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이별연습
매일 이별 하며 살고 있다.
우리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필연적으로 이별을 맞으며 살 수 밖에 없는 존재다.
먼저 엄마의 뱃속과 이별을 시작하며 세상에 나온다. 그리고 겪게 되는 수많은 이별들 속에서 우리는 살아간다.
어떠한 이별도 늘 아프고 슬프다. 하지만 영원한 만남도 없듯이 영원한 헤어짐도 없다.
우주는 상상할 수 없이 크지만 분명한 사실 하나, 결국에 모든 것은 태어나고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우리는 이 돌고 도는 우주 속에서 잠시 스치고 억 겹의 시간이 흐른 뒤 어디에선가 다시 만날 수 있는 존재들이다. 물론 현재의 모습은 아닐지라도 말이다.
그러니 이별이 우리 곁에 다가온다 하더라도 그리 슬퍼하지 말지어다.
20대에 떠나는 이별
내 첫 이별은 기억에서도 가물가물한 아주 어릴 적이었다.
그녀의 이름도, 얼굴도, 어디로 갔는지 조차 모른다. 아무것도 모르지만 그 아이는 내 첫사랑 이었고 첫 이별의 아픔을 느끼해준 주인공이다.
그 후로 이별은 사라진 듯 나타나지 않았는데 사랑에 빠져 헤매고 있을 즈음에 잊고 있던 이별이 불쑥 찾아왔다.
사랑과 이별은 늘 그림자처럼 서로 붙어 다닌다.
사랑했던 사람과 이별 후 우리는 마음의 병을 겪게 된다. 입맛도 없어지고 삶의 의욕도 없어진다.
나는 늘 그런 친구들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사랑에 목숨을 걸어?
말도 안 되는 터무니없는 이야기로 치부했다.
심지어 목숨을 끊는 사람도 부지기수로 많다는 것이 더더욱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때 나는 아마도 사랑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을 시기였다.
누군가를 정말 사랑했다면 당연히 이별 후에 아프다.
아프지 않다고? 후회 없이 사랑해서 괜찮다고? 사람은 다른 사람으로 잊힌다고?
오늘 이 사람과 헤어지고 내일 다른 사람을 만나는 사람들도 있고 이별을 너무나 쉽게 받아 들이는 사람들도 있다.
나는 궁금하다. 어떻게 함께 했던 사람을 그렇게 쉽게 잊을 수 있을까.
우리 삶이 헤어지고 만나는 일이 반복된다고 하지만 잠시뿐이라도 나는 함께 했던 그 사람들을 잊을 수 없다.
직장 생활을 하다보면 함께 일하다가 회사를 그만두는 사람들을 보게 된다.
그들의 자리는 어느 순간 다른 사람으로 채워진다. 그리고 또 다른 사람으로 계속 채워진다.
함께 일한 사람이 사라진다고 해도 그리워하지 않는다.
일은 누군가 대체할 수 있지만 사람도 다른 사람으로 대체되는 것일까?
어떻게 사람과 사람 관계가 일회용품 교체하듯 그렇게 쉽게 대체 될 수 있을까.
나는 그럴 수 없을 것 같다.
나는 아직도 잠시 스쳤던 사람들을 기억한다. 사람은 각자 그들만의 고유한 영혼이 있다.
이것은 다른 누군가로 절대 대체 되지 않는다. 다만 그 자리가 채워지는 것일 뿐이다.
그래서 나는 이별이 늘 슬프다.
언젠가 이별도 익숙해 질 거라 생각했다. 모든 것은 익숙해진다고 믿었으니까.
하지만 오늘 이별하고 내일 이별해도 이별은 절대로 익숙해지지 않았다.
더 아파졌고 슬퍼졌다.
그녀는 내게 힘들다고 그래서 떠나간다고 말했다. 나를 사랑하는 게 힘들어서 떠난다고 그랬다.
사랑하면 옆에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아무리 힘들어도 내 옆에서 있어줘야 하는 거 아닌가?
거짓말이다. 사랑해서 헤어진다는 건 다 거짓말이다.
그건 그만큼만 사랑했기 때문이다.
사랑하면 끝까지 함께 해야 한다. 그게 사랑이다.
나는 그녀와 헤어지던 날을 기억한다. 향기는 결국 사라지는 것이다. 공기 속에 부서지고 씻겨 흘러간다.
