게레로주에 있는 태평양 해안의 작은 마을이다.
바로 옆 도시는 유명한 아카풀코가 있다.
아카풀코 옆에 있어서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이곳은 영화 쇼생크 탈출에 나오면서부터
관광객의 발길이 끈이지 않는 도시가 되었다고 한다.
물론 서양 사람들에게만 해당된다.
1970년대부터 조용한 fishing village 라고도 불리며 일부 낚시꾼들을 위한 지역이었지만 후에 탐험을 좋아하는 외국 사람들에 의해서 지상의 탈출구라고 불릴 만큼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다.
조금 더 들어가자 시멘트로 투박하게 지어놓은 단층 건물들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버스는 터미널로 보이는 공터에 들어가 정차했다
사람들이 모두 내려 나도 따라 내렸다.
산소의 느낌이 완벽히 달랐다. 태어나서 처음 맛보는 공기였다.
내가 사는 곳에서 멀리 떠나왔기 때문일까. 어떻게 같은 공기임에도 이렇게 낯설 수 있을까 신기했다.
아마도 향기 때문에 내가 착각을 했을지도 모른다.
바다의 습하고 짠맛, 육지의 찐한 흙내 음이 뒤섞인 듯 했다.
동네 자체가 그리 크지 않아 숙소를 찾는 것에도 큰 어려움은 없었다. 하지만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문이 닫혀 있었다.
얼마를 기다린 후 후덕한 아주머니가 미소를 지으며 나왔다.
미안하다고 하지는 않았지만 표정을 봐서는 내게 꽤나 미안한 것 같았다.
계단을 통해 한 층을 올라가자 전형적인 멕시코 분위기가 가득한 공간이 나왔다.
외국 연인들이 묶고 있는 두 세 개의 방이 있었지만 나는 혼자였기에 도미토리로 예약 했다. 6인실이었지만 들어온 사람은 나 하나뿐이었다.
짐을 내려놓고 밖에 있는 해먹에 조심스럽게 앉았다.
창문 밖이 보였다.
이른 아침이었지만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리어카 같은 가판대에서 음료수를 파는 사람도 있었고 생선을 들고 가는 사람도 보였다.
숙소는 여전히 조용했다.
각종 팸플릿을 비롯해 챙이 넓은 멕시코 전통모자 솜브레로(SOMBRERO)그리고 멕시코 국기가 보였다.
낮은 천장에 있는 선풍기가 힘없이 돌아가고 고양이 한 마리가 탁자위에 올라가 앉아 귀찮은 표정을 지으며 나를 보고 있었다.
한쪽 벽면에는 다녀간 친구들의 메시지도 있었고 각 나라의 국기도 그려져 있었다.
나도 이곳을 떠날 때 한 마디를 적고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막상 떠오르지 않지만 말이다.
이곳을 오면 가슴이 벅차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나올 줄 알았다. 해답을 얻어간다거나 내 인생의 가치관이 확 변할 거라고 믿은 것은 아니었지만 내 인생의 밑바닥에서 이곳을 찾아왔기에 더 감정이 복받칠 거라 생각했다.
나는 해먹에 슬며시 기대 누웠다.
편안했다. 이곳 이공간이 너무 편안했다.
눈을 감아봤다. 다시 눈을 떴다. 여전히 나는 해먹위에 있었다.
몇 번을 그렇게 반복했다.
영화 사랑의 블랙홀은 매일 똑같은 하루가 반복된다. 내일이 없다. 오늘도 오늘이고 내일도 오늘이다.
내가 눈을 뜨면 나는 이 자리에 있는 내가 영원히 반복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즐겁지도 않고, 행복하지도 않으며, 그렇다고 불행하지도 않은 아무것도 아닌 이 순간이 반복되기를 바란다.
누군가 나를 건드리는 것 같았다. 잠시 동안 잠에 빠져 있자 눈꺼풀이 무거웠다.
아까 보았던 고양이가 내 배위에 앉아 있었다.
고양이는 썩 좋아하지 않지만 녀석의 표정이 워낙 순해 보여 그냥 놔뒀다.
양 앞발을 포갠 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갑자기 울컥 했다.
