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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간서치 힐데 Oct 10. 2022

한 뼘 더 가까워지기

이번 주 토요일에 결혼식에 올 거니?


수요일 통화한 엄마가 물으신다. 잉? 무슨 결혼식일까? 어렸을 때 함께 살았던 막내 고모의 둘째 딸 결혼식이 서울에서 있다는 거다. 예전에 잠깐 말씀하셨다는데 까맣게 잊고 있었다. 부모님이 다 오신다니 부모님도 뵐 겸 가야 할 듯한데... 문제는 3일 연휴에 맞춰 이런저런 일정을 미리 잡아놓았다는 거다. 부랴부랴 선약을 취소하고 딸에게 연락했다.


이번 주 토요일 알바 대신 나랑 서울 가자


토요일을 부랴 이틀 앞두고 빠진다는 말을 점장님께 하는 게 어려울 테다. 다행히 점장님이 허락해주셨다는 회신이 왔다. 결혼식에 입고 갈 옷을 고르고, 오랜만에 딸과 단둘이 서울 데이트니 오전, 오후에 갈만한 장소를 골랐다. 연휴라서 인지 기차표가 거의 다 매진이라 아침 일찍 출발해 밤에 내려오는 표를 예매했다.


엄마, 기차표가 좀 더 나왔어요


토요일 7시 기차를 타기 위해 5시대에 일어났더니 딸이 반갑게 소식을 전한다. 잠시 망설이다 좀 더 늦은 표를 구매했다. 오전 일정으로 알아봤던 영화보기, 예쁜 카페 가기, 핑크뮬리 감상하기, 미술관 방문하기가 모두 다 여의치 않아서 '덕수궁과 경복궁 거닐기'가 마지막 선택지였는데 그렇게까지 끌리는 옵션은 아니었기에 미련 없이 아침잠 두 시간과 바꿨다.


졸업사진 찍는다고 쇼핑하러 엄청 다녔지


느지막이 출발했기에 서울에서 처음 발도장을 찍은 곳은 결혼식장이 있는 명동이었다. 미리 장소를 확인해두고 남은 2시간 동안 익숙한 거리를 천천히 구경했다. 마침 대학 친구가 메시지를 보냈길래 추억이 어린 명동을 거니는 중이라고 회신했다. 친구도 감회가 새로웠는지 명동에 깃든 사연으로 답했다.


갖가지 기억이 담긴 상가 대신 새롭게 조성된 곳이 많아 낯설기도 했지만, 명동은 언제 방문해도 늘 익숙한 느낌 그대로였다. 가족들과 함께 세례를 받았던 명동성당도 오랜만에 찾아봤다. 마침 여기서도 결혼식이 열릴 예정이라 곱게 차려입은 하객이 드문드문 보였다. 1시간쯤 거닌 후 카페에 들러 잠시 쉬다 부모님이 도착하셨다는 소식을 확인하고 목적지로 향했다.


어머나, 00 딸이 이렇게 컸구나


부모님은 늘 나를 앞세워 자랑거리로 삼고 싶어 하셨다. 10대 때는 뛰어난 성적표, 20대 때는 명성 높은 대학과 좋은 직업, 30대 때는 건강한 세 아이들, 40대 때는 박사학위, 저서 출간, 승진... 왜 부모님 인생 대신 내 삶을 전면에 내세우시는 걸까 못마땅하게 생각한 적도 많았다.


부모님 입장이 되어보니 이제 알겠다. 내 인생의 반경은 자녀의 삶까지 포함한다. 나보다 키가 훌쩍 크고 나보다 더 날씬해진 큰 딸과 함께 다니면 내가 뭔가 굉장한 것을 이룬 듯한 생각에 뿌듯해진다. 결혼식장에서 만나는 친지분들은 몰라보게 크고 예뻐진 딸의 모습에 다들 감탄사를 연발하셨다. 부모님이 느끼셨을 자랑스러움이 이제 확실히 이해가 간다.


연애할 때도 안 잡던 팔을,
아빠 잃어버릴까 봐 팔짱 꼭 끼고 다녔다


내가 낳은 딸이 이렇게 몰라보게 성장하는 동안, 나를 낳아주신 부모님은 몰라보게 노쇠를 겪고 계셨다. 친정집에서 뵐 때와 달리 밖에서 만나본 엄마와 아빠는 내가 알고 있던 모습보다 더욱더 세월의 흔적이 역력했다. 걷는 것도 힘들어하시길래 식당에 앉아 계신 부모님을 위해 부지런히 음식을 갖다 드렸다. 부모님을 챙기느라 정신없는 나를 위해 딸이 디저트와 과일을 챙겨줬다. 내리사랑 대신 치사랑이 제대로 표현되는 하루였던 거다.


