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그시절, 그 친구들은 지금

#9 그 시절, 그 친구들은 지금

by 박시원

그 시절, 그 친구들은 지금


“오빠, 우리 꼭 한국 가서 만나요.”

“형, 우리 꼭 한국 가서 만나요.”


물론 그들도 나로부터 같은 말을 들었을 것이다.

여행 혹은 외국에서 만난 친구들은 항상 그랬다. 물론 그 당시 그 말들은 진심이었을 것이다.

다만, 우리는 그 약속을 지키지 못했을 뿐이다.


처음에는 익숙지 않았다.

한국으로 돌아와 연락 했을 때 뜨뜻미지근한 반응에 그 뒤로는 누구에게도 쉽사리 먼저 연락하지 못했다.

그렇게 기억에 쌓여간 친구들이 꽤나 많다.

스페인 바로셀로나 에서 만났던, 멀리 보면 전지현, 외모와 맞지 않게 삽질하던 셰프 형, 멕시코 칸쿤 에서 만난 노처녀 누나,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주먹질 하며 싸웠던 어떤 놈 , 헛소리 잘하던 영은 누나, 나에게 콩깍지가 씌어있던 미선이, 세민이, 세순이, 많은 세부 친구들, 호주 브리즈번의 그 녀석, 그리고 그녀까지.

대충 헤아려 보아도 꽤나 많은 사람들과 만나고 헤어졌다. 그 친구들은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살아가고 있을까. 그리고 그때의 마음은 아직 유효할까.

늘 그들이 궁금했지만 먼저 쉽사리 연락하지 못했다.

바쁘게 살아가는 시대에 과거를 회상한다는 게 어떤 이에게는 사치 일 수도 있겠지만 나는

이 사람들을 만나 물어보고 싶다.

'기억하나요?'

요즘 같이 인터넷이 발달한 시대에 사람 하나 찾는 것쯤은 어렵지 않다.

SNS을 뒤져보니 익숙한 얼굴, 낯선 느낌의 친구들이 나왔다.

일단 부담스런 상대들은 뒤로 미루고 그나마 마음 편히 다가갈 수 있는 사람들부터 접근해 보기로 했다.

그것도 오래전 기준이다.

"세순아 오랜 만이다. 나 누군지 기억하니?"

일주일 뒤에 답장이 왔다.


"그럼요, 형. 오랜만이에요. 잘 지내시죠? 언제 한 번 봬요."

생각보다 반가운 뉘앙스지만 그렇게 흐지부지 되었다.


연락은 오지 않았다.

다시 연락 할 수 는 없었다. 물론 바쁘게 살다보면 잊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쉬웠다. 한국에서 꼭 만나자고 약속했는데…….

한국인에게 '언제한번 보자' 나 '언제한번 밥한번 먹자'는 그냥 인사일 뿐이다.


카톡 친구에 있는 영은이 누나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나보다 두 살 많은 누나는 아직도 시집을 못 갔다고 한다.

너무 반갑다고 날짜 잡아서 만나자고 했지만 반년이 지난 지금까지 만나지 않고 있다.

이후에 몇 명도 대부분 그랬다. 반가워하는 건 그나마 다행이다.

'이 사람이 왜 연락 했지?'

이런 반응도 있었다.

또 한 반가워해도 결국 만남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만남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지속적으로 연락을 취해야 하는데 누구도 먼저 연락을 하지 않는다.

나도, 그 사람도...


'내가 그렇게 문제가 있는 사람이었나?'

문득 내 자신을 돌아봤다.

나는 늘 남에게 피해를 주려 하지 않는다. 물론 나도 피해 받기를 원치 않는다.

그런 이유 때문에 사람들과 깊은 관계를 못 맺는 것이 아닐까.

그것도 한 가지 이유일 수 도 있다.

낯선 이에게 쉽사리 마음을 열지 않는다. 친해지면 나는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하지만 쉬운 일은 아니다.


TV에서 바로셀로나가 나오면 치가 떨려야 정상이다.

어려운 시절 나의 피같은 생돈을 훔쳐가 내 삶을 힘들게 만들었으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로셀로나는 그리 나쁜 기억으로 남아 있지 않다.

그 이유는 혜민이와 셰프형 때문이었다.

120만원을 하루아침에 소매치기를 당하고 의욕 없이 정신 나간 사람처럼 민박집에 앉아 있을 때 먼저 다가와준 사람이 대구에서 레스토랑을 하는 셰프형 이었다.

