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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간서치 힐데 May 11. 2021

언제쯤 어른이 될까?

물리적인 연령으로, 생리적인 신체변화로 어른으로 산 지 벌써 한참이 지났다. 몇 년 후면 벌써 반 백세인데, 여전히 '어른' 운운하면서 고민하는 게 어리석기 그지없어 보인다.


'어른다움'을 정교하게 정의 내릴 수도 없으면서, 한치의 흔들림을 허용하지 않고 나 자신에게 '다움'을 강요하는 게 맞는 건지도 잘 모르겠다. 그럼에도 꿀꿀한 기분을 조금이라도 털어내고 싶은 바람을 담아 출렁이는 마음의 결을 두서없이 남겨본다.




아이들과 꽤 잘 지낸다고 생각해왔다. 보드게임을 할 때 나를 빼지 않는다. 그제 저녁에도 <억만장자>를 함께 하자며 엄청 졸라대서 90분 정도 함께 했더랬다. 불금 밤이 되면 기다렸다는 듯이 영화나 애니메이션을 함께 보자고 권한다. 홀로 킥킥거리며 유튜브나 웹툰을 보다가도 내가 궁금해하면 주저하지 않고 화면을 공유해준다.


착각이었다. 사이가 좋았던 건, 그동안 내가 엄마로서 '훈육'이라는 의무를 방기해 왔기 때문이었다. 갈등 없이 지내올 수 있었던 것은, 그동안 내가 아이들의 성적표에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아이들에게 그동안 익숙했던 내 행동 노선에 변화가 초래되자 균열지점이 생겼다. 발단은 어젯밤 막내딸을 가르치면서였다. 중학생이 되어 치른 첫 시험, 딸내미의 성적은 형편없었다. 평소처럼 지나갈 수도 있었지만, 아이 상태가 심각해지기 전에 보충을 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몇 차례 아이를 가르쳐 봤지만, 성격이 유독 강한 아이를 차분히 가르치는 게 녹록지 않았다. 결국 사교육의 힘을 빌리기로 했다. 막내는 지금까지 태권도 학원 말고는 학원을 다녀본 적이 없다. 지금도 태권도 학원은 엄청 부지런히 다닌다. 학교 선생님보다 관장님 말씀을 더 금과옥조처럼 여기는 것도 같다.




아이가 순순히 수학학원을 다니겠다고 해서 다행이다 싶었다. 알고 보니 학원 같은 반에 학교 친구가 있어서 낯섦이 덜했다고 했다. 하지만, 처음 다녀보는 학원이다 보니 아직 적응이 충분히 되지 않았나 보다. 평소처럼 주말은 최선을 다해서 놀고, 어젯밤 학원 숙제를 펼친 막내.


해야 할 숙제량은 많고 이해는 안 되고. 언니, 오빠의 설명을 들으면 아는 것 같은데 막상 문제를 풀려면 또 모르겠고. 2시간 남짓 언니, 오빠 옆에서 끙끙대며 문제를 풀다 결국 두 손, 두발 다 든 아이들에 이어 내 차례가 되었다. 평소에는 그리 사이좋던 막내와 나는 10분도 안돼서 사이가 갈라졌다.




분배 법칙을 이용해서 방정식의 해를 구하거나 미지수를 찾아내는 매우 간단한 문제들이었다. 하지만 기초가 부실한 막내는 문제를 풀 때마다 어려움을 호소했다. 이른 아침 운동부터 시작해 업무를 끝내고 퇴근 후 불어, 일본어 공부까지 끝낸 직후라 피곤에 절여있던 나는 결국 폭발했다.


자정을 넘어서면서 정신이 혼미해지더니 새벽 1시가 넘으니 정신줄 잡기가 어려웠다. 못해가면 못해 가는 대로 책임을 지라며 따끔하게 일침을 놓았던 것까지는 기억이 나는데 그 뒤로 기억이 없다. 눈 떠보니 아침이었다. 밤새 공부했던 흔적이 제대로 정리되지 않은 채로 그대로 있었다. 아이는 어디서 잤을까?




의도치 않게 출근길 인터벌 러닝을 하면서 간신히 지각을 면했다. 잠든지도 모르고 잠이 들어버려 알람도 맞추지 않았던 까닭에 늦잠을 잤던 거다. 가쁜 숨을 고른 후, 정신을 차려보니 아이가 밥은 먹고 등교한 건지 궁금했다. 평소 사이좋을 때 같으면 한 번쯤 깨워줬을 법도 한데 무심하게 그냥 가버리다니. 밤새 혼낸 엄마에 대한 소심한 복수일까, 조금 더 자라는 배려일까? 아마도 전자겠지?


문득 고등학교 때 친구 엄마 에피소드가 생각났다. 10대 후반 철없던 시절 아이를 낳았던 친구 엄마는 고등학생인 내 시선으로는 '어른답지 못한 엄마'였다. 아침에 늦잠을 자는 날이면 딸에게 일찍 안 깨웠다고 화를 내곤 한다고 했다. 어쩜 이렇게 철부지 엄마가 있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30년 후, 철부지 엄마가 되어보니 이제는 알겠다. 그때는 틀렸던 게, 지금은 맞다. 엄마는 신이 아니다. 늦잠을 잘 수도 있다. 아이 아침밥을 못 챙겨줄 수도 있다. 아이에게 화를 낼 수도 있다. 다만, 아이 가슴 생채기가 깊어지기 전에 얼른 상처를 살펴줘야 한다.


작년 어버이날, 막내딸이 카네이션을 그려서 선물로 줬다. 아이 선물에 각별한 눈 맞춤을 해보니 어제 가시 돋친 말을 내뱉은 게 더 미안해진다. 오늘 밤 아이가 학원에서 돌아오면 꼭 껴안고 미안하다고 말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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