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if
If
사실 ‘만약’ 이라는 단어는 미래를 보며 사는 사람들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만약은 지난 일에 대한 후회와 아쉬움에서 시작된다. 후회하지 않는 삶이 어디 있으랴.
어쩌면 삶은 만약에서부터 다시 시작된다.
유독 나는 남보다 더 지난날의 후회 속에 살고 있다. 그때 만약 내가 다른 길로 빠졌다면 현재가 더 나아지지 않았을까, 하는 만약에 매일 같이 빠져있다.
이 십 대 초반에는 내가 상상하는 대로 다 이루어질줄 알았다.
막연히 뭔가 대단한 사람이 될 걸로 생각했는데 문제점을 찾아보자면 그에 맞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 그저 앉아서 상상만 했다.
그냥 시간이 가면 모든 것이 뚝딱 만들어 져 있을 것 같았다.
내게는 시간도 충분히 많았고 기회도 있었지만 나는 그것을 활용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후회 없이 맘껏 놀아본 것도 아니다.
마음은 있었지만 소심한 성격 탓에 좋아했던 여자에게 적극적인 대시도 하지 못했고 젊은 날에 할 수 있는 것들을 시도조차 하지 못했다.
하고 싶은 것에 미친 듯 매달려 보지도 못했던 것도 너무 후회가 된다.
그때는 하고 싶은 게 너무도 많았다. 음악도 하고 싶었고 운동도 하고 싶었다.
하지만 정작 제대로 한 것은 하나도 없다.
나이를 먹으면서 그런 허황된 꿈들은 포기했고 좀 더 현실적인 꿈을 가지기 시작했다.
공무원에 도전해볼까도 고민하다가 빠르게 포기했다.
그때뿐만이 아니라 지금도 그렇다. ‘이거 안 되면 저거 해야지, 일단 이거 해보고 안 되면 저거 하자.’
이런 생각에 눈앞의 것에 모든 걸 던지지 않는다.
결국 모든 것은 실패의 악순환이 다.
자존심은 누구보다 강해서 남들 앞에서 창피하고 굴욕적인 일은 싫고, 내가 초라해지는 그런 일들은 하고 싶지 않았다.
나이를 먹었고 꾸준히 다닐 수 있는 직장이 사라졌다. 부모님의 신뢰도 잃었고 결혼할 시기도 놓쳤다.
사실 직장 생활에 염증을 느껴 여행을 더 좋아하게 된 것 같다. 물론 오랜 시간 직장을 다녔던 게 아니었지만 꽉 막힌 것 같은 직장생활은 내게 큰 고통이었다.
후회 되는 것이 있다면 여행을 하면서도 꾸준히 나를 발전시켰어야 했다.
한 분야에서 전문가가 되어야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괜스레 이것도 찔러 보고 저것도 찔러보다가 아무것도 성취 못한 케이스가 바로 나다.
왜 그 나이 때는 공부가 하기 싫었던 걸까?
지금은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공부를 하고 싶은지 명확히 알고 있지만 그때는 그저 공부 자체가 싫었다.
가만히 앉아서 책을 보면 잠이 오고 잡생각이 나 책상머리에 앉아 있을 수 없었다.
지금 내가 하는 생각을 그때 했더라면 나는 책상에 앉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는 그렇게 하지 않아도 내가 원하는 것을 할 수 있을 거라는 막연한 기대가 있었다.
정확한 나의 문제점은 꿈이 없었던 것이다.
만약 내가 진정으로 원했던 것이 있었다면 노력했을지도 모른다.
20대 초반까지는 아무생각이 없었다면 여행을 좋아하기 시작하고부터 좀 더 깊이 있는 생각과 현실적인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좀 더 나를 볼 수 있는 시간과 생각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그 후로 내가 관심 있고 원하는 것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고 마침내 나는 책상머리에 앉아서 오랜 시간을 버틸 수 있게 되었다.
그 전까지 나란 사람은 속이 텅텅 빈 빈껍데기 같았다고 볼 수 있다.
