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그 녀석을 다시 만나다
그 녀석을 다시 만나다
걱정이 앞섰다.
‘가능한 일이야?’
내게 물었다.
악몽은 차라리 보지 않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늘 생각했다. 그 녀석을 다시 만날 수 있을까?
그 녀석과 브리즈번 강을 내려다보며 대화 했던 날들을 잊을 수 가 없다.
그리고 그 아름다움을 깨뜨리는 그 녀석의 폭탄선언!
자신의 목숨을 스스로 결정하겠다고 했던 그 녀석. 결코 아저씨가 되지 않겠다던 그 녀석.
그 녀석을 만나고 싶었다.
오래된 수첩을 옛날에 쓰던 가방에서 찾았다.
없어진 줄 알았는데 여행가방속에 있었다. 내가방도 아니고 미처 다가져가지 못한 그녀의 가방에서 수첩이 나왔다.
가방을 보니 옛 생각이나 꽤나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내가 써놓은 짤막한 글들을 보니 외국에 돌아다닐 당시에는 정말 감정에 흠뻑 취해 있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지금 보니 약간의 창피함이 생긴다.
이곳저곳에서 만났던 사람들의 싸이 주소, 이메일, 전화번호가 많이 나왔다.
이제 싸이월드 하는 사람은 거의 없어지고 있다. 한때는 누구나 하나쯤은 가지고 있어 일촌이 되기도 하고 서로의 방명록에 글을 남겨주기도 했다.
나도 다이어리에 많은 글들을 써놓기도 했고 좋아했던 누군가와 일촌이 되면 괜스레 뿌듯해서 밤잠을 설쳤던 기억이 있다.
모두 엊그제 일처럼 선명한데 이제 주변의 그 누구도 하지 않는다.
모든 것은 추억이 되었고 기억에서 사라져간다.
그 녀석에게 받아놓은 전화번호가 있었다.
“필요가 있을까요?”
그 녀석이 번호를 적어주며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받아 두길 잘했던 것 같다.
번호를 누르는데 마치 헤어진 전 여자 친구에게 하는 것만큼이나 떨리고 묘한 감정이 생겼다.
안 받으면 어쩌지? 또, 받으면 어쩌지?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다.
없는 번호는 아니었다.
신호음이 계속 울렸다. 이쯤 되면 아무도 전화 받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왠지 모를 마음의 평화가 찾아오는 순간, “여보세요?”
나는 놀란 나머지 순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얼어버렸다.
“누구세요?”
“나, 나야.”
“누구요? 누구세요?”
“박덕우. 브리즈번…….”
“네? 아! 덕우형?”
그 녀석이 나를 기억하고 있었고 심지어 아주 반가워했다.
나보다 먼저 그녀석이 만나고 싶다고 했고 우리는 속전속결로 약속을 잡아 만나기로 했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약속 장소로 나갔다.
겨울을 알리는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11월의 어느 날 밤 그녀석이 내 눈앞에 살아서 멀쩡히 나타났다.
“형! 반가워요!”
그리고는 내게 포옹을 했다.
불판위에는 삽겹살이 올라가 있고 그 녀석이 소주를 내 잔에 먼저 따랐다.
“아직 잘 살아있네.”
그 녀석이 무슨말인가 내말에 잠시 멈칫 하더니 이내 씩 하고 웃었다.
“아직도 기억하고 계셨네요. 오래전일이죠.”
“스스로 죽겠다는데 그걸 어떻게 잊겠냐?”
그 녀석은 술병을 내려놓고 잠시 생각에 잠긴 듯 기억을 더듬으며 미소를 지었다.
“형, 저 변했나 봐요.”
그랬다. 그 녀석은 완벽히 다른 사람이 되어있었다.
술이 들어가고 이야기가 무르익을 무렵 그 녀석은 내게 이렇게 말했다.
“형 내가 잘못 생각 했던 거예요. 내가 틀렸어요. 세상에서 가장 확실하고 변하지 않는 게 뭔지 알아요? 그건 바로 죽음이죠. 내가 죽는 다는 건 절대 변하지 않을 거예요. 하지만 그때 그 죽음을 내가 잘 못 생각했던 거예요.”
물론 다행이지만 나는 조금 놀랐다. 어떻게 사람이 이렇게 바뀔 수가 있을까.
“형, 쇼생크 탈출에 이런 말이 나와요. ‘희망은 좋은 거죠. 가장 소중한 것이죠. 좋은 것은 절대 사라지지 않아요.’ 그 때 제게는 희망이라는 것이 없었어요. 미래에도 똑같을 줄 알았죠. 그래서 그런 마음을 갖게 되었던 거일 수도 있고……. 지금 제게 희망은 정현(아들)이고 그녀에요.
언젠가 죽을지 몰라도, 아니 죽겠죠. 언젠가는……. 하지만 지금은 미래에 대한 희망을 품고 살려고요. 형, 희망은 좋은 거잖아요. 그죠?”
“와, 놀랍다. 그리고 참 사람 모르겠다.”
“네? 하하하.”
나는 그저 쓴 웃음을 지었다.
우리는 다시 만나기로 했다. 뭐 사람들이 늘 하는 약속대로 말이다.
