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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간서치 힐데 Apr 14. 2021

단발머리 3인방

30cm면 된다는데


막내가 2년 이상 길러오던 머리를 잘랐다. 여러 이유가 있었다. 가장 큰 이유는 친구의 영향력 덕분이다. 막내딸의 친한 친구 중 한 명이 최근에 머리카락을 싹둑 잘랐다. 소아암환자를 위해 기부하기 위해서다.


머리카락 기부를 받는 <어머나 운동본부>에 확인해보니 기부를 위해 필요한 최소 길이는 25cm다. 막내는 30cm로 알고 고만큼 잘랐다. 허리 언저리까지 닿을 듯 말 듯 길러오던 머리를 싹둑 자르니 뭔가 허전하다.


하지만 제 새끼 털은 늘 함함하다고 여기는 고슴도치처럼 내 눈에는 뭘 해도 언제나 예쁘다. 이번엔 기특한 마음까지 더해져 더 이뻐 보인다.




큰 딸도 막내와 함께 이참에 머리를 잘랐다. 큰 애도 한동안 미용실을 못 가서 제법 길렀는데 어깨를 살짝 넘게 머리를 잘랐다. 뒷모습만 보면 큰 애인지, 막내인지 분간이 잘 안 간다. 나이 차는 여섯 살이 나지만 최근 1~2년 동안 훌쩍 커서 막내가 큰 애와 비슷해졌기 때문이다.


작년 요맘때까지 1년 반 남짓 머리를 길렀더랬다. 당시 세간의 화제였던 한 커리어 우먼의 긴 생머리에 강한 끌림을 느낀 후로 기억한다. 나이는 나보다 조금 더 많았는데, 그 연령에 그처럼 청초한 모습을 지닐 수 있다는 게 무척 매력적으로 보였다. 당장 머리를 기르기 시작했다.


행동파답게 결심은 쉬웠지만, 기르는 과정은 녹록지 않았다. 머리숱이 많지 않고, 반곱슬이라 기대했던 비주얼이 만들어지지 않았다. 풀어도 어색하고 묶자니 애써 기른 머리카락이 아깝고. 큰 맘먹고 한 비싼 파마도 반짝 효과만 있을 뿐 감탄사를 자아낼만한 헤어스타일은 내 몫이 아니었다.




작년 여름 끝자락, 머리카락을 댕강 잘랐다. 그제야 동료들이 훨씬 낫다고 한 마디씩 했다. 머리를 기르는 동안 왜 아무 피드백을 안 줬냐고 문의하니 간접적인 신호는 줘왔다고 한다. 머리를 길러보고 싶은 욕심이 가득했던 내가 은밀하게 건네는 눈초리와 언어를 인지하지 못했을 뿐이다.


내 삶에서 머리를 길러본 경험이 거의 없다. 사진 속에서 가장 자주 등장하는 모습은 귀밑 10cm를 넘지 않는 단발이다. 가장 길게 길러본 건 결혼하기 전 2~3년 정도. 그 지난한 과정을 견딘 후, 결혼식을 마치자마자 얼마 안 있어 바로 잘랐다.




늘 단발을 고수하는 나. 이번에 시원하게 단발로 변신한 두 딸. 머리카락이 더 길기 전에 단발 3인방, 조만간 기념사진이라도 남겨둬야겠다.


일단 그전에, 막내를 종용해서 얻어낸 단발머리 막내표 그림부터 이 글에 투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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