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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간서치 힐데 Mar 23. 2022

7일 자가격리 끝자락에서

ㅇㅇ, 자가 키트 양성 뜸


잉? 퇴근을 한 시간 남짓 앞둔 지난주 수요일 오후. 막내가 가족 단톡방에 톡을 남겼다. 남편이 코로나 자가진단 양성이라는 거다. 피가 거꾸로 솟는 느낌이었다. 회사에 상황을 알리고 부랴부랴 조퇴를 해, 집에 있는 두 아이를 데리고 신속항원검사가 가능한 인근 병원으로 향했다.


병원에는 사람이 꽤 많았다. 한참을 기다리다 순서가 되어 검사를 받았다. '신속'이라는 단어가 과장이 아니었다. 빠르면 2분, 늦어도 10분 내에 결과를 알 수 있다고 했다. 결과가 어떻게 될지 노심초사하며 마음 졸이고 있는데 의사 선생님은 여유롭게 이런저런 말씀을 건네신다. 한참 후에 세 명 다 음성이라며 알려주셨다.


마치 개선장군처럼 의기양양한 모습으로 한껏 신나서 집으로 돌아왔다. 그 사이 남편은 선별 진료소에 가서 검사를 받았다. 음성 3인방인 우리는 당장 양성 의심자인 남편 격리 작전에 들어갔다. 일단 내 방을 남편 방으로 하고, 거실 욕실은 남편만 쓰도록 했다. 남편이 방 밖을 나올 때는 무조건 마스크를 끼도록 했다.




음성 통지를 받았지만, 남편의 PCR 검사 결과가 나오지 않아 회사에는 일단 연가처리를 하고 상황을 지켜봤다. 자가진단키트 결과가 양성이라도 일부 음성으로 나오는 경우도 있다고 했기에 일말의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행운은 우리 편이 아니었다. 다음날 아침 보건소에서 양성 문자가 도착했다.


아이들과 나는 한껏 풀이 죽어 PCR 검사를 하러 집을 나섰다. 운전하는 걸 극도로 싫어하는 나를 대신해 라이드를 책임져왔던 남편이 집 밖을 나갈 수 없는 상황이 되니 이동하는 것도 쉽지 않게 되었다. 비가 조금씩 내리고 있었지만, 아이들은 대중교통을 이용하지 말고 걸어서 가자고 강하게 주장했다.


도보로 40분 거리에 있는 국립대병원을 찾았다. 점심 직후라서 인지 단 한 명의 대기자도 없었다. 나중에 알았다. 시청 선별 진료소와 달리 여기는 개인당 만원에 살짝 못 미치는 검사비가 있었다. 한산했던 건 그래서였을까? 게다가 얼마나 열정적으로 검사를 하던지, 나는 코피까지 쏟았다. MSG 살짝 뿌리자면, 뇌까지 뚫릴 것 같은 고통에 코 안이 마구마구 파헤쳐지는 느낌까지 더해졌다.




맛있게 저녁을 먹고 나니, 전화벨이 울렸다. 검사를 했던 병원이다. 셋 다 양성이었다. 어차피 결과를 바꿀 수는 없으니 긍정적인 방향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자가격리가 검체 채취일로부터 7일이기에 아들은 목요일에 있을 모의고사를 치를 수 있다. 나는 주말 불어 시험을 치를 수는 없지만 양성이니 다행히 환불은 받을 수 있다.


무엇보다도 남편의 위상이 높아졌다. 당장 마스크를 호기롭게 벗어던지며, 자신이 하루 먼저 격리가 끝난다며 위풍당당해했다. 격리기간 동안 먹을 식량을 계산해봤다. 계란을 무척 좋아하지만 남은 계란은 24알. 목요일은 이미 다 지났으니 남은 6일 동안 매일 최대 4개씩만 먹을 수 있다. 계란 프라이를 하면 인당 기본 2개씩은 먹었는데, 이제 무조건 1개씩이다.




집에 유폐되어 있는 동안 가장 큰 걱정은 세 끼를 어떻게 해결할까였는데, 의외로 쉽게 해결되었다. 주변에서 온정의 손길(?)이 끊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조카들이 확진이 되면서 자가격리의 불편을 먼저 겪어봤던 동생이 센스 넘치게 배달의민족 상품권을 선물해줬다. 친한 지인 몇 분도 배민과 요기요 상품권을 보내주셨다.


동생에게 소식을 들은 친정엄마도 각종 반찬과 고기를 잔뜩 해서 택배로 보내주셨다. 시어머니도 김치를 보내주셨다. 마켓 컬리 배송지역이었는지도 몰랐는데 죽과 국, 과일을 보내준 친구 덕분에 내가 사는 곳도 새벽 배송이 가능한 곳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본죽 마니아인데 본죽 상품권도 받은 덕분에 평소보다 더 다양한 음식으로 매끼 식단을 차릴 수 있었다.


