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간서치 힐데 Apr 11. 2021

작심 세 시간

내 삶의 방식은 뜨겁다. 하지만 뜨거운만큼 빨리 식는다. 늘 끓어오르기만 한다면 내 체력이 열정을 감당하기란 쉽지 않을 테니. 아마도 저장공간 아담한 의지력과 무한대로 치솟는 의욕 간의 조화로운 절충안이라고 생각된다.


문제는 나이가 들면서 열정의 온도가 지속되는 시간이 점차 짧아진다는 거다. 한번 궤도에서 이탈하면 다시 경로로 재안착되는데 걸리는 시간도 점점 길어지고 있다. 작심삼일만 해도 다행이고, 이제는 작심 세 시간 정도다. 얼마 전 외국인 채팅 친구 사귀기 프로젝트도 예외가 아니다.




매주 토요일 밤마다 한 시간씩 영어로 회화 스터디를 한다. 미국에 사는 50대 여성분. 한국분인데 미국인과 결혼해 덴버에서 살고 계신다. 프랑스에서 포닥 과정을 밟고 있는 30대 여성분. 역시 한국분이고 미국과 스위스에서 공부한 글로벌한 분이다. 한국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40대 여성인 나.


이렇게 삼인방 우리는 매주 주제를 바꿔가며 한 시간씩 프리토킹을 한다. 번갈아가면서 리더를 하고, 리더가 주된 주제를 정하면 삼인방이 각자의 소주제를 정하는 식이다. 평소에 영어 쓸 일이 전혀 없기에 토요일 밤 8시 정도만 되면 급 우울해진다. 내가 결성한 온라인 모임인데도 스터디가 너무 부담스럽고 공부하기가 싫어서다.


하지만 스터디를 끝낼 즈음엔 뿌듯함이 하늘을 뚫는다. 사전에 한두 시간 제대로 준비를 하는 날에는 만족도가 더욱 높아진다. 공부하기 싫어 하고싶은 말도 제대로 정리하지 못하는 날에는 자괴감이 든다. 주재하는 날에는 부담이 서너 곱절 커진다. 대화가 끊기는 순간을 모면할 임기응변식 스토리도 생각해둬야 하고,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이끌 추가 자료도 풍성하게 찾아봐둬야 하기 때문이다.




한 명 한 명이 짊어져야 하는 무게가 꽤나 크기에 한 명이라도 스터디를 못하게 되면 아예 취소를 한다. 지난주 토요일도 스터디가 무산될 뻔했다. 미국에 거주하는 멤버분이 다른 일정이 생긴 것이다. 그런데 요즘 새벽 기상을 하며 공부 시동이 제대로 걸린 프랑스 거주 멤버분이 둘만이라도 프리 토킹을 하자고 제안하셨다. 잠시 고민했지만 거절할 이유를 찾지 못했다.


준비 없이 참여한 한 시간 대화는 의외로 유쾌하고 즐거웠다. 사전에 준비하지 않아도, 그냥 생각나는 쉬운 단어로만 이야기해도 일상 대화는 가능하다는 걸 그새 잊고 있었던 거다. 요즘에 읽는 책, 한국과 프랑스의 근황, 일상 속 생각과 어려운 점을 나누다 보니 한 시간이 훌쩍 흘렀다. 이야기를 마무리할 즈음, 멤버분이 TANDEM이라는 애플리케이션을 소개해줬다.


탠덤이라는 단어는 익숙했다. 5~6년 전, 잠시였지만 캐나다 친구와 한국어-영어 탠덤을 하기도 했고, 중국인 친구와 중국어-한국어 탠덤을 하기도 했으니. 이 앱은 온라인으로 채팅을 하는 거였다. 익히 알고 있는 탠덤의 구조를 따르되, 시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는다는 점이 차이였다.