중매로 만나 서로에 대한 애정표현이 거의 없으셨던 부모님. 엄마는 눈도 잘 알보이고 거동도 힘들어하시는 아빠를 행여 잃어버릴세라 팔을 꽉 잡고 다녔다며, 식당을 먼저 떠나시며 아빠 팔을 꼭 잡고 식장으로 오라며 신신당부하셨다. 남들에게는 유독 친절하지만 배우자에게만은 데면데면한 건 내가 엄마를 닮은 게 아닌가 싶다.


20여 년 만에 만나는 사촌들


친정 인근에는 아버지의 큰누나와 두 남동생이 사신다. 큰고모와 작은 아빠들 자녀들인 사촌들과는 종종 얼굴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서울 인근에 사시는 둘째 고모부터 다섯째 고모들은 좀처럼 뵐 일이 없었다. 자연스럽게 고종사촌들도 만나기 쉽지 않았다. 어렸을 때부터 고종사촌들끼리는 꽤나 친하게 지내는 것 같았는데, 내가 낄 틈은 없어 보였다.


내 결혼식 때 만난 뒤 20년이 지나 처음 보는 사촌도 있었다. 어렸을 때 모습이 남아 있어 더욱 반가웠다. 피를 나눈 혈족인데도 이렇게 오래 만나지 못하고 소식을 나누지 못하니 오히려 가까운 친구나 직장 동료보다도 먼 사이가 되었다는 생각에 서글프기도 했다. 내가 좀 더 여유가 있었더라면 사촌동생들을 챙길 수 있었을 텐데라는 아쉬움도 살짝 들었지만, 내 자식 챙길 여력도 못 낼 때가 많은데..라는 생각에 오지랖은 접어뒀다.


가방이 왜 이렇게 무겁지?


부모님을 비롯한 혼주인 고모의 형제자매들은 결혼식 후에 막내 고모댁에서 1박을 하시기로 하셨다. 아쉽지만 인사를 드리고 딸과 함께 대학로로 이동했다. 자신감을 북돋아준 힐은 과감히 벗어던지고 미리 챙겨 온 편한 신으로 갈아신으려 가방을 여니 감과 대추가 든 봉지가 눈에 띈다.


엄마가 주시겠다는 걸 손사래를 치며 싫어하니 나 몰래 가방에 넣어두신 거다. 결혼식 후에도 이리저리 많이 걸을 예정이었기 때문에 가방을 무겁게 하는 건 피하고 싶었지만, 엄마의 마음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가방 무게를 줄이는 차원에서 감 하나를 딸과 나눠먹었는데 의외로 꽤나 달콤했다.


대한민국은 연애 공화국


대학로에서 보기로 한 연극은 <너와 나 사이 한 뼘 사이>였다. 평을 찾아보니 괜찮길래 급하게 예매했는데 200여 석이 만석이었다. 이 중 남녀 커플이 아닌 관객은 나를 포함해 고작 4 커플이었다. 두 커플은 여성들, 한 커플은 남성 4명이었다. 물론 이들도 커플일 수 있지만... 어쨌거나 모녀지간으로 온 관객은 우리가 유일했다. 다음에는 딸도 남자 친구와 함께 대학로를 찾을 수 있기를...


멀티맨의 대활약으로 극의 절반 이상이 채워졌지만 다른 네 명의 연기도 괜찮아서 한 번 보기에는 괜찮았다. 참여형 연극인지라 관객이 함께 등장해서 좀 더 몰입감을 느낄 수 있었다. 돌아오는 길에 검색해보니 이것보다 더 평이 좋은 연극도 제법 있었다. 집에 돌아와 아들과 막내에게 연극 함께 볼 생각이 있냐고 물어보니 완강하게 거절한다. 큰 딸이 애인이 좀 천천히 생기면 좋겠다는 이율배반적인 생각이 잠시 들었다.


다른 신청곡 있으신가요?


연극을 보고 나오니, 인근에서 버스킹이 한참이었다. 여의나루에서 세계 불꽃놀이를 한다고 해서 딸의 의향을 살짝 떠봤는데, 100만 명이나 운집할 거라는 소식에 고개를 저었다. 저녁 일정이 다소 여유로워져서 대학로를 좀 더 즐기기로 했기에 1시간 가까이 버스킹을 감상하고 사례비를 남겼다. 가족끼리, 연인끼리 즐기는 이들도 있었지만 나 홀로 여유롭게 노래를 감상하는 사람도 제법 됐다.


요즘 노래를 거의 알지 못해 흥이 조금 떨어진 건 사실이다. 댄스곡을 즐기지만, 그나마도 10여 년 전 유행했던 노래들이니. 좀 더 흥겹게 인생을 살려면 과거 추억에만 잠겨있지 말고 요즘 삶 안으로 들어가 체험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울역 아울렛에서 할인해도 여전히 비싼 옷들을 눈으로만 즐기고, 딸이 먹고 싶어 하던 분식으로 요기를 때우고 집으로 돌아왔다. 밤 11시가 넘으니 제법 쌀쌀해서 서로 꼭 붙어 걸음을 재촉했다. 15시간 데이트 덕분에 딸과 한 뼘 더 가까워진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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