하지만 십 년 전 그녀와 헤어지던 날 맡았던 공기의 냄새, 비의 촉감, 거리의 사람들, 어디선가 흘러나오던 음악, 사람이 빼곡했던 2호선 전철, 그리고 움푹 페인 길가 웅덩이에 비친 나의 모습까지 모두 기억한다.
냉정했던 그녀에게서 나던 익숙했던 향기가 아직 내 코끝에 남아있다.
이 모든 이별의 향기가 떠오를 때가 종종 있다. 그 향기는 아직 내게서 떠나지 않았나보다.
이십대 초반까지 이별이라는 것에 대해 큰 생각을 해보지 않았다.
사랑하고 이별하는 것은 TV이나 남들이 하는 것만 봐왔고 소중한 사람들이 죽는 다는 것은 내 이야기는 아니란 듯 무감각했다.
영화나 책에서 쉼 없이 나오는 것이 이별이라지만 나는 공감하지 못했던 것 같다.
직접 겪어보기 전에는 모르는 것들이었기에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처음 마음을 주었던 그녀가 떠나갔고 그때 이별이란 게 이런 거구나, 라고 처음으로 느낄 수 있었던 것 같다.
그 후에도 사랑과 이별을 겪으며 아팠고 동시에 나는 조금씩 달라지고 있었다.
흔히 아픔을 통해서 성장해 나간다고 하지만 나는 그저 달라지는 것을 느꼈을 뿐이다.
물론 이별당시는 그렇지 않다. 시간이 지나고 생각해보면 모든 것들이 달리 보인다. 또 시간이 흐르고 돌아보면 달라져있다.
과거는 변하지 않겠지만 과거를 기억하는 우리들은 계속 해서 변해가며 기억도 변한다.
30대의 이별
이십대에는 사랑과 이별을 시작했다면 삼십대에는 사람과의 이별이 시작된다.
나는 큰 삼촌이 돌아가시기 전까지 장례식장 근처도 가본적이 없었다.
처음 소식을 들었을 때는 솔직히 말해서 아무렇지 않았다.
어릴 적에 죽음에 대해 깊은 고뇌에 빠진 적이 있었고 죽음에 대한 해답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그 후로 내 주변 누군가 죽는다는 것을 생각지도 않았고 상상해본적도 없었다.
처음 가 본 장례식장의 풍경은 내가 상상했던 것과는 조금 달랐다.
마치 붐비는 식당이랄까. 아니, 시장판에 가까웠다.
나는 정신이 없었다.
누군가는 울고 , 또 누군가는 맛있게 음식을 먹고, 또 다른 누군가는 웃으며 대화를 하기도 한다.
밤이 되고 마침내 고요가 찾아왔다.
내가 알고 있던 큰삼촌을 다시 추억했다. 삼촌의 환한 웃음이 생각난다.
열심히 살았고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았던 분이다.
장남으로써 모범을 보이기 위해 누구보다도 노력했던 사람으로 기억한다.
흔하디흔한 교통사고지만 내 주변에서 단 한 번도 일어나지는 않았다.
삼촌은 트럭을 몰고 고속도로를 달렸고 갑자기 차들이 멈춰 설 때 사고가 일어났다.
앞차와 부딪히면서 운전석은 삼촌의 가슴을 밀고 들어왔고 이미 손을 쓸 수 없었다.
며칠 후 막내 삼촌이 큰삼촌의 마지막 모습을 이메일로 보내주었는데 나는 파일을 열기가 두려웠다.
손을 떨며 파일을 열었다. 고속도로위의 파편들 그리고 초라한 트럭, 마침내 삼촌의 모습도 나왔다.
삼촌은 차 안에 그대로 앉아 있었고 누군가 밖에서 삼촌의 모습을 정면으로 찍었다.
이미 목숨을 거둔 상태였기에 사진을 찍었던 걸까.
누가 봐도 졸고 있는 모습으로 보였다. 사고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만큼 평온하고 고요하게 느껴졌다.
삼촌의 얼굴도 너무나 행복한 꿈을 꾸고 있는 듯 보였다.
몇 개월 전 삼촌을 보았던 날 그때가 마지막 이었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묘했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이별에 자식을 먼저 보낸 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형제, 가족들 모두 목 놓아 울었다.