형은 음식을 맛보고 싶어 스페인을 찾아왔다고 했다. 키도 크고 준수한 외모와 젊은 나이에 이탈리안 레스토랑 사장이었다.

하는 행동은 순수하고 착해보였다. 하지만 그 형은 여행 내내 삽질을 많이 했다고 고백했다. 물론 내가 당한 소매치기에 비하면 보잘 것 없지만…….

영어를 못해 표를 잘못 끊고 엉뚱한 곳으로 갔다고 한다. 하지만 영어못한다고 표를 잘못 끊지는 않는다. 분명 다른 실수가 있었을 것이다.

확실히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다.

음식을 잘못 시키는 것은 다반사였고 여행 올 때 잘못된 가방을 들고 와 세면도구 등 온갖 여행용품을 다시 구매했다고 하는 믿지 못할 말도 했다.

하지만 이 형의 실수는 끝이 그게 끝이 아니었다. 콘서트홀에서 하는 공연티켓을 잘못 사놓아서 볼 수 없게 된 것이다.

낼일 떠나는 사람이 낼모레 표를 사다니…….

그리고 오늘까지 내내 몰랐다는 사실.

결국 그 티켓은 내 차지가 된다. 웬 횡재.

셰프형이 내게 선물로 주고 떠났다.


형은 의기소침해 있는 나에게 나가서 여행을 하자고 설득했고 나는 형을 따라 나갔다.

낮에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지정된 구엘공원에 가봤다.


‘무슨 공원이 세계문화유산이야.’ 라고 생각했지만 그 유명한 건축가 가우디의 작품이다.

현 시대에도 보기 힘든 가우디만의 특별함이 역시나 묻어났다.

나는 그것을 굴곡과 선이라고 말하겠다.


‘누가 봐도 이건 가우디 작품이군.’ 할만 했다. 부드럽게 이어지는 곡선들과 동화 속 마을처럼 독특하며 아름다운 건축물이다.


시내로 돌아와 파에야와 샹그리아를 먹고 람브라스거리를 걸었다. 거리의 예술가들은 정말 혼을 불사르며 거리예술을 한다.

아무리 봐도 동상인지 사람인지 구분이 가지 않을 정도다.

돈을 주면 갑자기 움직인다.

어쨌든 별다른 느낌은 없다.


큰돈을 잃어버렸기에 그 순간도 즐기지 못했다. 몸은 즐기고 있는 척을 하지만 정신은 이미 무너져 있었으니까.

밤에는 몬주익 광장에서 하는 분수 쇼를 보러 갔다. 매일 있는 공연이 아니라서 때를 잘 맞춰 가야 하는 유명한 관광지다.

One Republic의 노래 "Apologize"에 맞춰 거대한 분수가 이리저리 움직였다.

시간이 지난 후에도 이 노래가 어딘가에서 흘러나오면 그때 생각이 난다. 이 노래는 늘 우울하다.

화려함을 입은 분수 쇼이기에 사람들은 환호 했지만 나는 슬펐다.

생돈 120만원을 털리고 안 슬프면 비정상일 것이다.

셰프형이 내 등을 토닥토닥 해주었지만 나아지지 않았다. 아니, 나아질 수 없었다.

구슬픈 노래에 분수가 울고 있는 것 같았다.

그녀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녀의 모습은 흡사 전지현 (참고로 전지현은 내 스타일이 아니다 ) 같았다. 긴 생머리를 휘날리며 들어오는데 맛이 가있던 심장이 다시 뛰기 시작했다.

물론, 내가 눈이 많이 나빠 잘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아름다운 여자는 태만 보아도 알 수 있는 게 남자다.

전지현보다는 아니지만 충분히 귀여운 여자였다.

민박집 아주머니는 새로운 사람들이 오면 누군가 소매치기를 크게 당했으니 조심하라는 당부를 하셨다.

벽에 다도 붙여놓고 주의를 기울이라고 하지만 이번에는 한 명 한 명 붙잡고 심각하게 이야기 했다.

물론 나 때문이다.

그러면 다들 액수에 놀란다.

매번 그 앞에 앉아 있는 나는 해탈의 경지에 이르렀다.

그녀가 짐을 풀고 나왔고 나와 눈이 마주쳤다. 그녀는 생글생글 웃는 얼굴로 내게 먼저 인사를 건네며 다가왔다.

