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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간서치 힐데 Apr 05. 2021

왜 태어난 계절을 좋아할까?

매년 이맘 때면 고등학교 시절 국어 선생님이 떠오른다. 그 선생님은 본격적인 신록의 계절로 들어서기 전, 초봄의 여리디 여린 초록빛. 곱고 연한 연두색. 약동하는 새 생명의 상징과 같은 그 색을 좋아하셨다. 짙은 녹색이 우거진 강인한 숲보다 아직 약하지만 희망을 잔뜩 품은 엷은 초록색을 찬양하셨다.


이후부터 나도 새순이 돋아나는 초봄을 즐기게 됐다. 그럼에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계절은 여전히 봄이 아닌 가을이다. 그것도 다름 아닌 내가 태어난 달인 10월이 가장 좋다. 동료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태어난 달을 좋아하는 건 비단 나만이 아니란 걸 알게 됐다. 신기했다. 집에 와서 아이들에게 물어보니 아이들 친구들도 마찬가지란다.




내친김에 좀 더 알아봤다. 하지만 구글링을 해봐도 맘에 쏙 드는 과학적인 근거는 안 보인다. 간신히 찾아낸 연구는 태어난 계절이 기질과 성향에 영향을 미친다는 거다. 이전 연구들이 세로토닌과 도파민 수치에 따라 달라지는 개인별 성향에 초점을 맞춘데 반해, 헝가리의 세멜바이스(Semmelweis) 대학에서는 태어난 계절(birth season)이 성인이 된 후 성격 특성에 미치는 영향을 입증했다고 한다.


꽤나 흥미롭다. 여름에 태어난 이들은 겨울 생보다 감정의 기복을 빠르게 큰 차이로 겪을 가능성이 높다. 봄과 여름에 태어나면 높은 에너지와 긍정 성향을 띠는 경향이 있다. 가을 생은 겨울 생보다 우울증에 덜 걸린다. 겨울 생은 다른 계절 생보다 까다로운 성향이 덜하다.


일견 모순되어 보이기도 한다. 여름은 해가 가장 긴 계절이다. 세로토닌의 수혜를 듬뿍 받을 수 있다. 하지만 과도한 것은 모자란 것만큼 위험할 터. 그래서일까? 햇빛의 풍요로움 속에 태어난 여름 생이 햇빛을 갈구하는 겨울 생보다 감정의 고저 차이가 더 크고 변화가 자주 일어나는 게.


에너지 넘치는 봄과 여름에 태어난 사람이 보기에 겨울 생은 어두운 성향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겨울 생은 변덕보다는 일관성 있는, 그래서 때로는 더욱 듬직하고 믿음직스러운 모습을 보여주는 거 아닐까?




천상 내성적인 아이의 전형이었던 나는 어렸을 때부터 생일이 부담스러웠다. 세상에 태어난 것은 분명 축복받아 마땅한 일이거늘, 그날 내게 쏟아지는 관심이 부담스러웠다. 관심이 없는 것은 더 서글펐다. 생일날에는 마냥 숨어버리고만 싶던, 수줍던 아이가 생일을 조금씩 즐기기 시작한 것은 고등학교 무렵이었다. 당시 책과 장미꽃 한 송이 건네는 것이 한참 유행이었고, 나 또한 당시 관행에 편승한 것이다.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지는 부담스럽지 않은 얇은 책 한 권과 꽃 한 송이. 정성 어린 엽서 한 장. 물론 친구들 간의 인기를 한 몸에 받았던 몇 친구들은 이런 평균치에서 크게 상회하는 선물꾸러미를 한품에 안고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표정으로 집으로 향하곤 했다. 그러나 대개는 자신과 친한 몇몇 친구들의 선물에 만족하는 수준이었고, 나도 내가 챙겨준 만큼의 친구들에게 내가 챙겨준 정도의 선물만 받았다. '무난한' 생일이었던 것이다.


스무 살이 다 되도록 생일이라고 집에서 멋진 파티를 열었다거나 외식을 했던 기억은 없다. 결혼 후 또한 생일이라는 단어가 특별한 의미로 다가온 적이 거의 없다. 아이들이 생기니 케이크를 가운데 놓고 함께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는 식상한 리추얼이 함께 한다는 것과, 가끔 예상치 못한 아이들의 선물이 기다리고 있다는 정도다.




내 생일인 시월의 마지막 날이 등장한다는 이유만으로 <잊혀진 계절>이란 노래를 좋아하던 때가 있었다. 스포트라이트가 싫어 얼른 지나갔으면 하고 바라왔던 내 생일. 하지만 어른이 된 나는, 내 생일이 들어있는 10월이 좋다. 가을이 좋다. 아마 엄마 뱃속을 떠나 처음 경험한 세상의 느낌이기에 좋아하는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입으로는 싫다고 말하지만, 특별할 수밖에 없는 내 생일이 자리한 계절이라 좋아하는지도 모르겠다. 생일이란 아무리 무난하게 넘기려 해도 소소한 축하 세리모니가 오고 가기 마련이니. 1년 간 얼굴 한 번 못 본 친구도 그 날만큼은 축하 문자를 남기기도 하니.


엄마 신체로부터 독립해 홀로서기를 하는 그 계절. 뇌리 속 기억에는 없지만 몸이 기억하고 저절로 반응하는 그 계절. 나의 시작과, 나의 독립과, 나의 기쁨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겨져 있는 바로 그 계절을 나는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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