낯선 고양이에게서 느껴지는 따뜻함이라니…….
고양이가 내 마음을 유일하게 알아주는 것 같았다.
내가 잠든 사이 창문 밖 풍경은 조금 더 활발해 졌다.
때마침 흰 민소매티를 입은 주인아주머니가 나타났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손짓으로 오라고 했다. 내가 다가가자 팸플릿을 챙겨주며 궁금한 거 있으면 물어보란다.
그래서 나는 나 말고 다른 한국인을 본 적 있느냐고 물었다.
아주머니는 고개를 가로 저었다.
내가 처음이란다.
나는 아마도 이곳을 방문한 첫 한국인으로 기록 될지도 모른다. 아니면 누군가 자신이 첫 한국인으로 착각하며 이곳을 찾을 지도 모르고.
숙소에 두 명의 외국 여자뿐이었는데 아침 일찍 나가고 여전히 나 혼자 뿐이었다.
한국에서부터 달고 온 잔기침이 이제 머져간다.
멕시코에는 파머시 약국이 아주 많고 쉽게 약을 살 수 있는데 그레이스의 도움으로 산 약이 아주 효과가 좋다.
밖으로 나오자 태양이 작열했다. 태양이 뜨거운 것은 둘째 치고 이렇게 가까이 있는 태양은 처음 보았다.
그래서인지 살이 타들어가는 느낌이었다.
태양을 피하면 더위는 참을 만했다.
시장 안에는 생선부터 옷가지까지 이런 저런 것들을 파는데 그 중에도 음식을 파는 상인들이 가장 많았다.
멕시코 사람들은 집에서 아침을 해먹지 않고 사먹는 다고 한다.
날씨가 더워 금방 상할 것 같은데도 바닷가 마을답게 생선이 많았다. 저렴한 가격에 싱싱한 생선을 그 자리에서 요리 해주면 앉아서 편안히 먹으면 된다.
아시아 남자가 신기 했는지 일하는 아주머니들, 옆에 손님들이 다 나를 자꾸 쳐다봤다.
그리고선 자기들끼리 이야기를 하는데 나에 대해 말하는 것 같았다.
한국에서 그런 일이 있다면 그저 가만히 있었을 것이다. 평소의 나는 소극적이고 낯을 가리니까.
근데 멕시코 사람들의 순수한 표정은 계산적인 생각이 들지 않게 한다.
아무런 계산도 하지 않고 그들을 바라볼 수 있다.
그래서 내가 갑자기 그랬던 것 같다.
"지금 내 이야기 하는 거 맞죠?"
물론 스페인어로 했다. 영어는 안 통한다.
정확히 했다고 보기는 힘들지만 그래도 내 말에 다들 입을 크게 벌리며 놀랐다.
자신들이 한 말을 모두 알아들었다고 생각했는지 다들 당황해 했다.
다소 부끄러움을 타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그들의 이야기를 거의 알아듣지 못했다.
뭐가 그리도 재밌고 즐거운지 그들은 깔깔대며 웃었고 나도 따라 웃었다.
이들은 내게 어디서 왔는지 왜 이곳에 왔는지 물어보기 시작했다. 모두 나를 주목했지만 부끄럽거나 어딘가로 숨고 싶지는 않았다.
그냥 편안했다.
그들의 눈빛은 배타적이지 않았다. 국적이나 외모 등으로 나를 판단하는 것 같지 않았다.
그냥 나를 자신들의 친구처럼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그곳에 있는 동안 매일 아침을 이곳에서 해결했는데 나는 마치 터줏대감처럼 모든 상인들과 인사를 하고 아는 척을 했다.
얼굴도 피부색도 사는 곳도 완전히 다른 이 사람들과 내가 친구가 되다니 참 알 수 없는 인생이다.
동시대를 살고 있는 50억 명 중 나와 알고 지내는 사람은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적다.
그런데 지후아타네호의 아줌마 아저씨들과 친구를 먹었다.
세상은 참 넓은 것 같다.
도착한 첫날 아침을 먹고 바로 바다로 출발했다.
큰 창문들이 다 열려 있는 버스를 타고 십여 분 언덕을 오르고 내려가고 느릿느릿 달리면 하얀 백사장이 펼쳐져 있는 바다가 나온다.