여행 중에 만나는 사람들과의 대화가 좋은 것은 공통된 주제가 있기 때문이다. 그곳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가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우리는 자연스레 대화를 했다.


“그렇다고 여기에 가만히 앉아만 있다가 돌아가면 아무 의미도 없잖아요. 우리 같이 나가요.”

셰프형이 떠나고 민박집에 틀어박혀 있던 내게 그녀가 말했다.


홀린듯 우리는 밖으로 나갔다.

낮부터 밤까지 쉴 새 없이 돌아다녔다.

모든 사람들은 가방을 앞으로 메고 꼭 붙잡고 있었다. 바로셀로나가 얼마나 소매치기가 많이 일어나는 도시인지 알 수 있는 모습이다.

우리는 서로 발을 맞추고 걸으며 조금씩 알아가려는 노력을 했다. 아직은 할 말이 많지 않아 어색했지만 같은 공감대가 있기에 금세 편안해졌다.

보케리아 시장으로 들어가니 다양한 색이 먼저 시선을 끌었다. 신선한 과일, 채소, 육류에서부터 수산물, 초콜릿 등 파는 것도 다양하다. 따뜻한 지중해의 햇살을 받아서 그런지 매우 신선하고 먹음직스러운 것들이 관광객의 눈을 사로잡는다.

컵에 한가득 들어있는 과일도 사먹고 수제햄 꼬치도 먹었다.

딱히 어디를 정해놓고 가지는 않았고 사실 어디로 가고 있는지조차 몰랐다.

그녀와 대화를 나누기에 걷고 있는 건 잊은 지 오래되었다.

남녀 간에는 이러한 매력이 있다.


본능적인 끌림.


람브라스 거리의 예술가들을 보고 있자니 그들은 돈을 벌기 위해 이일을 한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이미 그 수준을 벗어난 그들은 진정한 예술가다.

그들이 없었다면 이 거리는 이만큼 유명해지지 않았을 것이다.

셰프형과 같은 거리를 걸었지만 완벽히 다른 느낌을 받았다. 우울했던 거리가 다시 환해지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아름다운 람브라스 거리를 걷다보면 수많은 요트가 정박되어 있는 바닷가가 나타난다.

그곳에서 서로 사진을 찍어주며 여행객의 기분을 만끽하니 잠시나마 120만원을 잊었다.

괜스레 셰프형에게 미안해 졌다. 셰프형과 함께 했을 때는 한숨만 푹푹 쉬어댔는데…….

혜민이는 프랑스에서 공부하고 있는 학생이었다. 잠시 시간이 나 놀러 온 거고 다시 프랑스로 돌아간다고 했다.

나는 한국으로 돌아가고 혜민이는 프랑스로 돌아가고 우리는 다시 만날 일이 없을 것 같아 아쉬웠다. 한국에서 다시 만난다면 너무나 반가울 거라고 생각했다.

다들 그렇게 말한다.


“오빠, 한국 가면 꼭 다시 만나서 우리가 지금 여기 앉아 대화했던 거 추억 하자.”

“지금 우리가 하는 이야기 다 기억할 수 있겠어?”

“물론이지. 이런 순간은 특별한 거잖아. 매일 반복되는 삶도 아니고.”

혜민이는 순간순간 가지는 특별한 감정들을 잃어버리는 것이 싫다고 했다.

하지만 기억과 함께 날아가는 순간의 감정들은 붙잡을 수 없다. 그래도 영원하길 바라는 것이 현재의 우리다.

다음 날 우리는 산츠 역에서 기차를 타고 30분을 달려 시체스에 도착했다. 아담한 시체스역을 빠져 나와 골목을 헤매다 보니 해변이 나왔다.


시체스는 게이마을이라고도 하는데 셰프형하고 왔으면 큰일 날 뻔 했다.

이곳에서 축제도 열리고 꽤나 유명한 것으로 알고 왔는데 해변에 사람도 없었고 조용했다.

시즌이 아니면 한 적하다.

골목의 상점들도 대부분 문을 닫고 있다.

우리는 한동안 탁 트인 해변을 넋을 놓고 바라보고 있었다.

날씨도 너무 좋아 바다색이 하늘색인지 구분이 가지 않을 정도였다.

여행 중 늘 만나는 것은 바다다. 바다를 만나면 정말 오만가지 생각이 든다.

