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는 두 가지의 기운을 다 취해야 마침내 완전하다. 흑은 삼키고 백은 내뱉는다. 만물은 그 사이에서 변화를 타면서 순환하고 조화를 이룬다. 따라서 흑과 백은 천지에 교차하는 낮과 밤이 그러하듯 어느 한쪽이 우월하지 않다. 흑과 백은 바둑돌의 흑돌과 백돌이 그러하듯 평등함으로써 세상이 편안하다. 이 세상은 흰색과 검은색으로 균형과 조화를 이룬다.(p. 7)
파랑은 어떤 경우에도 비매품이다. 값을 매길 수 없을 만큼 고귀해서다. (중략) 파랑은 구원, 안식, 피안의 계시적 예시다. 지치고 힘들 때마다 파랑의 왕국으로 망명하고 싶다. (pp. 54-55)
소름이 돋을 만큼 아름다운 밤하늘 아래에 서 있던 그 찰나, 내 영혼은 정화된 느낌과 함께 단지 살아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황홀경에 들었다. 오, 이렇게 아름다운 하늘마저 잊고 살다니! 사십억 년 된 지구에서 겨우 칠팔십 년을 사는 우리는 인생의 날들이 마치 영원히 이어질 것인 양 착각하며 먹고사는 일에 파묻혀 하늘을 잊고 산다. (p. 59)
흰색에 빛이 입혀진 게 은색이다. 은색은 빛의 성질을 띰으로써 훨씬 가볍다. 은색은 빛의 무게를 갖지 않은 가벼움으로 흰색의 무거움과 차별된다. 은색은 초승달, 수은, 달빛, 진주의 색이다. 달빛 받은 물결이 뿜어내는 게 은빛이다.
흰색이 순수성, 진리, 순진무구함의 표상이라면 은빛은 만질 수 없는 피안의 빛, 그 창백한 아름다움으로 고고하다.(p. 101)
보라는 환멸과 동경이라는 양의성을 갖고 있다. 초록은 보라를 도무지 알 수 없다. 초록에 핏물이 들어야 보라가 될 수가 있다. 고통의 단련을 거쳐야만 도달할 수 있는 보라. 보라는 삶을 알 만큼 아는 사람의 색, 사랑을 아는 자의 색이다. (p. 1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