라로파비치(La Ropa Beach) 는 영화에서처럼 아무도 없는 그런 바닷가 일거라 생각했지만 이곳도 관광지가 되었다고 한다.
유럽인들이 많이 오고 아시아인은 거의 없다.
하지만 사람들이 북적이는 그런 관광지는 아니다. 관광객이 간혹 보이기는 하지만 많지 않다.
해변에도 사람은 그다지 없었다.
넓고 긴 백사장 끝으로 나있는 절벽들 사이로 버섯모양의 호텔들이 들어서 있다.
사진으로만 보았던 곳이다.
누군가와 저곳에 있다면 이 바다가 얼마나 아름다워 보일까.
나는 이곳에 홀로 있다. 철저히 혼자다. 유일하게 나를 버릴 수 없는 부모님마저도 까마득히 멀리 있다.
내가 지금 이곳에 쓰러 진다해도 나를 위해 안타까워 해줄 사람 하나 없다.
우리 모두는 언젠가 홀로 된다고 애써 위로해 보지만 외로운 것은 숨길 수 없다.
바다는 너무 푸르렀지만 작열하는 태양은 나를 녹아내리게 만들 것만 같았다.
야자나무 밑으로 들어가 앉았다. 생각보다 굉장히 시원했다.
잠이 스르르 와 나무에 기대 잠이 들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나는 침을 닦으며 잠에서 깼다.
그녀석이 이곳에 왔다면 나처럼 이곳에 앉아서 잠을 청했을 거다.
바다를 보며 깊은 생각에 잠길 줄 알았는데 바람에 수면제를 탄 것처럼 잠이 쏟아졌다.
잠시였지만 너무 편안히 잠을 잤다. 한국에서 그동안 자지 못했던 잠을 이곳에서 다 해결 하려는 듯 잠이 몰려온다.
근데 내 모습이 왜 이렇게 불쌍해 보이는 거지?
나는 잽싸게 일어나 엉덩이를 털었다.
혼자라서 그랬던 걸까. 볼 것도 없고 할 것도 없어 다시 돌아가려고 가는데 꼬마 하나가 백사장에서 홀로 놀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너무나 예쁘게 생긴 꼬마가 물에서 떠밀려온 고기를 물끄러미 보고 있었다.
“올라.”
내가 먼저 인사를 건네며 다가갔다.
꼬마는 내가 어릴 적 먹곤 했던 스카치테입 불량식품을 한손으로 들고 먹고 있었다.
나를 한 번 보더니 다시 물고기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물고기는 왜 이곳까지 떠밀려와 죽었을까?
죽은 지 얼마 안 돼 보였다. 눈깔이 싱싱해보였다.
나는 먹기 위한 생선으로 그 물고기를 판단했다면 꼬마는 하나의 생명체로 바라보고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꼬마 옆에서 나도 물고기를 한 참 동안 관찰했다.
먼 바다로 나가지도 못하고 백사장으로 올라온 것도 아닌 애매하게 계속 같은 자리에 있었다.
“아저씨.”
물고기에 너무 집중했던 걸까, 꼬마가 나를 툭툭 치자 그때서야 꼬마가 나를 보고 있다는 걸 알았다.
“어, 이름이 뭐야?”
꼬마는 내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내게 사탕하나를 쥐어 주더니 돌아서 가버렸다.
아주 쿨하게.
나도 입에 사탕 하나를 물고 시내로 돌아갔다.
시내로 돌아와서도 나는 많이 걸으며 돌아다녔다. 더위에 죽을 것 같았지만 적응이 되자 버틸 만 해졌다.
하지만 지후아타네호의 더위를 무시했던 결과 일까, 그날 밤 자다 말고 달려가 냉장고에 넣어두었던 콜라 한 병을 쉬지 않고 다 마셨다.
그것도 삼각팬티만 입고 말이다.
내 평생 그토록 뜨거운 밤은 처음이었다.
미친 듯이 콜라를 마신 후 보니 전날 보았던 백인 여자 둘이 창가에 앉아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두 친구는 나를 발견하더니 씩 웃었다.
“더위 먹은 거 같은데?”