우울한 생각, 행복한 생각부터 오래전 추억, 단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일들과 사람들까지.

바다는 사람들 추억의 조각을 모두 간직하고 있는 것 같다.


누군가 그곳을 찾아오면 그 조각들을 전해주고…….


전 세계에 수없이 많은 바다가 있고 비슷해 보이지만 다 다르다. 마치 인간이 똑같은 이목구비를 가지고 있지만 모두 다르듯이 말이다.

백사장을 지나면 언덕위로 성당이 보인다.

성당에 올라서자 바다위로 올라 선 것 같은 기분이었다.


도대체 이런 성당은 어떻게 만들어 진 걸까. 이 아름다움을 품은 성당은 누군가로 인해 지어진 것인지 궁금했다.


“이 곳은 한국과 참 다른 것 같아. 정말 이국적인 풍경이야.”

“이곳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한국에 사는 우리처럼 별 생각 없지 않겠어요.”

“근데 왜 반말 했다, 존댓말 했다 그래?”

“글쎄요. 저도 모르겠어요. 하하.”

가만히 앉아 있어도 좋고 터벅터벅 걸어도 좋은 이곳, 왠지 바로셀로나로 돌아가기 싫었다.



내게 시간만 더 허락되었으면 이곳에서 머물렀을 지도 모를 일이다.

간이역 벤치에 앉아 기차를 기다렸다.

이제 이곳도, 또 그녀와도 이별을 해야 한다.

이별은 언제나 아쉬움과 후회 그리고 그리움을 남긴다. 그리고 나는 시체스의 바다에 무엇을 또 남기고 가는 걸까.

오랜 시간이 흐른 뒤 "걸어서 세계속"으로 바로셀로나 편을 보게 되었는데 잠시 잊고 있던 그때 감정이 폭풍처럼 휘몰아치며 내게 왔다.

우연치 않게도 바로셀로나 편의 엔딩이 바로 내가 이별을 아쉬워했던 그 벤치, 그리고 떠나는 기차였다.

kelis의 lil star 가 흘러나오며 기차는 떠나갔다. 점점 멀리…….

내게 별 특별한 점은 없어요.


난 그저 작은 별일뿐이죠

내가 밝게 빛나는 것처럼 보인다면,

아마 당신이 가진 빛이 반사된 걸 거예요.


그녀도 나도 아쉬워서 그랬을까 기차를 타기 전 자꾸 뒤를 돌아봤다.

창가에 앉아 노을빛이 쏟아지는 바다를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우린 아무 말도 없이 그렇게 멀어져 가는 바다를 바라보았다.


바로셀로나는 이미 해가 지고 어두워졌다.

“오빠 이대로는 아쉬우니까 맥주 한 잔 해요!”

밤에 그녀와 맥주 한 잔 하고 오는 길에 아이스크림을 사 먹었다.

“오빠 한국에서 꼭 만나요. 나 프랑스 유학 끝나고 한국 돌아가면 그때 꼭이요!”

“나 잊는 거 아냐?”

“섭섭한 말 하지 마요. 절대 네버, 네버!”

나는 그저 웃었다.

“아, 맞다! 오빠 새벽에 나가야 하죠? 내가 배웅 해줄게요.”

“정말?”

나는 괜찮다고 했지만 그녀가 몹시 원하는 것 같아 새벽에 자고 있는 그녀를 굳이 깨웠다.

“네가 배웅 해준다고 해서 깨운 거다.”

혜민이는 눈을 비비고 일어났고 우리는 숙소에서 전날 준비해준 컵라면을 같이 먹었다.

내거였는데 혜민이가 뺏어먹었다.

잠도 덜 깼는데 눈을 비비며 라면을 먹는 그녀가 참 대단해보였다.

그래도 나를 위해 일어나 주었다는(물론 내가 깨웠지만) 게 너무 고마워 캐리어를 뒤집어 까서 아일랜드에서 산 레프러칸 (초록 옷에 수염이 나있는 꼬마요정) 열쇠고리를 선물로 줬다.

잘 간직하고 데리고 있다가 한국가면 다시 보여준다나, 어쨌든 나는 조용한 새벽녘 밖으로 나섰다.

혜민이가 문 앞까지 마중나와 손을 흔들었다.


“오빠 잘 가요. 우리 꼭 다시 봐요!”

그래 안녕…….


