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으로 찾았던 게 언제였는지 기억조차 가물거린다. 그동안 완전히 잊고 있었던 건 아니다. 몇 차례 시도를 해봤지만 실패로 끝났다. 내가 원할 때는 그곳이 준비되어 있지 않았고, 그곳이 가능할 때 나는 여력이 되지 않았다. 가기 힘든 곳이 되어버리니, 가고 싶다는 열망이 더욱 커졌다. 그럼에도 우리의 만남은 1년 남짓 계속 엇갈렸다.
드디어 성공. 그곳의 문을 열었다. 익숙한 공간배치와 익숙한 느낌, 익숙한 분위기가 나를 반긴다. 오랜만에 밟아보는 2층 층계 위에서 발걸음을 조심해본다. 어지러울 정도로 설레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다시 천천히 둘러보니 달라진 점이 보인다. 못 만나는 동안 나는 그다지 변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데, 이 곳은 변했다.
일단 사람이 없다. 마치 캐나다에서 만났던 그곳과 유사하다. 처음 그 장소에 갔을 때 받았던 신선한 충격이 재현된다. 한국에선 늘 사람들로 가득 찬 밀도 높은 공간이었던 그곳이 이렇게 한적한 곳으로 변신할 수 있다니. 사람이 적어 소음도 거의 없으니 공기 순환 팬이 가동되는 소리가 더욱 크게 느껴진다.
방문객이 줄면서 내가 누릴 수 있는 공간이 그만큼 넓어진 것도 기분 좋은 변화 중 하나다. 가로 180cm, 세로 120cm가량 되는 직사각형의 공간을 호젓하게 독차지하게 되었다. 지나칠 정도로 가깝게 위치한 타인의 시선과 몸짓, 숨소리에 방해받지 않고 나 홀로 시간을 마음껏 즐길 수 있다.
1년 남짓만에 드디어 도서관에 발을 디딜 수 있었다. 거리두기 강도에 맞춰 개관과 휴관을 거듭하다, 사전예약제가 어느 정도 자리 잡은 지 몇 달이 흘렀다. 하지만 근무시간에만 운영되는 평일 사전예약제는 이용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주말 사전예약제는 선착순 신청 경쟁에서 이길 도리가 없었다.
어제는 마침 오랜만에 받은 하루 휴가였다. 토요일을 반납하고 온전히 일하고, 월요일 자정 가까이까지 일한 후 얻은 소중한 하루였다. 이 특별한 날, 드디어 도서관 방문신청에 성공했다. 도서관에 앉아 있으니, 이 곳에서 불태웠던 예전 날들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고교 학창 시절, 친구들과 공부하기 위해 자주 찾았던 곳은 도서관이었다. 대학 시절에도 늘 도서관에 자리를 두고 수업을 듣고, 공부를 하고, 친구들과 교류했다. 퇴근 후 나의 유학 준비 동반자도 도서관이었다. 책 좋아하는 내게 책도 빌려주고, 외국어 공부 좋아하는 내게 공부할 수 있는 공간도 내어주는 고마운 존재다.
이 정겹고 고마운 곳에서 어제 딱 한 시간을 보냈다. 읽고 싶은 책을 찾아서 대출신청을 했다. 가져간 외국어 단어장을 보면서 외웠지만 또 잊어버린 단어와 구문을 반복했다. 시립도서관에서 제공하는 서점연계 희망도서 구입 후 대출서비스도 신청했다. 문득 지금 느끼는 이 감정이 사라지기 전에 글로 남겨야겠다는 간절한 마음에 사로잡혔다.
도서관에서는 각 잡힌 마음으로 가득 찼건만, 집에 돌아오니 다시 심신의 일탈이 시작된다. 엄격한 규율을 집에서까지 적용해볼까 살짝 고민하다 그만뒀다. 반 백세에 가까워지는 나 자신에게 숨 쉴 틈을 주고 싶었다. 집에서만큼은. 신체적 변화를 고려한 기특한 생각인지, 그저 편하게 시간을 보내고 싶어하는 내 본능의 유혹에 굴복한 것인지 명확하지 않았지만.
어제 감흥을 바로 글로 남겨놓지 않아서일까. 도서관 방문 후 16시간 가까이 지나버린 후 감동을 남길려니 맥빠지는 기분이다. 다음부터는 도서관에 갈 때 아예 노트북도 가져가야겠다고 다짐해본다. 글 쓰고 싶을 때 바로 쓸 수 있도록.
어제 빌린 책은 총 5권이다. 코로나 전에는 온 가족 대출증으로 20권쯤 거뜬히 빌렸는데, 이젠 불가능하다. 사전예약에 성공한 사람만, 자신의 대출증으로만 빌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책들은 블로그 이웃님들의 포스팅에서 보아온 책을 중심으로 골랐다.
헤르만 헤세의 <어쩌면 괜찮은 나이>, 하루키의 가벼운 소설 한 편, 타라 웨스트오버의 감동실화 <배움의 발견> 등이다. 빌려둔 책 읽을 생각에, 출근도 하기 전인데 벌써부터 퇴근이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