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간서치 힐데 Mar 29. 2021

용감한 여인

매일 아침 출근 전에 TED를 쉐도잉 하는 게 일상 리추얼 중 하나다. 하지만 나의 최애 TED가 얼마 전부터 불편할 정도로 광고가 많아져 유튜브에 있는 TED ED로 발길을 돌렸다. 3월의 마지막 월요일 새벽, 내 곁에 다가온 TED ED 스토리는 도미니카 독재에 맞서 싸운 용감한 자매들의 이야기였다.


학창 시절부터 역사와는 담을 쌓았더랬다. 외울 건 너무 많았는데, 그저 밋밋하게 연대표를 읊어주는 선생님의 수업방식은 그나마 조금 남아있던 흥미마저도 없애기에 충분했다. 한국사는 물론이고, 중학교 때 잠시 만나게 된 세계사도 마찬가지였다. 서른 훌쩍 넘어 이런저런 책을 읽고, 영어 공부한다는 명목으로 읽는 자료를 넓혀가면서 조금씩 견문을 넓히고는 있지만 여전히 세계사와 관련한 내 지식은 일천하다.




이런 내게 오늘 TED ED에 소개된 도미니카 여인들의 이름과 이야기가 낯선 것은 당연지사. 20세기 중반, 30년 이상 독재정치를 펼친 트륄로에 맞서 반대운동을 이어간 미라발가 세 자매는 나비들(las mariposas)이라는 별칭으로 불렸다고 한다. 이들이 처음부터 비장한 각오를 품고 독재정권에 항거한 것은 아니었다. 독재자의 성희롱에 발끈했던 둘째 미네르바의 반응이 트륄로의 개인적인 원한을 사게 돼, 아버지가 모진 고문으로 사망하게 되고 재산까지 몰수당하자 미네르바는 여전사로 변신하게 된다.


미네르바의 용맹한 행보를 만류하던 언니와 엄마도 후에는 합류하게 되고, 형부와 남편이 함께 하면서 미라발가는 제대로 독재자의 눈밖에 나게 된다. 잡히기도 여러 번, 갖은 고문과 구타, 강간까지 당하면서 모진 고초를 당하다 결국 이 세 자매는 몽둥이로 맞아 죽는다. 부패한 정권은 이 자매들이 타고 있던 차를 절벽 아래로 밀어뜨려 사고사로 위장한다. 하지만, 세간의 분노는 거셀 수 없게 커졌고, 도미니카 독재를 후원해오던 미국까지도 등을 돌리게 되면서 이 자매들의 사고 6개월 후 독재자도 암살당하게 된다.




'용기'는 내 삶에서 늘 외면하고 싶은 주제였다. 특히 사회인이 된 후 더욱 용기와는 고강도 거리두기를 하게 되었다. 두 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용기'를 내세웠다간 직장을 잃을 수 있는데, 내가 생각하는 부정의가 내 삶의 터전과 맞바꿀 만큼 그리 대단한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첫 번째였다. 두 번째 이유는 그렇게 대단한 것을 이룬 이들과 나는 DNA부터 다르고, 나는 그저 평범한 소시민에 불과하다는 나 자신에 대한 평가에서였다.


늘 이랬던 건 아니다. 중학교 시절, 선생님의 부당한 지시에 억울한 상황에 처한 친구를 구해주기도 했고, 이후 그 친구에게 영웅대접을 받은 경험도 있다. 이후에도 간간히 부당하다고 생각되는 상황에서 겁은 났지만 용기를 내서 목소리를 낸 적이 몇 번은 있다. 용기와 비슷한 결인지는 모르겠지만, 무례한 상사에 대해 발끈하는 건 여전하다. 하지만 20년에 걸친 사회생활의 결과, 그저 사회에 순응하는 것이 내겐 어느새 우월 전략이 되어 버렸다.




영화 1987을 보면서 격하게 공감했던 대사가 있다. 김태리가 분한 연희의 "나 하나가 그런다고 세상이 바뀔 거 같아?"였다. 나부터 변해야 세상이 바뀐다는 건 알지만, 내 삶을 송두리째 내줘야 하는 큰 용기가 필요한 일에는 연희의 대사를 읊조리면서 고개를 떨궈왔던 게 지금까지 내 모습이었다.


비겁하고 비루하게 살아온 내게 오늘 TED ED 이야기가 더욱 큰 울림을 줄 수밖에 없었던 까닭이다. 그럼에도 이 여인들의 용맹 무쌍한 삶이 평범한 내 삶과 극명한 대조만을 이룬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는다. 미네르바도 처음에는 그저 유복한 집안의 혜택을 누리며 살던 여학생에 불과했다. 독재자에게 개인적인 불쾌감과 증오심을 품기 전까지는.


민주화 운동에 헌신했던 분들도 모두가 다 위기에 빠진 국가를 구하겠다는 비장한 결심에서 그 행렬에 동참하게 된 것은 아닐 게다. 한참 뜨거웠던 열기가 가신 후에 대학에 입학해서일까. 내 주변 이들 중, 나와 별로 성향이 다르지 않아 비슷한 길에서 대학 생활을 시작했던 이들이 있다. 놀랍게도 이후 꽤 다른 행보를 보이게 되었는데, 이들이 나와 다른 길을 걷게 된 계기나 시작점은 그리 거창하지 않았다. 그저 동아리 활동을 하다, 학생회에 몸담고 활동하다 자연스럽게 사회적 약자의 권익 대변가로 여정을 넓혀가는 사례가 꽤 있었다.




그러고 보니 사회 불의에 항거하는 것은 선택받은 이들만 할 수 있는 것은 아닌 게 분명하다. 나도 내 자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범위에서 조금씩 사회를 진일보하게 만들면 되는 거 아닐까? 지금 내 일 자체가 사회에 기여하는 것과 관련되어 있으니, 그런 점에서 나는 일단 유리한 고지를 점한 듯하다. 그럼에도 썩 만족스럽지 않다. 어떻게 하면 나도 좀 더 용감한 여인으로 변신할 수 있을까?


UN은 미라발 자매가 처형당한 11월 25일을 <세계 여성 폭력 추방의 날>로 정했다. 마침 내 결혼기념일이다. 기념일을 챙기지 않는 내겐 그리 의미 있는 날이 아니었는데, 올해부터는 특별한 날로 만들려고 한다. 폭력 아래 신음하는 여성들을 위해 조금씩이라도 기부를 시작해볼까 한다. 내 희미한 기억력을 믿을 수 없으니 캘린더에 저장부터 해야겠다.

작가의 이전글 멀어지는 막내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