셰프형은 만나려 해도 만나기 어려운 것이 나와는 아주 먼 대구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재작년에 대구에 두 번이나 갔었는데 그때 가봤어야 했는데 몹시 아쉽다.

그 당시에는 멘탈이 완전히 무너져 누구도 만나기 싫었던 때였기에 가능성은 없었지만…….

나의 여정은 대전을 가서 미선이를 만나고 대구에서 셰프형을 만난 뒤 거제도로 가서 가윤이를 만나는 것이다. 세부에서 만난 티격태격 동갑내기 친구 가윤이는 거제도에서 노처녀로 살고 있다.

인터넷을 뒤져 형의 레스토랑 위치를 알아냈다. 나름 잘 나가고 있는 걸 보니 흐뭇하다.

아직은 이른지 손님은 없었고 나는 직원의 안내를 받고 창가 쪽에 홀로 앉았다.

일단 밥을 먹어보자. 어리바리 형이 얼마나 유능한 셰프 인지 음식을 맛보고 싶다.

사실, 형이 어리바리 한 것은 아니고 착한 거다.


잠시 후 내가 시킨 파스타와 피자가 나왔다.

파스타는 기본, 피자는 나폴리에서 먹었던 오리지널 맛에 견주어도 손색없을 정도로 맛있었다.

음식을 다 해치운 후, 계산을 했다.


“여기 셰프님이 사장님 맞죠?”

내 질문에 종업원이 그렇다고 했고, 나는 당장 불러달라고 했다. 이유는 말하지 않고.

주방에서 키가 휜 칠하게 큰 남자가 걸어 나왔다.

내게 친절하게 무슨 일이냐고 묻는 거 보니 나를 못 알아보네?

“형 저 기억 안나요?”

이 형은 여전히 착함과 어리바리 사이 어딘가에 있는 모습이었다.

어디서 본거 같지만 기억나지 않아 미안해 쩔쩔 매는 모습을 보니 웃음이 나왔다.

나는 친절히 나에 대해 알려줬고 그제야 형은 환하게 웃었다.

나도 어색함이 있었지만 그래도 반겨주는 형의 모습을 보니 진심이 느껴졌고 마음을 열 수 있었다.

잠시 만났던 사람인데 나를 기억해 주다니 고마웠다.

오히려 형은 내가 자신을 만나러 대구까지 온 거에 대해 꽤나 놀라는 눈치였다.

물론 그럴 테다. 기껏해야 이틀 본 사람이니까.


내가 가야 한다니까 맛있는 거 해 줄 테니 먹고 가라 했지만 나는 이미 배가 불렀다.

“그나저나 형 그때 있잖아요. 그때는 형한테 어떤 의미에요?”

‘분명 왜 이딴 질문을 하지? 하는 표정일 테지.’

“나도 가끔 그때 생각이 나. 너와 그 분수 앞에 앉아 이야기 했었잖아. 네가 내게 뭐라고 했는지 알아?”

헉, 생각이 안 난다.

차를 타고 달렸다. 풍경들이 사라져간다.

사람들은 모두 기억하지 못할 거라 생각했다. 그때 그 느낌, 모든 걸 잊고 살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셰프형은 아니었다.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세세한 것까지 다 기억하고 있었다.


“그때 네가 그랬잖아. ‘형 저 별이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 줄 알아요?’ 그때 이후로 나는 하늘만 보면 그 생각이 났어. 물론 너의 얼굴은 기억나지 않아도 그 순간이 계속 남아있는거지.”

별이야기는 사실 나의 레파토리기도 하다.


혜민이와 약속 장소로 나갔다.

꼴에 남자라고 긴장되는 건 어쩔 수 없다.

셰프형 만날 때와는 조금 다른 긴장감이랄까.

“오랜만이야!”

“신기하다.”

그녀의 첫마디는 '신기하다'였다.


표정은 그거보다 더 놀라는 표정이었고.

내가 연락을 할 줄은 기대도 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냥 오래 전 지나간 일이잖아요. 누가 그때를 기억하고 찾아오겠어요. 근데 정말 신기하고 반갑다.”

“혹시 기억나? 네가 나한테 같이 프랑스 가자고 했던 거.”

“내가요? 그럴 리가요.”

혜민이는 우리가 함께 했던 것들, 이야기들 대부분을 기억하지 못했다.

그때 그 말을 했던 사람은 누구였을까. 그녀의 기억 속에 있는 나는 어떠한 존재로 각인 되어있는 걸까.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살아가면서 겪는 모든 것들을 기억할 수는 없으니까.

