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부터 코노에 가고 싶었다. 딸들이 몇 달 전부터 졸라댔지만, 아는 노래가 없어서 마냥 손사래만 쳤던 게 미안했기 때문이다.
마침 아들 생일이 지난 일요일이라 함께 가볼까 싶었다. 하지만 아이 셋을 한자리에 모으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오전엔 큰 딸이 아르바이트. 오후엔 고3 아들이 학원행. 친구들과 놀러 나간 막내딸이 6시 넘어 귀가한 탓에 생일 축하 파티도 7시가 다 되어 간신히 시작했다. 왁자지껄 노래 부르고 웃고 먹고 가족 산책까지 마치고 나니 시간이 야심해 노래방은 아쉽지만 포기했다.
월요일 휴일에 친정 엄마 생신을 맞이해 모처럼 고향행을 했다. 친정 가는 김에 오랜만에 시댁에 먼저 들르기로 했다. 점심 거리를 사러 들린 곳 인근에서 코인 노래방을 발견했다. 호기심에 이글거리는 내 눈길을 읽은 남편이 1천 원 지폐를 한 장 건넨다. 시골이라 인심이 후하다. 천 원이면 3곡을 부를 수 있다.
주문해둔 음식이 나올 때까지는 10여분 남짓이 아직 남아 있었다. 딸 둘과 내가 한 곡씩 부르면 딱 맞다. 노래방에 익숙해 보이는 큰딸이 먼저 마이크를 잡았다. 태양의 <눈, 코, 입>. 잔잔한 곡조를 분위기 있게 차분히 잘 불렀는데... 점수는 충격적 이게도 0점이었다.
이제 막내 순서다. 노래를 고르는 데만도 한참이 걸린다. 이제 다음이 내 순서라 마음이 바빠진다. 뭘 부르지? 마지막으로 노래방을 간 게 도대체 몇 년 전이었는지 기억도 가물거린다. 수년 전에 동료분들과 가서 20년 전 노래 딱 한 곡 불렀던 게 그나마 최근이었던 듯싶다.
요즘 홀로 산책할 때마다 부르곤 했던 애니메이션 OST를 부를까? 요새 자주 들은 김광석의 <그날들>을 부르고 싶기도 하다. 지난주 토요일 불어 학원에서 접하게 된 유로비전 우승곡에도전해보고 싶기도 하고. 대부분 딸들이 태어나기도 전 화석급 오래된 노래들이네...
지금쯤이면 막내 노랫소리가 들려야 할 텐데 왜 조용하지? 정신을 차려보니 막내가 부르고 싶어 하는 노래가 잘 찾아지지 않는 듯하다. 화면 하단에 있는 버튼은 손대지 못하도록 투명 아크릴 판으로 막아뒀다. 노래를 찾고, 시작 버튼을 누르는 건 리모컨을 통해서만 가능한데, 리모컨이 말썽이다. 그나마 노래방에 익숙한 큰 딸이 리모컨을 만졌는데, 예상치 못했던 기기 오작동으로 원했던 게 아닌 듣보잡 노래가 시작됐다.
큰 아이는 살짝 아는 노래인지 중간중간 가사를 읊조린다. 원하는 노래를 놓친 막내의 레이저 뿜뿜 눈길을 견디며 간신히 노래를 끝내고 나니, 이번에도 여전히 점수는 0점이다. 이 정도면 노래방 기기가 고장 난 게 아닐까 싶다.
내가 부르려던 기회를 막내에게 통 크게 양보하고 나니, 딸의 가시 돋친 눈길이 살짝 부드러워진다. 하지만, 리모컨은 여전히 제대로 인식되지 않는다. 부르고 싶은 노래를 찾는 과정이 힘들어 보여 악보 책을 찾으려 두리번거렸다. 도대체 어디에 있는 건지 보이지 않는다. 큰 딸은 도대체 언제 적 이야기냐며 반문한다.
수차례에 걸친 노래를 찾는 시도가 불발에 그치자 막내가 마지못해 언니에게 리모컨을 넘긴다. 큰 딸의 손에 들어가니 리모컨이 작동되기는 한데, 무슨 조화인지 조금 전에 흘렀던 정체불명의 노래가 또다시 반복된다.
시간도 없는 데다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마음까지 상한 우리 3인방은 미련 없이 노래방을 떠났다. 원하는 노래를 못 불러 저기압인 막내딸이 차에 타자마자 신청곡을 받기 시작한다. 우리가 원하는 노래를 불러주겠다는 거다. 반응이 시원찮자, 부지런히 노래를 찾으며 목청을 가다듬는다.
노래방에서 실력 발휘를 못해 못내 아쉬웠던 막내딸은 30분 가까이 쉬지 않고 노래를 불러댔다. 일본 애니 노래를 몇 곡에 이어 풍선처럼 쉬운 대중가요로 레퍼토리를 옮겼다. 운전할 때 소리에 유독 민감해지는 남편이 평소 같으면 조용히 하라고 한마디 할 텐데 막내 마음을 거스르는 게 신경 쓰이는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석 달 후면 막내 생일이다. 그날엔 꼭 노래방에 가서 막내가 원 없이 노래 부르게 해 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