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아침 6시를 막 넘겼을 뿐인데, 막내딸이 벌써 일어났다. 뭘 하는 건지 부산스럽다. 거실에서 외국어 공부를 하다 궁금증을 못 이기고 큰 방 문을 살짝 열어봤더니 키를 재고 있다. 막내딸이 그새 훌쩍 커서, 몇 년 전 큰 딸 키에 근접하고 있다.
키로는 우리 집 막내인 나도 질세라 한 번 재본다. 혹시 밤새 컸을 수도 있지 않은가! 야속하게도 변함이 없다. 막내는 키가 큰 건, 어젯밤 일찍 잠자리에 들었고, 아침에 기지개를 켠 덕분이라며 의기양양하다.
중학생이 된 막내는 공부와 친하지 않다. 어제 학교에서 진단평가를 봤지만 결과가 통보되지 않기에 무사 태평하다. 새로 사귄 반 친구들과 금세 친해져서 매일 학교 가는 걸 즐거워한다. 친구들 덕분에 학교를 좋아하는 건 기쁜 일이지만, 학교 공부도 좋아하면 더 기쁠 듯하다.
"딸, 아침에 일찍 일어난 기념으로 아침 공부 어때?"
말이 끝나기가 바쁘게 딸은 옷을 챙겨 입는다. 아침 일찍부터 어딜 가려는 걸까?
"친구랑 배드민턴 치기로 했어요."
나도 운동하러 나가려던 참이었는데... 예전에는 내게 배드민턴 함께 치자고 졸라대곤 했는데, 이제 나는 운동 짝꿍도 더 이상 아니다.
30여분 남짓 근력운동을 끝내고 집에 돌아오다, 마침 운동을 끝낸 딸과 마주쳤다. 친구와 함께 있어서인지 시크하게 인사하고 만다. 오히려 얼굴을 아는 딸 친구가 더 따뜻하게 인사를 건넨다.
아침밥을 먹고 나서 핸드폰을 보며 망중한인 딸에게 2차 도전을 해본다.
"딸, 아침밥도 먹었는데 이제 슬슬 공부 좀 해보면 어때?"
갑자기 딸이 또 바빠진다. 이번엔 또 어딜 가는 거지?
"태권도장에 승급심사 연습하러 가요."
어제 태권도장에서 안내 문자를 받았던 기억이 이제야 난다.
점심때쯤 딸이 돌아왔다. 휴일이지만 쉬지 못하고 회사 일을 계속하며 스트레스가 쌓인 내 시선이 딸에게 향한다. 딸이 공부하면 좀 덜 억울하고, 좀 더 기쁠 듯하다. 오늘 내 단골 레퍼토리를 포기하지 않고 다시 한번 꺼내본다.
"딸, 엄마도 이렇게 열심히 일하는데, 이제 공부 좀 하면 어때?"
나의 세 번째 도전도 무참히 박살 났다. 부지런히 옷 갈아입는 딸,
"친구랑 증명사진 찍으러 갔다 올게요."
엄마 저, 오늘 5시간 걸어서 너무 힘들어요
저녁 시간까지도 안 들어오던 딸이 드디어 들어왔다. 공부 이야기를 꺼내볼까 했더니 먼저 선수를 친다. 내 딸이지만 협상력은 나보다 훨씬 낫다. 오늘은 완벽한 KO패다.
그런데 곰곰 생각해보니 딸이 나한테는 존댓말인데, 아빠한테는 반말이네. 난 나보다 나이 어린 사람이 반말하면 가깝게 생각돼서 좋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