내가 만약 서울대를 갔다면 지금의 나는 어떤 사람 , 어떤 환경에서 살고 있을까.
아마도 TV나 영화에서 나오는 그런 드라마틱한 상황은 없을 것이다.
지금과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겠지만 분명 달라지는 것들은 있을 것이다.
가령 졸업하자마자 취직을 해 대기업 등에서 근무 하고 있거나 아니면 결혼을 했을 수 도 있었을 것이다.
그랬다면 내가 우주에 대해 고민하고 삶의 의미와 인생에 대해 고찰을 하며 살아 갈 수 있었을 까?
이런 말을 하면 헛소리 말라고 하겠지. 자기 합리화 하지 말라고…….
나는 분명 후회 하는 것들이 있다. 만약 과거로 돌아간다면 바꾸고 싶은 것들이 많으니까.
하지만 지금의 나를 바꾸고 싶지는 않다. 만족하며 살고 있어서가 아니다.
내가 기억하고 추억하는 것들을 버리고 싶지 않아서다.
다른 이들은 20대 초반에 자신의 진로와 미래를 결정하지만 나는 아니었다.
지금 30대 중반이 되어서 미래와 진로를 결정하려고 하고 있다.
그들보다 10년 이 뒤쳐졌다.
어떤 이는 그동안 뭐했냐고 한심하게 생각할지도 모른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 적이 많다. 나는 그때 몰랐던 것이다. 모르고 너무나 서툴렀다.
내가 그리 긍정적인 사람은 아니지만 과거를 후회하며 앉아서 한탄만 하고 있을 수 는 없다는 것은 알고 있다.
앞서 내가 내 삶은 바닥이라고 말했지만 바닥을 찍었으니 이제 올라가야 한다.
하지만 삶은 경쟁이 아니다. 늦었다고 해서 실패한 것은 아닐 거다. 그리고 우리는 길이 모두 다르다.
한길을 걸어가는 것 같지만 서로 다른 길을 가고 있다.
다른 이들과 비교로 자신을 갉아 먹지는 말자.
똑같은 길을 가는 것이 능사는 아니며 정답도 아니다.
나를 보며 ‘쟤보다는 내가 낫네.’ 하고 위안을 삼아도 좋다.
막말로 나는 정말 지금 아무것도 없다. 돈도 없고 직업도 없고 여자도 없다.
하지만 아직도 조금씩 길을 걷고 있다. 아직은 포기하지 않았다.
미래를 상상하며 살고 있지만 그때와 다른 점 하나는 무언가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제 곧 마흔이 된다는 생각을 하면 아무것도 이루어 놓은 게 없는 내가 너무 한심해 보이지만 누가 뭐라고 해도 나는 내 길을 걸어야한다.
만약 과거로 돌아간다면 당신은 무엇하고 싶은가요?
이런 질문을 받는다면 공부를 열심히 해서 좋은 대학을 가던지 아니면 원했던 일을 포기하지 않고 다시 도전을 한다든지 그런 현실적인 것들을 생각할 수 있지만 많은 사람들이 한 번쯤 생각해보는 것은 바로 '사랑' 이다.
'그녀와 내가 헤어지지 않았다면 나는 그리고 우리는 지금쯤 어떻게 되었을까?'
이런 상상은 누구나 한번쯤 해봤을 것이다.
물론 나에게도 그런 여자가 있었다.
나이는 많았지만 사랑에 대한 이해는 걸음마 아기 수준이었던 나는 좋아했던 여자에게 소홀했다.
결국 그녀는 떠났고 다른 남자를 만났다.
하지만 나를 잊지 못해 울며 전화하기를 반복했고 만나는 남자가 나만큼 자신을 챙겨주지 않는 다는 둥 보고 싶다는 둥, 하지만 그런 힌트에도 그녀를 만나러 가지 않았다. 바보같이 힌트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냥 그녀가 입으로 내 뱉은 말만 믿었을 뿐. 그리고 그때는 왜 그리 서울이 멀어보였는지 모르겠다.