기억이란 늘 그렇다. 누군가에는 계속 쓰이고 또 쓰이지만 누군가에게는 한 번 쓰고 버려지는 일회용 같은 존재.

혜민이와 만남을 기대했던 것은 그녀가 귀엽고 예뻐서가 아니다.


다른 이들과의 만남이 기대되는 것과 같이 그 순간이 그리워서다. 그 순간을 함께 했던 친구들과 만나서 기억을 공유하고 싶어서다. 그때 함께 했던 친구가 아니면 공감할 수 없는 감정들이기 때문이다.

여자들이 군대이야기를 이해할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내가 늘 서글픈 이유는 기억을 공유할 누군가가 없어서였다.

누군가는 기억할 테고 누군가는 기억하지 못하겠지.

그래서 늘 기억은 서글프다.


고민을 하다가 결국 보내기 버튼을 눌렀다.

8년 전 미선이.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만났던 키가 작고 얼굴은 까무잡잡하며 눈이 커다란 아이.

지난 8년 동안 그녀에게 연락 하고 싶었다. 만나서 우리가 함께 했던 아일랜드 추억을 공유하고 싶었는데 그럴 수 없었다.


내가 그녀에게 깊은 상처를 주었다고 생각했으니까.

우리 사이에는 많은 교감이 있었다. 요즘 말로 하면 썸 이랄까. 우리는 서로를 좋아하고 있었지만 사귀자고 하지는 않았다.

한국으로 돌아가서 끝까지 만날 수 있을까? 불확실한 미래? 물론 그런 것들도 하나의 이유였겠지만 내게 확신이 없었던 것 같다.

내가 떠나던 날 공항에서까지 그녀는 가지 말라고 했지만 나는 스페인으로 떠났다.

그래 맞다, 위에 혜민이를 만난 그 스페인.


물론 다시 만나기로 약속했다. 나는 무엇에 홀린 듯 필리핀 세부로 간다고 했고 그녀는 나를 따라 오겠다고 했다.

입국장으로 들어가다 뒤를 돌아보니 키도 자그마한 그녀가 나를 보며 울고 있었다.

왜 그리도 불쌍해 보이던지……. 마음이 아팠다.


나에게 너무나도 잘해주고 챙겨주던 그녀였지만 나는 무조건 마음이 움직이는 대로 따라갔다. 마음도 약해빠져 쉽게 흔들리는 나인데 왜 그때는 그리 굳게 마음을 먹었는지 모르겠다.

한국으로 돌아온 뒤 다시 세부로 향했다.

미선이도 나를 따라 세부로 오겠다고 했다.

하지만 그곳에서 운명의 그녀를 만났고 미선 이에게 미안하다는 메시지를 싸이월드에 남길 수 밖에 없었다.

답장은 받지 못했고 그녀는 나와 연결되어 있던 모든 것을 끊었다.

이해할 수 있었지만 마음이 좋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고 8년이 된 것이다.


무려 8년의 시간이 흘렀으니 나에 대한 배신감은 어느 정도 무뎌졌을 거라 생각했지만 이전에 전 여자친구에게 3년의 시간이 흐른 뒤 전화를 한 적이 있었다.

영화에서처럼 절제된 감정과 묘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고 믿었고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지나간 추억을 되새길 수 있을 거라 상상했다.

영화가 나를 망쳐놓았다. 나는 현실이 매번 영화같을 거라는 생각을 도대체 왜 한 것일까

현실은 많이 달랐다.

그녀는 내게 왜 전화 했냐고 따져 물었다. 내 이야기를 들으려고 하지도 않았다.

영화는 영화일 뿐이다.


한 번의 실패 때문인지 큰 기대를 하지 않고 연락을 했지만 다행스럽게도 미선 이는 기뿐 마음으로 받아주었다.

그래, 미선이는 쿨한 여자였어...


그리고 만나기로 약속 한 후 3개월 만에 그녀를 다시 만나는 것이다.

대전까지 차를 몰아 5시간 만에 도착했다.

가는 동안 그녀에게 톡을 하고 전화를 했지만 답장이 없었다.

미장원 가서 예쁘게 머리하고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대전에 다와 가는대도 연락이 없었다.

혹시나 나에 대한 복수를 하려 하는 건 아닐까?

제기랄.