“나?”
“응, 너.”
“괜찮아.”
“와서 맥주 한 잔할래?”
또 목이 탔다. 더위 먹은 게 확실했다.
맥주 하나를 받아들고 벌컥벌컥 들이켰다.
“참 더운 곳이지.”
태평양 바다 같은 푸른 눈, 베일 것 같은 콧날, 주먹만 한 얼굴의 친구가 나를 보며 말했다.
순간 팬티만 입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잠시만!”
나는 잽싸게 옷을 입고 나왔다. 얇은 옷을 입었는데 한 여름에 두꺼운 오리털 파카를 입은 것처럼 느껴졌다.
“벗고 있어도 돼. 남자의 특권이잖아.”
그래도 나는 벗지 않았다. 처음 보는 아름다운 여자들 앞에서 발가벗을 수는 없지 않은가.
두 친구는 그리스에서 왔다고 했다. 하지만 미국인이다.
나를 보고 여기서 아시아인 처음 봐서 신기했다고 한다.
우리는 이런저런 대화를 나눴다.
새로운 외국친구를 만나면 으레 물어보고 답변하는 것들이랄까.
창밖 풍경은 그저 가로등 불빛뿐이었다. 너무나도 고요했다. 돌아다니는 사람 하나 없었다.
창문 옆에 걸려 있는 조그마한 간판이 참 아기자기했다.
주인이 직접 쓴 것 같은 글씨 그리고 배낭을 메고 있는 여행자도 그려져 있었다.
‘Angels hostel’
우리는 과연 천사들인 걸까.
이 친구들은 걸어가도 바닷가를 갈 수 있다는 충격적인 말을 했다.
심지어 여기서 가깝다고 한다.
나는 왜 몰랐던 걸까.
바보.
다음 날 아침은 케시와 클레시 블레어와 함께 먹기로 했다.
케시의 풀 네임은 까먹었지만 클래시의 풀 네임은 알고 있다.
케시도 예쁘지만 클레시는 정말 너무 예쁘다. 마치 할리우드 스타를 보고 있는 것 같은데 정말 왜 이 여자가 영화배우를 안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시장을 들어가 나의 친구들인 아줌마들도 소개 시켜주고 아침을 함께 먹었다.
아침을 먹고 함께 바닷가를 찾아갔다.
셋이서 나름 재밌었다. 한국어도 가르쳐 주고 우리의 문화도 알려줬다.
이런 게 바로 애국이니까.
우리는 셋이 나란히 바다를 보며 앉았다.
클레시가 어딘가로 뛰어가더니 잠시 후 햄버거를 들고 나타났다.
내가 돈을 주려고 했는데 괜찮단다. 오늘 저녁에 떠나야 하는데 점심 쏘고 가겠다고.
서양 애들이 그렇게 계산적이고 더치페이가 생활화 돼 있다고 하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나는 서양 친구들에게 의외로 많이 얻어먹기도 했다. 특히나 술은 진짜 잘 사준다.
물론 나도 받으면 언젠가는 꼭 돌려주곤 했다.
뒤에 있는 레스토랑에서는 못 사줘서 미안하다는 클레시는 정말 천사다.
나는 가는 곳마다 여자에게 반하고 다니는 것 같은 기분이다.
길거리 가판대에서 파는 햄버거는 정말 엄청나게 맛있었다. 크기와 안에 내용물이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맥도널드나, 버거킹 같은 곳에서 이정도 퀼리티의 햄버거를 만들려면 아마도 몇 만원은 받아야 할 거다.
바다에 앉아서 먹는 햄버거 맛이 좋았다.
“참 아름다운 시간이다.”
클레시가 바다를 바라보며 말했다.
아름다운 시간은 지나가 버린다. 영원히 사라진다. 그리고 고통의 시간이 흐른다.
친해지면 언제나 헤어짐이 찾아온다.
그것이 늘 슬프고 고독하다.
행복한 기억들을 마무리 할 때면 나는 마음이 굉장히 아프다. 누군가와 헤어질 때도 그 사람과의 행복한 기억 때문에 힘이 들어 차라리 함께한 기억이 없었다면 더 행복했을 거라고 생각하곤 했다.
