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더블린에 비가 내리면

#13 더블린에 비가 내리면

by 박시원

더블린에 비가 내리면


나는 한 참 동안 창문을 바라보고 있었다.

창문 틈에 올려놓은 자그마한 탁상시계 뒤로는 흑백 그림이다.

창문에는 빗방울이 수없이 맺혀 있다.

맺혀있던 빗방울 하나가 흐르면 진한 아쉬움 떨어진다.

창문 밖은 오늘도 어김없이 쓸쓸해 보인다.

간혹 가다 지나다니는 오래된 차들과 핏 이라고는 전혀 들어간 것 같지 않은 멋없는 옷을 입은 사람들, 나는 오늘도 창문 밖 잿빛 풍경을 바라보고 있다.


여기는 더블린이다. 아일랜드의 수도, 하지만 우리에게는 생경한 나라와 도시다.

내게도 처음은 그랬다.

유럽여행 후 외국이 좋았고 어학연수를 통해 영어도 배우고 싶었다.

몇 번의 이유 없는 휴학을 하고 아르바이트를 하며 모아온 돈으로 외국을 가고 싶었다.

공부를 하고 싶다기보다는 잠깐 맛 본 외국의 이국적인 분위기와 풍경에 매료되었다고 해야 하나.

남들처럼 좋은 직장, 스펙을 위해 가고 싶었던 것이 아니다.

영국을 가려했지만 유학원의 실수로 학생비자를 받지 못했다.

학교를 졸업했는데 학교로 돌아온다는 짧은 문장 하나 때문에 매몰차게 거절당했다.

학교가 아닌 한국으로 돌아온다고 했어야 했다.

캐나다로 가야하나, 미국으로 가야하나 많은 고민을 했다.

며칠을 고민하고 결정했다.


<아일랜드 더블린>

내 리스트에는 없던 곳이다.

심지어 듣도 보도 못한 나라였다.

많은 사람들에게 말해줄때는 항상 설명을 곁들여야 한다. 아일랜드가 어떤 나라인지.

영국령이 아니라고!

아일랜드라는 나라 이름보다 더 유명한 그들의 흑맥주 기네스부터 설명에 들어간다.

우리와 땅덩어리부터 민족성, 역사 등이 너무 나도 닮아있다. 생김새는 완전히 다르지만 성격도 비슷하다.

아이리쉬는 술을 사랑하고 다혈질적인 면이 있다. 마치 우리들처럼.

또한 하나가 되어 열광적인 응원을 보내기도 한다.

내가 갑작스럽게 아일랜드로 결정한 이유는 영화 ‘원스’ 의 영향 때문이었다.

길거리에서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는 남자와 길거리에서 꽃, 잡지를 파는 여자.

남자의 노래에서는 애절함이 있고 여자에게서는 고된 현실에 대한 걱정이 묻어있다.

둘은 각박한 현실 속에서 음악으로 교감을 나눈다.

영화에서도 아일랜드는 그리 밝은 느낌이 아니다.

서양에서는 초록의 나라라고 부르지만 내게 아일랜드는 그저 컬러 TV 로 보는 흑백 도시 같다.

그런 우울함이 뭐가 그리 좋았던 건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나는 비가 어딘가로 흘러내려가듯 아일랜드로 흘러 들어왔다.


영화 ‘원스’ 에서 받았던 느낌 그대로였다. 더블린 거리를 걷는데 내가 영화 속으로 들어와 있는 건지 헷갈릴 정도였다.

주인공 남자가 울부짖듯 노래를 했던 그 거리를 내가 걷고 두 남녀가 함께 찾았던 넓은 바다가 한눈에 보였던 언덕에도 내가 있었다.

두 남녀가 높은 산에 올라 바다를 내려다본다. 그들의 숨소리가 귓가에 들리는 것 같다.

“그를 사랑하나요, 는 체코어로 뭐죠?”

“뮬뤼에 셔.”

“그럼, 뮬뤼에 셔?”

남자가 물었다.

“밀루유떼베.”

여자가 잠시 생각하더니 대답했다.

영화가 끝날 때까지 밀루유떼베가 무슨 뜻인지 나오지 않는다. 그 말뜻이 영화에서 그리 중요한 부분도 아니다.

나중에 찾아보니 ‘당신을 사랑해요.’ 란 뜻이었다.

이 영화는 음악을 화려하게 보여주는 영화가 아니다. 그렇다고 사랑에 중점을 맞춘 영화도 아니다.

삶의 고독을 음악으로 풀어낸 것이다.

또한 그 고독은 현실에 있다. 영화는 우리 삶처럼 너무나 현실적이다.

두 주인공처럼 나의 아일랜드 생활도 그랬다.

화려하지 않은 그들의 모습처럼 나 역시 나의 모습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화창하다가도 비바람이 부는 날씨에 맞는 모자 달린 검은색 스포츠 재킷을 늘 입고 다녔다.

멋이라고는 없는 그런 옷이다.