어제까지만 해도 나를 다시 본다는 게 너무 떨린다고 말했던 그녀였는데 오늘 모든 것이 변했다.

당신이 내게 복수를 한다면 나는 기꺼이 달게 받겠다.

나는 끝까지 달려 대전에 도착했다.


전화가 울렸다.

“오빠! 미안해. 내가 어제 술 많이 마셔서 지금까지 잤어. 조금만 기다려 줘.”

이런 제길.

??

미장원도 아니고 복수도 아니었다.

5시간 동안 달려 도착했는데 코앞에 사는 그녀는 나보다 늦게 나왔다.

심지어 전날 술을 잔뜩 마시고 내가 온다는 것조차 까맣게 잊었고 나를 만나는 데 밥에 짬뽕까지 먹고 나왔단다.

그래도 8년 만에 마음의 짐을 덜 수만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녀가 도착해서는 나를 보고 차에서 내리지 않으려고 하는 모습을 보니 여전히 귀여웠다.


신기했다.

영화(또 영화)에서는 8년 후 라는 자막이 나오고 바로 8년이 지나가 버린다.

마치 그것처럼 너무 빨리 지나가 버린 8년이다. 우리 사이에 8년 동안의 기억은 없고 8년 전 아일랜드 기억만 남아있다.

고로 우리는 8년 이라는 시간을 훌쩍 뛰어 넘어 만난 것 같은 기분이었다.

어색함도 잠시, 우리는 이런 저런 이야기를 주고받았고 시종일관 웃음이 떠나질 않았다.

너무 반가웠고 기분이 묘했다.

시간을 달려온 것 같은 기분이랄까.


하지만 충격적이게도 그녀는 모든 것을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다.

나를 위해 공항에 배웅 나와 울었던 것도 버스에서 세순이 몰래 손잡았던 것도 다 잊었다.

나 좋아했던 건 기억하니? 라고 묻고 싶었지만 차마 그 말은 하지 못했다.

지난 8년 동안 그녀에게 상처를 준 것이 마음에 걸렸고 늘 그것이 마음 한쪽 구석에서 떠나질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내가 상처를 준 사실도 기억하지 못했다. 혹시나 여자의 자존심에 기억하지 못하는 척 하는 건 아닐까 했지만 확실히 그건 아닐 것 같았다.

나는 왜 8년 동안 마음의 짐을 안고 살았던 거지? 조금 억울하기도 했지만 후회하지는 않는다.

그녀가 기억하지 못한 다해도, 그때가 모두 지나가버린 시간일지라도 그때 그녀는 떠나는 나를 보며 분명 울었고 돌아서서 아파했을 거다.

어쩌면 현재의 사람들에게 예전 모습을 기대하는 것은 나의 욕심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모두 잊고 살아간다는 것이 왠지 서글프다.

혹시나 누군가에 기억에는 내가 모든 것을 잊어버린 사람일지도 모르지만...


나는 과거의 그녀를 만나러 왔지만 내 앞에는 현재의 그녀가 있었다.

그녀를 만났는데도 여전히 그녀가 보고 싶다는 게 아이러니했다.

내가 너무 과거에 머물며 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아니, 나는 확실히 그렇다.

시간은 계속 가는데 나는 계속 같은 자리에 머물러 있는 것 같다.

미선이가 잊은 아일랜드의 추억을 오랜동안 다 말해주고 나는 서울로 올라왔다.



그녀가 내게 왜 찾아왔냐고 묻는다면 나는 ‘기억을 바꿔주려고 왔다’ 고 말하려고 했다.

그녀는 분명 나와의 마지막 기억 때문에 아일랜드에서 좋았던 기억마저 퇴색되었을 거라 믿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든 것은 나만의 착각이었다.

그녀는 나에 대한 미움도 그리고 배신에 대한 분노도 없었다.

그녀가 기억하는 나는 어떤 모습일까?


그저 사라져간 기억들뿐이다.


‘미선아 내가 그때 떠나지 않았다면 지금의 우리는 어떻게 됐을까?’

그랬다면 과거의 그녀가 지금 내 앞에 있었을까.

어쨌든 마음의 짐은 사라졌지만 첫사랑을 다시 만나 실망하는 것처럼 내 생각과 너무 다른 그녀의 모습에 한편으로는 아쉬운 마음이었다.

어둠속의 고속도로를 끊임없이 달렸다. 마치 8년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처럼 멀게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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