분명한건 누군가를 사랑하지 않았다면 사랑 때문에 아파 할일도 없었을 것이고 여행을 가지 않았다면 그곳에서의 추억들 때문에 그리워하는 병에 걸리지도 않았을 것이다.
어릴 적 우리 집에는 옆집에서 받아온 강아지가 한 마리 있었다. 이름은 방울이. 똥개답지 않게 똑똑해 똥오줌도 늘 같은 곳에 쌌다. 하지만 작은 강아지 이다 보니 위험해 노출돼 있어서 하는 수없이 묶어놓고 키우게 되었다.
나는 뛰고 싶어 하는 방울이를 보고 마음이 많이 아파 방울이와 산책을 함께 하곤 했다. 아주 작은 몸을 이리 굴리고 저리 굴리며 신나게 나와 함께 운동을 마치고 나는 다시 방울이를 밖에다 묶어놓곤 했는데 그때 마다 방울이는 슬픈 표정을 하고 밤새 짖어 댔다.
마치 우는 것처럼 말이다. 매일 매일 방울이를 산책시켜주다 보니 그 시간만 되면 방울이는 곧 있을 행복에 어쩔 줄을 몰랐다. 하지만 얼마 후 난 몇 주 동안 여행을 가야했고 똥개에 불과한 방울이를 산책시켜 줄 사람은 우리 집에 누구도 없었다.
여행을 가서 집으로 전화를 했는데 어머니가 말씀하시길 방울이가 며칠째 딱 그 시간만 되면 짖기 시작한다고 했다.
그때 난 잠시 동안 후회를 했었다. 내가 방울 이에게 산책이라는 행복을 주지 않았다면 방울이는 지금처럼 아프지 않았을 거라며.
나는 방울이를 위해 산책을 시키지 말아야 했을까? 과연 어떤 것이 더 방울이를 위해 좋은 것이었을까?
아직도 난 잘 모르겠다.
내가 만약 여행을 몰랐다면, 만나고 헤어짐의 기분을 느끼지 못했다면, 누군가를 사랑하는 마음을 가져본 적이 없다면 내 삶은 어땠을까?
아프지 않아도 되었을 거고, 풀리지 않는 우주의 신비나 삶의 의미 때문에 쓸데없는 고통을 겪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방울이처럼 나도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시작 했던 것일까.
오른쪽으로 산이 있고 왼쪽으로도 산이 있다. 가운데로는 바다가 끝없이 펼쳐져 있다.
밤이 되면 오른쪽과 왼쪽 산에 있는 집들의 불이 켜지면 바다에 불빛이 비친다.
그렇게 아름다워 진다.
우리는 해가 질 무렵 자리에서 일어났다.
정말 잠시였지만 좋은 사람들과의 만남은 늘 오래 기억에 남는 법이다.
숙소로 돌아와 클레시, 케시와 진한 포옹을 했다.
두 사람도 아쉽다고 말했다.
우리는 다시 만날 수 있기를 바라며 다시 한 번 포옹을 했다.
두 사람은 본인 키만 한 배낭을 메고 밤길을 나섰다.
나는 마치 나의 뒷모습 같은 그들의 뒤에서 한참 동안 손을 흔들었다.
단 하루 함께한 그녀들이 떠나고 완벽히 고독해졌다.
다음 날도, 그 다음날도 고독했다.
숙소에는 그 누구도 들어오지 않았다. 밤에도 낮에도 나 혼자였다.
낮에는 여기저기 시내를 그리고 바다를 돌아다닌다.
그리고 바다에 앉아 노을이 질 무렵까지 있다가 숙소로 돌아온다.
샤워를 하고 혼자 맥주를 마시고 창문 밖을 바라보며 오지 않는 사람을 기다렸다.
재미있는 사실은 그곳에서의 생활도 점점 똑같이 반복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2주가 넘어가면서 나는 느낄 수 있었다.
어차피 새로움을 찾아 계속 이동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결국에 우리는 어느 한 곳에 정착해야하고 삶은 그렇게 반복되는 것이다.
3주째 나는 집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했다.
비행기 표를 예약하고 돌아갈 준비를 하기로 했다.
