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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간서치 힐데 May 05. 2021

어린이날, 세 청소년과 함께

우리 집에는 아동이 둘 있다. <아동복지법>에 따르면 18세 미만이 아동이다. 중1인 막내딸과 고2인 아들은 이 법에 따르면 아동이다. <어린이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어린이는 13세 미만이 대상이다. 이 법에 따르면 막내딸을 제외하고 어린이날을 향유할 대상은 없다.


<청소년 기본법>에 따르면 9세 이상 24세 이하는 청소년이다. <청소년 보호법>에 따른 만 19세 미만 청소년에도 대학생 새내기인 큰 딸까지 빠짐없이 포함된다. 우리 집에 있는 세 명의 청소년과 어린이 날, 가사를 함께 하며 즐거운 두 시간을 보냈다.




어린이는 아니지만, 우리 가족 모두 휴일을 기다렸다. 각자 다른 이유로. 남편은 휴일에 내가 가사를 전담해줄 거라고 내심 기대하며 김밥 재료를 잔뜩 사뒀다. 마음 내키면 김밥 20줄 정도는 뚝딱 싸곤 하기에 이번에도 그런 이벤트를 기대했나 보다.


큰 딸은 어제 모처럼 친구와 놀이공원에서 늦은 시간까지 즐거운 시간을 보냈기에 오늘은 푹 쉬면서 인강을 들을 계획이었다. 아들은 월, 화 재량휴업일을 하지 않은 학교를 원망하며 이른 아침부터 롤 게임을 하느라 바쁘다. 막내딸은 중간고사 완패의 아픔은 깡그리 잊은 채, 웹툰을 보고 그림을 그리며 망중한이다.


고작 이틀 일했을 뿐인데, 나 역시 휴일을 기다렸다. 역시 주 4일 근무는 진리라고 되뇌며 느지막이 일어나 어제 보다 만 웹툰을 정주행 했다. 이른 낮잠까지 즐기고 나니, 부지런한 스터디 멤버분의 공부 인증 메시지가 도착해있다. 휴일에도 쉬지 않는 성실한 분! 대충 느슨하게 하루를 보내려던 마음에 경각심이 일렁인다.




늦은 점심을 먹고 사무실로 향했다. 내일 아침 일찍 보고가 잡혔는데, 새롭게 숙지해야 할 자료가 제법 된다. 참고자료를 챙기러 사무실에 들리느라 오가며 걷기 운동을 했더니 운동 의욕이 샘솟는다. 집으로 가기 전 피트니스 센터에 들려 오늘치 근력운동을 한다.


어제 퇴근 후 아들과 함께 근력운동을 하면서 즐거웠기에, 아들을 부를까 살짝 망설이다 그냥 오늘은 홀로 운동을 끝냈다. 역시나 함께 하는 운동이 더 즐겁다. 다음부터는 함께 해야지!


집에 돌아와 세 청소년과 함께 김밥 싸기를 시작했다. 재료 씻기와 썰기는 아들이 도맡고 기름을 둘러 익히는 건 내 몫이다. 준비된 재료로 김밥말기는 두 딸이 맡았다. 김밥 썰기는 의욕에 넘치는 아들이 절반을, 나머지 절반은 내가 담당했다. 썰면서 먹으면서, 하하호호 거리다 보니 어느새 두어 시간 가까이 훌쩍 흘렀다.




세 청소년은 안마의 달인이다. 다들 나름의 손맛이 있다. 다들 악력이 약하지 않은 편이지만, 내 주문 사항에 맞춰 힘 조절을 제법 한다. 큰 딸은 섬세한 느낌이 강점이다. 아들은 큰 손 전체적으로 힘을 잘 분배해 파워 안마를 받는 느낌이 좋다. 막내는 손크기는 나와 비슷하지만, 힘은 오빠 못지않다.


저녁 먹고 유쾌한 기분을 이어 안마받기를 이어갔다. 통통 볼에 앉아 세 아이들의 안마를 골고루 즐겼다. 역시 "아들의 안마, 파워풀하네."라며 만족스러워하자, 세 아이들의 웃음이 집안을 가득 메운다. 알고 보니, 막내딸이 살금살금 내 뒤에 서서 오빠 버전 안마를 선보였던 게다.


내친김에 남편에게도 누가 안마를 하는 건지 알아맞혀 보라고 했다. 마치 <너목보(너의 목소리 보여)>의 안마 버전 <너안느(너의 안마가 느껴져)>다. 큰 딸의 안마는 차별화가 되어 남편도 쉽게 맞춘다. 역시 어려운 건 아들과 막내딸의 안마. 남편도 나처럼 둘을 헷갈려서 너안느에서 탈락했다.




<너안느> 다음에 세 청소년과 함께 한 것은 <업어주기>다. 간지럼에 유독 약한 아들이 내가 업힐 때마다 웃음을 참지 못한다. 큰 딸은 차분히 안정감 넘치게 잘 업어준다. 막내딸은 아슬아슬하긴 하지만 그럭저럭 잘 업고 몇 발자국 걷기도 한다. 웃음을 간신히 멈춘 아들 차례다. 가뿐하게 업고 거실까지 성큼성큼 걸어간다. 모델 워킹처럼 박력 넘치고 멋지다. 내 눈에는.


막내딸이 <공주님 안아주기>에 도전하고 싶다며 유혹한다. 마음이 동하긴 하지만, 겁이 나서 "だめ!"를 외치며 도망친다. 일본어가 제2외국어이기에 세 청소년은 모두 기본 일본어 정도는 다 알아듣는다. 모두 다 애니광이기에 애니에 나오는 상용어로 기초 회화를 하는 것도 큰 즐거움 중 하나다. 일주일치 웃음을 다 쏟아부으며 한바탕 가족 스킨십을 나눈 후, 세 청소년은 운동을 나갔다.




20년 전, 직장에 갓 들어간 연수원 시절. 동기 수첩에 좌우명을 적어야 했다. 별생각 없이 살던 시절이라, <35 3 3>이란 숫자를 덩그러니 남겼다. 35세 이전에 3명의 자녀를 3명 남기겠다는 거였다. 그리고 진짜 그 글대로 실천을 했다.


남들은 초록 초록한 청춘을 즐기는 동안, 아이 키운다며 제대로 못 놀아본 나의 20대 후반과 30대가 아쉽기도 했다. 20년이 지나 보니 나의 결정에 후회가 없다. 오히려 <37 2 5>로 했다면, 지금보다 더 행복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3명인데도 이렇게 기쁜데, 다섯 명이면 얼마나 더 즐거울까.


아이들이 나가고 집 안이 조용해지니, 이제 좀 정신이 든다. 회사에서 갖고 온 서류뭉치를 아직 들여다보지도 못했다. 마침 지금 살펴보는 자료는 아동과 청소년을 위한 업무다. 우리 집 청소년을 위해서라도, 남의 집 청소년을 위해서라도 중요한 일임에 틀림이 없다. 어린이날에 딱 맞는 일을 하게 돼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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