스터디를 끝내자마자 탠덤에 가입하고 내 소개글을 올렸다. 한국어가 모국어이고 영어를 어느 정도 구사하고 배우고 싶은 외국어는 일어와 프랑스어라고. 잠을 자고 일요일 오전에 확인해보니 그새 내 팔로워가 생기고 프랑스 한 여성분은 한국어로 말도 걸어왔다.


왠지 모를 용기가 생겼다. 한국어를 배우고 싶어 하는 프랑스인과 일본인을 몇 찾아서 내가 먼저 인사말을 건넸다. 몇 명은 즉시 회신을 줬다. 프랑스어와 일어 실력이 일천하기에 서너 번 기본적인 대화를 주고받으니 도저히 감당이 안됐다. 적극적으로 회신하는 두어 명에게는 구글 번역기를 돌려가며 간신히 응답했다. 두세번 반복하니 그것도 힘에 부쳐, 교정해주겠다면 부지런히 그들의 한국어를 고쳐줬다.


시차로 인해 프랑스 분들과는 대화가 곧 끊겼다. 다행이라는 생각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밤이 되니 프랑스 친구들이 다시 잠에서 깨어 말을 걸기 시작한다. 10여분 대화를 주고받으니 머리에 쥐가 날 것 같다. 이제는 내가 잠자리에 들 시간이다. 월요일 퇴근 후에 다시 대화를 이어가자며 서둘러 소통을 마무리했다. 시차가 많이 나는 게 이토록 고마울 때가 있다니.




월요일이 되니 나에게 말을 거는 이들이 몇 더 생겼다. 일어보다 불어 실력이 더 일천한데 적극적으로 내게 다가오는 이들은 죄다 불어권 친구들이다. 생각해보니 일본인 친구들은 다 내가 먼저 말을 걸었다. 내가 다시 연락하지 않는 한 이 친구들이 내게 먼저 말을 걸진 않을 것 같았다.


동양인과 서양인 간에 적극성의 차이가 유의미한 정도로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월요일은 너무 바빴다. 화요일도, 수요일도. 하지만 외국인 친구의 대화에 답 한 줄 못할 정도도 바쁜 건 아니었다. 바빴지만 세끼 밥은 꼬박꼬박 챙겨 먹었고, 10시가 넘어 퇴근해서도 내가 좋아하는 웹툰은 챙겨봤으니.


바쁜 게 아니라 머리를 써가며 낯선 이들과 소통하는 번거로움이 싫었던 게다. 늘 이런 식이다. 의욕이 충만할 때 이것저것 잔뜩 벌려놓는다. 계획을 세우는 그 순간에 늘 희열을 느낀다. 그 찰나적인 기쁨이 너무 소중해서 늘 계획을 세우고 새로움에 도전한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다.




새로운 것을 시작할 때까지 마구마구 치솟던 세로토닌과 엔도르핀이 막상 몇 시간이 지나면 고갈돼버린다. 정작 계획을 실천해야 하는 단계에서는 나를 흥분시키는 호르몬이 더이상 분출되지 않는다. 그저 꾸역꾸역 해내야 하는 숙제로만 다가온다.


이번 달부터 시작한 불어 수업도 마찬가지다. 수강생이 나 하나라서 부담 백배인 수업. 설렘 가득했던 첫 수업의 떨림과 흥분은 두 번째 수업부터 자취를 감췄다. 일어 온라인 수업도 신청할 때는 그리 기쁘더니 막상 내일부터 시작할려니 한숨부터 나온다.


그런데도 왜 이런 도돌이표 삶에 종지부를 찍기보다 다시 새로움에 늘 도전하는 걸까? 작심삼일은커녕 작심 세 시간에 그치더라도 뭔가를 계획하고 도전할 때만이 내가 살아있다는 게 느껴져서다. 아, 또 새로움 병이 도졌다. 이 글 발행하고 7월에 있는 JLPT N2 시험 접수를 해야겠다.

작가의 이전글 왜 태어난 계절을 좋아할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