여기저기 다니며 작별인사를 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바다를 찾았다. 늘 찾아오는 바다였지만 그날은 완전히 달랐다.
매번 노을이 지기 시작하면 자리에서 일어났다.
밤에는 어디에서나 위험하기에 그래야만했다.
하지만 그 날은 노을이지고 완전히 어둠에 잠기고 불빛이 켜질 때까지 나는 그곳에 있었다.
한 참 동안 그곳에 앉아 무슨 생각을 했는지 정확히 기억하지 못한다.
그저 가슴이 답답하고 먹먹했다.
물론 그 안에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도 있었다.
하지만 그 보다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시간에 대한 그리움 때문이었을 거다.
그 시간이 주는 먹먹함.
이곳을 찾아올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와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보긴 했지만 내가 실행에 옮길 거라는 것을 상상하지 못했다.
어쩌면 나는 바다에 앉아 막연이 기억이 멈추기 만을 바랐는지도 모른다.
아니, 사실 이곳에 있는 동안 기억이 멈춘 것은 사실이다.
잠시나마 모든 걸 잊기도 했으니까.
그럼 내가 이곳에 온 목적을 달성 한 걸까?
하지만 결국엔 그것 역시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작별인사를 하던 중 늘 내게 좋은 미소를 보내주던 라우리 아줌마가 했던 말이 나를 울컥하게 만들었다.
“아마도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다시 볼 수 없겠지?”
아주머니는 웃음을 잃지 않고 말했지만, 나는 그 말이 왜 그리도 슬펐던 걸까.
다시 볼 수 없으니까…….
어디선가 보았던 ‘삶은 소중한 것을 잃어가는 과정’ 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소중한 시간은 미처 느끼기도 전에 사라져간다.
이곳은 나의 유년 시절이 떠오른다.
흙먼지 풀풀 날리는 비포장도로, 밥 짓는 연기가 자욱했던 어느 저녁, 그 어떤 운동장 보다 거대했던 겨울 논바닥에서 뛰어놀던 아이들, 동네 저수지에서의 발가벗고 수영하던 그때와 지후아타네호는 닮아 있다.
마치 그 시절을 만나는 것처럼 반가웠다. 소중했던 시간을 다시 만나는 것처럼 놀라운 일은 없다.
한국을 떠나기 전 너무나도 아프고 고통스러웠다. 그래서 이곳을 찾아왔다. 고통이 아물 거라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내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내가 너무 감상에 젖어 있던 걸지도 모른다.
무엇을 찾아왔을까.
무엇을 찾아 이곳에 왔을까.
바다를 보며 수 없이 생각했다.
어쩌면 나는 듀프레인처럼 희망을 찾아서 이곳에 왔는지 모른다.
태평양이 펼쳐진 바다를 보며 그런 생각에 잠겼다.
그가 찾아 간 곳은 단지 태평양의 지후아타네호라는 마을이 아니라 작은 희망이라는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내 안에 모든 것이 망가졌을 때 나는 이곳을 찾아왔다.
하지만 내가 찾던 , 그녀석이 찾던 곳은 이곳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내 마음 속에 있었다.
나는 내 마음속 안에 있는 곳을 그토록 찾아 헤맨 것은 아니었을까.
어쩌면 너무나 가까이 있는 그곳을 왜 이토록 멀리 돌아와, 이제야 알게 되었을 까.
모든 여행은 끝났다.
하지만 난 알고 있다. 결국 아무것도 변하지 않을 거란 걸.
지금 내가 돌아가면 난 또 다시 우울해질지도 모르고 다시 아파할지도 모른다.
내 인생은 크게 변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돌아가면 나는 더 가진 게 없는 인생이 될 거다.
어릴 적 상상처럼 모든 게 술술 풀리는 시나리오는 가당치도 않다는 걸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나는 나를 응원한다.
인생은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까.
이 여행을 처음 시작했을 때 나는, 마흔이 된 나를 상상해 본적이 없다고 생각했다.
아저씨가 될 수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이제 나는 아저씨가 되는 내가 조금은 기대가 된다. 마흔이 되는 나를 기다려 보기로 했다.
나는 나이든 나를 만날 준비가 되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