아침마다 늘 비가 왔던 거 같다.

사람들은 우산을 쓰지 않는다. 나도 그랬다. 처음에는 우산을 썻지만 비바람에 뒤집어 지기 일쑤였고 어느 순간 나 역시 그들중 하나였다.

그냥 비를 자연스럽게 맞았는데 왠지 모르게 그곳에서는 비에 젖지 않았던 것 같다.

비오는 세상은 흑백이다.

흑백 세상은 집에도 적용된다. 내가 살고 있는 집도 그랬고 친구들이 살고 있는 집들도 오래되고 낡았다.

족히 십년은 같은 자리에 있었던 것 같은 빛바랜 천 소파와 회색빛 감도는 건물 마감재들.

석고로 마감을 한 천장과 벽은 처음에는 새하얀 색이였으리라.


매일 아침 학원을 가는 길, 어느날 , 나를 지나치던 아이리쉬 여자에게 나는 첫눈에 반했다.

그녀를 매일 아침 같은 시간, 같은 길에서 보았다.

귀엽기도 하고 세련되기도 했던 그녀의 얼굴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그녀에게 편지를 썻다. 주머니에 고이 접어 찔러 넣고 그녀에게 주리라 마음 먹었다.

그녀가 지나쳐 가는데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뺏다.

내일을 기약하자.

하지만 그 내일도 실패 했다.

아침마다 그녀를 마주쳤지만 나는 쪽지를 전해 주지 못했다.

주머니에서만 잠자던 그 쪽지는 아일랜드를 떠날때 공항 어느 탁자위에 올려 놓았다.

나는 아직도 비오던 흑백 거리에 무지개처럼 홀로 빛나던 그녀의 모습이 꿈에 나타날 때가 있다.

그리고 아직도 너무 후회가 된다. 말이라도 시켜보았다면, 쪽지라도 전해주었더라면...




미선 이는 원스의 여자주인공이 살던 바로 그 곳에 살았다.

여 주인공은 남자가 남기고 간 피아노를 치며 창문 밖을 바라본다. 그리고 카메라는 줌 아웃 되며 거리를 비춘다.

그 거리를 내가 밤에 걷곤 했다.

특히나 마지막 2주를 그곳에서 계속 보냈다. 집이 없어 게스트 하우스에 살면서 밥을 얻어먹으러 미선이 집을 매일 갔다.

그곳에서 삶은 철저히 아날로그적이다

물론 처음에는 답답하고 짜증나기도 하지만 곧 우리의 진짜 모습으로 회귀 한 듯하다.

네이버 접속하는데만 족히 하루가 걸리는 느려터진 인터넷, 무전기보다 간단한 선불 휴대폰에 밤이 되면 갈 곳은 없다.

낮에 갈 곳이라고는 공원뿐이다.

그래서 우리는 밤마다 이 친구 저 친구의 집을 방황한다.

작은 백열전구 하나 아래 둘러앉아 저녁을 먹고 이야기를 한다.

친구들이 하는 작은 말 하나하나가 귓가를 간질인다.

사람들의 숨소리 까지 들린다.

영화 원스 그 모습 그대로다.

나는 영화와 다르지 않은 현실을 결국 만났다.


내가 있던곳을 생각해본다.

거리에는 종종 걸음으로 어딘가 바삐 가는 사람들, 빵빵 대는 차들, 화려한 간판.

꺼지지 않는 사무실 그리고 공장의 불빛들.

눈앞에 사람을 두고도 스마트 폰을 본다.

누군가와 조용하고 차분하게 이야기 할 수 없을 정도로 정신없이 돌아가는 세상이다.

하루가 모자랄 만큼 우리는 너무 바쁜 세상 속에 살고 있다.

누군가의 눈을 보고 대화하는 기술도 잃어버린 지 오래다. 잠시를 못 버티고 스마트 폰에 손이 가는 우리들.

하지만 그 시절 아일랜드에서는 핸드폰을 들여다 볼 일도 없고 바삐 움직이는 무리 속에 속할 필요도 없었다.

학원이 오전에 끝나면 잔디밭에 앉아 점심을 먹고 집에는 천천히 걸어간다.

가다가 멋진 건물이 있거나 강을 보고 잠시 넋을 놓기도 한다.

그래도 급할 거 하나 없다.


한식이 먹고 싶은 친구들을 위해 감자 몇 개와 양파만 넣고 고추장찌개를 끓였다.

그 어떤 것보다 맛있다.

그리고 우리는 이야기꽃을 피운다. 오래된 전구 아래 밤은 깊어만 간다.

시간은 결국 다가온다. 분명한 것은 어디에나 처음과 끝은 있는 법이다.

멀게만 느껴졌던 그 날이 왔다.

영화속 남자 주인공이 배낭을 메고 웃으며 떠난 것처럼 나도 그렇게 그곳을 떠난다.

내가 있었던 곳들이 하나 둘 머리속을 스쳐지나간다.

그리고 영화의 주제곡 falling slowly 가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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