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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간서치 힐데 May 06. 2021

00야, 얼굴에 바람 넣었냐?

이번 어버이날도 찾아뵙지 않는 걸로 했다. 마음과 성의를 계좌이체하는 걸로 대신했다. 작년 추석에도 못 갔고, 올해 설에도 물론 못 갔다. 엄마 생신도, 아빠 생신도 그냥 용돈으로 퉁치며 만 1년 가까이 보내고 있다.


딸 얼굴을 1년 가까이 못 보던 친정엄마는 며칠 전 케이블 TV에서 방송된 인터뷰를 통해 딸을 만났다. 화면으로 보이는 딸의 얼굴은 원래 알고 있던 것보다 더 부어 보였다. 만날 때마다 엄마 눈에는 늘 호리호리하게만 느껴지던 딸이 갑자기 1년 만에 살이 쪘을 거라는 건 상상하지 못하고 조심스럽게 묻는다.


00야, 너 얼굴에 바람 넣었냐?
넣지 말아라
나이 들어 늙으면 이상하게 변한다

아니라고 여러 번 대답하는데도 화면 속 모습이 얼마나 충격적이었는지 두세 번 더 되뇌신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보톡스를 맞아본 적도 없고, 앞으로도 맞을 생각이 없건만.


코로나 19를 겪으면서 '확찐자'가 되어버린 건 나뿐이 아니다. 큰 딸도, 막내딸도 확찐자 3인방이 되어버렸다. 지난주부터 셋이서 의기투합해 다이어트를 시작한 이유이기도 하다.




확찐자가 되고 싶어서 된 건 아니다. 군살 제거를 위한 노력을 해보지 않은 것도 아니다. 작년 2월 중순, 태어나서 처음 줌바 수업에 등록했다. 대학시절 즐겨했던 에어로빅과 비슷해 보여서 흥겹게 살을 뺄 수 있을 것 같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사회적 거리두기 전이라 강습 수강과 관련한 제한이 없었다. 하지만 두 번 수업을 듣고 나니 줌바 수업은 휴강에 들어갔다.


2주 후쯤 모르는 문자를 받았다. 내가 수강한 첫날 잠깐 맛보기로 수업을 들었던 강사 선생님이 확진자가 되었다는 문자였다. 두 번째 수업은 다른 강사분이 진행하셨기 때문에 확진자 분과 겹치는 동선은 잠시 뿐이었다. 그럼에도 식은땀이 흐르고 시간을 되돌리고 싶다는 생각으로 가득 찼다.


수강 첫날, 감을 잡겠노라며 제일 뒷 줄에서 어설프게 잠깐 따라한 걸로 확진이 되지는 않을 거야. 강사분 증상이 발현되기 전이니 전염력이 없었을 거야. 온갖 긍정 시나리오에도 불구하고 최악의 상상이 마구마구 펼쳐졌다.


보건소로 전화해서 검사를 받고 싶다고 하니, 받고 싶다고 받을 수 있는 검사가 아니니 일단 시청의 공식 발표가 있을 때까지 집에 가서 자가격리를 하라고 한다. 뜬금없이 줌바 수업을 왜 들었냐는 남편의 핀잔은 시작에 불과했다. 이야기를 전해 들은 아이들이 고강도 거리두기를 시작했다. 당연한 수순이었지만, 서운한 마음을 감추기란 쉽지 않았다.




다행히 하루가 지나니 보건소에서 연락이 왔다. 희망하면 검사를 해볼 수 있다고 한다. 당장 가겠노라고 이야기하고 준비를 했다. 보건소에서 검사를 받으며 불가촉천민이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다들 친절했지만 경계심과 긴장감이 팽팽하게 감도는 현장에서 아무렇지도 않은 듯 하기란 쉽지 않았다.


코로나가 잔인한 것은 가장 소중한 이들에게 상처를 남긴다는 점이다. 검사 결과를 기다리는 20시간은, 식상한 표현이지만 "일각이 여삼추" 그 자체였다. 결과를 기다리며 10년쯤은 훌쩍 늙어버린 듯하다. 만약 확진이라면, 고3인 딸이 검사를 받아야 한다. 아이들은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겠지. 내가 아낀다고 밥 사 줬던 후배들도 검사를 받아야 하네. 아, 회사를 다닐 수는 있는 걸까...


소심 대마왕답게 별의별 상상을 다 했다. 당시는 확진자 수가 많지 않고, 확진자 개인별 동선이 매우 상세하게 공개되던 때라서 더욱 고민이 컸다. 다행히 신은 나의 편이었고, 음성 판정을 받고 바로 출근을 했다. 당시에는 음성 판정이라도 2주 격리를 해야 한다는 가이드라인도 채 만들어지기 전이었다.




의도치 않게 사내에서 유명해졌다. 엘리베이터를 우연히 같이 타게 된 부사장님은 괜찮냐면서 안부를 물으신다. 갑자기 송구스러워진다. 평소에 안 하던 운동을, 왜 하필 그때 하겠노라고 했을까. 이후 나의 운동의지는 급속도로 약화됐다. PT 수업도 가급적 불참했다. 수업료만 낸 채 40회가 넘는 수업이 남아 있었지만, 감히 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친정엄마가 의혹의 눈초리를 보일만큼 살이 찔 수밖에 없었던 스토리의 전말이다. 다음 달 엄마 생신에는 남편과 둘만이라도 찾아뵈려고 한다. 엄마가 "바람 넣었냐?"라고 또다시 묻지 않으시도록 한 달간 감량을 해야겠다.


뺄 수 있겠지? 아, 빼야 한다.

딸내미들이 정해준 다이어트 미션 벌칙은 무시무시하다.

목표한 감량치를 달성하지 못하면 1주일간 웹툰 금지다.


엄마가 괜한 걱정 안 하시도록 살을 빼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다지는 나 자신이 기특하다.

엄마인 나의 신체건강과 정신건강을 위해 다이어트에 동참해주고, 체중감량 의욕을 고취시키기에 충분한 페널티를 제시한 아이들도 기특하다.

모전여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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