그리고 각자의 길로 돌아섰다.
“형!”
그 녀석이 나를 불렀다.
“형도 희망을 찾길 바랄게요.”
나는 피식하고 웃으며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아, 참 너 거기 갔어?”
이번에는 내가 그 녀석을 불러 세워 물었다.
“어디요?”
“멕시코 거기 있잖아. 그 뭐더라?”
“아, 지후아타네호요?”
“어 맞아.”
“아, 거기요. 사실은 가지 못했어요.”
그 녀석은 그토록 가고 싶다던 지후아타네호를 가지 못했다고 했다.
여권 만료일이 가까워졌고 미국으로 들어가 멕시코로 가려 했지만 미국에서 입국거부를 당해 결국 멕시코로 가지 못하고 한국으로 돌아와야만 했다.
한국으로 돌아온 뒤 다시 멕시코로 향하려고 했지만 지금의 아내를 만났다고 했다.
여자에게 관심도 없었던 그 녀석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그녀를 보는 순간 뭔가 팍하고 내 안에 모든 것이 초기화 된 느낌이었어요.”
초기화 된 느낌?
어쨌든 잘된 일이다.
이제 그 녀석에게 지후아타네호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그녀석이 그토록 그곳이 가고 싶었던 이유는 아마도 탈출구가 필요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자신도 모르게 자신의 목을 죄어오는 것에서 자유롭고 싶었을 것이다.
영화 속 지후아타네호는 기억을 멈추는 곳이니까.
우리는 기억 때문에 아파하고 고통을 받는다. 그 기억을 멈추면 좀 더 행복해 질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결국 지후아타네호는 가지 못했다.
나는 그 녀석이 언젠가 그곳을 다시 가고 싶다고 할 줄 알았지만 그러지 않았다.
지금 그 녀석은 예전처럼 무언가에 사로잡혀 있는 걸까? 아니다. 아닐 것이다.
지후아타네호를 가지 못했지만 그 녀석은 이미 그것에서부터 자유를 찾았다.
이곳에서 그는 희망을 찾았고 희망을 안고 살아갈 것이다.
그리고 그녀석도 알고 있다. 언젠가는 죽음을 맞이할 것이라는 것을…….
하지만 그 녀석은 아마도 최선을 다하며 열심히 살아갈 것이다. 죽음역시 스스로 선택하지 않을 것이다.
그때 그 녀석이 내게 ‘삶의 의미’를 찾으라고 말했다. 무슨 의미로 내게 그 말을 했는지 지금의 그에게서 해답을 찾지 못하겠지만 나는 항상 삶의 의미를 찾으려고 노력했다. 그래서 더 아팠고 괴로웠다.
왜 삶의 의미를 찾는 것이 이토록 괴로운지 알 수 없었다.
지금 그는 본인이 그토록 원했던 삶의 의미를 찾은 걸까?
알 수 없다.
하지만 더 이상 내적 혼란 속에서 살고 있지 않는 것은 확실하다.
그가 행복하길 바란다.
문득 모든 친구들은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로 시작된 나만의 프로젝트.
지금의 그들은 오래전 내가 만나고 겪었던 그 사람들이 아닌 것처럼 낯설었다.
미선이가 내가 했던 잘못들을 기억 못하는 것이 다행임에도 섭섭하고 내게 삶의 본질적인 질문을 던졌던 그 녀석이 평범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이 좋은 것임에도 불구하고 한편으로는 씁쓸했다.
그건 아마도 내가 알고 있던 친구들의 모습이 아니었기 때문일 지도 모른다.
나는 아직도 과거에 머물러 있다. 그들의 시계는 계속 돌아가지만 내 시계는 멈춰 있다.
시간이 가면 모든것이 조금씩 변해가듯 변화하는 것들에 내가 적응하지 못하는 것이리라.
그들은 자연스럽게 스며들어갔지만 나는 아니었던 거다.
이제 그들은 대부분 다른 이들처럼 평범하게 사람들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 당시에는 정말 어마어마한 일을 할 것만 같았던 친구도, 또 아무것도 혼자 하지 못할 것 같았던 친구도, 혼란스럽고,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았던 친구도 모두 현재를 잘 살고 있다.
치열하게 일하고 누군가와 사랑하고, 또 어떤 이는 자신을 닮은 자식을 낳고 그렇게 살아간다.
그들도 나처럼 그리고 그 녀석처럼 자신의 삶에 대해 고뇌를 했던 순간이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결국 삶은 변화 속에 순응하며 흘러간다는 사실도 깨닫게 되었을 것이다.
아주 복잡했던 삶의 의미를 단순함에서 찾았을 것이다.
그 녀석이 사람들 틈에서 사라지는데 어느 순간 보이지 않았다.
수많은 사람들 틈에서 섞여 보이지 않았다.
이제 그 녀석도 저들 중 하나 일뿐이다.
나도 언젠간 저들 속 하나가 될 수 있을까.
그러길 바라본다.
그리고 나는 더 이상 오래전 친구를 찾는 것은 하지 않기로 했다.
그토록 만나고 싶었던 그녀도 찾지 않을 것이다.
그 시절 우리는 행복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