삼촌을 화장해서 보내는 날은 눈물바다였다. 침착함을 유지했던 사람들마저도 참지 못했다.
사람들은 그것이 마지막 이별이라고 영영 다시 보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는 듯 했다.
장례식 내내 나는 그저 멍했다. 내 앞에서 펼쳐지는 장면들이 익숙지 않았기도 하지만 죽음으로 누군가를 떠나보내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지 몰랐기 때문이다.
사실 지금도 여전히 나는 모른다. 죽음이란 것이 무엇인지. 또 삶은 무엇인지.
일단 삶에 발을 들여놓으면 죽음은 필연적이란 것을 알고 있다. 슬프지만 우리 모두 언젠가 죽게 된다.
알고 있지만 놀랍고 믿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죽음이다.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알고 지낸 친구가 있었다. 매일 같이 놀거나 하는 친구는 아니었지만 동네에서부터 봐오며 자라왔기에 서로 응원해주는 그런 친구사이였다.
이름은 김진봉. 예전에는 익숙했던 이름이 이제 낯설게 느껴진다.
그 친구는 십여 년 전 세상과 이별했다.
고등학교 전기과를 전공 장학생으로 동기들 중에서도 누구보다 전기를 잘 다룰 줄 아는 친구였다.
졸업을 하고 얼마 후 버스를 탔는데 맨 뒷좌석에 그 친구가 있었다.
오랜만이라 반가워 어떻게 지내는지, 대학은 어떻게 되었는지 우리는 사소한 것부터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또 만나기로 약속하고 헤어졌다.
그리고 일주일 뒤 친구의 소식을 접했다. 강에서 고기를 잡는 아버지 배에서 전기를 수리하다가 감전된 것이다.
불과 일주일 전에 이야기를 나누던 친구가 죽었다는 것이 사실 믿어지지 않았다.
전기를 전공한 친구가 하필 전기에 감전되어 떠나가다니…….
그 역시도 나처럼 수많은 생각을 하며 살았을 것이다. 미래도 생각했을 테고 내일에 대한 걱정을 하면서 아버지를 도우려 여느 때처럼 나갔을 것이다.
자신이 죽을 거라는 사실을 꿈에도 모른 채 말이다.
우리도 당장 무엇을 하다 죽을 수도 있지만 그런 생각을 하고 사는 사람은 없다.
그런 생각을 하고 산다면 아마 미쳐서 죽을지도 모른다.
일주일 전 그 친구를 만나지 않았다면 나는 죽음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때부터 나는 늘 죽음을 떠올렸다. 때론 가슴이 쿵쾅거려 잠을 자지 못하는 날도 많았다.
죽음을 이해하려고 생각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다.
갑작스레 죽어가는 사람들로 부모님이나 내가 죽는다면 어떤 기분일지 계속 상상하고 두려움에 떨었다. 그것이 잘못된 것임을 잘 안다.
나쁜 상상은 대부분 일어나지 않는다고 하지만 내가 상상하는 모든 것들은 결국 일어날 일이다.
나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해당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사실이 내 삶에 영향을 미쳐서는 안 된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친구의 부모님은 고향을 떠나 다른 곳으로 갔다고 한다. 지금도 그녀석이 있던 그 공간을 지날 때면 친구의 하얀 얼굴이 떠오른다.
불의의 사고로 떠났지만 내게 마지막 작별인사를 했던 것을 기억한다.
“안녕, 잘 가.”
나는 그저 “응”이라고 짧게 대답했던 게 못내 마음에 걸린다.
이별은 갑작스레 찾아오기도 하고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을 준 뒤 찾아오기도 한다.
그럼에도 이별은 익숙해지지 않는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건강해 보였던 외할아버지는 담낭암 3기였고 가족들은 그 사실을 할아버지에게 숨겼다.
그 후로 6개월 만에 병원에서 숨을 거두셨다.
할아버지는 다 나아 병원에서 나가면 자식들을 모아서 함께 국수 먹기를 기대 하셨다고 한다.
참 소박한 할아버지의 소원이셨다.
엄마와 이모들은 할아버지가 자신이 암에 걸려 죽는다는 사실도 모르고 돌아가셨다고 했지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할아버지는 알고 계셨다.
내가 두 번째 병문안을 갔을 때 보았던 할아버지의 눈빛에서 알 수 있었다.