따뜻한 마음을 주고받는 게 이토록  가슴 훈훈한 일이라는 걸 새삼 깨닫게 됐다. 내가 얻게 된 건 마음뿐만이 아니다. 현관문 밖으로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하고 매끼 고열량으로 먹다 보니 일주일새 3kg 가까이 늘어버렸다. 원치는 않았지만, 넘치는 피하지방과 볼륨감까지 선사받은 일주일이었다.


코로나가 나보다 더 열심히 살아


과학 숙제를 하던 막내딸이 요즘 유행하는 문장이라며 말해준다. 끊임없이 변이를 만들어가며 열일하는 코로나. 심각한 상황임에는 틀림없지만 기지 넘치는 유머로 비극을 희극으로 전환하려는 신박한 마음가짐에 잠시 감동하고 나니 요즘 내 삶이 불만스러워진다. 속해 있는 조직의 운명이 어떤 향방으로 흘러갈 지 모른다는 불안감 속에서 열패감과 당혹감으로 점철되어 한동안 무기력하게 지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일단 격리기간 중에는 잘 먹고 푹 쉬는 걸 최우선 목표로 삼았다. 하지만 이 목표를 달성한 후에도 시간이 넘치도록 많았다. 미션 중독자인 평소 나라면 이 시간을 그냥 흘러 보냈으면 안 됐다는 기특한 생각이 격리가 끝나기 하루  전에서야 들었다.


재택근무 프로그램을 깔지 않아 집에서 업무를 챙기는 건 한계가 있어, 일 외에 유의미하게 시간을 보낼만한 걸 찾다보니 올 초에 집필을 중단한 세 번째 책을 재개해야겠다 싶었다. 남편과 한 공간에서 지낼 수밖에 없는 조건이니 <부부>를 주제로 글을 엮기에 최상의 조건이다. 하지만 그동안 바쁘다는 핑계로 브런치와 블로그에도 통 글을 못쓰다, 오랜만에 쓰려다 보니 진도가 영 나가지 않았다. 관련 자료를 찾다 부부관계의 친밀도를 측정하는 테스트를 해봤는데 25점 중 딸랑 2점을 얻었다. 심각한 상황이다. 다행히 댓글 중 0점이라는 게 상당수 보여 위안을 삼았다.


마음은 자꾸 삼천포로 빠지고, 어떻게 글을 구성하면 좋을지 고민만 쌓여갔다. 글을 쓰다 막혀 브런치에서 부부를 주제로 쓴 글을 찾아봤다. 나와 비슷한 20년 지기 부부임에도 잉꼬부부로 살고 있는 분들의 글을 읽으며 정신이 번쩍 들었다. 세상에 진짜 이렇게 알콩달콩 아름답게 사는 부부가 있다니. 당장 공저를 제안하고 싶었다. 우리 부부는 반면교사 케이스로, 그 작가님 커플은 롤모델로. 이렇게 많이 부족한데 내 글이 과연 책으로 엮어서 나올 만큼 매력적일까라는 의구심이 글을 쓰는 내내 끊이지 않았다.




글쓰기를 재개하며 삶의 온도를 높이다 보니 한동안 고강도 거리두기를 해 온 3종 외국어 공부에 대한 열정의 온도도 함께 올라갔다. 토요일 밤 영어 스터디 멤버로 최근에 합류한 남성분은 실력이 꽤 탁월하다. 아이들에게 발음 지적을 늘 받기에 주눅이 든 나와 달리 그분은 발음부터 원어민에 가깝고, 구사하는 어휘 실력도 내가 가장 영어를 잘했던 시절에 버금간다.


별다른 공부를 안 하고 주 1회 1시간 스터디로만 만족하며 3년째를 보내니 영어실력이 엄청 퇴보한 상태였는데, 새로운 멤버분 덕분에 영어공부에 대한 열정이 되살아났다. 우크라이나-러시아 현상황을 과거 유럽 제국의 아프리카 식민지화 역사에 비견하며 국제회의에 참석해 전 세계의 결단을 요구하는 케냐 대표의 발언을 쉐도잉 하며 영어 공부의 포문을 열었다.


불어공부도 살짝 했다. 지난 주말에 있었던 불어 DELF 시험은 치르지 못했지만 11월에 있을 다음 단계 불어 시험을 준비하면서 B1 교재로 듣기와 독해 문제딱 1개씩만 풀고 문장을 정리해 암기했다. 불어 시험공부에 전념하면서 올해 거의 공부하지 못했던 일어는 생활일어 구사력을 높이기 위해 NHK 뉴스 듣기랑 쉐도잉으로 운을 뗐다.


자가격리 끝자락에서나마 내가 좋아하는 <빠르고 경쾌하게, 알레그로> 템포를 되찾아 다행이다. 오늘부터 자유의 몸이 되었다며 의기양양한 모습으로 분리수거에 나선 남편을 보니 콧바람을 쐬고 싶다는 열망이 이글거린다. 민폐 캐릭터 되지 않도록 앞으로는 자체방역에 더 세심하게 신경 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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