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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간서치 힐데 Jun 13. 2023

습관은 습관으로 덮는다

며칠 전, 회사 동료가 전해준 성과 내며 일하는 비법은 <일은 일로 덮는다>였다. 해야 되는 일의 가지 수가 많으면 차분히 모든 일을 해내기 쉽지 않다. 급한 마음에 시급한 일부터 처리하게 된다. 우선순위가 낮은 일은 자연스럽게 뒤로 밀린다. 중요한 일에 전념하다 보면 사소한 일에는 마음을 덜 쓰게 된다.


물론 이 중요함과 사소함을 가르는 기준은 지극히 주관적이다. 사장님을 비롯한 임원진의 관심이 큰 사안, 대중적 인지도가 높고 영향력이 큰 업무, 법정의무나 예산이 편성된 사업들, 언론에 노출되어 대응이 필요한 의제들이 통상 중요한 업무로 간주된다.


올 상반기는 거의 완전히 일에 파묻혀 지냈다. 브런치 글이 뜸할 수밖에 없다. 문득 왜 이렇게 살고 있나 의구심이 들었다. 헌신에 대해 정당하게 인정받으면 억울한 마음이 덜 들었을 게다. 노력에 대한 보상까지는 아니더라도 존중받지 못한다고 생각하니 서글퍼졌다. 나를 되찾고 싶어졌다.




내가 정의하는 나는 읽고 쓰는 사람이다. 나는 매일 다른 이가 쓴 글을 읽고, 나의 생각을 버무려 나만의 글을 쓰는 삶을 지향한다. 물론 내가 추진하는 업무의 상당수도 읽고 쓰는 거다. 하지만 회사에서 추진하는 업무만을 통해 온전한 기쁨을 누리는 건 쉽지 않았다.


나의 하루를 돌이켜봤다. 밤늦게까지 일하고 집에 돌아와 스트레스를 푼다는 핑계로 몸에 나쁜 음식들로 위를 채우곤 했다. 야식과 늦은 취침으로 인해 아침에도 간신히 눈을 떴다. 매일 새로운 하루가 시작되지만 전혀 신나지 않았다. 식사는 곧잘 폭식으로 이어졌고 무거운 몸이 못마땅했지만 바뀔 의지도 의욕도 없었다.




행복한 삶을 저당 잡힌 채 노예 같은 일상을 지속하면 내게 펼쳐질 내일도, 모레도 오늘과 별반 다르지 않을 거라는 위기의식이 팽배해졌다. 내가 원하는 삶은 이런 모습이 아니었는데...


변해야겠다고 결심했지만, 반년 가까이 자리 잡은 나쁜 습관이 좋은 습관에게 쉽사리 자리를 내주지 않았다. 변화는 더디게 나타났다. 결국 답은 <함께>였다. 나와 비슷한 방향을 바라보는 이들을 필사적으로 찾았다. 나쁜 습관에게 틈을 주지 않기 위해 열정 넘치는 이들과 함께 하는 일정을 매일 시간표에 촘촘하게 담았다.


고역스럽던 새벽기상이 언제부터인가 알람 없이도 일어나는 습관으로 바뀌었다. 알람이 울려도 이불속에서 미적거리던 습관이, 일어나면 비타민을 섭취하고 운동하는 습관으로 대체됐다. 출근 전 스터디 버디들과 영어 기사를 함께 묵독하고 영어로 이야기를 나누는 일상이 새롭게 자리 잡았다.




홀로 하면 쉽사리 무너지기에 이런저런 온라인 모임에 참여 중이다. 매일 평일 출근 전, 주말에도 4개의 스터디가 있다. 생각해 보니 오늘 저녁 퇴근 후에도 모임이 있다. 원어민 수준에 버금가는 실력을 지닌 이들과 대화하다 보면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듣기 실력이 일취월장해지는 느낌이다. 근무분야가 다양하니 나눌 이야기도 다채롭다.


온라인으로 만나는 이들이지만 수십 명에 이르는 다양한 이들과 교류하다 보니 사고와 인식의 외연이 넓어진다. 나보다 더 나이가 많지만, 더 뜨겁게 공부하는 분도 제법 계신다. 한 멤버 분은 무려 90주 가까이 결석 없이 스터디에 참여 중이시다. 최근에 알게 된 한 변호사 분은 현재 직을 그만두고, 유럽 쪽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예술가로 새로운 삶을 그리는 중이다.


일상은 여전히 바쁘지만, 일만 하며 정신없이 보낼 때와는 달리 삶에 대한 만족도가 수직 상승했다. 반년 넘게 공개 포스팅을 안 했던 블로그에 어제 오랜만에 글을 올렸다. 

https://blog.naver.com/justina75/223127081533


한 이웃님은 10년 전, 새벽 4시에 기상하며 부지런히 살던 내 모습을 기억하며 응원 댓글을 남겨주셨다. 원래 내 모습을 서서히 되찾고 있으니 이제 브런치 글도 종종 올려야겠다.


읽고 쓰는 사람이라는 내 정체성은, 내가 책을 읽고 글을 쓸 때만 오롯이 유지될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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