그런 눈빛은 세상 누구에게서도 본 적이 없다.
내 기억 속에 할아버지 할머니는 젊었다. 누구에게나 그런 시절이 있듯이 말이다.
큰 교통사고로 아팠던 아버지 그리고 그런 아버지를 간병해야 했던 엄마를 뒤로 하고 누이와 나는 이모 손에 이끌려 충청도 서천으로 가야만 했다.
외할아버지, 외할머니가 어릴 적부터 살고 계신 곳이며 엄마의 고향이기도 하다.
정확한 계절은 모르지만 논밭이 초록물결이 가득했던 것으로 보아 6월 초여름 정도가 아니었을까 한다.
정말 모든 곳이 논이었고 밭이었다. 큰 건물도 자동차들도 없었다. 간혹 마을버스가 흙먼지를 날리며 다니는 것 빼고는 흔하디흔한 승용차 한 대 없던 시절이었다.
엄마와 처음으로 떨어졌던 어린 나는 매일 같이 엄마를 찾았다.
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동네 사람들까지 조금만 기다리면 엄마가 올 거라고 나를 위로해주었지만 나는 밤마다 이불을 덮어쓰고 울었던 기억이 난다.
주변의 보살핌 덕분인지 나는 부모가 없는 삶에 적응해 나갔다. 아니, 어쩔 수 없다는 걸 깨우친 것이리라.
할머니가 해주셨던 고구마줄기 볶음과 밥을 잘 먹곤 했다.
지금도 엄마의 반찬이 모두 내 입맛에 잘 맞지만 단 하나 고구마 줄기 볶음은 그때 그 맛이 나지 않는다.
밥을 먹기가 무섭게 동네로 뛰어나가 형들과 팽이를 치거나 말뚝 박기를 하며 놀았고 미로처럼 담벼락이 높은 골목을 빠져 나가면 있던 구멍가게에서 할아버지가 주신 돈으로 눈깔 왕사탕을 사먹었다.
반년 후 아버지가 병원에서 나오셨고 나와 누이는 마침내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나이를 먹고 한동안 가보지 못했던 외가댁을 다시 간적이 있는데 미로 같이 큰 골목길은 왜 그리도 작아 졌는지, 그때는 마당도 엄청 넓었고 집도 커보였는데 이제는 너무나 작고 아담해보였다.
이제 그 집은 없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할머니의 병세는 더욱 악화돼 이제는 요양원에서 지내신다.
집은 팔았고 이제 우리는 그곳에 갈 이유가 없다.
할머니의 건강은 좋지 않다. 말도 제대로 못하시고 스스로 움직이지도 못하신다.
이미 우리는 할머니와의 이별도 준비가 되어있다.
할아버지, 할머니와의 이별은 과거의 추억과도 작별하는 것이다.
이제 그곳도 그곳을 떠올릴 사람도 존재 하지 않으면 더 이상 그때 나를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나는 할아버지를 보내고 최근 할머니의 모습을 보면서 문득 그곳이 그리워졌다. 어릴 적 불쌍했던 나와 누나의 모습이 자꾸만 겹쳐진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떠나보내는 건 엄마가 보고파 눈물짓던 어린 시절의 나와의 헤어짐과도 같다.
비록 엄마는 없었지만 할아버지, 할머니의 따뜻함이 그리운 시절이니까.
할아버지가 그립고 할머니도 그립다. 그리고 잠시나마 뛰어놀았던 그때 그 장소 내가 너무나도 그립다.
충청남도 서천군 화양면 봉명리 271번지 , 할아버지 그리고 할머니 안녕.
나는 여전히 서투르고 철이 들지 않았으며 이루어 놓은 것도 쥐뿔 없다. 하지만 나이가 먹어간다는 것은 이별이 가까이 와 있음을 느낀다.
그것이 연인과의 헤어짐이든 다른 이들과의 이별이던 간에 말이다.
멀리서 지켜보던 이별, 멀게만 보였던 이별은 어느 순간 내 옆에 깊게 들어와 있다.
사랑을 했고 이별에 아파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제는 가까운 사람들을 하나 둘 떠나보낼 나이가 다가와 간다.
늘 준비가 되어야만 한다고 생각하지만 막상 닥쳐오면 처음 겪는 사람처럼 아프고 외로울 것이다.
이별은 늘 그렇다.
우린 매일 같이 이별하며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