지금 같으면 하루 열두 번도 더 갔을 텐데 그때 나는 그저 앉아서 떠난 그녀를 그리워하며 슬퍼했다.
만약 지금의 내가 가서 나를 코치 해주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우리는 지금까지 행복할 수 있었을까.
서울도 멀다고 가지 않던 내가 호주까지 쫓아갔던 여자가 있었다.
지난날의 과오를 거름삼아 사랑하는 사람을 놓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시작은 좋았지만 결국 해피엔딩은 아니었다.
가끔 내가 그때 그녀를 따라가지 않았다면 내 인생은 어떻게 펼쳐졌을까 생각해본다.
그리고 그녀를 따라 한국으로 돌아왔다면 허무하게 보내버린 나의 암흑기를 만나지 않았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결국 모든 것은 만약이다.
물론 다른 결정을 했다면 내 인생은 바뀌었을 지도 모른다.
만약 인생이 바뀌었다면 후회 하지 않고 살고 있을까?
그것은 아닐 거다. 내가 어떤 선택을 했더라도 후회는 남았을 거다.
삶은 후회를 남긴다. 후회는 때론 좋은 추억이고 삶에 또 다른 기회가 될 수 도 있다.
우리의 모든 결정은 결국 결과론적이 될 수밖에 없지만 깊은 상처를 남기지 말아야 한다.
[젊은 날엔 젊음을 모르고
사랑할 때 사랑이 보이지 않았네.
하지만 이제 뒤돌아보니 젊음도 사랑도 아주 소중했구나.]
왜 젊을 때는 젊음을 몰랐을까?
아무 생각 없이 듣던 노래 가사가 이제야 가슴에 느껴진다.
앞에 말했듯이 아무 생각 없이 하는 모든 것들이 미래에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다. 그것이 좋을 수도 있고 혹은 좋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반드시 다시 돌아온다는 것이다.
왜 나는 어떤 것에 내 모든 걸 바쳐 달려본 적이 없을까, 라는 질문이 머릿속에 맴도는 요즘이지만 결코 끝난 게 아니기에 다시금 마음을 다잡으려한다.
과거의 실수를 자책하며 현재까지 망칠 수는 없으니까.
가장 중요한 것은 미래가 아니다. 돌이켜 보면 모든 것이 이상하고 비현실적이다.
하물며 예전에 유행하던 패션도 지금 보면 웃음이 나오듯이 미래에는 모든 게 바뀌기 마련이다.
그래서 현재에 충실하고 얼마나 최선을 다했느냐가 중요한 게 아닐까.
현재가 과거고 미래다.
성공과 삶, 인생도 사랑도 결국 같은 연장선에 있다.
겪어보며 살아보며 배우고 깨닫게 되는 것.
삶을 살아보지 않고 논할 수 없듯, 나쁜 것이 아닌 인생의 모든 경험은 삶의 선물이다.
태어나면서부터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특별한 선물이다.
내가 늘 했던 실수는 해보지 않고 결정을 해버리는 것이었다.
‘안될 것 같아,’ ‘이건 안하는 게 낫겠다.’
늘 이런 식이었다. 해보지도 않고 포기하고 결과를 만들어 버렸다.
내가 스스로 선물을 포기한 셈이었다.
누가뭐래도 젊음은 다양한 경험과 사랑을 해볼 수 있는 축복받은 시간이다.
나는 비록 그 시간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지만 만약 당신에게 젊음이 있다면 지금 원하는 것을 해보기 바란다.
그리고 사랑함에 있어서 주저 하지 말기를 간절히 바란다. 사랑은 늘 아쉬움과 상처를 남기지만 그 보다 더한 가치는 이 세상에 그리 많지 않다.
젊을 때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오류는 그런 기회가 나중에 또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 기회는 지금 한 번뿐이다.
당신에게 오는 단 한 번의 기회를 잡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