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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성철 Jan 02. 2018

소셜플랫폼 알고리즘에 대한 소소한 투덜거림

우리는 알고리즘에게 콘텐츠 소비권리를 넘긴 적은 없다.

소셜플랫폼의 알고리즘으로 콘텐츠의 퀄리티를 가늠하는 시대이다. 결론적으로 나는 이것이 좀 불편하다.

인게이지먼트와 관련성이라는 기준을 중심에 두고 구성된 이 알고리즘은 나와 관련성이 높은, 혹은 높을 가능성이 있는 이용자 혹은 페이지의 콘텐츠를 우선 노출한다. 겉보기에는 아무 문제 없다. 모든 콘텐츠를 본다는 것이 가능하지도 않거니와, 관련성이 적은 콘텐츠에 노출될 경우 플랫폼을 이탈할 가능성도 높아진다는 것은 자명하기에. 그 결과 모두가 이 알고리즘을 닮아 가고자 하며, 이렇게 파편적으로 파악되는 알고리즘은 콘텐츠 제작에 지대한 영향을 주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우선적으로, 상위에 노출되는 콘텐츠만이 '좋은 콘텐츠'일까? 아니, 질문을 바꾸자. 노출되지 않는 콘텐츠는 나쁜 콘텐츠인가? '좋다'의 기준을 다시 한 번 생각해봐야 한다. 콘텐츠 측면에서 '좋다'의 기준은 너무나도 다양하다. 재미일수도, 의미일수도, 자각이나 환기일수도, 변화일수도, 그 밖의 무엇일수도 있다. 그렇다면 현재의 알고리즘은 이 다양성을 담아내고 있는걸까? (담아낼 수는 있는걸까?)

특성 상, 20대 사용량이 많다보니, 경성 콘텐츠보다는 연성 콘텐츠, 재미중심 콘텐츠의 반응도가 높다. 반면에 사회적으로 알아야 할, 이해되어야 할 중요한 관점들이 알고리즘이나 플랫폼 특성과 맞지 않아 외면당할 수도 있다. 이는 비단 콘텐츠의 컨셉이나 구성만의 문제가 아니다. '소비될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들어야지!'라는 말은 당연하고 동의한다. 하지만, 그럴 수 없는 부분도 존재한다. 소비의 주체는 소비자이지, 알고리즘이 아니다. 알고리즘에게 우리는 소비의 권리를 넘긴 적은 없다. 알고리즘을 닮아 있지 않아도 좋은 콘텐츠는 허다하다. 하지만, 콘텐츠 기획/제작 시 당연히 이런 알고리즘의 경향성이 최우선으로 반영할 수 밖에 없다. 알고리즘에 맞는, 최적화 된 콘텐츠를 더 많이, 더 지배적으로 제작되게 된다. 그렇지 않은 콘텐츠들은 '좋은'의 기준 바깥에 있는 것처럼 곡해되기도 한다.


의도치 않는 편향성도 가져올 수 있다. 내가 주로 보던 류의 콘텐츠라도, 그런 유형만을 소비하겠다는 것과는 다른 이야기일 수 있다. 나의 행동기반 알고리즘은 현재의 나를 반영할 수 있으나, 미래의 나를 알 수는 없다. 이는 추천시스템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알고리즘의 어두운 면에 대한 경고는 점점 논의가 증대되고 있다. 작년에 좋은 모임을 통해서 읽었던 '대량살상 수학무기 (Weapons of Math Destruction)'라는 책에서는 비단 플랫폼 뿐만 아니라, 사회전반에 확산되고 있는 빅데이터 중심의 수학적 알고리즘이 줄 수 있는, 주고 있는 폐해를 이야기하고 있다. 부정적 측면이 유독 부각되긴 했지만, 충분히 생각의 공간을 만들어주는 그런 책이었다.

물론, 이 알고리즘은 계속 진화할 것이다. 더 다양성을 담기 위해서, 혹은 더 최적화할 수 있는 방안을 찾을 것이다. 기술과 시간의 문제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난 그저 지금의 상황이 다소 불편할 뿐이다. 그냥 뭔가 신발 속의 작은 돌처럼 불편한 생각이 들어 투덜거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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